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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THE LEGACY - 헤밍웨이 가문의 저주를 넘어

Features THE LEGACY - 헤밍웨이 가문의 저주를 넘어

바버라 코플의 새 다큐멘터리, 탁월함·아름다움·자멸이 치명적으로 버무려진 그들 가족의 비공개 자료 담아
다큐멘터리 ‘러닝 프롬 크레이지’의 한 장면.



인터뷰를 할 때는 녹음기를 준비한 뒤 보통 질문에 답하기보다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거의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며 보낸 사람을 인터뷰할 때가 있다. 그 때는 자신도 인터뷰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점이 온다. 바버라 코플과 대화하는 동안 그런 일이 두 번 있었다.

코플은 아카데미상을 두 차례 수상한 영화감독이다. 전 헤비급 권투 세계챔피언 마이크 타이슨(‘Fallen Champ’)으로부터 컨트리 팝그룹 딕시 척스(‘Shut Up and Sing’)와 여성 종군기자(‘Bearing Witnes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했다.

첫 번째는 뉴욕에서 얼마나 살았는지 코플에게 물었을 때였다. “20대 초반에 뉴욕시로 왔지요.” 뉴욕주 스카즈데일에서 성장해 노스이스턴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맨해튼으로 이주한 코플(67)이 말했다. “나는 뉴욕 토박이”라며 그녀가 덧붙였다. “당신은 다른 곳에서 살아봤나요?”

그것은 쉬운 질문이었다. 워밍업이랄까. 코플의 새 다큐멘터리 ‘러닝 프롬 크레이지(Running From Crazy, 이하 러닝)’가 11월 1일 개봉됐다. 미국의 아이콘인 헤밍웨이 가문의 탁월함, 아름다움, 자멸의 치명적인 결합. 그리고 배우 겸 작가 마리엘 헤밍웨이의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돌아보는 매혹적인 여행이다.

인터뷰 후반에 코플은 마리엘과의 첫 인터뷰가 3시간 넘게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마리엘은 꼼짝도 않고 앉아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모든 질문에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고 코플이 말했다. 마리엘에게는 보통은 피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가족들의 자살, 많은 정신병, 동기간의 긴장 관계, 감정적으로 소원한 부모들. 갑자기 코플이 내게 물었다. “가족 중에 정신병을 앓거나 자살한 사람이 있나요?”

“없어요!” 내가 말했다. 문득 내가 잘못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할머니가 5살 때 외증조부가 자살하셨네요.” 그에게 맹장염이 있었다는 모호한 이야기를 할머니가 듣게 됐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한 친척이 무심코 할머니에게 언급했다. 외증조부가 호텔 창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친척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거야.” 할머니가 눈을 감으시기 전에 내게 말했다. “아무 문제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이야기인 듯했어…. 나중에 엄마에게 물었지. ‘왜 그런 얘기를 내게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엄마는 ‘그냥 못 하겠더라’고 대답했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외에 자살했다는 사실이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던 모양이야.”

그런 인식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러닝’은 정신병이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어둡고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암흑세계를 조명한다. 그것이 남기는 가혹한 유산, 그리고 뒤에 남는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또는 못하는지)도 보여준다. 영화는 헤밍웨이의 유산과 그 여파로 침몰한 사람들을 찾아가는 심해 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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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은 헤밍웨이 가계도의 모든 가지에서 뻗어 나온 듯하다. 마리엘의 친척 중 그녀의 조부인 전설적인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포함해 7명이 자살했다. 어니스트는 61세 때인 1961년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리엘이 태어나기 불과 몇 달 전이었다.

마리엘의 언니 마고도 42세 때 페노바르비탈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니스트 사망 35주기 딱 하루 전 날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가장 많은 소득을 올리던 모델 중 한 명이었다. 어니스트의 아버지, 여동생과 남동생도 자살했다. 마리엘의 또 다른 증조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역학을 바꾸고 싶다”고 마리엘(51)이 영화에서 말한다. “비극적인 가문이 아니라 기쁨을 통째로 완벽하게 수용한 가족. 딸들에게 적어도 그런 생각을 물려주고 싶다. 정신병이 우리 집안 내력이니 나도 곧 미치겠구나 하는 정신적 부담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말이다.”

‘러닝’은 마리엘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다호주 케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가족의 광기와는 대조적으로 절제되고 주변 사람들을 돌봐주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 잭(어니스트의 장남)은 야외활동에 대단한 열성을 보였으며 대주가였다. 엄마 바이러 (퍼크)는 얼음처럼 차가운 미인이었다. 마리엘은 엄마를 ‘악녀(a bitch)’라고 부른다. 술병에 마지막으로 조금 남은 술처럼 사랑 주기를 아까워했다.

언니 마고(오른쪽)의 화려한 할리우드 데뷔작이었어야 할 영화 ‘립스틱’에서 마리엘이 스포트라이트를 가로챘다.
가족의 저녁식사 시간은 보통 우호적인 대화로 시작하지만 얼마 안가 술기운이 오르면서 병들이 깨지고 소란스러운 싸움으로 발전했다(가족은 이를 ‘와인 타임’으로 불렀다). 마리엘은 보통 깨진 병들을 치우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는 또한 어린 시절 몇 년간 엄마의 간병을 했다. 엄마는 마리엘이 11세때 암 진단을 받았다.

