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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MEDIA - 알자지라의 모험

FEATURES MEDIA - 알자지라의 모험

카타르 정부가 지원하는 아랍 위성방송이 미국 저널리즘을 되살릴 수 있을까?



아랍 왕족이 미국 저널리즘을 구제할 수 있다고? 터무니없는 발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삭막한 사막으로 변한 미국 TV 뉴스 업계에서는 그런 희망이 끊임없이 샘솟는다. 카타르 정부 지원으로 세워져 도하에 본부를 둔 알자지라 방송이 그런 사막에 풍성한 오아시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알자지라는 세계 130개국 2억6000만 가구의 시청자를 둔 아랍권 최대 위성방송으로 아랍어 채널과 영어 채널 ‘알자지라 잉글리시’를 운영한다.

2013년 1월 알자지라는 화려한 팡파르와 함께 경영난에 허덕이는 미국 케이블 채널 커런트 TV(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공동 창업했다)를 약 5억 달러에 인수했다. ‘알자지라 아메리카’로 이름을 바꿔 미국에서 방송을 개시할 계획이다. 알자지라가 미국인 약 800명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발표하자 2만2000명 이상이 지원했다. 현재 경영진을 물색 중이다.

그러나 알자지라 아메리카를 올 여름 출범시키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내부 소식통들은 가을 이전, 아니 연말까지 방송을 개시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한다. 한 소식통은 “무척 복잡한 일이라 아직 준비가 덜 됐다”고 털어 놓았다.

설상가상 최근엔 알자지라의 반이스라엘 노선에 관한 해묵은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알자지라의 영어 웹사이트가 논란 많은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 조셉 마사드의 에세이를 실은 일이 계기였다. 시온주의와 유럽의 반유대주의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한 글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 시사전문지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기자는 격분했다.

그는 그 에세이를 두고 “근래 기억에서 가장 반유대주의적인 장광설 중의 하나”라고 질타했다. 한편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한다고 늘 주장하던 알자지라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 글을 웹사이트에서 슬그머니 내렸다. 그러자 알자지라 잉글리시 채널을 객관적이고 폭넓은 취재만이 아니라 널리 열린 토론의 장으로 기대하는 팬들도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미국, 유럽, 중동에서 알자지라 아메리카의 우여곡절을 추적했다. 그 결과 자금이 풍족하기 때문에 적어도 단기적으로 볼 때 알자지라 아메리카는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최소한 방송 개시 전에 파산하진 않을 듯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방송을 개시할 것이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TV 시장인 미국의 뉴스 업계에 신선한 에너지와 논란을 듬뿍 가져다 주리라 예상된다. 아울러 우리가 뉴스를 보는 방식과 뉴스를 대하는 관념까지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거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다.

지난 1월 커런트 TV 인수가 발표된 직후 알자지라 잉글리시의 월간 프로그램 ‘엠파이어’를 진행하는 마르완 비샤라와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의 세계 패권에 관한 좋은 면, 나쁜 면, 추악한 면, 그리고 모순적인 면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비샤라는 알자지라의 미국 진출을 대환영했다.

“미국만큼 많은 뉴스와 소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우리의 도전은 미국을 TV에 다시 복귀시키는 것이다. 뉴욕부터 LA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미국을 말한다. 지금은 TV에서 그런 미국을 볼 수 없다. 엘리트, 코미디언, 유명 분석가, 정치인만 등장한다.”

좌익 성향 정책연구소 뉴아메리카 파운데이션 출신으로 현재 알자지라의 아메리카 지국장으로 일하는 암자드 아탈라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 임무는 목소리 없는 사람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모든 채널에서 그런 이상을 추구한다. 시청자들에게 홍보 전문가들의 이야기만 지겹도록 듣게 한다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미와 남미를 아우르는 아메리카의 진정한 뉴스를 보도할 목적으로 알자지라는 시카고, 디트로이트를 포함해 8~10개 도시에 지국을 개설할 계획이다.

