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축 시대의 귀환]①
유럽·일본 잇달아 금리 인상…美 연준도 연내 인하론 폐기, 인상 무게
韓 기준금리 인상 초읽기, 가계 부채 폭탄 우려
기업 신용경색·가처분소득 감소 위협…환율 방어 위해 필요성↑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에서 이어지던 유동성 파티가 마무리되고 있다. 위축된 소비 심리를 살리기 위해 각국 정부가 시장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풀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며 대응했으나, 이제 다시 긴축의 시대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증시 호조에 따른 부의 증가, 미국과 이란의 전쟁 이후 고유가가 촉발한 인플레이션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긴축 정책의 명분을 뒷받침하고 있다.
‘30년 제로금리’ 일본마저 인상
가장 먼저 유럽중앙은행(ECB)이 움직였다. ECB는 지난 6월 11일 통화정책이사회를 열고 예금금리·기준금리·한계대출금리를 모두 0.25%포인트(p) 인상했다. ECB가 금리를 올린 것은 2023년 9월 이후 약 3년만이다. ECB는 “중동 전쟁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하고 있다”며 “금리 인상으로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5월 유로존 21개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2%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닷새 뒤인 16일에는 일본은행(BOJ)이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일본은행은 이날 단기 정책금리(기준금리)를 현행 ‘0.75% 정도’에서 ‘1% 정도’로 0.25%P 올렸다. 일본의 기준금리가 1%를 넘어선 것은 1995년 9월 이후 31년 만이다. 일본은행은 회의 후 금리 인상 배경에 대해 “원유 가격 상승을 계기로 기업 간 거래에서 가격 전가가 다소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향후 소비자 단계에서 광범위한 품목의 가격 상승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거품’이 꺼지며 경제적 충격을 마주했던 일본은 지난 30년간 마이너스 금리와 0%대 금리를 유지했으나, 최근 2년간 5차례 금리를 올리며 기준금리 1% 시대 진입을 선언했다.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는 “경제·물가·금융 정세에 따라 계속해서 정책금리를 인상하겠다”며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7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으나, 사실상 인하 가능성이 사라지며 연내 금리 인상 전망이 우세해졌다. 신임 케빈 워시 의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위원 절반 이상이 올해 적어도 한 차례 이상 금리를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3월 아무도 연내 금리 인상을 예상하지 않았던 점과 비교하면 연준의 분위기가 급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연준은 정책결정문을 통해 “인플레이션은 에너지를 포함한 일부 부문의 가격 상승을 초래한 공급 충격을 일부 반영해 여전히 2%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다”며 “위원회는 물가 안정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늘어나는 이자 부담…가계 소비·내수 위축 직격탄
이런 분위기는 한국은행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취임 후 공개 석상에서 여러 번 금리 인상 필요성을 시사했다.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현행 연 2.50%의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나 신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물가로 보나 성장으로 보나 환율·부동산으로 보나 갈 길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6월 물가 설명회에서는 “한국은행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국들이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올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 도미노 현상으로 촉발될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신규 대출과 잔액 기준 변동금리 비중도 높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어, 기준금리가 오르면 이 취약점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은행의 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이는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나 은행채 금리 등 대출 기준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을 변동금리로 받은 차주들은 6개월 주기로 이자가 불어나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시기 2% 수준의 금리로 5년 고정 후 변동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빌린 차주들은 최근 대출 금리 인상 여파로 4% 넘는 이자를 감당하고 있다.
만약 2% 금리로 3억원을 빌린 차주가 원리금균등분할상환(매달 원금과 이자를 균등하게 나누어 갚는 방식)을 하기로 했다면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111만원 수준이지만, 금리가 4%로 오르면 매달 143만원가량을 지출해야 한다. 가계 소득은 일정한데 매달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 비용이 30만원 넘게 늘어나는 셈이다. 이 경우 그만큼 쓸 수 있는 돈인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 이는 외식·여행·내구재 소비 감축으로 이어지고 자영업자와 내수 기업의 매출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여유 자금이 줄어들면 개인들의 주식 투자도 열기를 잃어 증시가 불황을 맞을 수 있다.
기업 도산·환율 급등 경고등…한은의 깊어지는 고뇌
금리가 오르면 경제력이 떨어지는 기업의 도산 우려도 커진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견·중소기업은 채권 발행이 어려워져 자금줄이 마르는 신용경색을 겪을 수 있다. 은행 대출이 많은 기업이라면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라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타격을 받는다. 기업의 연체율이 높아지면 금융권의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이 긴축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금리를 올리지 않았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물가가 치솟으면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더 큰 경기 침체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대중의 믿음이 커지면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노동자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기업은 제품 가격을 더 올리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여기에 미국과 금리 차이가 더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자 이탈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치솟고 이는 또 다른 물가 충격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당장 금리를 올려 대출자들이 고통을 겪더라도 부채 증가 속도를 늦춰 장래에 자산 거품이 한꺼번에 터지는 문제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과 한은 7월 빅스텝 가능성’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경우 외화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하다는 점에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인상하는 것)보다는 외환당국이 언급한 다른 외환 정책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원·달러) 환율이 1561.5원을 넘어 1600원 내외까지 접근할 경우 과도한 쏠림 방지와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 방지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0.50%P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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