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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오지 마세요

병원에 오지 마세요

▎의사가 머리 속에 저장한 어떤 기억보다 많은 데이터를 내장한 컴퓨터가 희귀질환을 더 정확히 진단하고, 더 자질구레한 증상을 처리할 수 있다.

▎의사가 머리 속에 저장한 어떤 기억보다 많은 데이터를 내장한 컴퓨터가 희귀질환을 더 정확히 진단하고, 더 자질구레한 증상을 처리할 수 있다.

의사 왕진이 사라진 뒤로 병원 방문은 보편적인 형태의 고문이 됐다. 형광등 조명 아래서 꺼림칙하고 병든 사람들로 가득한 방 안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기술이 그 문제의 해결사로 나섰다. 질주하는 차량에 위태롭게 다가가며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는 것과 같은 다른 오랜 문제들을 해결했듯이 말이다.

최근 스프루스라는 휴대형 의료 분야 신생 벤처기업이 15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미래 세계의 예고편인 듯하다. 스프루스는 스마트폰을 통해 ‘진찰’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술을 향한 한 걸음이다. 스프루스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많은 경우에 정말 의사를 찾아갈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대신 의사에게 자신의 모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가 그것을 검토한 뒤 가능한 시간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스프루스는 피부과부터 시작했다. 앱을 내려 받으면 여드름, 습진, 벌레 물림 등의 증상을 선택하도록 한다. 증상을 토대로 진단에 필요한 일련의 질문을 던진다(“피부 상태가 어떤가? 보통인가? 미끌거리는가? 건조한가?”). 이어 증상의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보를 보낼 담당 의사를 고르거나 또는 그냥 ‘가장 먼저 시간이 나는’ 의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24시간 내에 답변을 주겠다는 약속이 뜬다. 필요할 경우 약국에 처방전을 보내주고 증상 관리법에 관한 지시사항도 알려준다. 비용은 40달러. 대다수 전문의 방문에 드는 건강보험 가입자 부담액보다 별로 많지 않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더라도 스프루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스프루스는 지난해 9월 여드름 치료 전용으로 앱을 출시했다. 그 뒤 3월 말, 더 많은 증상을 대상으로 확대 버전을 출시했다. 환자와 의사 모두 즉석에서 진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데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크게 놀랐다고 레이 브래드포드 CEO가 말했다. 환자들은 시간 여유를 갖고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의사가 빡빡한 일정에 따라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려 애쓰면서 초조하게 발을 구른다고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의사들은 이젠 주로 일과 후 잔업 시간에 스프루스 환자 건을 처리한다. 소파 위에 발을 올려 놓고 맛 좋은 보르도 와인을 홀짝이며 진단을 내릴 수 있다(둘째 또는 셋째 잔을 마신 뒤 내 건을 검토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피부과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브래드포드 CEO는 말한다. “스프루스를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이 많다는 데 우리는 큰 기대를 건다. 하지만 한번에 다할 수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증상별로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휴대형 의료 분야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신생 벤처는 스프루스 하나뿐이 아니다. 더는 ‘원격의료(telemedicine)’로 부를 수도 없다. 그 용어는 나온 지 한참 됐으며 보통 실시간의 스카이프(인터넷 전화) 같은 동영상 진료를 의미한다. 이번의 신기술은 스마트폰, 이동성, 클라우드 기반 인공지능(AI)의 토대 위에서 의학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휴대형 기기 업체 ‘주문형 의사(Doctor on Demand)’와 핼스탭(HealthTap)은 자칭 ‘의료계의 우버(택시 호출 앱)’다. 각각 20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조달했다. 혈압과 심전도 검사 결과를 판독해 심장병 전문의에게 결과를 보낼 수 있는 앱도 있다. 눈 검사 앱은 안과에서 의사가 우리 얼굴에 들이대는, 산업혁명 시대를 연상케하는 검사 장치만큼이나 정확해지고 있다. 필경 워비 파커(온라인 안경 판매업체)가 눈 검사 처방전을 환자의 스마트폰으로 보내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듯하다. 한편 미국 각 주의 의회는 잠재적인 비용절감과 편의성을 인식하고 보험사들이 휴대형 의료에 보험을 적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 AI가 진짜 시대의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클리블랜드 클리닉 같은 고급 건강의료 센터에는 IBM의 왓슨 기술이 설치됐다. 환자에게 질문 몇 가지를 던져 정확한 진단에 도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왓슨 컴퓨터는 모든 의사가 머리 속에 기억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료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따라서 희귀질환을 진단할 때 의사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 왓슨이 지금은 복잡하고 비싸지만 모든 신기술과 마찬가지로 장차 더 좋아지고 싸질 듯하다. 조만간 진짜 의사가 개입할 필요 없이 왓슨 같은 의료 앱이 일차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AI 의사가 받아들여지기까지 다소 신뢰성 문제가 있겠지만 현금 자동입출금기(ATM)가 처음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이는 온갖 종류의 트렌드를 수렴한다. 물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기술이다. 휴대전화의 고화질 카메라로부터 항상 이용 가능한 클라우드 서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네트워크 환경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가 가장 먼저 받아들이겠지만 첨단기술에 밝은 베이비붐 세대도 집단으로 고령화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더 많은 의료가 필요하지만 진료를 받으러 집을 나서는 데 갈수록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동시에 한 추산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뒤엔 미국에 의사가 5만2000명이나 부족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피부과 의사 진료를 받기 위한 평균 대기 시간이 29일이나 된다고 스프루스의 브래드포드 CEO는 말한다. 그것이 피부과부터 스프루스 서비스를 시작한 한 가지 이유라는 설명이다.

스프루스 ‘진료’ 비용이 지금은 40달러이지만 경쟁과 AI로 비용이 크게 떨어지리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또는 그런 점에서 시차를 두고 비용이 저렴한 인도나 태국의 의사들에게 환자의 증상을 보내는 방법도 상정할 수 있다). 발진이나 독감 또는 어린이의 내이 감염으로 인한 통상적인 병원 방문이 한밤중에도 휴대전화로 20달러에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해진다면 그런 수준의 진료를 받으려 굳이 보험을 들 필요가 있겠는가? 개인 돈으로 부담하고 더 위험한 진료에 건강보험금을 쓰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것을 누가 원치 않겠는가? 환자 입장에선 아플 때 병원을 찾는 것은 외로울 때 낯선 사람 천지인 파티에 참석하는 격이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상태가 더 나빠질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우수한 의사들은 자질구레한 증상과 우는 소리를 하는 건강염려증 환자에 낭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 시간에 정말로 실질적인 관심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때가 되면 대다수의 사람에게 병원은 역사의 유물이 될 듯하다. 진료라고 하면 곧 극소수의 의사가 너무나도 많은 환자를 일일이 대면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던 시절의 유물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휴대형 의료계의 치과의사는 아직 싹수도 안 보인다.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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