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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꺼진 일본 반면교사 삼아야

부동산 거품 꺼진 일본 반면교사 삼아야

“또 떨어지네요. 지금 사야 할까요?” 기자 시절, 전문가들에게 부동산 값 하락에 대해 물으면 항상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은 항상 경제성장률보다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높았습니다. 부동산은 고민 없이 사야 합니다.” 1991년 봄, 필자도 회사에서 지하철로 40분 정도 떨어진 도쿄 교외의 한 아파트를 샀다. 당시 일본 경제는 거품이 한창 끼어있던 시기다. 반년 뒤 미국 특파원으로 발령 나는 바람에 집에는 더 이상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3년 뒤 일본에 돌아와 믿지 못할 상황을 맞이했다. 4년 전에 5400만엔에 샀던 아파트 가격이 2800만엔으로 반 토막 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3년 뒤인 1998년에는 2100만엔으로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후반, 거품경제가 붕괴한 일본 여기저기에서 이런 일은 흔하게 벌어졌다.

일본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50년 동안 부동산 가격 하락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런 영향으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부동산을 사야 했고, 이 같은 심리가 ‘부동산 신화’를 만들었다. 주택 값 상승이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해치자, 미야자와 키이치 수상은 근로소득자 연봉의 5배 수준으로 집을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1992년 부동산 값이 꼭지점을 찍은 시기에, 그것도 대도시권역을 대상으로. 1990년 일본의 주택 평균 가격은 근로소득자 연봉의 8배, 수도권 신축 아파트의 경우는 18배였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야자와 수상의 부동산 정책은 성공한다. 정치인들의 노력 덕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거품 붕괴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정부는 ‘엔고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 인하와 양적완화를 단행했고, 이 영향으로 시중에는 자금이 넘쳐났다. 기업·개인 할 것 없이 모두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몰려들었다. 이른바 ‘단카이 세대’라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는 왕성하게 내 집 마련에 나서며 부동산 값을 띄웠다.

돈이 남아돌자 기업들 사이에서는 본사 건물을 새로 짓는 유행까지 일었다. 거품경제가 정점에 달았을 때 도쿄의 야마노테선(도쿄 중심 순환 전철)의 안쪽의 땅값이 미국 전체와 맞먹는다는 기사도 신문에 많이 실렸다.

거품이 붕괴한 지 20년, 일본은 어떻게 됐을까. 부동산 가격이 예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도심과 가깝고, 지하철역이 인접한 일부 중의 일부는 예외지만. 이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부동산을 재테크나 투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살기 위해 사는 것이 됐다. ‘좋은 물건은 비싸고, 그렇지 않은 물건은 싸다’ ‘부동산은 주거하기 위해 구입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거품 붕괴가 일어난 뒤에서야 찾아왔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있는지 이론의 여지가 있고, 과거 일본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전세 가격과 매매 가격이 거의 같아지고 있는 점, 저금리에도 전세제도가 남아있는 점은 과연 정상적인 걸까. 특히 가계부채가 1100조원에 달한다는 점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다. 거품 붕괴로 일본 경제 전체, 그리고 대다수 월급쟁이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은 길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계속 유지되긴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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