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폐버스 개조해 대학가 청년 단기주거로”…1만 세대 5000억원 제안
국민의힘 “청년 세대 모욕” 맹공…민주당도 “개인 의견” 선긋기
美·英·호주도 폐버스 활용…대부분 노숙인·이재민 위한 임시숙소
개조비보다 부지·상하수도·전력·관리비가 관건…대규모 청년주택은 한계
청년용 거주공간보다 재난시 이재민 긴급주거 효용 더 커
[이코노미스트 김정민 경제전문기자] 폐기되는 버스 1만대를 개조하면 5000억원으로 청년들에게 주거공간 1만개를 공급할 수 있을까.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폐버스를 활용한 이른바 ‘버스 하우스’를 청년 주거대책의 하나로 제안하면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황 의원은 비싼 아파트나 원룸을 새로 짓는 대신 운행 수명을 다한 폐버스를 개조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청년들의 단기 주거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하우스보트를 아이디어의 근거로 들었다. 황 의원은 연세대 대학원 도시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도시공학 전문가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폐버스를 활용한 이른바 ‘버스 하우스’를 청년 주거대책의 하나로 제안하면서 정치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외에서 실제로 폐버스를 주거공단을 활용한 사례가 없지는 않다.
미국에서는 퇴역 스쿨버스를 주거공단을 활용한 ‘스쿨리(Skoolie)’가 있고 영국과 호주에서는 폐버스를 노숙인 숙소로 활용하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노숙인과 이재민 등을 위한 긴급·임시주거 시설이거나 이동형 주택에 그쳤다. 황 의원 제안처럼 대규모 주거공간으로 활용한 사례는 없다.
버스를 ‘숙소’로 활용하는 것과 ‘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다.
“1만 세대 5000억원”…황희 제안에 정치권 시끌
논란의 시작은 황 의원이 지난 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황 의원은 폐버스를 주거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 주거공간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그는 버스 한 대를 주거용으로 개조하는 데 약 50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하고 1만대를 개조하면 5000억원으로 1만 세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했다.
대학가나 지하철역 주변의 유휴공간에 버스를 배치하고 청년들이 안정적인 집을 구할 때까지 단기 거주하게 하자는 구상이다.
황 의원은 네덜란드 하우스보트를 참고 사례로 들었다. 네덜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주택난 속에서 오래된 선박이나 바지선을 거주공간으로 활용한 것처럼 우리도 폐버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국민의힘은 청년세대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황 의원 본인과 가족들부터 당장 ‘버스 하우스 1호 입주자’로 들어가는 모범을 보이라”고 비판했다.
45인승 버스 1만대를 통행 공간을 두고 배치하려면 최소 25만평가량이 필요한 만큼 그만한 부지가 있으면 고층 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게 효율적이란 비판도 나왔다.
민주당은 “당 입장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의원 개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고. 황 의원도 개인적인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었다고 해명 한 뒤 게시물을 삭제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황 의원의 발상이 아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선 폐스쿨버스를 ‘22㎡ 소형 주택으로 개조
미국에서는 퇴역한 스쿨버스를 주거용으로 개조해 개인이 이동형 주택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시민단체가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소형주택로 만들어 제공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오리건주의 ‘Vehicles for Changes’ 프로젝트다.
퇴역 스쿨버스를 약 22㎡ 크기의 작은 집으로 개조해 노숙 아동과 가족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사업이다. 버스 내부에는 침실뿐 아니라 주방과 전기시설 등 생활에 필요한 설비를 설치했다. 스쿨버스 내부를 개조한 공간 모습. (출처:케티 이미지)
영국 런던의 ‘Buses4Homeless’도 폐버스 활용의 대표적인 사례다.
운행을 중단한 버스를 개조해 노숙인들에게 숙소와 식사, 직업교육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영국은 런던의 명물인 2층 버스를 개조해 숙박뿐 아니라 식사와 직업교육·복지 지원 공간으로 활용했다.
목적은 장기 주택 공급이 아니라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전환주거’다. 일정 기간 머물며 취업과 자립을 준비한 뒤 일반 주택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이다.
호주에서는 운행을 중단한 버스를 노숙인을 위한 야간 숙박시설로 개조해 제공하고 있다.
