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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슈트가 신사를 만든다

더블 슈트가 신사를 만든다

시대에 따라 슈트 트렌드도 조금씩 바뀐다. 그러나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double-breasted suit, 이하 더블 슈트)’는 언제나 변함없이 클래식한 멋을 풍긴다. 한국 남성들에게는 발음하기도 버거워 보이는 이 용어가 요즘 패션계에서는 단연 핫이슈다. 한해의 패션 경향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유럽의 내로라하는 패션쇼에서조차, 올봄 한국에서 ‘더블 슈트’가 이토록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인기의 시작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킹스맨’에 등장한 50대 중반의 훤칠한 배우가 입고 나온 근사한 정장은 영화 개봉과 동시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킹스맨’은 007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비밀 요원들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로, 얼마 전 누적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성인 외화 흥행작으로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관광 명소인 런던의 빅벤(big ben, 엘리자베스 타워의 별칭), 영국 신사 특유의 억양 등 영국 문화를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주인공 ‘해리(콜린 퍼스)’가 영화 속에서 입은 ‘더블 슈트’와 ‘옥스퍼드’는 최근 남성들 사이에서 ‘킹스맨 스타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인기다.

영화 속 킹스맨 양복점은 영국 런던의 헌츠맨 양복점이 배경이다. 헌츠맨 양복점은 1849년에 세워져 1919년 지금의 새빌 로(Savile Row)에 입점했다. 새빌 로는 남성용 정장의 발상지로도 유명한데 각진 어깨를 부각하고 주름 없이 깔끔한 재단으로 넓은 가슴을 강조한다. 군복처럼 허리를 졸라매 남성의 실루엣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극 중 어린 첩보원 에그시(태론 에거튼)는 스승인 해리에게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를 달라”고 말한다. 해리 역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브로그는 구두 가죽에 구멍을 뚫거나 박음질한 장식을 뜻한다. 옥스퍼드는 끈으로 묶어서 신는 신발로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는 깔끔하고 세련돼 정장과 잘 어울린다. 이외에 코 받침이 없는 뿔테 안경, 바늘이 큰 손목시계, 지팡이처럼 사용되는 장우산, 금속제 만년필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킹스맨 스타일’ 열풍은 실제 매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AK몰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남짓한 기간(3월 1일~4월 8일) 동안 남성 드레스 정장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늘었다. 이 기간 캐주얼 정장 매출이 15%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신장폭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특히 더블 슈트의 매출은 같은 기간 37%나 급증했다.

영화에서 수차례 언급되는 패션 아이템이자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역시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고 있다. 금강제화에 따르면 ‘브로그 없는 옥스퍼드’ 스타일의 제품이 이 업체의 3월 남성구두 판매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개봉 전인 지난 1월에는 900켤레만 팔렸지만 영화 개봉 후인 2월에는 1300켤레, 3월에는 1900켤레가 나가며 인기 모델이 됐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해당 상품은 인기 사이즈의 경우 수량이 부족해 주문을 받아 판매할 정도”라고 말했다.
 영국 해군 유니폼에서 유래
1. 체형이나 상황에 맞게 적절한 슈트 연출법을 따른다면 진정한 멋쟁이로 거듭날 수 있다. 사진은 정교한 테일러링 기법으로 가늘고 긴 실루엣을 강조한 브리오니의 더블 슈트. / 2. 파란색이나 감색 재킷은 클래식한 분위기에 트렌디한 디테일이 가미돼 보다 매력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사진은 이태리 모던 클래식 브랜드 반하트 디 알바자의 더블 슈트. / 3. 198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 남성들의 많은 지지를 받아온 더블 슈트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중후하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사진은 런던에 뿌리를 둔 120년 전통의 남성 럭셔리 브랜드 알프레드 던힐의 더블 슈트.
패션 용어는 낯설어도 그 모양은 친숙하다. 영국 해군의 유니폼이었던 피코트(pea coat)에서 유래한 더블 슈트는 재킷의 앞여밈을 깊게 하고 두 줄의 단추를 달아 여미는 형태다. 이때 한 줄은 온전히 장식용이다. 도처에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배 위에서 두툼한 이중 여밈으로 신체를 보호하고, 천을 이중으로 덧대 칼바람으로부터 체온을 유지하는 효과를 얻고자 한 것에서 비롯됐다.

