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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등에 업은 신케이렌 뜬다

아베 등에 업은 신케이렌 뜬다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 영향력 줄어 … 원전사태 여파로 전력 업계도 힘 빠져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經團連,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의 회장 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시작됐다. 내년 6월 임기를 마치는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스미모토화학 회장)의 후임이 이르면 연말 결정될 예정이다.

일본 재계는 일찌감치 후보자 물색에 나섰다. 6월 4일 게이단렌 총회에 앞서 차기 회장 지명권을 가진 요네쿠라 회장은 “여러 기업과 조율 경험이 많은 제조업 수장이(회장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재계와 정부의 밀월관계를 회복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현재 게이단렌의 부회장 18명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는 8명이다. 이 중 가와무라 타카시 히타치제작소 회장과 오오미야 히데야 미츠비시중공업 회장 등이 유력한 게이단렌 회장 후보로 꼽힌다.

한때 사사키 노리오 도시바 사장이 도시바 회장으로 승진이 예상되면서 게이단렌 회장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최근 도시바 임원 인사에서 그는 부회장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머물렀다. 더구나 니시다 아츠토시 도시바 회장과의 불화설까지 나돌면서 사사키의 게이단렌 회장설은 사그라들었다.



게이단렌은 차기 회장 선임에 바빠이런 가운데 고지마 요리히코 미츠비시상사 회장이 게이단렌 회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미츠비시상사는 한번도 게이단렌 회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재벌 색이 강한 기업 출신은 회장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회장 선거에서 스미모토화학 출신의 요네쿠라 회장이 선출되면서 불문율은 깨졌다.

미츠비시상사의 발목을 잡은 게이단렌 내부 서열의 변화도 감지된다. 게이단렌에서는 은행·자동차·전기·전력·철강의 5개 업종에 속한 기업의 서열이 높다. 이른바 ‘10% 그룹’이다. 이에 비해 종합상사는 ‘단순히 여기서 저기로 상품을 옮기는 회사’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현재 종합상사는 단순 거래보다 사업 투자로 벌어들이는 돈이 많다. 게다가 원전사태 이후 전력 업계는 10% 그룹 지위를 유지할 여력이 없다.

기득권 그룹의 한 축이 빠져나간 셈이다. 실적만 따지면 종합상사가 전력 업계의 자리를 대신할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요네쿠라 회장의 ‘제조업 수장이 (회장으로) 적합하다’는 발언이 걸림돌이다. 일본 경제계에서 ‘제조업 지상주의’의 벽은 여전히 높다. 일본의 재계 관계자는 “고 지마 회장이 게이단렌의 2인자인 심의원회 회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치권과의 관계 예전만 못해게이단렌의 시선이 차기 회장으로 쏠린 요즘 다른 한편에서는 게이단렌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정부와 관계가 과거처럼 밀접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제단체의 ‘큰 형’ 격인 게이단렌은 자민당 장기 집권 시절 막대한 정치 헌금을 내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10년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고 정치 헌금이 제한되면서 정계와 거리가 다소 멀어졌다. 자민당이 재집권한 뒤에도 이전과 같은 밀월 관계는 회복되지않았다.

이런 틈을 타서 떠오른 새로운 경제단체가 ‘신케이렌(新經連, 신경제연맹)’이다. 신케이렌은 2010년 설립된 ‘e비즈니스 추진연합회’로 출발했다.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과 이노우에 마사히로 전 야후 사장이 중심이 돼서 ‘인터넷 및 e비즈니스 확대를 통한 일본의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미키타니 회장과 이노우에 회장의 불협화음 탓에 전체 회의는 단 한 차례만 열렸다.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던 이 단체를 지난해 미키타니 회장이 ‘신케이렌’으로 탈바꿈시키고 자신이 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신케이렌은 아베 정권의 각별한 대우를 받으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지난해 12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아베 일본 총리가 가장 먼저 만난 경제단체는 게이단렌이 아니라 출범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신케이렌이었다.

올 4월 신케이렌 주최로 세계 정보기술(IT) 기업 경영자를 초청한 ‘신경제 서밋’의 전야제에 아베 총리가 참석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아베 총리는 전야제 이튿날 본 행사에도 영상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미키타니 회장은 아베 정부가 신설한 산‘ 업경쟁력 회의’의 위원이기도 하다. 이 회의에 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회장은 끼지 못했다.

미키타니 회장은 2004년 게이단렌에 가입한 적이 있다. 그는 ‘전력 업계를 보호하는 게이단렌의 구태의연한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2011년 탈퇴했다. 발전·송전 일괄 운영을 통한 전력 업계의 지역 독점체제를 지지하는 게이단렌 집행부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당시 라쿠텐이 전력 관련 사업에 손을 댄 건 아니지만 규제 완화를 비롯한 현안을 놓고 미키타니 회장과 게이단렌의 의견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취임 후 신케이렌 먼저 찾아미키타니 회장은 2009년 약사법 개정 당시 일반 의약품의 인터넷 통신판매 규제를 강력히 반대했다. 아베 총리는 6월 5일 야심차게 발표한 성장전략에서 의약품 인터넷 판매를 허용했다. 아베 정권에서 미키타니 회장의 영향력이 커진 사실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산업경쟁력 회의에서도 미키타니 회장은 발·송전 분리, 혼합 진료 허용, 해고 규제 완화 등을 주장했다. 생각만큼 논의가 진행되지 않자 여러 차례 산업경쟁력 회의 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미키타니 회장은 야당 시절 아베 총리의 부탁으로 인터넷 선거 허용에 앞장섰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신케이렌과 IT업계의 영향력이 커졌다기보다 아베 총리와 미키타니 회장의 사적인 연결고리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신케이렌의 목표는 회원 기업을 늘리고 회원 간 유대관계를 다지는 것이다. 현재 멤버만으로는 일본 경제계 전체가 아닌 IT 업계만의 단체에 가깝다. 이 경우 정부와 아무리 관계가 밀접해도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 신케이렌이 경제계에 뿌리를 내리려면 넘어야 할 산이다.

일본 경제계의 변화는 지방에서도 관측된다. 6월 5일 규슈 경제연합회 회장으로 아소 유타카 아소라파즈시멘트 사장이 선임됐다. 아소 사장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동생이자 지방 재계를 대표하는 명문 출신이다. 언뜻 보면 적임자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기존 체제를 뒤집은 이례적인 사건이다. 규슈 경제연합회 회장은 초대 야스카와 다이고로 회장 때부터 규슈전력 출신이 장악했었다.

원자력 발전 중지에 따른 연료비 증가로 규슈전력의 경영이 악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규슈전력은 올해 1분기에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재계 활동에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규슈 경제연합회 전 회장인 마츠오 싱고 규슈전력 전 회장은 후임 인선에 서일본철도·JR규슈 인사라도 내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전례 없이 지방 명사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월간동양경제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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