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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부족해서 피곤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KAIST 교수가 찾은 뜻밖의 이유 보니
-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인터뷰
삼성전자 갤럭시워치에 탑재돼 상용화
“9시간30분 누워 있어도 실제로 7시간 잤다면 수면 효율 낮은 것”
수면압력·생체시계 분석해 맞춤형 수면시간 계산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보통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오히려 너무 오래 잠을 잤기 때문에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수면을 단순히 ‘몇 시간 잤느냐’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량이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수면압력과 생체시계에 따라 필요한 시간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핵심은 많이 자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효율적으로 자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김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때는 지난 2월이었다. 소중한 내용이었으나, 그간 지면을 둘러싼 여러 변화 속에 계절을 한 번 건너 가을의 문턱에서야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김재경 교수와 김명자 KAIST 이사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내 몸에 맞는 수면시간은
“사람마다 필요한 수면량이 다른데, 왜 모두에게 ‘하루 7시간’이라는 똑같은 답을 주는지 의문이었습니다.”
김 교수가 수면 연구에 뛰어든 계기는 의외로 간호사들의 ‘졸음 데이터’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수면시간과 졸림 정도를 분석했지만 단순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삼성서울병원 주은연 교수와의 공동연구에서 이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보기로 하면서 연구가 시작됐다.
기존 수면 관리가 ‘성인은 평균 7시간’이라는 평균값에 기대었다면 김 교수팀은 개인의 수면 기록에 주목했다. 최근 며칠간의 수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뇌에서 잠을 유도하는 수면압력과 24시간 주기로 움직이는 생체시계의 변화를 추정했다. 과거에 어떻게 잤는지를 분석해 그날 잠들기에 적절한 시간과 필요한 수면량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 연구는 삼성전자와의 기술이전으로 이어졌다. 김 교수팀이 개발한 개인 맞춤형 수면 알고리즘은 갤럭시워치에 적용돼 실제 서비스로 구현됐다. 단순히 ‘몇 시간 잤는지’를 기록하는 데서 나아가 사용자의 수면 이력을 분석해 언제 자고 얼마나 자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제안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 교수는 “어떤 날은 5시간을 자도 충분할 수 있고, 어떤 날은 10시간을 자야 할 수도 있다”며 “평균 수면시간을 맞추는 것보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잤는지를 보고 오늘 필요한 수면을 계산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수면시간만큼 중요한 것이 수면 효율이다. 9시간30분 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도 실제 잠든 시간이 7시간이라면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경우 더 오래 누워 있는 것보다 실제 수면시간과 침대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씩 좁혀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너무 오래 누워 있다면 30분씩 줄여보는 겁니다. 일주일 정도 지켜본 뒤 다시 30분을 줄이는 식으로요. 생체리듬은 갑자기 크게 바꾸기보다 조금씩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반대로 부족한 잠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평일에 부족한 잠을 주말에 보충하는 것을 지나치게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지만, 수면 부족을 반복적으로 쌓아두는 생활은 장기적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평소 7시간을 자야 하는 사람이 5시간을 잤다고 해서 그 2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결국 갚아야 합니다. 벼락치기로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어도 장기간 그렇게 살 수는 없죠.”
수면은 단순한 휴식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공부와 업무처럼 집중력이 필요한 활동과 직결된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더 많은 수면이 필요하지만 현재 웨어러블의 수면 분석은 성인 기준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의 수면 부족 정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생활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교대근무자도 주요 연구 대상이다. 김 교수팀이 연구용으로 운영하는 수면 앱에 참여한 교대근무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균 수면시간 자체가 크게 늘지 않더라도 수면을 적절히 분배하면 졸림과 집중력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부산 지하철 교대근무자를 대상으로도 생체리듬과 수면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수면 프로그램의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수면·당뇨·심혈관 분석하는 ‘쓸모 있는 수학’
김 교수의 연구 관심은 수면을 넘어 질병 예측으로 뻗어가고 있다. 스마트워치가 측정하는 수면·심박·활동량 등 일상 데이터를 장기간 축적하면 당뇨나 심혈관질환 같은 질환의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구상이다.
“건강검진은 1년에 한 번 받지만 스마트워치는 매일 데이터를 쌓습니다. 100% 진단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생활하면 몇 년 뒤 어떤 질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알려줄 수 있다면 한 번의 기회를 더 얻는 거죠.”
김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웨어러블이 만들어내는 ‘생활 데이터의 연속성’이다. 병원 검진이 특정 시점의 몸 상태를 보여준다면 스마트워치는 수면시간, 심박, 활동량 등 일상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기록한다. 여기에 수학적 모델을 적용하면 질환이 발생한 뒤 찾아내는 것을 넘어 건강 상태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받는 건강검진’은 김 교수가 그리는 또 다른 미래이기도 하다. 수면 부족이나 활동량 감소처럼 개별적으로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변화가 장기간 축적됐을 때 질환 위험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찾아내고,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전에 생활습관을 바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을 향하는 수학 연구 방향은 김 교수의 이력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그는 군 복무 중 우연히 수학으로 심장질환을 연구한 해외 사례를 접하면서 진로를 바꿨다. 이후 미국 미시간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며 수학이 실제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체감했다.
학부 시절까지 수학을 좋아했지만 정작 배운 수학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생물학을 함께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수학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후 김 교수의 연구에서 ‘쓸모’는 단순한 부가 조건이 아니라 연구 주제를 선택하는 기준이 됐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이걸 풀면 무슨 쓸모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풀려고 푸는 문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수학으로 수면을 읽고, 수면 데이터를 넘어 질병을 예측하는 것. 김 교수가 풀고 있는 문제는 결국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간다.
“수학이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기초학문인 수학도 산업으로 가고, 실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제 연구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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