당연히 칭찬할 만하다. 반드시 필요한 언론이며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테러리스트 TV’로 명명했던 알자지라와는 아주 다르다. 옛 알자지라는 무엇보다 알카에다만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안들을 전달하는 ‘입’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서서히 진화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알자지라 아랍어 채널은 한때 알카에다의 ‘입’이었고 늘 무슬림형제단과 가까웠다. 그러나 2006년 개설된 알자지라 잉글리시는 다르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 130여 개국에서 2억6000만 가구가 시청한다. 진정한 세계 뉴스를 전하는 일류 세계 뉴스 네트워크로 발돋움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알자지라 잉글리시는 중요한 국제 저널리즘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2011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르지만 알자지라 잉글리시는 하루 종일 진짜 뉴스를 전한다는 느낌이 든다. 외국인은 물론 미국인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뉴스와 소위 전문가들의 논쟁에다 수많은 광고가 난무하는 미국의 일반 매체와 다르다.”

6년 전 알자지라 잉글리시는 조시 러싱 특파원을 파견해 미국 소도시의 상황을 취재하게 했다. 그러자 미국 연방 요원들이 노스다코타주 전역에서 그를 미행했다. 러싱은 미 해병 중위이자 미군 대변인 출신이지만 요원들은 그가 인터뷰한 모든 사람을 만나 러싱이 캐나다 국경 부근에서 공격 표적을 물색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닌지 밝히려고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일이 없다.

알자지라 워싱턴 지국이 K 스트리트에 사무실을 열었을 때도 건물주는 정문에 회사 이름을 내걸지 못하게 했다. 올해 초 기준으로 약 140명이 그곳에서 일하지만 “지금도 간판이 없다”고 수석 프로듀서 밥 휠럭이 말했다. 그러나 이젠 그런 고충도 없어진다. 알자지라는 각국의 대사관, 글로벌 기업체, 은행 등이 밀집한 워싱턴 DC 듀폰 서클 부근의 널찍한 사옥에 회사 로고를 자랑스럽게 내걸 예정이다. 맨해튼의 새 사무실 표지판은 더 두드러져 보일 듯하다.

지금까지 미국의 케이블 방송업자들은 알자지라 잉글리시를 서비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알자지라의 과거 오명 때문이기도 하고, 세계 뉴스가 미국 시청자 대다수에게 별로 인기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케이블 가입자들은 주로 한 번에 하나씩이 아니라 번들로 채널을 구입한다. 커런트 TV는 시청자가 많지 않지만 여러 인기 채널과 한묶음으로 구입됐다. 알자지라가 노린 점이 바로 그런 포지셔닝이다. 휠럭은 “커런트 TV 인수로 우리는 더 많은 가구에 도달할 수 있고 그들에게 우리 프로그램 샘플을 볼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알자지라의 미국 진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며, 조만간 또는 영구히 투자 회수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카타르 정부에는 무슨 이득이 있나?” 3자 전화 인터뷰에서 아탈라와 휠럭에게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우리 같은 방송 실무자로선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야심적인 케이블 뉴스 사업의 확장보다 훨씬 더 큰 무엇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파괴력이 훨씬 클지 모른다. 카타르는 돈이 흘러넘치기로 유명한 나라다. 지배 가문의 재산은 거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1인당 연간 소득이 10만 달러가 넘는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부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 카타르라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의 페르시아만에 폴립처럼 작게 튀어나온 무덥고 모래투성이인 반도이기 때문에 그 토후국의 제국주의 꿈이 얼마나 원대한지는 세계가 아직 잘 알

지 못한다.

노련한 외교관인 파리 주재 카타르 대사 무함마드 알 쿠와리는 “카타르의 미래는 소프트파워”라고 말했다. 카타르를 통치하는 알 시니 가문의 지도자들은 21세기에 자신들과 나라를 세계 무대에 투사하려면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 간파했다. 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 계열이지만 세계관은 넓게 열려 있다.

국왕 하마드 빈 할리파, 눈부시게 아름답고 영향력이 막강한 그의 애처 셰이카 모자, 그들의 아들 타밈 왕자와 딸 마야사(포브스지는 그녀가 카타르의 화려하고 야심적인 미술관들을 운영한다고 지적하며 “예술계에서 가장 막강한 여성”이라고 평했다)가 핵심 인물들이다.

