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서울의 매력,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이윤정의 언베일]
- ‘세계 최대’ 루이 비통 매장 품은 서울
K컬쳐·K뷰티 이은 새로운 콘텐츠 고민해야
[이윤정 작가·노블레스 전 편집장] 도시와 장소의 유명세는 여행을 비롯해 방문지를 결정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유명세는 고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곳이 가진 특별한 기능(해변인지 골프 휴양지인지) 등에 따라 결정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필자는 ‘문화’야 말로 장소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서울이 몇 년 전부터 관광객에게 파리와 뉴욕을 제치고 매력적인 방문지로 부상한 이유가 K-컬처인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가 전략적인 매장을 열 때의 기준과 비슷하다. 럭셔리 브랜드가 선택한 도시는 단순히 매출 순위로만 설명할 수 없다.
자사의 제품을 작품으로 여기는 브랜드에는 그들의 철학과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과 콘텐츠를 보유한 도시가 필요하다. 이미 서울은 ‘취향을 가늠하는 테스트 마켓’으로서 지위를 지녔지만 이제는 ‘브랜드의 철학을 전달하는 도시’로서의 역할도 맡게 됐다.
지난해 말 신세계 더 리저브에 세계 최대의 루이 비통 스토어가 들어섰다. 이름은 ‘LV 더 플레이스 서울’(LV The Place Seoul, Shinsegae The Reserve)이다.
총 6개 층에 걸쳐 구성된 ‘LV 더 플레이스 서울’은 전통과 혁신이 교차하는 서울을 기념해 기획됐다. ▲제품 판매 공간과 문화 체험형 공간 ‘비저너리 저니 서울’ ▲미식의 세계를 담은 ‘르 카페 루이 비통’ ▲초콜렛 숍 ‘르 쇼콜라 막심 프레데릭 앳 루이 비통’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 ‘제이피 앳 루이 비통’ 등이 한데 모여 예술과 패션 그리고 문화의 어울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처음 LV 더 플레이스 서울의 개점 소식을 접했을 때 ‘서울에 세계 최대의 루이 비통 매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에 의아함이 들었다. 작년 기준 아시아(일본 제외)는 루이 비통에서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지만, 루이 비통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서울에 최대 매장을 열었다는 점은 서울이 매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 도시가 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日·中 이어 럭셔리 브랜드 사로잡은 韓
럭셔리 브랜드에 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한 국가는 일본이었다. 중국이 부상하기 전까지는 일본이 최대 매출을 올리는 국가이자 가장 크고 최신의 매장이 들어서는 지역이었다.
2000년대 들어 주목받은 시장은 중국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베이징, 특히 상하이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럭셔리 브랜드 매장이 문을 열었다.
중국 현지 문화와 협업한 제품을 선보이고, 인테리어에도 중국의 색채를 입혀 고객을 끌어들였다. 지난해 상하이에는 루이 비통의 특기할 만한 공간이 들어섰다.
이름은 ‘더 루이’(The Louis). 판매·전시 공간과 카페 등이 모인 복합 문화 공간이다. 거대한 배 모양의 공간은 금세 상하이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중국 내 럭셔리 브랜드가 호황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루이 비통에 갖는 의미를 확실히 보여준 사례다.
상하이를 비롯해 도시가 럭셔리 브랜드로부터 애정 공세를 받을 때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전시와 공연 등 ‘브랜드와 관련된 문화적인 활동’도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럭셔리 브랜드와 관련한 압도적인 규모의 전시 등이 상하이와 도쿄를 중심으로 빈번하게 개최됐다. 전시를 기획하며 로컬 작가와 협업을 진행해 로컬 작가에게 세계적인 인지도를 더해주는 일도 잦았다.
몇 년 전부터 서울이 브랜드에 핵심적인 도시로 떠오르면서 고객이 누리는 혜택은 크고 넓은 매장뿐만이 아니다. 루이 비통 더 플레이스 서울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곳은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와 현재를 응축해 전시한 ‘비저너리 저니 서울’이다.
오래전 파리 근교에 자리한 맞춤 제작 공방인 아니에르 공방에 위치한 박물관을 보고 루이 비통의 역사를 체감했던 필자는 서울에 고스란히 펼쳐진 루이 비통의 유산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예전보다 훨씬 자주 열리는 ‘샤넬 2026 공방 컬렉션 서울 쇼’ 등의 글로벌 이벤트와 메가 전시인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디올의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에르메스의 ‘미스터리 앳 더 그룸즈’ 같은 전시는 서울을 향한 브랜드의 또 다른 애정 표현인 셈이다. 앞으로도 서울에는 브랜드의 참신한 전시와 문화 행사가 줄줄이 열릴 예정이다.
날로 커지는 서울의 인기를 실감하며 도시 자체가 지금의 위상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끝났지만 여전히 뉴욕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파리의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꾸준히 사람들의 로망으로 꼽히는 이유는 뭘까.
필자는 지속적인 콘텐츠의 생성만이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에는 로마가 경제·문화·권력의 중심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현재는 위 표현이 딱 들어맞는 도시가 아닐지라도 로마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1순위로 꼽는 도시다. 여기엔 대체 불가한 문화유산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브랜드의 조력도 한몫했다.
▲펜디 ▲불가리 ▲구찌 ▲토즈 등 로마를 기반으로 한 럭셔리 브랜드는 로고에 도시를 포함해 브랜드에 로마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강조한다. 목걸이의 디자인을 카라칼라 욕장에서 차용하는 것처럼 제품에 문화유산을 표현하는 등 기꺼이 도시의 콘텐츠로서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 전 디올은 ‘신세계 디 에스테이트’에 복층 매장을 열었다. 디올 매장의 정수라 불리는 파리의 애비뉴 몽테뉴 매장을 연상시키는 곳으로 화제를 불러 모으는 중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앞으로도 서울의 매력에 자사의 인지도를 더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브랜드의 애정이 깊어질수록 서울은 브랜드의 배경으로 남을지, 스스로 콘텐츠를 쌓아가는 도시가 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눈부신 활약 중인 K-컬쳐와 놀라운 제품력으로 시장을 휘어잡은 K-뷰티가 서울의 콘텐츠인 점은 확실하다. 또 다른 참신한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지금 서울이 해결해야 할 커다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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