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균형발전의 대가?…금융기관 지방이전이 받아들 ‘청구서’
- [금융지도가 바뀐다]④
산은 퇴직자 64.3%가 저연차…금감원 40세 미만 92.5% “이직 고려”
사옥·역출장 비용에 전문인력 이탈까지…금융 경쟁력 약화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서울에 남아 주말부부로 지낼 것인가, 가족이 함께 지방으로 내려갈 것인가. 맞벌이 부부라면 둘 중 한 명이 직장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상으로 거론되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근무지가 바뀌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배우자의 직장부터 주거와 자녀 교육, 출산 계획까지 가족의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직원 개인의 고민은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비용으로 돌아온다. 사옥과 전산시설을 옮기는 데 수천억원의 직접 비용이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회사와 기업이 수도권에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역출장과 ▲서울 업무거점 운영비 ▲저연차·전문인력 이탈에 따른 조직 경쟁력 저하까지 더하면 금융권이 받아야 할 청구서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정부가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하면서 금융권의 반발이 거세지는 이유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금융회사와 기업, 전문인력이 수도권에 밀집한 금융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전은 정책금융과 감독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사 대상 88% 수도권…커지는 ‘역출장’ 비용
금융기관 지방이전의 딜레마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금융감독원이다. 금융회사 본점의 91.6%, 금감원 현장검사 대상의 88.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상장기업 본사의 72.7%, 금융민원의 81.4%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금감원은 올해 은행·증권·보험·카드·저축은행 등을 대상으로 총 707회의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검사인력은 연인원 2만8229명이다. 정기검사는 길게는 한 달 이상 진행되고 은행 검사에는 한 번에 20명이 넘는 직원이 투입되기도 한다.
본원이 지방으로 이전해도 검사 대상은 수도권에 남는 만큼 대규모 역출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통·숙박 등에 따른 추가 출장비가 연간 30억~4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내부 추산도 있다. 10년이면 수백억원 규모다. 서울 업무거점을 별도로 유지할 경우 반복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금감원 노조는 8월 17일 공식 성명을 통해 금융회사 본점과 검사 대상, 금융민원이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을 지적하며 “금융감독 현장과의 물리적 단절은 심각한 금융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직접적인 이전비용도 만만치 않다. 농협중앙회 노조는 토지 매입비를 제외한 본사 이전비용을 최소 2520억원으로 추산했다. 수협중앙회 노조 역시 광주 이전에는 약 3500억원, 부산 이전에는 최대 60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 측 추산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사옥뿐 아니라 전산·보안시설 구축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수천억 이전비보다 무서운 ‘인재 엑소더스’
금융권이 직접적인 이전비보다 더 우려하는 것은 인재 유출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발적 퇴직자는 43명으로 이 가운데 23명(53.5%)이 입사 5년 미만이었다. 특히 산은은 퇴직자 28명 가운데 18명(64.3%)이 5년을 채우지 못하고 조직을 떠났다.
개별 퇴직 사유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금융권에서는 민간 금융회사와의 보수 격차와 경직된 보상체계 등이 젊은 인력 이탈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실제 산은·수은·기은 등 국책은행 3곳의 평균 연봉은 2021년 1억888만원으로 4대 시중은행(1억550만원)보다 높았지만 2025년에는 1억1593만원으로 시중은행(1억2275만원)에 역전됐다. 공공기관 총인건비 규제로 민간 금융회사처럼 탄력적인 보상체계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인재 확보와 유지의 걸림돌로 꼽힌다.금감원에서도 젊은층의 퇴직이 적지 않다.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퇴직자는 총 481명이다. 이 가운데 20~40대가 180명으로 37.4%를 차지했다. 특히 올해 퇴직자 54명 가운데 절반인 27명이 20~40대였다.
전문인력 유출 가능성도 변수다. 금감원에는 회계사 507명과 변호사 253명 등 전문인력 760명이 근무하고 있다. 금융회사나 로펌·회계법인 등 민간으로 이동할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넓은 만큼 지방이전이 현실화하면 인력 유지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같은 우려는 내부 설문에서도 드러난다. 금감원 노조가 직원 15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6%가 지방이전 시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40세 미만에서는 92.5%까지 높아졌다. 예금보험공사 노조 조사에서도 입사 5년 미만 직원 가운데 지방이전 이후 계속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12%에 그쳤다.
현재의 인력 이탈을 지방이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보수와 업무강도, 민간 금융회사와의 인력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다만 이미 저연차·전문인력 이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근무지 이전이 추가적인 이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금융권의 우려다. 특히 한번 빠져나간 숙련 인력과 축적된 전문성을 단기간에 복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람의 비용’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은 전문인력과 정보, 기업·시장과의 신속한 소통이 중요한 산업인 만큼 기관의 기능과 업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지방이전은 신중해야 한다”며 “본사 이전으로 출장과 의사결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늘고 핵심 전문인력이 이탈할 경우 정책금융의 신속한 자금 공급이나 금융감독의 현장 대응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이 추진된다면 단순히 기관의 소재지를 옮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을 지원책과 금융기관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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