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FEMINISM - “남녀 성역할 구분이 없어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진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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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FEMINISM - “남녀 성역할 구분이 없어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진다”

FEATURES FEMINISM - “남녀 성역할 구분이 없어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진다”

80세 맞은 여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말하는 여성운동의 현주소



지난 2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스 베르데스의 테라니아 리조트. 여권운동가 겸 작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장식용 금속 단추가 달린 검정 가죽 재킷에 맵시 있는 검정 바지를 입고 큰 회의장 앞줄에 앉아 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80회 생일을 축하하는 깜짝 파티가 열린다는 사실을 조금 전에야 알아차렸다. 스타이넘의 생일은 3월이지만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에 그보다 더 적합한 순간은 없었다. 제1회 ‘메이커스(Makers)’ 회의가 막을 내리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PBS에서 방송돼 평단의 찬사를 받은 다큐멘터리 ‘메이커스: 미국을 만드는 여성들(MAKERS: The Women Who Make America)’은 지난 50년 동안 여성운동과 여권주의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자료 화면과 인터뷰를 중심으로 제작된 이 작품의 내레이션은 배우 메릴 스트립이 맡았으며 26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메이커스 회의는 다큐멘터리에서 놓친 부분을 보강할 목적으로 조직됐다. 미국 기업계와 정계, 비영리단체, 할리우드, 미디어, 그리고 여성운동 분야의 지도자와 혁신가들을 한자리에 모아 직장에서의 여성 문제에 관한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는 일이다. “21세기 여성들을 위한 의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48시간의 실행계획”이라고 주최 측은 말했다.

페이스북의 CEO 셰릴 샌드버그, 배우 지나 데이비스와 첼시 핸들러, 방송 앵커 그웬 아이필 등이 연사로 나섰다. 그밖에 코카콜라와 나이키, AOL, 프라이스워터 하우스 쿠퍼스(경영 컨설팅 업체)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임원들도 참여했다. 회의 개막을 앞두고 온라인 상에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초대 받은 사람만 참석할 수 있는 엘리트주의자들의 모임이라는 비난도 있었고, 주최 측이 노조를 무시했다는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활기가 넘쳤다. 배우 제니퍼 애니스턴이 스타이넘을 인터뷰하고 아이필이 샌드버그를 인터뷰한 데 이어 개브리엘 기퍼즈 전 연방 하원의원(2011년 애리조나주 총기 참사 당시 머리에 총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이 우주비행사 출신인 남편 마크 켈리와 함께 나와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거기에 최근 어린이 미식축구계에 돌풍을 일으킨 10살짜리 여자 축구 스타 샘 고든까지 등장해 좌중을 사로잡았다.

스타이넘은 미국 여권운동가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며 50년이 넘도록 남녀평등과 변화를 부르짖어 온 현대 여성운동의 상징이다. 그녀는 프리랜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언젠가 그녀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난 주로 패션이나 음식, 화장, 유아와 관련된 기사를 맡았다. 심지어 그물 스타킹에 관한 기사를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스타이넘은 낙태 관련 청문회를 취재하면서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72년 스타이넘은 잡지 ‘미즈(Ms)’를 공동 창간했다. 이 잡지는 이전엔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았던 사회·문화적 문제를 다뤘다. 가정폭력과 섹스, 미적 기준, 직장 내 성희롱 등이다. 스타이넘은 또 베스트셀러 저서 여러 권을 펴냈으며 여성행동연합(WAA), 미 여성정치회의(NWPC), 여성미디어센터(WMC) 등 많은 기관을 설립했다.

스타이넘이 자신의 깜짝 생일 파티(배우 말로 토머스와 제인 폰다가 수백 명의 청중 앞에 그녀를 소개했다)에 참석하기 몇 시간 전 테라니아 리조트에서 그녀를 인터뷰했다.

스타이넘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태도로 아주 조용하게 말했다. 그리고 짤막한 농담을 던지는 간간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생활과 종교, 여성운동의 맹점, 그리고 그녀가 본 최초의 진정 자유로운 여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자라나는 소녀들이 처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패션이 갈수록 섹시해지고 TV 프로그램과 뮤지션들은 그런 경향을 더 부추긴다. 또 소셜 미디어는 그 모든 것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부모들은 그들대로 시류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현재 미국 청소년 소비시장의 규모는 170억 달러에 이른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 수 있을까?

요즘 청소년 중엔 부모나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 각자가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주면 자신도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 그들을 사랑해주면 자신이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건 공정하지 않아요.”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등 훌륭한 말을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문제는 여자 아이에겐 “넌 여자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남자 아이에겐 “넌 남자니까 이렇게 말해야 해” 하는 식으로 성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역할 구분이 없어질수록 세상은 더 좋아진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나?

▎스타이넘은 여권운동가로서뿐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와 기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스타이넘은 여권운동가로서뿐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와 기자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성역할 구분을 무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구분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부각시켜야 한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 없다. 성역할을 무시하고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수록 세상은 더 좋아진다.

