은행
정부 압박에 ‘중금리 대출’ 내놓는 은행들…시장 왜곡 우려도
- 연 이자율 5.5~7% 수준 대출 잇따라 출시
“편한 이자장사 안주” 대통령 질타에 상생금융 속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을 향해 ‘잔인한 금융’ 등 강도 높게 질타한 이후 은행권이 저신용자와 청년 등 금융 취약계층에 대출 문턱을 낮추고 있다. 시중 은행들은 연 5.5~7% 수준의 중금리 대출 상품을 선보이면서 포용금융 확대에 나섰다.
신한은행은 포용금융 일환으로 ‘중금리대출 지원 패키지’를 전격 시행한다고 6월 23일 밝혔다. 신한금융그룹이 발표한 총 5조원 규모의 ‘포용금융 2.0 ON(溫)’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해당 대출 상품은 외부 신용평점 나이스(NICE) · 코리아크레딧뷰로(KCB) 하위 50%에 해당하는 차주가 이용할 수 있다. 연 이자율은 최대 6.9%다. 실제 산출금리가 연 6.9%를 초과할 경우 최고 연 6.9%의 금리 상한을 적용한다. 신용 하위 등급은 물론 전업주부 · 은퇴자 등 금융거래 정보(금융이력)가 부족한 고객군을 포함해 상환능력과 금융거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심사 기준을 개선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달 19일 중 · 저신용자를 위한 2조원 규모의 ‘하나원큐 안심 중금리대출’을 출시했다. 개인 신용 평점 하위 50% 이하 고객이 대상이다. 연 5.5%의 고정금리로 최대 1000만원을 빌릴 수 있다. 성실하게 채무를 갚아온 자영업자들을 위해 1조원 규모의 ‘하나더소호 성공사다리대출’을 출시해 최저 연 4.5%의 낮은 금리로 무보증 신용대출도 지원한다.
NH농협금융지주는 대안신용평가시스템 혁신을 통해 1금융 갈아타기 대출 상품을 연내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저신용자가 신용도에 맞는 합리적 수준의 금리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금융권이 포용금융 상품 출시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정부의 매서운 질타가 자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 현재의 금융제도를 겨냥해 “가난한 이가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 계급제가 됐다”며 당장 돈이 필요한 서민과 저신용자들은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고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 바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5월 페이스북에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시작하며’라는 글을 올리고 금융권을 비판했다. 김 실장은 “언제까지 과거의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력만 쳐다보고 있을 건가. 사람들은 이미 매일의 소비와 납부, 플랫폼 활동을 통해 수많은 삶의 신호를 만들고 있다”며 은행권을 중심으로 중 · 저신용자에 맞는 신용등급 체계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런 지적이 나오자 은행권에서 기존 신용평가 시스템 이외에 새로운 평가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기존 신용평가 시스템 이외에 ▲통신비, 세금, 공과금 납부 이력 등 생활 데이터 ▲도서구입, 전통시장과 대중교통 이용 등 소비 데이터 ▲개인사업자 가맹정 매출정보 등 사업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평가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금리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금융 시장의 기본 작동 원리가 왜곡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용점수가 더 높은 중신용자의 마이너스통장이나 일반 신용대출 금리가 저신용자 전용 중금리대출 금리보다 높아지면서 역전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저신용자의 재기를 돕는 포용금융 확대 취지는 공감하지만, 자칫 은행 건전성에 위협을 주거나 차주들이 저금리로 자금을 빌리기 위해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나타날 수도 있다”며 “은행이 건전성을 지키며 서민 대출을 확대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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