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지붕보다 가볍고 부피 작아…주행 성능·공간 활용에 유리
차체 보강·전복 보호장치로 안전성 확보…사망률 일반 모델보다 낮아
수만 개의 부품이 모여, 하나의 차량이 완성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작은 부품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작고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어느 하나 대체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부품들이 차를 움직이고·길을 만들고·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지금부터, 미처 보지 못했던 부품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편집자주]
소프트톱을 접은 채 전시된 메르세데스-AMG CLE 53 카브리올레. [사진 AF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자동차의 지붕이 천이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군용 트럭에 씌워진 투박한 천막이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고급 컨버터블의 지붕도 천으로 돼 있다. 겉모습은 닮았지만 속은 전혀 다르다. 컨버터블의 소프트톱(접이식 천 지붕)은 단순한 천막이라 보기 어렵다. 접이식 프레임 위에 여러 겹의 직물과 단열·흡음 소재를 결합하고 개폐장치까지 갖춘 정교한 지붕 시스템이다.
소프트톱의 시작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1948년 등장한 포르쉐 ‘356 No.1 로드스터’의 지붕은 간단한 막대 구조 위에 차체 크기에 맞춘 캔버스 천을 씌운 형태였다. 평소에는 지붕을 열고 다니다가 비가 올 때만 사용하는 임시 덮개에 가까웠다. 천으로 된 소프트톱을 보며 군용차의 천막을 떠올리는 것도 완전히 틀린 상상은 아닌 셈이다.
소프트톱의 가장 큰 장점은 무게와 부피다. 직물로 만든 지붕은 금속 패널로 구성된 지붕보다 가볍고 접었을 때 차지하는 공간도 작다. 트렁크 공간을 비교적 넓게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차량 후면부를 설계할 때도 선택지가 많아진다.
컨버터블은 고정된 지붕이 없어 일반 차량보다 차체 강성을 확보하기 까다롭다. 제조사들은 차체 바닥과 양옆의 문턱, 앞유리를 떠받치는 기둥 등을 별도로 보강한다. 이 과정에서 늘어난 차량 무게를 상대적으로 가벼운 소프트톱으로 일부 상쇄할 수 있다. 소프트톱이 단순히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선택만은 아닌 셈이다.
오픈톱 자동차의 전통이 깊은 메르세데스-벤츠의 선택도 이를 보여준다. 벤츠는 2001년 공개한 5세대 SL에 금속 패널을 접는 ‘바리오 루프’를 적용했다. 버튼을 누르면 16초 만에 쿠페가 로드스터로 바뀌는 당시로서는 첨단 장치였다. 후속인 6세대 SL도 금속 접이식 지붕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현행 메르세데스-AMG SL은 다시 천으로 된 소프트톱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무게와 무게중심에 있었다. 벤츠는 3층 구조의 소프트톱을 적용해 이전 세대의 금속 접이식 지붕보다 무게를 약 21㎏ 줄였다. 차량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지붕이 가벼워지면서 무게중심도 낮아졌다. 주행 성능과 조종 안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천 지붕이라고 해서 천 한 장을 차체 위에 덮은 것은 아니다. 현행 AMG SL의 지붕은 3개 층으로 구성되고 내부에는 소음을 줄이기 위한 흡음 매트가 들어간다. 지붕을 닫았을 때 바람 소리와 외부 소음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줄이기 위한 구조다. 벤츠는 이 같은 지붕을 ‘어쿠스틱 소프트톱’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소프트톱은 벤츠의 최상위 오픈톱 모델에도 적용된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L 680 모노그램 시리즈의 지붕도 직물로 만든 어쿠스틱 소프트톱이다. 정숙성과 안락함을 앞세우는 최고급 모델에도 천 지붕이 쓰이는 셈이다.
소프트톱의 가치는 지붕을 닫았을 때보다 열었을 때 더 분명해진다. 최근 컨버터블은 버튼 한 번으로 짧은 시간 안에 지붕을 여닫을 수 있고 일부 모델은 저속 주행 중에도 작동한다. 컨버터블 차량을 타는 한 차주는 “퇴근길 서울 밤거리를 지붕을 열고 달리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소프트톱을 둘러싼 가장 큰 오해는 안전성이다. 천으로 된 지붕이 사고 충격을 제대로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다. 그러나 컨버터블의 안전성은 지붕에 사용된 직물의 강도보다 차체 구조와 별도의 탑승자 보호장치가 좌우한다.
제조사들은 차체 바닥과 문턱, 앞유리 양옆의 A필러를 강화해 충돌 과정에서 탑승 공간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다. 차량이 뒤집히는 상황에 대비해 좌석 뒤쪽에 롤바를 설치하기도 한다. 일부 컨버터블에는 평소 차체 안에 숨겨져 있다가 전복 위험이 감지되면 순간적으로 솟아오르는 보호장치가 적용된다. A필러와 함께 탑승자의 머리 위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실제 사고 통계에서도 컨버터블이 특별히 더 위험하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는 2014~2018년 미국에서 운행된 출시 1~5년 이내 컨버터블과 같은 차종의 일반 모델을 비교했다. 그 결과 주행거리당 컨버터블 운전자의 사망률은 일반 모델보다 11% 낮았다.
주의할 부분도 있다.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가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간 비율은 컨버터블이 21%로 일반 모델의 17%보다 높았다. 전복 사고로 범위를 좁히면 이 비율은 컨버터블 43%, 일반 모델 35%였다. 안전띠 착용과 전복 상황에서의 탑승자 보호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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