부모(그리고 오늘날 어린 소녀들의 삶에 관여하는 어느 누구든)의 역할을 하기가 무척 어렵다. 부모가 지지하는 팝 스타들조차 어린이들에게 “허용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팝문화를 소녀들에게 유익하게 이용하는 방법은?

어려운 문제다. 팝문화를 금지해선 안 된다. 막으면 더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팝문화를 이용해 교육을 할 수 있다. 미디어를 활용한 교육은 매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바비 인형을 보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바비가 홀로 설 수 있다면 넘어질 것 같지 않니? 가슴은 큰데 발은 저렇게 작으니 말이야. 바비가 진짜 사람이라면 키가 330cm는 될 거야.” 이런 교육을 통해 의식을 키워줄 수 있다.

어린 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한 강연 후 토론회에서 12세 소녀가 “난 이제 잡지를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왜냐?”고 물었더니 그 소녀는 “잡지를 보면 내가 못생겼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 소녀는 한 달 동안 미디어 단식(media fast, 그 아이의 표현이다)을 행해 TV와 잡지를 보지 않으면 인간의 외모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말 혁명적이지 않은가?

의식을 높이는 동시에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모닥불 가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 왔다. 미디어는 오늘날의 모닥불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중 일부는 그 모닥불 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디어는 인위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미디어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이 현실이다.

‘미즈’ 잡지에 맹점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오늘날 여성 운동의 맹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종교를 보는 방식이다. 종교는 하늘의 정치다. 정말 그렇다! 영성은 상당히 민주적이다. 신이 당신과 내 안에, 그리고 저 꽃들과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을 중동의 한가운데 사는 금발의 백인 남자로 생각하는 순간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인종차별주의 등 여러가지 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별이라는 개념에도 속고 있다. 사람들은 그런 게 있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인종이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알다시피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에서 왔다. 인종 간의 차이보다 지금 마주 보고 있는 당신과 나의 차이가 더 크다.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차이가 집단 간의 차이보다 더 크다.

종교나 정치에서 대립하는 세력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 예를 들면 낙태 합법화를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입장을 바꾸도록 설득하기는 매우 어려울 듯하다.

우선 가톨릭 교회가 1800년대까지는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 후 가톨릭 교회가 낙태를 금지한 이유는 죄악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나폴레옹이 더 많은 군인을 원해서 교황 비오 9세와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논의가 금지된 일로 여기지만 종교의 정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인권운동의 선봉에 섰을 뿐 아니라 저널리즘 분야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며 성공적인 진로를 걸어 왔다. 여권운동과 관련해 현재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이슈가 있다면?

종교가 큰 이슈다. 또 다른 이슈는 현재 미국 공화당의 강령 중 어느 하나도 공화당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공화당 주도 세력은 대체로 예전에 민주당원이었다.

8000곳에 이르는 미국 근본주의 침례교회 전부가 예전엔 민주당을 지지했다. 제시 헬름스 같은 사람들은 민권법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 때문에 공화당으로 옮겨갔다. 따라서 처음에 남녀평등헌법 수정안을 지지했고 낙태 합법화에 찬성하는 골드워터 같은 진정한 공화당원들이 공화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공화당은 극단주의자들이 지배하고 있다.

언론에서 여권운동과 여성의 권리를 충분히 다루고 있다고 보나? 개선할 점은?

딱딱한 뉴스는 일반론과 통계로 이뤄지고 가벼운 뉴스는 이야기체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딱딱한 뉴스는 남성적, 가벼운 뉴스는 여성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진지한 기자들은 이야기체의 가벼운 뉴스를 무시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이야기에 반응을 보인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줄곧 모닥불 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에 목말라한다. 대중이 유명인사들의 소식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그 때문인 듯하다. 그것이 유일하게 이야기를 지닌 뉴스이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갈등만이 뉴스 거리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갈등은 남성적이며 사소하고 유치한 말다툼은 여성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듯하다.

맞다! 언론에서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 언론에서 여성을 다루는 시각뿐 아니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신을 ‘희망 중독’이라고 규정했는데 요즘은 무엇이 당신을 희망에 부풀게 하나?

첨단기술 부문에서 여성의 역할에 희망을 품고 있다. 여성들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여성 중 다수가 수학과 첨단기술, 과학의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꼭 이뤄져야 할 일을 꼽는다면?

높은 수준의 대화가 낮은 수준의 대화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가치가 덜 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그 양쪽이 다 필요하다.

미국 기업계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성들, 그리고 선구적인 여류 사상가들이 모인 이 회의에서 이뤄지는 대화가 다양한 배경과 연령의 여성들에게 전달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들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 그들을 만나고 지원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봉급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하지만 그들이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이나 청소부들의 봉급에도 신경을 쓸까?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오래 전 뉴욕 57번가에서 한 여성을 봤다. 그 때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미술가 니키 드 생 팔이었다. 그녀는 검정색 방수포로 된 레인코트를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있었다. 핸드백은 들지 않았다. 핸드백을 들고 있지 않았다는 게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그녀가 왜 핸드백을 들고 있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실생활에서 본 최초의 자유로운 여성이야. 저 여자처럼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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