탄생부터 범상치 않았던 더블 슈트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남성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당시에는 옷을 사이즈보다 크게 입는 것이 트렌드였기 때문에 더블 슈트 역시 체구보다 여유 있게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의 형태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과거에나 지금이나 입는 이로 하여금 중후한 느낌을 갖도록 한다.

더블 슈트는 일반 남성 정장인 ‘싱글 브레스티드 슈트(single-breasted suit, 이하 싱글 슈트)’에 비해 총장이 길어 클래식한 분위기가 나고, 대부분 피크드 라펠(peaked lapel : 위로 솟은 모양의 양복 깃)로 제작돼 재킷 하나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연출할 수 있다. 싱글 슈트보다 활동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공식 석상이나 사교 모임, 이브닝 파티 같은 격식 있는 자리에 잘 어울리며 단정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보통 단추가 허리를 감싸주기 때문에 허리선은 날씬하고, 어깨를 더 넓어 보이게 해 남자다운 느낌도 물씬 풍길 수 있다.

이태리 모던 클래식 브랜드 반하트 디 알바자의 정두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최근 남성들이 패션에 민감해지면서 추구하는 스타일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더블 슈트는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 남자다우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 연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남성복 트렌드가 점차 클래식에 집중되고 있는 요즘, 더블 슈트는 올 시즌 남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필수 아이템”이라고 강조했다.
 더블 슈트 스타일링 노하우
모든 옷은 저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에 충실한 더블 슈트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더블 슈트 한벌 장만했다고 모두가 ‘킹스맨’의 해리가 될 수는 없다. 신체 조건이나 상황에 맞게 적절한 연출법을 따른다면 진정한 슈트 멋쟁이로 거듭날 수 있다.

더블 슈트는 몸집이 작은 사람은 더욱 왜소해 보이고 몸집이 큰 사람은 더욱 커 보이게 한다는 오해 때문에 한때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깨와 가슴 등 몸에 꼭 맞는 사이즈를 선택하면 신장이나 체격에 관계없이 멋스럽게 더블 슈트를 소화할 수 있다. ‘킹스맨’의 또 다른 주인공 에그시는 야구모자에 청바지로 대변되는 ‘스트리트 패션’에서 영국 신사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화려한 변신에는 몸에 잘 맞는 더블 슈트가 있었다.

영화에서 해리가 보여준 방법을 활용하면 더블 슈트를 제대로 입을 수 있다. 핀 스트라이프(pin stripe, 가는 줄무늬)나 글렌 체크(glen check, 격자무늬)의 더블 슈트에는 레지멘탈(regimental, 사선 줄무늬) 넥타이가 기본이다. 여기에 화이트 드레스셔츠와 화이트 포켓 스퀘어(왼쪽 가슴 주머니에 꽂는 장식)로 간결함과 격식을 더할 수 있다. 다만 셔츠와 매치할 경우에는 와이드 스프레드(깃의 벌어짐이 넓은 형태)를 선택해야 한다.

더블 슈트는 단추를 모두 채우지 않는다. 스리 버튼의 경우에는 가운데 하나만, 투 버튼은 맨 위 하나만 채워 보다 멋스러우면서도 활동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간혹 멋쟁이들은 브이(V)존을 더 깊게 만들어 상체를 강조하기 위해 오른쪽 맨 아래 단추만 잠그기도 한다. 앉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추를 풀어서도 안 된다. 단추가 많아 모두 풀어버리면 단정하지 못한 인상을 줄 수 있다.

회색이나 갈색 계열 더블 슈트가 중후한 느낌을 준다면 에그시가 입었던 감색 줄무늬 슈트는 젊고 세련된 분위기가 난다. 이 재킷은 활용도가 높아 면바지 혹은 청바지와 함께 연출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때 셔츠 대신 브이넥 티셔츠나 라운드 티와 함께 매치하는 것이 포인트. 삶의 멋과 여유를 아는 남자처럼 보일 수 있다.

정두영 디렉터는 “파란색 혹은 감색 재킷은 클래식한 분위기에 트렌디한 디테일이 가미돼 보다 매력적인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며 “이때 톤온톤(tone on tone, 같은 계열로 톤만 달리한 배색) 스타일링을 활용하면 한층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 공식에 맞춰 더블 슈트를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해서 모두가 영화 속 신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영화에서 줄곧 등장했던 이 대사처럼 잘 차려입은 옷만큼 매너 있는 행동이 뒤따랐을 때 비로소 진정한 젠틀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블 슈트와 뿔테 안경, 옥스퍼드 슈즈, 그리고 장우산의 인기는 한동안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 오승일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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