그들은 외무장관이자 총리인 사촌 하마드 빈 야심 빈 야브라 알 사니와 함께 미디어, 스포츠, 문화, 교육, 혁신, 외교, 비밀공작을 아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교역하지만 정치적으로는 하마스(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를 지지한다.

2012년 10월에는 전례 없이 국왕 자신이 직접 가자 지구를 공식 방문했다. 알자지라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적으로 보도했지만 카타르는 미군 중부사령부가 들어설 수 있는 부지를 제공했다. 카타르 정부는 이란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면서도 자국 내 미국의 기지 설치를 허용했다.

재정위기에 처한 유럽에서는 카타르인들이 증권거래소부터 근로자들이 사는 교외 지역까지 모든 곳을 파고 들었다. 영국에선 해로즈 백화점, 슈퍼마켓 체인 세인스베리, 올림픽 빌리지, 런던 증권거래소 지분 15%를 인수했다. 독일에선 폴크스바겐, 포르쉐 등 주요 산업체에 투자했다.

프랑스에선 카타르인들이 유서 깊은 파리 루아얄 몽소 호텔, 칸의 마르티네즈 호텔을 인수해서 재개장했다. 프랑스 주식시장에도 거액을 투자해 이론상으로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CAC 40 주가지수(프랑스의 다우존스 지수에 해당한다)를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다. 카타르의 영향력은 프랑스 정부의 최고 위층에서 잘 드러난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을 도와 리비아에 억류된 불가리아 간호사들을 석방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 2011년 프랑스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는 전쟁을 지원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현 프랑스 대통령도 카타르와 매우 가깝다. 카타르는 올랑드의 사회주의 노선을 지지해 프랑스 대도시 교외지역에서 빈민가 주택을 건설하는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재단에 자금을 댄다.

영국의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카타르인이 구단주인 파리 생제르맹 클럽에서 한 시즌을 뛰었다. 카타르는 미국, 한국, 호주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인기 대회인 2022년 월드컵 축구를 유치했다. 그러다가 중동에서 2011년 초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 이후 카타르는 자금과 관심을 중동에 쏟아부었다. 파리 주재 카타르 대사인 알 쿠와리는 이렇게 말했다. “중동의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카타르는 이 지역의 안정을 원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대가는 아직 미미하다. 독재자들이 중동을 지배했을 때 알자지라 방송은 독재에 반기를 든 대중의 대변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시작된 이후엔 무슬림형제단의 권력장악을 적극 지지했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은 알자지라가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기운다고 좌절했고, 유럽과 중동의 여러 간부들이 사표를 냈다.

2012년 알자지라를 떠난 베를린 특파원 아크탐 술리만은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 모두 이건 저널리즘이 아니라 정치라고 판단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타르의 외교정책이다. 카타르 정부는 우방을 찬양하고 적을 공격하는 도구로 알자지라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중동의 시민혁명은 카타르의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활동하는 정치 평론가 술탄 알-카세미는 “카타르가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했기 때문에 최근 몇 주 동안 아랍의 봄이 일어난 국가들에서 군중은 카타르 국기를 불태웠다”고 말했다.

리비아에서 카타르가 지지한 세력은 힘을 잃었다. 튀지니에선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대중의 희망에 부응하지 못해 곤경에 처했다. 이집트도 카타르의 대대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정권이 혼돈에 휘말렸다. 시리아에선 카타르가 반군 중 지하디스트들에게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려 했지만 미국의 강한 제지를 받았다. 현재로선 카타르가 몰아내려고 작심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오히려 우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카타르는 자위 차원에서 이 모든 일을 시작했다. 1990년대 초 이 작은 토후국은 위협적인 이웃나라들의 압박에 시달렸다. 카타르는 1971년 페르시아만의 여러 소국과 함께 영연방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다른 토후국과 달리 카타르는 자국에서 영국이 대규모 공군기지를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접경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다 건너 이란의 침략을 두려워한 알 사니 가문의 통치를 보장해주는 안전장치였다. 인근의 작은 섬나라 바레인과도 진주채취장을 두고 불편한 사이였다.

