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1000조 美·450조 中…5300억 韓 독파모가 살길은
- 범용 모델 대신 제조·산업 특화로 승부
현장 적용·민간 투자로 생태계 키워야
[이코노미스트 이혜리 기자] 미국은 1000조원, 중국은 450조원. 생성형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국가 간 돈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빅테크는 AI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고 중국도 국가 주도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 정부도 ‘세계 3대 AI 강국’을 목표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개발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투자 규모의 격차를 고려하면 미국·중국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투자 규모만으로 한국 AI 전략의 성패를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을 같은 방식으로 따라갈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경쟁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AI 경쟁, 이제는 자본의 시대
AI 산업은 최근 2~3년 사이 자본 집약 산업으로 변했다. 오픈AI는 최근 엔비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향후 수백만개 규모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하는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메타·마이크로소프트 등도 수십조원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잇달아 짓고 있다.
AI 모델은 개발이 끝이 아니다. 지속적인 학습과 추론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컴퓨팅 자원과 막대한 비용이 계속 투입된다. 미국은 이미 AI 인프라 확대 경쟁에 들어갔다. 메타·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알파벳 등 4개 빅테크의 올해 설비투(CAPEX) 계획은 총 7250억달러(약 1000조원)에 달한다. 상당 부분이 AI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투입된다.
중국도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약 2조위안(약 450조원)을 AI 인프라에 투자할 계획이다. 딥시크에 이어 최근 문샷AI의 ‘키미(Kimi) K3’까지 글로벌 최상위권 성능을 입증하면서 AI 경쟁 구도는 미·중 양강 체제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한국도 독자 AI 확보에 나섰지만 자본 규모에서는 격차가 크다. 글로벌 프런티어 모델 개발은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 확
보를 필요로 한다. GPU와 데이터, 전력까지 AI 경쟁의 핵심 자원이 되면서 AI 모델 개발은 기술력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자본 집약 산업으로 바뀌었다. 이런 환경에서 국내 기업들은 초거대 모델과 정면 경쟁하기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모델에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이 자본을 앞세워 초거대 AI 경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다른 승부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범용 AI 모델의 성능 경쟁은 막대한 자본이 필수인 만큼 단기간에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 대신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과 산업 데이터를 활용해 산업 특화 AI를 육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HD현대 같은 글로벌 제조기업을 보유한 한국은 반도체와 스마트팩토리·자동차·조선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AI를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빠르게 적용하고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범용 AI 모델 자체를 수출하기보다 반도체와 디바이스·제품·서비스까지 AI를 결합해 함께 내놓는 ‘풀스택 산업 AI’ 전략이 한국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 AI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르다. 범용 AI처럼 모든 질문에 답을 잘하는 것보다 특정 업무를 얼마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수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단기간에 하기 어려운 것을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며 “범용 AI를 정면으로 추격하기보다 산업 특화 AI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독파모’ 성패 성공사례에 달려
이 같은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 독파모다. 정부는 LG AI연구원과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모티프테크놀로지스 등 4개 개발팀을 선정해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2027년까지 5300억원을 투입하며 다음 달 초 2단계 평가가 예정돼 있다.
정부도 독파모를 단순한 ‘한국판 GPT’ 개발 사업으로 보지 않는다. 제조·공공·의료·국방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소버린 AI 기반 구축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최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프런티어 AI 모델은 거의 핵무기처럼 국가가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독파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독파모의 성공 여부를 모델 성능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매개변수(파라미터) 규모와 ▲멀티모달 ▲추론 능력 ▲AI 에이전트 기술 같은 모델 자체 경쟁력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활용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느냐가 더 결정적이다. 제조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공공 행정을 자동화하거나 의료·국방 분야에서 실제 활용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독파모의 성패를 가를 핵심 지표라는 분석이다.
관건은 지속성이다. AI 모델은 개발보다 유지·운영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산업이다. 성능 개선을 위한 ▲추가 학습과 GPU 확충 ▲데이터 확보 ▲서비스 운영까지 투자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 올해부터 투입되는 5300억원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후 민간 투자와 AI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 생태계를 키우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따라가는 것보다 1000억~5000억개 파라미터 수준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 특화 AI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라며 “독파모에 참여한 기업들이 제조나 공공 등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독파모의 성패는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강점을 가진 산업에서 경쟁력 있는 AI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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