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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회와 그 적들] 누가 복지 국가를 반대하는가

[복지사회와 그 적들] 누가 복지 국가를 반대하는가

백가쟁명의 복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의 수준과 속도, 질과 양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그 자체로 나쁠 게 없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고, 논쟁은 격할수록 좋다. 문제는 논쟁의 격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논쟁은 좌·우파 할 것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비튼 주장을 사실이라고 우기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허구가 상식으로 둔갑하고, 거짓이 진실의 탈을 쓴다. 복지를 전공했다는 학자가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교묘히 ‘마사지’한 통계를 들이민다. 한 가지 사실에 백 가지 주관적 관점이 붙어 ‘비생산적인 말싸움’으로 시간을 보낸다. 역사·문화·경제적으로 우리와 하등 비슷할게 없는, 따라할 수도 없는 북유럽 국가를 우리의 모델로 내세우고, 한편에선 북유럽의 과잉 복지를 비판한다.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라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진지한 표정으로 설파한다. 다수의 국민은 복지국가를 원하지만, 세금은 더 내기 싫다고 한다.

우리는 진정 복지국가를 원하는 걸까? 원한다면, 어떤 모습의 복지국가여야 할까?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같다.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공감대를 찾아갈 때, 비로소 ‘돈(재정)’에 초점을 맞추며 악다구니하듯 서로 물어뜯었던 무상급식 논란이 반복되지 않는다.

복지가 뭔가? 한자어 ‘복지(福祉)’의 사전말은 ‘행복한 삶’이다. 영어 ‘웰페어(welfare)’ 역시 ‘잘(well) 사는(fare) 것’이다. 행복한 삶, 잘사는 것이 복지다. 뜻만 보면, 그 누구도 복지를 반대할 대의나 명분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누가’를 복지를 반대하는 것일까? 중화권에서 명망있는 경제학자인 저자가 <복지사회와 그 적들> 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이 책은 복지 확대를 원하는 이들이,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주장을 반박하고, 이론적 토대를 공고히 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읽기에 앞서 다음 질문에 답을 해보자. 복지 사회는 재정이 충분한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한가? 복지 사회는 저효율을 야기할까? 복지 국가는 결국 실패했는가? 복지 사회는 시민적 자유를 훼손하는가? 복지는 국가 부채를 늘릴까? 복지는 사람들을 나태하게 만들까? 부자의 자선으로 사회 복지를 대신할 수 있을까? 이상은, 저자가 복지사회의 7가지 거짓말로 꼽은 ‘복지 반대 논리’들이다. 저자의 답은 물론 ‘NO’다.

한 질문을 예로 보자. ‘복지 사회는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한가?’ 저자는 19세기 말 세계 최초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독일이나, 20세기 초·중반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한 북유럽 국가 모두 당시에는 유럽의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다른 나라보다 먼저 사회 복지가 정착된 나라가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을 실증적인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것은 너무나 가난했던 1977년이다. 미국의 ‘오바마케어’ 논란에서 봤듯이, 만약 지금 우리 경제 수준에서 정부가 예전에 없던 의료보험제도를 전면 도입하겠다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복지에 관한 수많은 통계와 역사적 사실, 국가별 복지 현황을 가능한 많이 제시한다. 그러면서 어느 국가든 복지사회로 가는 길을 막았던 ‘그 누군가’가 있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복지사회의 적들은 누구인가? 그는 ‘복지 사회로의 이행이 어려운 것은 보이지 않는 이익집단들의 방해 때문’이라고 했다. 이 보이지 않는 이익집단을 파악하려면, ‘퀴 보노(Cui bono)’의 관점에서 봐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퀴 보노’는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는 의미다. 저자는 복지사회를 건설할 경우 유일하게 손해를 입는 계층은 ‘고위층’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서 말하는 고위층은, 고위 엘리트·관료·언론인·경영인·법조인 등을 말한다. 상대적 소수지만 여론을 장악하고 정책을 통제할 수 있는 이들이 복지 사회의 최대 반대자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복지 반대론자들에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경제학자, 정확히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도 맹렬히 비판한다.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닫힌 사회를 이끈 원흉으로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지목했듯이, <복지사회와 그 적들> 에서 저자는 복자 사회로의 이행을 막는 원흉으로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를 지목한다. 저자는 하이에크를 복지 사회에 반대하는 반민주적, 반인권적 인물로 묘사하며 그를 교조적으로 추종하는 하이에크주의자들 역시 ‘적’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책 말미에 ‘저생존원가형 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국민이 생활하는 데 드는 원가를 떨어뜨려 삶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사회를 말한다. 다소 이상적인 얘기지만, 취지와 대안을 읽어보면 공감하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저생존원가형 사회 개념을 제시하는 것은 현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난제는 사람들이 시장을 믿으면서도 빈부 격차의 가속화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복지 사회를 갈망하면서도 과중한 세금 부담은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시장경제와 빈부격차의 모순, 복지사회와 높은 세금의 모순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거대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저생존원가형 사회뿐이다.’

복지 확대에 회의적인 독자들이 볼 때, 이 책 역시 무리한 주장을 담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복지에 관한 많은 상식이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던진 문제의식과 화두를 향후 복지 논쟁의 주제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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