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그리피스 투미 CEO - ‘오바마의 움직이는 사무실’ 한국 시장에 주목하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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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그리피스 투미 CEO - ‘오바마의 움직이는 사무실’ 한국 시장에 주목하다

제롬 그리피스 투미 CEO - ‘오바마의 움직이는 사무실’ 한국 시장에 주목하다

투미는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의 인기를 끄는 가방 브랜드다. 1980년대 방탄 소재의 여행가방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 ‘오바마의 움직이는 사무실’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많은 CEO를 유혹하는 매력. 투미 CEO에게 물었다.

미국 출장을 위해 델타항공 비즈니스 클래스에 몸을 싣는다. 이어폰, 담요 등 승객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물품이 있다. 착륙 후 많은 승객이 대부분 물품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다. 하지만 한 가지 물품만은 반드시 챙겨간다. 여행용 물품을 담은 ‘투미 여행 케이스’다. 델타항공이 2013년부터 모든 장거리 국제선의 비즈니스 승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다. 투미가 출장이 잦은 비즈니스 고객에게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항공사가 먼저 이용한 사례였다.

투미의 유명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짐가방을 스마트하게 싸는 법’을 검색하면 동영상 하나가 뜬다. 출장에 필요한 옷, 세면도구, 필기구 등 다양한 물건을 여행가방에 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설명하는 이와 짐을 싸는 시간을 본 많은 이들이 “놀랍다”는 댓글을 단다. 동영상 속 주인공은 제롬 그리피스(58) 투미 CEO. 그가 짐을 모두 싸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분 39초다.

중남미 출장 건으로 전화와 이메일로 만난 그에게 동영상 얘기부터 묻자 “매년 15만~18만 마일(약 24만 km~29만 km)을 출장 다닌다”면서 “1년에 150일을 해외여행으로 채운다는 소리인데 나보다 더 전문가가 있겠나?(웃음)”라고 답했다.

2004년 투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애용하는 가방으로 유명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4년 대선 이후 출장 때마다 투미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다녀 ‘오바마의 움직이는 사무실’로도 불렸다. 오바마 얘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던 그리피스 CEO는 “1991년부터 내가 투미 단골이었다. 투미로 자리를 옮긴 것도 투미 가방을 좋아했기 때문(웃음)”이라며 농담도 건넸다.

그리피스 CEO뿐만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 국내외 유명인사들이 출장을 떠나는 모습에는 투미 가방이 함께한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도 아닌데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투미를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브랜드의 상징적인 철학은 ‘성공’
▎투미가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아 한정판으로 출시한 ‘1975 리미티드 콜렉션’.

▎투미가 올해 설립 40주년을 맞아 한정판으로 출시한 ‘1975 리미티드 콜렉션’.

“상징성 덕분인 것 같다.” 그리피스 CEO는 짧지만 강하게 답했다. 투미는 ‘성공과 행운’을 상징하는 페루 잉카 문명 신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사업에 성공했구나’, ‘성과를 냈어’ 등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이미지와 겹치고 있다. 이어 그는 “저 역시 처음 투미를 들 때 주변에서 성공했다는 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봤다”며 “기능성도 좋았지만 나 역시 뭔가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투미 가방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자칫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 소비가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자신의 설명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소유를 위한 명품이 아니다. 가방을 든 사람이 주체이고 그를 서포터 해주는 역할을 투미의 기본 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투미를 선택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공통점을 보면 합리적인 선택을 중요시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라며 사치성 물품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유명 인사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투미도 어려움은 있었다. 그는 2009년에 투미에 합류했다.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때였다. 투미도 금융 위기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출근 첫 주부터 ‘긴축’에 대해 토론했다.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그는 “브랜드 가치를 다시 정립하고, 되돌아보는 것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회고했다.

단호한 결정 덕분이었을까. 투미는 2012년 4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시가 총액 17억 달러의 기업으로 시장에 데뷔했다. 그가 투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1989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GAP’에 합류해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시장에서 약 5억 달러 가까운 이익을 거두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후 2006년까지 경영 어려움을 겪었던 ‘토미힐피거’, 에스프릿’ 등 세계적인 패션 기업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패션 분야 전문가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구사하며 5개 대륙에서 글로벌 회사를 운영한 그는 “패션업계에서 일한 계기는 16살 무렵부터다.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고 덧붙였다. 16살부터 일한 경험까지 더한다면 그의 패션업계 경력은 무려 41년에 달하는 셈이다.

이런 그가 최근 주목하는 곳이 ‘아시아 시장’이다. 지난 3월 초 바쁜 유럽 출장일정 중에도 한국에 들러 시장 상황을 직접 챙기는 수고도 마다치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한국 시장을 둘러보며 가진 생각도 들려줬다. “아시아 시장 중에서 특히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뭔가(?)를 아는 것 같다.” 그가 던진 그 ‘뭔가’가 궁금해 물으니 대뜸 “한국 소비자의 기호 속에 답이 있다”고 했다. “2007년 한국에 첫 매장을 냈을 때 만해도 제품을 검정으로만 채웠다. 고객 대부분이 선호하는 색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7~8년 사이 성향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 시작에는 한국 소비자가 있었다”고 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빨강·파랑·노랑 제품도 과감히 선택했고, 회사에 요구하는 사항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해 놀랍다”는 그의 말에서 한국 소비자를 ‘트렌드 리더’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 같다.” 그가 한국과 아시아 시장 소비자를 표현한 말이었다. 마르코 폴로(1254~1324)는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동방견문록’을 통해 아시아를 유럽에 소개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이다. 그는 “특히 한국 소비자가 그렇게 느껴진다. 한국 소비자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투미 소비의 표본을 제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예를 들어 한국 소비자들은 새 제품을 출시하면 어떤 기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지까지 세세하게 파고든다”고 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이런 성향이 투미가 아시아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는 “중국·일본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해외 여행객이 점차 늘고 있다”며 “앞으로 투미를 찾는 아시아 고객이 더 늘어날 것”임을 확신했다.
 한국 시장은 ‘트렌드 리더’

그는 달라진 글로벌 트렌드에서 소비 기호가 다양해진 이유를 찾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고객이 검정을 택한 것은 출장 가는 대다수 고객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 졸업생의 상당수가 여성이고, 경제계를 주무르는 주요 인물도 여성이 많아졌다”고 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사업가를 더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비즈니스 피플’로 봐야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 투미가 매년 선정하는 ‘글로벌 시티즌’에도 이런 그의 생각이 반영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자기 분야를 선도하는 인물을 선정하는 원칙은 그대로 두되 남녀를 불문한다는 것. 그는 한국의 경우 패션 디자이너 이지선과 이지연 자매가 선정됐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투미의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만큼 그의 해외출장 건수도 늘고 있다. “약 75여 개국에 260여 개의 매장 그리고 1900개 이상의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 앞서 1년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며 그는 웃었다.

그는 “항상 ‘새롭다’라는 느낌을 즐긴다. 문화·도시·사람·사업 이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울 기회를 맞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는 이미 3개 대륙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횡단했을 정도다. 미국 포브스도 터프한 그의 매력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2013년 그를 소개하면서 칭한 별명은 ‘로드 워리어(거리 전사)’였다.

-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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