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 울리는 특허분쟁 - 특허관리비는 분쟁 대비한 투자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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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소기업 울리는 특허분쟁 - 특허관리비는 분쟁 대비한 투자다

국내 중소기업 울리는 특허분쟁 - 특허관리비는 분쟁 대비한 투자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특허법인 대아의 정병직(40) 대표변리사는 요즘 정신 없이 바쁘다. 10월 말에만 국내 중소기업 2곳이 국제 특허분쟁에 휘말려 그의 특허법인에 도움을 요청해서다. 상대는 일본과 독일의 대기업. 정 대표는 “국제 특허분쟁이 늘어나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총 154건이었던 우리기업들의 국제 특허분쟁 건수는 2010년 186건, 2011년 27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도 8월까지 120건이 발생했다. 세계적으로도 특허분쟁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특허조사 단체인 페이던트프리덤에 따르면 2009년 2371건이던 국제 특허 소송 건수는 2010년 3921건, 2011년 5031건으로 늘었다.



국제 특허소송 연간 5000건 이상 발생최근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이 국제 특허분쟁에 휘말린 사례다. 재계 1위 삼성은 미국의 애플과 디자인 특허 침해 여부를 놓고 ‘세기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LG전자는 독일의 오스람과 발광다이오드(LED) 특허 침해 여부를 놓고 소송이 진행 중이다.

포스코는 신일본제철(일본), SK하이닉스는 램버스(미국), CJ제일제당은 화이자(미국)와 각각 특허분쟁을 벌이고 있다. 관련 업계는 “대기업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지적한다. 소송까지 가도 자금력과 인력으로 맞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최근 중소기업들이 미국과 유럽, 중국 등으로 직접 수출하고 해외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지사를 통해 교역하는 사례가 늘면서 특허분쟁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중소기업들이 각종 국제 특허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정병직 대표는 “한국에서 다른 나라 기업들과 맞붙었을 땐 소송비용이 국내 기업끼리 얽혔을 때와 동일한 수준으로 들지만 해외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될 경우 비용 부담이 많이 증가한다”며 “중소기업으로선 금전적 문제가 첫째 부담 요소”라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을 기준, 해외 소송에선 변호사를 쓰는 데만 한 달에 수 억원의 비용이 든다. 보통 장기전이 되는 경우가 많아 한 건에만 최소 10억~20억원씩 쓸 각오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의 법원에서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는 이보다 부담이 덜하지만 연간 순익 10억~20억원 달성도 장담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로선 만만찮은 문제다. 더구나 3심까지 가는 경우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올 상반기 유럽의 한 대기업과의 특허분쟁에 휘말린 중소기업 대표 A씨는 “워낙 막대한 비용이 들어 처음엔 대응을 해야 하나 그것부터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이겨도 이미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 상황이라 그 다음이 문제다. 제조업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우리 중소기업들이 해외에서 수백만 달러의 수출을 달성하기 시작하면 각국의 경쟁사도 견제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전략적으로 특허분쟁을 터뜨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특허 분야를 전담하는 인력 구축이 잘 돼 있어 분쟁화하는 데 부담을 덜 느낀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특허법인의 한 관계자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소중한 지식재산권으로 활용해야 할 특허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생존하는 중소기업들의 절박한 처지에서 기인한다.

국제 특허분쟁 건수가 갈수록 증가해 잠재적인 위협 요소로 떠오르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다 보니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특허분쟁을 대비해 사전에 비용을 투자하는 걸 꺼리게 된다. 납품 단가를 더 낮춰서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이득이라는 인식을 갖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등 다른 선진국 경쟁업체는 연구개발비와 특허출원, 인건비 지출에 많은 공을 들인다.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대표 B씨는 “특허분쟁에 대비하는 게 중요한 시대라는 건 알지만 당장에 실천으로 옮기기 어려운 면이 많다”고 말한다. 눈으로 드러나는 가격 경쟁력 우위를 포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B씨는 “특허분쟁은 언제 어떻게 걸릴지도 예측하기 어렵고 꼭 걸린다는 보장도 없어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분야’란 인식을 갖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선제 대응으로 효과 본 쌍용머티리얼이와 관련해 업계에 화제가 된 사례가 쌍용 머티리얼의 경우다. 쌍용머티리얼은 쌍용양회의 계열사로 첨단 신소재 부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파인세라믹을 생산하고 독일의 보쉬 등에 페라이트 자석 제품을 공급한다. 페라이트 자석은 자동차 시트나 와이퍼 등에 들어간 모터를 이루는 핵심부품으로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도 들어간다. 이 회사는 작년 매출액이 890억원으로 중소기업 규모지만 일본의 세계 1위 전자부품업체인 TDK를 상대로 한 특허등록 소송 싸움에서 승리했다.

유럽특허청이 10월에 TDK가 제기한 ‘고성능 페라이트 자석 제조에 관한 특허 거절 불복 항소’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경우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공격을 당한 게 아니라 선제로 대응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TDK는 1998년 유럽특허청에 해당 특허를 출원했지만 쌍용머티리얼은 2005년에 TDK 특허의 기술적 효과가 진보적이지 않다며 이의를 제기해 7년 동안 법정 공방을 이어왔다.

페라이트 자석 제조에 뛰어든 쌍용머티리얼로선 TDK가 이 분야 경쟁 상대였다. 만약 TDK의 특허가 인정되면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어 최소 150억원 이상의 손해가 예상됐다. 쌍용머티리얼은 7년간 경쟁사 특허 분석과 대응 전담팀 구축에 나서는 등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금전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TDK의 견제를 뚫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08년 1심에서 승리해 TDK의 특허가 기각되자 TDK는 항소했다. 여기서도 발 빠른 대응이 통했다. 쌍용머티리얼은 유럽을 방문하는 전담 인력을 위한 예산을 대폭 늘리고 추가 인력도 보강했다. 결국 3년간의 항소심 심리 끝에 올해 10월 11일 최종 판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페라이트 자석 관련 매출이 회사 전체 매출액의 70%에 달하는 상황에서 선제 정면대응을 택한 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쌍용머티리얼의 사례는 해외 경쟁사의 잇단 공세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중소기업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전문가들은 우리 중소기업들이 특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병직 대표는 “특허분쟁에 대비하는 비용도 제품 가격에 포함하되 품질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더해야 할 때”라며 “전담 인력을 강화하고 특허 출원과 포트폴리오 수립, 경쟁사 특허 분석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허 전담팀을 구성해 연간 50건의 특허를 국내에 출원하고 이중 10~20건을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시장에 등록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 연간 1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중소기업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변리사 C씨는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분쟁 발생 때 대규모로 지원 가능한 공제조합 형태의 보험 시스템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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