마리엘은 언니 조앤 (머펫)보다 11살, 마고보다 7살 연하였다. 콩가루 집안에서 자신은 생식적 ‘실수’였다고 그녀는 말한다. 머펫은 아름답고 창의적이었지만 약물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나중에는 양극성 장애진단을 받았다(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평생을 보냈다). 마고도 거친 아이였다. 아름다운 외모,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 이름난 가문으로 무장한 채 19세에 집을 나갔다. 1975년 파베르제에서 선보인 베이브 향수의 새 얼굴로 1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다. 같은 해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적·사적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조명을 마리엘이 가로챘다고 원망했다. 사적인 측면에선 마리엘이 어렸을 때 그녀의 속눈썹을 잘라냈다. “다시 더 진하게 자라나면 내게 행운이 돌아올 것”이라고 마고가 고백했다. 공적으로는 1976년작 영화 ‘립스틱(Lipstick)’에 마리엘이 조연으로 출연해 격찬을 받았다. 원래 마고의 화려한 할리우드 데뷔작이 돼야 할 영화였다.

다큐멘터리는 놀라운 고백으로 넘쳐난다. 헤밍웨이 가족은 마고를 ‘큰 바지(big pants)’라고 부르며 그녀의 체중에 관해 놀려댔다. 마리엘은 마고가 아둔하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고백은 한 시간가량 지났을 때 나온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을’ 때 머펫과 마고를 성적으로 학대했다고 믿는다고 그녀는 털어놓는다.

“네 아버지가 하늘이 두 쪽 나도 절대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하지만 마고는 온통 아버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머펫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사실상 내 어린 시절 내내 자신과 같이 잘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마리엘이 말했다.

이 순간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중 하나에 자극적인 요소를 더해준다. 마리엘이 엄마의 묘소를 찾아가 말하는 장면이다. “엄마가 나를 지켜줬잖아. 좋은 엄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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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은 헤밍웨이 가족의 인터뷰·음성녹음·사진, 그리고 놀라운 영상자료를 토대로 한다. 보트 위에서 여가를 즐기는 어니스트, 플라이 낚시를 하는 잭, 소녀 시절 짧은 머리를 뒤로 젖히고 치아를 드러내는 전매특허의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마고…. 마고가 자살하기 13년 전인 1983년부터 촬영하기 시작한 가족 다큐멘터리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영상이다.

가장 귀한 자료들이 담긴 보고다. 코플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한 이후까지 그 영상자료가 존재하는 줄 몰랐다. 마리엘은 코플의 영화를 볼 때까지도 몰랐다. 영화는 ‘와인 타임’의 장면과 어니스트의 아들로 사는 삶이 어땠는지 마고가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누구인지도 몰랐어요!” 마고가 아버지에게 말한다. 가슴 아픈 장면도 있다.

마고가 1987년 베티 포드 클리닉(마약·알코올 중독자 치료 시설)에 제 발로 들어갔을 때 가족 주간에 아무도 그녀를 방문하지 않았다. 훗날 그녀는 매춘부를 고용해 자신을 안아달라고 한다.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도 있다. 어니스트가 생활하고 글을 쓰고 자살한 외딴 집 앞에 마고가 선다. 한때 숨 막히게 아름다웠던 모습의 껍데기만 남은 그녀가 카메라를 향해 말한다. “할아버지는 건강한 몸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생활에 길들여져 있었다. 누군가 예전처럼 그런 익숙한 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자살했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코플은 마고의 다시 찾아낸 영상자료에 관해 말한다. “묘지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거의,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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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코플 전 남편의 아들이 자살했다. 에반은 15세였다. “우리 모두 그들의 집으로 달려갔다.” 맨해튼 소호에 있는 그녀 아파트의 식탁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에반의 침대에 앉아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내가 컴퓨터를 켰던 듯하다. 켜진 화면에는 살아야 할 6가지 이유와 죽어야 할 6가지 이유가 적혀 있었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머그 찻잔 측면을 가끔씩 어루만졌다.

“살아야 하는 6가지 이유는 아주 감탄할 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내게는 아주 많은 꿈이 있다. 음악을 작곡하고,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다. 친구들을 사랑한다.’ 그 뒤에는 죽어야 할 6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훌륭한 사람도 되지 못한다. 꿈도 이루지 못한다. 나는 가족에게 짐이다. 나는 루저다.’ 닉(코플의 아들이자 에반의 이복형)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인데. 나도 거쳤고.’”

자살은 2010년 미국에서 주요 사망원인 10위였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5명이 자살한다. 2008~2009년 18세 이상 성인 830만 명이 자살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자살을 고려하는 비율은 여성이 더 높지만 미국 전체 자살자의 79%가 남성이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 중 하나였다. 동시에 비통하고, 비현실적이고, 혼란스러웠다. 에반이 세상을 등졌을 때 우리 가족은 풍비박산이 났다.” 코플의 아들 니콜라스 코플-페리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뉴욕시 소재 성누가 루스벨트 병원의 정신과 레지던트다. “정신과를 택한 데는 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왜 삶이 더는 선택지가 아닐 만큼 사람들이 인생을 비관하게 되는지 알고 싶다.”

코플은 알려지지 않은 헤밍웨이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다큐 제작에 착수했다. “뉴스헤드라인이나 잡지 기사를 뛰어넘어 정말로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할 기회였다”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러닝’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부를 촬영할 때에 가서야 자살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훨씬 나중에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털어놓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누구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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