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롤러코스터 증시에 “이자라도 받자”…예금으로 몰리는 뭉칫돈
- 반도체주 등 증시 변동성 확대…투자자예탁금 두 달 새 37조원 감소
5대 은행 정기예금 한 달 만에 35조원↑…7~9%대 특판까지 등장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롤러코스터 장세가 이어지자 시중 자금이 다시 예금으로 향하고 있다.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증시 대기자금은 빠르게 줄어든 반면, 5대 은행 정기예금에는 한 달 새 35조원 넘는 뭉칫돈이 몰렸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으로 예금금리까지 오르면서 변동성이 큰 주식 대신 안정적으로 이자를 챙기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일반 정기예금 금리를 3%대로 끌어올린 데 이어 최고 7~9%대 금리를 내건 특판 상품까지 등장하면서 증시에서 방향을 잃은 자금을 잡기 위한 수신 경쟁이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주식시장 떠나는 돈…예금엔 한 달 새 35조원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984조9399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35조5401억원 증가했다.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5월 7조5327억원, 6월 4조6837억원 증가한 데 이어 석 달 연속 늘었다. 특히 지난달 증가액은 올해 들어 가장 큰 규모다.
반대로 증시 주변 자금은 빠르게 줄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6월 4일 139조694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지난 5일에는 103조2125억원까지 감소했다. 약 두 달 사이 36조4823억원이 빠져나가면서 투자자예탁금이 26.1% 감소한 것이다.
최근 국내 증시가 반도체주 등을 중심으로 큰 폭의 등락을 거듭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증시가 상승할 때 주식 매수를 기다리며 증권계좌에 머물렀던 자금 가운데 일부가 시장을 빠져나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예금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 안에서도 자금 이동이 뚜렷했다. 지난달 말 5대 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은 665조8879억원으로 전월보다 56조4049억원 감소했다. 관련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2019년 1월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금리 상승으로 정기예금의 매력이 커지면서 수시입출금 계좌 등에 머물던 대기성 자금까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으로 이동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를 모두 증시에서 예금으로 이동한 개인투자자 자금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따라 기업들이 초단기 상품에 머물던 여유자금을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으로 옮긴 영향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3%대로 올라온 예금금리…7~9% 특판까지
증시 변동성과 함께 예금의 매력을 높인 또 다른 요인은 금리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p) 인상하면서 은행들도 예·적금 금리를 잇달아 올리고 있다.
현재 5대 은행의 1년 만기 주요 정기예금 금리는 연 2.90~3.25% 수준이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대표 정기예금 최고금리를 기존 연 2.9%에서 3.2% 수준으로 올렸고 NH농협은행도 연 2.95%에서 3.25%로 인상했다.
인터넷은행까지 가세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도 3%대 예금금리를 내걸면서 한동안 2%대로 내려갔던 은행권 예금금리의 중심축이 다시 3%대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은행권의 수신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은 최고 연 7~8%대 적금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지방은행과 상호금융권에서는 최고 연 9%대 상품도 등장했다. 다만 상당수가 한도와 우대조건이 붙은 적금 상품으로, 실제 뭉칫돈이 이동하는 정기예금 금리는 3%대가 중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축은행권에서는 반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증시가 강세를 보일 당시에는 고객 자금을 붙잡기 위해 4%대 정기예금 상품을 쏟아냈지만 최근 예금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공격적으로 금리를 높일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다.
최고금리가 연 4% 이상인 저축은행 상품은 지난달 1일 137개에서 이달 4일 102개로 감소했다. 저축은행 예금상품 최고금리 역시 올해 초 연 3.2%에서 지난달 초 4.51%까지 상승했다가 최근 4.2% 수준으로 내려왔다.
증시가 강할 때는 금융회사들이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예금금리를 끌어올렸다면, 최근에는 증시 불안 자체가 예금 수요를 만들어내면서 일부 금융회사가 오히려 금리를 조정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관건은 지금의 흐름이 일시적인 ‘피난’에 그칠지 여부다. 투자자예탁금 감소와 정기예금 증가 규모만 놓고 보면 자금 이동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이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시장금리가 추가로 상승하면 예금의 상대적인 매력도 더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증시가 안정을 되찾고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회복될 경우 은행에 잠시 머물던 자금이 다시 증시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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