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카스에 찰랑 타볼까”…90년 만에 소주 만드는 오비맥주
- 오비맥주, 제주공장 앞세워 90여 년 만에 소주 도전
제품은 ‘진로’, 소맥은 ‘테슬라’와 경쟁…재구매 관건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한국 맥주 시장 1위 오비맥주가 소주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1933년 설립 이후 맥주를 주력으로 삼아온 지 90여년 만이다.
오비맥주는 2024년 신세계그룹의 주류 계열사 신세계L&B로부터 제주소주를 인수하며 소주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같은 공장에서 만든 소주로 신세계가 넘지 못한 시장의 벽을 ‘맥주 강자’ 오비맥주가 뚫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카스’ 영업망 등에 업은 찰랑
오비맥주는 지난 9월 28일 제로 슈거 소주 ‘찰랑’을 공식 출시했다. 제주소주를 인수한 이후 처음 선보이는 국내용 소주 브랜드다. 제품은 전량 오비맥주 제주공장에서 생산한다.
제주소주는 2011년 제주 향토기업으로 출발해 2014년 ‘올레 소주’를 선보였다. 이마트는 2016년 제주소주를 190억원에 인수한 뒤 이듬해 올레 소주를 재단장한 ‘푸른밤’을 출시했다.
푸른밤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의욕적으로 인수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용진 소주’로도 불렸다. 그러나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가 장악한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제주소주는 신세계그룹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이마트는 유상증자 등을 통해 4년간 제주소주에 약 570억원을 투입했지만 흑자 전환에 실패했다. 국내 사업을 이어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누적 영업손실은 434억원에 달했다.
2021년 3월 신세계L&B에 흡수 합병된 제주소주는 푸른밤 생산을 중단하고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후 미국용 ‘고래소주’와 베트남용 ‘힘소주’ 등 위탁생산(ODM)과 과일소주 수출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어오다 2024년 오비맥주에 매각됐다.
업계에서는 푸른밤의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음식점과 주점 영업망의 한계를 꼽는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등을 중심으로 강력한 소매 유통망을 갖췄지만 소주의 핵심 판매처인 식당과 술집에서는 충분한 거래처를 확보하지 못했다.
오비맥주의 출발점은 다르다. 국내 맥주 시장 1위 브랜드 ‘카스’를 통해 전국 음식점과 주점에 구축한 영업망을 찰랑 판매에 활용할 수 있다. 소주 거래처를 처음부터 개척해야 했던 신세계보다 유리한 조건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오비맥주가 기존 맥주 거래처에 소주를 함께 공급하면 신제품 입점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며 “맥주만으로 매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소주 사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출시 초기 서울·수도권과 제주 일부 지역의 음식점과 주점을 중심으로 찰랑을 공급한다. 생산 물량이 제한적인 만큼 주요 상권에서 반응을 확인한 뒤 마트와 편의점 등 가정용 채널로 판매처를 넓힐 계획이다.
15도·제로 슈거로 젊은 직장인 공략
오비맥주는 10월 중순부터 서울 용산구의 한 고깃집을 찰랑 플래그십 매장으로 운영한다. 매장에 브랜드 이미지를 적용하고 찰랑과 어울리는 음식도 제안할 예정이다.
출시일에 이 매장에서 찰랑을 마신 직장인 김규복(38)씨는 “회식 중 새로 나온 제품이라고 해 주문했다”며 “제주 이미지를 살린 포장이 눈에 띄고 맛도 부드러워 다시 마셔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찰랑은 제주 동부의 화산암반수와 용암해수소금을 사용한 제로 슈거 소주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수출용 제품과 이름은 같지만 도수와 제조 방식, 맛은 다르다.
수출용 찰랑은 알코올 도수 16도로 당류가 들어간다. 국내용은 당류를 빼고 도수를 15도로 낮췄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와 ‘진로’,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과 ‘새로’ 등 주요 제품의 15.7도보다 0.7도 낮다.
직접 맛본 찰랑은 다른 소주보다 알코올 향이 옅고 목 넘김이 부드러웠다. 용암해수소금을 사용해서인지 끝에는 미세한 짠맛이 남았다. 반면 기존 소주 맛에 익숙한 일부 소비자는 “소주답지 않고 도수가 낮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한 술을 꺼리는 젊은 직장인에게는 이 같은 특징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제품 단위에서 찰랑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로는 하이트진로의 ‘진로’가 거론된다. 두 제품 모두 저도수·제로 슈거를 앞세워 젊은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어서다.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진로를 상대로 찰랑이 얼마나 빠르게 인지도를 높이느냐가 초기 점유율을 좌우할 전망이다.
주점에서는 ‘소맥’ 조합도 시험대에 오른다. 오비맥주 제품 카스와 찰랑을 섞은 이른바 ‘카스랑’이 테라와 참이슬을 조합한 ‘테슬라’처럼 소비자에게 선택받을지가 관건이다. 소주 자체의 맛뿐 아니라 맥주와 섞었을 때의 향과 목 넘김, 비율에 대한 평가가 주점 판매량을 가를 수 있다.
오비맥주로서는 카스를 비롯한 자사 맥주와 찰랑을 함께 공급해 영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유통망이 넓다고 소비자의 선택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소주는 익숙한 브랜드를 반복해서 찾는 성향이 강하고, 소맥 역시 기존 조합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찰랑이 강력한 영업망과 출시 효과를 바탕으로 초반 관심을 끌더라도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시장에 안착하기 어렵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익숙한 브랜드를 반복해서 찾는 소비자가 많은 소주의 특성상 찰랑이 단기간에 점유율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젊은 층을 겨냥한 제품인 만큼 밈이나 캐릭터, 대형 광고 모델 등을 활용한 마케팅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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