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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시장 기대 모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 유연한 통화정책, 시장과 소통이 과제

Issue | 시장 기대 모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 - 유연한 통화정책, 시장과 소통이 과제

이성태 이어 두 번째 정통 한은맨 출신 총재 … ‘정부와 대화가 통하는 한은맨’ 기대



‘물가안정’.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1층 로비에 걸린 현판 내용이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고 통화량을 죄고 푸는 등 각종 정책 수단을 활용하는 주요 이유가 물가안정에 있다. 한국은행 행원(이하 한은맨)들의 공통 목표다.

이 때문에 한은맨들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엇비슷하다. 화끈한 성장보다는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기업 수익보다 가계 안정을 바란다. 성장을 바라는 기획재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비둘기파’보다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춘 ‘매파’ 성향이 강하다. 시장에서 ‘한은맨=매파’로 분류하는 이유다.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내정된 이주열(62) 전 부총재 역시 매파로 분류돼 왔다. 이 후보자는 3월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가질 예정이다.



매파 득세한 조직에서 중도파 성향이 후보자는 평생을 한은에서 보낸 정통 한은맨이다. 1977년 입행해 35년 간 한은에서 일했다. 조사국장·통화정책기획국장·부총재보·부총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2년 부총재를 끝으로 한은을 떠난 뒤 연세대 특임교수, 하나금융연구소 고문 등을 맡았다. 말을 아끼는 스타일로 늘 ‘차기 총재감’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2010년 이명박 정부 인사로 김중수 현 총재가 지명되면서 한은 내 권력구도에서 밀려났다. 이후 김 총재와 통화정책을 두고 수 차례 갈등을 빚었고 이 때문에 결국 한은을 떠났다.

애초 시장에서는 친정부쪽 인사 낙점을 전망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가계부채 억제, 내수·부동산 시장 부양)을 발표하는 등 경기 부양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이에 보조를 맞출 인사를 내정할 것이란 예상에서다. 그러나 정통 한은맨이 후보로 낙점됐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와 대화가 통하는 한은맨’이다.

이 후보자는 한은 근무 시절 온건파·중도파로 분류됐다. 김중수 총재 임명 전인 2010년 3월까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위원은 한은 출신의 매파(이성태·이주열·심훈)와 비둘기파(최도성·강명헌·박봉흠)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금통위 의사록 소수의견을 분석해보면, 강명헌 위원은 확고한 비둘기파였다. 최도성·김대식 의원은 애초 평가와 달리 매파로 분류됐다. 이 때 이주열 부총재는 중도파로 분류됐다. 부총재다 보니 총재와 뜻을 같이 하게 되고 소수의견을 내지 않은 것이 배경이다.

총재 후보에 내정된 3월 3일 이 후보자는 “매파냐? 중도파냐?”를 묻는 질문에 대해 “저를 매파 총재라고 합니까? 보시죠 한 번”이라며 “당연직 금통위원(부총재)이 하는 얘기는 중도파, 매파를 넘어 기관을 대표하는 얘기이고, 총재와 부총재는 기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이라고 웃어 넘겼다. 총재로서 어떤 입장을 보일지 보고 판단해 달라는 모호한 이야기다.

부총재 시절엔 매파 성향이 강한 이성태 총재의 의중을 따른 면이 있어 매파로 분류됐다. 하지만 현재의 이 후보자를 중도파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선 ‘정부와 말이 통한다’는 평이다. 부총재 시절 청와대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회의), 비상경제대책회의(벙커회의)에 한은 쪽 인사로 참여했다. 정부와 스킨십이 잦아 기획재정부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 후보자에 대해 여야·정부·한은 모두가 환영한 배경이다.

하나대투증권 김상훈 연구원은 “통화정책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 후보자가 금통위를 장악한 뒤 정부의 통화정책 의중을 반영할 것”이라며 “이 후보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면 기준금리 동결을 지속하는 등 경기 부양적인 통화정책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후보자를 온건하게 보는 외국계 시선도 있다. JP모건은 정기보고서에서 “이 후보자는 한은 출신임에도 누구보다 중도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며 “현재 금통위의 정책 방향에서 벗어난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이 후보자는 지난 몇 달 동안 10여명에 이르는 다른 총재 후보자와 비교할 때 시장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면서 “한은 출신이라는 점에서 매파로 분류돼 왔지만 중도적인 성향을 보일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정통 한은맨들은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한다. 이성태 전 총재가 좋은 예다. 금융시장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한은맨으로서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일관된 통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시장이 공감할 수 있는 시그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통화정책의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금리를 올려야 할 것 같으면 그 배경이 되는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시장에 미리 던져주는 방식이다. 이주열 후보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자는 구체적인 수치로 시장을 설득하는 편이다.

실제 이 부총재는 금융위기 시절 한은 출입 기자들에게 이성태 전 총재의 발언을 해설해주는 역할을 자임했다. 알 듯 모를듯한 이 전 총재의 시적인 발언을 오랜 시간을 들여 상세하게 설명했다. 충분히 설명으로 시장에 안정감을 준 면이 있다.

이 후보자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한은을 맡게 됐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 특성상 대외 불확실성은 금융과 실물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후보자는 G20 국가들과의 글로벌 정책공조를 벌어야 하며 한국의 입장도 관철해야 한다.

한은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과제다. 김중수 총재의 ‘나홀로 통화정책’ 탓에 시장전문가들은 한은의 시그널을 믿지 않고 있다. 이 후보자가 통화정책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은의 귄위와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할 시점이다. 한은의 조직 재건도 과제다. 김 총재는 발탁인사로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은맨들의 불만만 더 샀다. 한은 출신의 이 후보자는 김 총재 시절 좌천된 인사들을 보듬고 한은 조직을 추슬러야 하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급한 것은 한은 독립성 강화와 정부와 공조 사이의 조율이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한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고, 한은은 그로부터 독립해 성장을 일부 견제할 필요가 있다. 한은은 2월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가계부채 구조개선안을 지원하기 위해 영세자영업자 바꿔드림론 자격을 완화하고 주택금융공사에 추가 출자하기로 했다. 이 후보자는 김 총재가 약속한 것을 어느 정도까지 지원해야 독립성과 정책공조를 조화롭게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도 고민거리이주열 체제는 새로운 한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은은 유럽 대륙계 중앙은행 모델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대륙계 모델은 금융위기에 느리게 대처하고, 경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경제상황은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시기여서 중앙은행이 물가만 잡아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영미계 중앙은행처럼 경기둔화에 앞서 재빠르게 확장정책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이는 각각 매파와 중도파 간의 논쟁 지점이기도 하다. 이주열 총재 후보가 이런 경제상황에 맞춰 새로운 모델의 한은을 어떻게 만들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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