버스 안에는 에어컨을 갖춘 개별 수면 캡슐을 만들고 TV 등을 설치했다. 버스 한 대가 매일 밤 10~20명가량의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버스를 개조하는 비용보다 매일 숙박시설을 관리하고 버스를 유지하는 운영체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 사업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버스를 주거공간으로 바꾸는 기술적 장벽 자체는 높지 않다. 버스를 개조해 침실과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춘 이동형 주택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주거공간으로 활용하려면 차량을 장기간 세울 수 있는 별도 공간이 필요하고 전기·물·오수 처리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대부분 나라에서 버스 하우스를 개인 이동형 주택이나 노숙 가정을 위한 소규모 지원사업으로만 활용하고 있는 이유다.
황 의원이 사례로 제시한 암스테르담 하우스보트는 단순한 폐선박을 개조한 임시주택이 아니다. 계류권과 전기·상하수도, 각종 허가와 도시계획이 결합된 정식 주거 유형이다. 폐버스를 빈 공간에 배치해 단기 청년주택으로 활용하자는 구상과는 성격이 다르다.
암스테르담 Hoofddorppleinbuurt 운하에 줄지어 있는 현대식 하우스보트. 태양광 패널과 대형 창호까지 갖추고 있다. (출처:네덜란드 부동산 플랫폼 Pararius)
버스 1만대를 어디에 세우나
황 의원 구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버스 가격이나 개조비가 아니라 땅 문제다.
황 의원이 제시한 대당 5000만원은 버스를 주거시설로 개조하는 비용만이다. 버스를 세울 토지와 진입도로, 주차·보행 공간, 전기, 수도, 하수관로, 통신, 소방·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비용은 빠져 있다.
황 의원은 대학가나 지하철역 인근 유휴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런 지역일수록 서울에서도 땅값이 높고 유휴부지를 찾기 어렵다.
토지 이용 효율도 따져봐야 한다. 아파트나 기숙사는 같은 땅 위에 수십층을 올릴 수 있다. 반면 버스는 기본적으로 한 층이다.
버스 100대를 놓을 땅이 있다면 그곳에 청년기숙사나 모듈러주택을 지었을 때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월등히 많을 것이란 건 쉬운 계산이다.
두 번째 문제는 기반시설이다. 실제로 생활하려면 침대와 에어컨만으로는 부족하다. 화장실과 샤워실, 온수, 취사시설, 냉난방, 상수도, 오수·하수 처리시설, 전기와 인터넷이 필요하다.
캠핑카처럼 청수·오수탱크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나 1만명이 장기간 거주하는 시설이라면 물을 계속 공급하고 오수를 수거해야 한다.
각 버스를 수도관과 하수관, 전력망에 연결하면 생활 편의성은 높아지지만 그때부터는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단층 컨테이너 주택과 마찬가지가 된다. 주거 편의성을 높일수록 고정식 주택과 비슷해지고, 이동성을 유지할수록 정상적인 주거환경에서 멀어지는 딜레마다.
세 번째 문제는 주거의 질이다. 정치권에서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최저주거기준’에 따르면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은 14㎡다.
또한 최저주거기준은 주택에 상·하수도시설을 갖춘 전용 입식부엌과 전용 수세식 화장실, 목욕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구조와 성능에서도 영구건물로서 구조강도를 확보하고 적절한 방음·환기·채광·난방시설과 전기시설, 화재 발생시 대피로도 확보해야 한다. 폐버스를 개조해 이같은 주거기준을 충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년주택보다 이재민 긴급주거 활용도 커
다만 ’청년 긴급·초단기 주거수단’이나 이재민용 긴급 주거수단으로는 검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예컨대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와 1~3개월 동안 취업활동을 하는 청년이나 단기 인턴, 대학 기숙사 입주를 기다리는 학생, 갑자기 기존 거처를 잃은 청년 등을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오히려 활용도가 더 높아 보이는 분야는 재난 이재민을 위한 긴급주거다.
산불이나 폭우, 지진 등으로 주택이 파손되거나 대피가 필요한 경우 버스의 이동성을 활용해 재난지역 인근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어서다.
체육관이나 임시대피소보다 사생활을 확보하기 쉽고, 침상과 냉난방·전기·간이 취사시설 등을 갖추면 복구기간 동안 머무는 임시거처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해외 버스 하우스도 영구주택보다는 노숙인·이재민 등에게 일정 기간 거처를 제공하는 ‘주거의 중간 단계’에 가깝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학생들이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 가족에게 제공하기 위해 퇴역 스쿨버스를 임시주택으로 개조하고 있다. 내부에는 주방과 배관·전기시설 등을 설치해 4인 가족이 생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Oregon Public Broadcasting(OP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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