1993년 도하를 처음 찾았을 때 그곳은 말 그대로 텅 빈 공간이었다. 지리적으로, 건축적으로, 지식적으로, 금융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외국 외교관들은 카타르에 매장된 천연가스의 잠재력을 높이 샀다. 카타르와 이란이 공동 소유한 거대한 노스필드 해역에 엄청난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개발 전이었기 때문에 은행에 돈이 없었다.

당시 셰이크 하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증오하고 아버지 셰이크 할리파를 끔찍이 싫어했다. 할리파 국왕은 탐욕스럽고, 백성의 삶에 무관심했으며, 자주 궁을 비웠다(기자도 파리 샹제리제의 카페에서 따분한 표정을 짓는 할리파를 가끔 봤다). 1995년 7월 할리파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동안 아들 하마드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하마드는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곧 거대한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시설이 건설됐다. 1997년 LNG가 수출되기도 전부터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마드는 세계가 카타르를 알고, 기억하고, 좋아하든 싫어하든 존중하도록 만드는 데 그 돈을 퍼부었다. 그 일환으로 1996년 알자지라 아랍어 위성 TV 방송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다른 아랍 정부는 알자지라 방송을 혐오했다. 중동 언론은 전통적으로 에두른 표현을 사용하지만 알자지라는 노골적이고 극적인 현장 보도로 충격을 던졌다. 격분한 아랍 정권들은 걸핏하면 알자지라 특파원을 추방했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했다. 아랍권 전체가 어떤식으로든 알자지라 방송을 보려고 했다.

2000년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유혈 봉기)가 다시 시작되자 아랍어 사용자들은 서안, 가자,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려고 알자지라를 시청했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인들의 주장을 허용하는 유일한 아랍 방송이었다. 그러나 인티파다 이틀째 프랑스 방송사가 11세 팔레스타인 소년 무함마드 알 두라를 촬영했다. 가자 지구에서 총격전에 휘말려 아버지 뒤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소년은 결국 총에 맞아 숨졌다. 알자지라는 이 도발적인 영상을 계속 재방송했다. 그러면서 그 영상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알리는 인티파다의 상징이 됐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 그리고 그 연계 단체인 하마스와 처음부터 긴밀한 관계였다. 이집트인 이슬람 학자이자 선동가인 유수프 알-카라다위는 알자지라 아랍어 방송의 슈퍼스타였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공격을 원색적으로 지지했다. 2009년 팔레스타인인 1000명 이상이 숨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 당시 그는 알자지라 방송에 나가 이렇게 말했다.

“알라여, 이 억압적인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을 전멸해 주십시오. 알라여, 한 명도 남김없이 마지막 한 명까지 죽여 주십시오.” 아랍인들이 환호했다. 2011년 무바라크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알-카라다위가 이집트에 돌아가자 타흐리르 광장에서 그가 인도하는 기도를 들으려고 200만 명이 운집했다.

미국 대중은 알카에다 관련 보도 때문에 알자지라를 곱게 보지 않는다. 실제로 알자지라는 알카에다에 정통한 소식통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나는 런던에서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중개자를 자주 만났다. 오사마 빈 라덴을 인터뷰할 목적이었다. 영국에 사는 한 사우디인은 나에게 알자지라의 카불특파원 타이시르 알루니를 소개했다. 그는 시리아 출신의 무슬림형제단 소속으로 스페인에 망명했고,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하지 않을 때는 스페인에 거주했다.

우리는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만났다. 그후에도 가끔씩 연락했다. 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 인터뷰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 그러다가 9·11 사태 직후 알루니는 직접 빈 라덴을 인터뷰했다. 알루니는 빈 라덴에게 무고한 인명 희생을 두고 까다로운 질문을 했다. 그러나 스페인 법원은 알루니에게 알카에다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죄로 7년 징역형을 선고했다. 알루니는 결백을 주장했다. 1년 전 석방된 그는 카타르 도하로 돌아갔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알자지라가 이라크전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방송을 혐오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라크전에 회의를 표하면 테러리스트와 한편이라고 간주했다. 알자지라는 미국인들이 일반 TV 뉴스에서 보는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했다. 미국 TV들은 승리에만 열중했지만 알자지라는 희생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어느 정도는 그런 측면이 미국 방송에도 필요했다.

