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입는 K뷰티]①
LG생건·아모레, 원료 탐색·자료 검토 단축…콜마는 초기 기획안 30초
정부도 기술 개발 지원…시간 절약 넘어 제품화·수익성 개선 과제
배경에는 달라진 시장 환경이 있다.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되고 국가별로 선호하는 성분과 제형도 달라지면서 다양한 제품을 빠르게 선보일 필요성이 커졌다. 인디 브랜드의 성장으로 이들의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에도 개발 속도가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됐다.
정부는 지난 14일 발표한 ‘AI·융복합 K-뷰티 서비스 지원방안’을 통해 피부 특성 정보를 축적한 데이터뱅크를 AI 학습에 활용하도록 정비하기로 했다. 화장품 기업과 AI 기업의 공동 기술 개발에 올해부터 내년까지 72억원을 지원하고, 250억원 규모의 오픈이노베이션 벤처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다.
신물질 발굴부터 자료 검토까지…개발 시간 줄인다
화장품 개발은 원하는 효능을 낼 원료와 성분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후보 물질을 선정하려면 방대한 연구자료를 검토하고 특성을 분석해야 한다. 기업들이 AI를 우선 도입하는 것도 이처럼 시간과 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LG생활건강은 LG AI연구원의 신물질 발굴 특화 모델 ‘엑사원 디스커버리’(EXAONE Discovery)를 활용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신물질 후보 선정 기간이 기존 약 1년 10개월에서 하루로 줄었다. AI가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해 연구 목적에 맞는 후보를 추리는 방식이다.
선정한 물질의 안정성 평가에도 AI 시뮬레이션을 활용한다. 분자 수준에서 특성을 분석해 후속 연구의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다만 후보 선정 이후에도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고 제품 적용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축적된 연구자료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AI를 접목했다. 원료의 특성과 적용 가능성, 관련 규제 등을 검토할 때 정보를 찾고 비교하는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70여년간 축적한 원료와 처방, 연구보고서 등을 통합한 ‘데이터 하이웨이’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연구 특화 생성형 AI ‘LEMON’을 개발해 자료 검색과 분석에 활용하고 있다.
베타 테스트에서는 처리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제품 기획에 필요한 연구자료 검색과 규제 검토에 약 12일이 걸렸지만 LEMON을 활용하면 5분으로 줄었다. 특정 원료의 연구 이력과 제품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는 작업도 약 6일에서 5분 수준으로 단축됐다.
AI가 관련 정보를 정리하면서 연구자들은 자료 탐색 대신 실험 설계와 기술 개발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아모레퍼시픽은 문서 검색·분석을 넘어 분자 모델링과 피부 자극 평가 등으로 적용 분야를 넓히고 있다.
상품 초기 기획안 30초…제조 현장까지 확대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려면 원료 연구 외에도 상품 콘셉트와 제형, 용기 등을 결정해야 한다. 고객사마다 요구 사양과 일정이 다른 ODM 기업에는 의견을 조율하고 선택지를 좁히는 속도도 중요하다.
한국콜마는 AI 기반 상품 기획 플랫폼 ‘라우드랩스’를 활용하고 있다. 고객사가 제품 키워드를 입력하면 상품 콘셉트와 제형, 용기 유형 등을 담은 초기 기획안이 약 30초 만에 생성된다. 통상 1~3개월이 걸리던 상품 기획 과정에서 검토할 초안을 빠르게 마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용기 선정에도 AI를 접목했다. ‘콜마패키지닷컴’은 원하는 용기 사진을 올리면 유사한 제품을 검색해주는 플랫폼이다. 공급업체와 최소 주문 수량을 확인하고 견적도 요청할 수 있다.
용기를 고를 때는 디자인뿐 아니라 생산 가능 수량과 납기, 비용도 따져야 한다. 한국콜마는 이 플랫폼으로 탐색과 업체 확인 절차를 줄이면 기존 3~6개월이 걸리던 패키지 소싱 기간을 약 1개월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발·기획 단계의 디지털화는 생산 현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콜마는 2019년부터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구축해 제조 공정 불량률을 기존 대비 42% 낮췄다. 공정 관리와 자동화 등을 포함한 스마트팩토리 구축 전반의 성과다.
한국콜마는 이를 기반으로 AI 자율제조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부의 ‘AI 팩토리’ 과제에 화장품 기업 중 유일하게 주관기업으로 선정됐다. AI 팩토리 얼라이언스 바이오 분과에 참여해 2029년 12월까지 화장품 제조 공정을 통합한 AI 자율제조 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생산계획과 제조, 품질관리, 충전·포장 등을 연결하고 AI 모델의 공정 정확도를 95%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개별 업무를 보조하던 AI를 생산 전반에 적용해 공정 간 연계와 운영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AI 도입은 신소재 탐색과 자료 분석, 상품 기획을 거쳐 제조로 확산되고 있다. 절약한 시간과 인력을 신제품 개발에 투입하면 소비자 취향과 해외 시장별 수요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도입으로 화장품 개발과 제조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실제 제품 출시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업무 시간 단축을 넘어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향후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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