주요 영화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알자지라의 뉴스룸(Control Room)’은 당시 알자지라의 활동상을 보여주며 여러 특파원과 제작진을 인터뷰한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미군 대변인이다. 크고 푸른 눈을 가진 그는 알자지라의 카메라 앞에서 펼쳐지는 비극을 보며 애틋한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바로 그가 알자지라 잉글리시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조시 러싱이다.

요즘 도하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에메랄드 시티처럼 보인다. 기이한 형태로 빛나는 마천루, 거대한 쇼핑몰, 고급 호텔이 즐비하다. 국제회의와 축제가 끊임없이 열린다. 지난해 말 그곳을 찾았을 때 피라미드 형태로 지어진 셰라턴 호텔에서 시리아 혁명가들과 외교관들이 아사드 정권에 맞서는 연대를 논의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 하루 뒤 세계교육혁신포럼(WISE)이 시작됐다. 교수, 이론가, 구호 요원, 지식인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셰이카 모자 왕비가 개막을 선언하러 등장하자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다음 며칠 동안 워크숍과 사교 모임이 이어졌다. 한편 도하 트라이베카 영화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도시 곳곳에 나붙었다. 참고로 수상작은 ‘회개자(The Repentant)’였다. 무기를 버리기로 결심했지만 평화로 돌아가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을 깨닫는 알제리의 지하디스트를 그린 영화다.

이런 요란스러운 행사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특히 카타르의 천연가스 수입이 앞으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행사에 자금을 대는 카타르 재단의 교육 담당 부대표 압둘라 빈 알리 알 사니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다양성을 갖추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세계 어디서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글로벌 시민을 양성하고 싶다.” 그러는 동안 카타르 정부와 국민도 변하고 있다.

도하는 조지타운, 코넬, 노스웨스턴, 카네기멜런, 텍사스 A&M 등 미국의 유수 대학 분교를 유치했다. 그러나 그 캠퍼스에서 지적인 활동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서점에는 책보다 기념품이 더 많고, 진열된 책도 공항 가판대 수준이다. 그러나 조지타운 캠퍼스의 학생들과 이야기했을 때 카타르의 미래가 어렴풋이 비쳤다.

이집트에 친척이 있다는 한 20세 여성은 무함마드 무르시(카타르 정부와 절친하다)가 지난 이집트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이슬람주의자들이 혁명을 가로챘다”고 불평했다. 또 그녀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카타르 분소에서 이집트 헌법 입안자 중 한 명이 ‘여성의 권리보장 조항이 헌법에서 누락된 이유’를 설명하자 반박했다.

그녀는 노스웨스턴대에서 아랍의 봄’ 과정을 듣는데 너무 미국 편향적이라고 평가했다. 도하에서 조지타운대에 다니는 한 여학생이 브루킹스 연구소의 공개토론회에 참석하고 이집트 출신의 이슬람주의자를 닦아세우다니 그 문화적인 뉘앙스가 참으로 묘했다.

알자지라 잉글리시 방송의 ‘엠파이어’ 진행자 비샤라는 카타르에 관해 직접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는 “중요한 건 경험”이라고 말했다. “한 체험에서 다른 체험으로, 한 국적에서 다른 국적으로,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그런 경험을 했다. 알자지라에서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측면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언어와 정치가 다양한 세계에 산다. 알자지라 아메리카도 그러기 바란다.” 바로 그게 카타르의 미래가 아닐까?

마사드 교수의 반유대주의 에세이 사건은 알자지라 아메리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에세이가 알자지라 아랍어 웹사이트에 실렸더라면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그곳에는 훨씬 더 극단적인 글들이 많이 게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자지라 아메리카는 그보다 더 잘할 수 있고 더 잘할 가능성이 크다. 방송이 시작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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