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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집 안의 전문가 ‘인스퍼트’가 뜬다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집 안의 전문가 ‘인스퍼트’가 뜬다

롯데네슬레코리아가 올 초 내놓은 커피머신.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관련 제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야만 가능하던 서비스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집에서 직접 해결한다고 해서 아마추어처럼 대충하는 건 견딜 수 없다. 커피 한 잔을 내놓더라도 바리스타처럼 하트 하나쯤은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손수 DIY(Do-It-Yourself)를 하더라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들. 소비자들이 ‘집 안의 전문가(Inspert, Inhouse +expert)’로 변신하고 있다.

집 안에서 소비자가 전문성을 발휘하는 영역은 단연 식품 관련 부문이다. 그중에서도 커피 시장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단돈 몇백원이면 마실 수 있는 일회용 믹스커피 시장과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를 소비한다는 커피전문점 사이에서 ‘홈카페’가 제법 큰 규모로 성장 중이다. 이제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커피는 일반적인 드립 커피 수준을 넘어섰다. 기계 한 대 가격이 수백만원을 훌쩍 넘는다. 커피 전문점에서나 볼 듯한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은 혼수로 받고 싶은 선물에서 상위 순위를 차지한다. 드립 커피와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추출하는 커피의 중간 정도라 할 수 있는 캡슐커피 시장 역시 매년 30%씩 성장하고 있다. 캡슐커피를 넘어 집에서 직접 커피콩을 볶고 분쇄해 신선한 커피를 내려먹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휴대용 맥주 거품기 인기
근사한 바(bar)에서나 즐기던 크림맥주를 집 안에서 손쉽게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제품도 인기다. 바로 휴대용 맥주 거품기다. 수퍼에서 캔 맥주를 사와 맥주 거품기와 연결만 하면 전문가가 만들어주는 크림이 풍성한 맥주를 집 안에서도 즐길 수 있다. 롯데주류에서는 ‘클라우드 메이커’라고 하는 크림맥주 제조기를 고객들에게 증정하는 깜짝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홈메이드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정용 식품제조기 판매도 크게 늘고 있다. 옥션에 따르면 2015년 1월, 샌드위치·와플메이커 판매는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585%의 성장세를 보였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해도, 프라이팬에 대충 둘러먹는 샌드위치가 아니라 적어도 전문 매장 정도의 품질은 돼야 한다는 심리가 담겨 있다.

‘전문숍’에서 해결해야 했던 전문 미용서비스도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가령, 일반 매니큐어보다 지속력이 좋은 젤 네일을 하려면, 가격이 일반 네일 시술보다 3배가량 비싸고 전용 기기와 리무버 등 필요한 재료도 많아 전문숍을 찾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최근엔 집에서 스스로 젤네일을 할 수 있는 ‘젤네일 키트’가 나왔기 때문이다.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2015년 2월 젤네일 세트 매출은 전년 대비 49% 증가했다. 이외에도 이영애 마사지기란 별칭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리퍼카렛’은 전문관리사의 손 마사지 각도를 구현해 얼굴에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피부·몸매 관리가 가능한 셀프 마사지기다.

제품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 편리하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도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바로 배달앱이다. 닐슨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배달통 등 배달앱 3사의 다운로드 숫자를 합하면 총 3800만건에 육박한다. 순방 문자수도 2015년 2월 기준으로 약 500만명이 넘는다. 배달앱이 아닌 일반 식품 브랜드에서도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도미노피자에서는 ‘마이키친 도미노’란 앱을 출시해 집 안에서 클릭 한 번만으로 나만의 피자를 만들어 주문할 수 있게 했다. 도우 위에 올라가는 토핑과 소스를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주문한 레시피까지도 엿볼 수 있는 홈주문 앱이다.

금융권에서는 집 안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서비스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안에 공인인증서나 화상통화 등을 이용한 ‘비대면(非對面) 본인 확인 금융 거래’를 기존 은행에 한해서 우선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에서 편리하게 즐기는 온라인 쇼핑 규모가 급증하고, 해외 직구의 성장세도 지속되면서 웬만한 금융 거래를 집에서 손쉽게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신개념 결제 시스템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금융과 기술이 만난 ‘핀테크(finance+technology)’ 결제 시스템도 공격적인 시장 진출을 예고하고 있다.
 웬만한 금융 거래도 집에서
사람들이 집 안의 전문가로 변신한 건 무엇보다도 집 안에서 물리적인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년층 인구가 늘었다. 젊은층이 직업에 대해 갖는 가치관이 다양해지는 것도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비정규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재택근무 등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메르스포비아’처럼 외부에서 전염될 가능성이 큰 질병에 대한 우려 탓에 외출을 자제하는 현상도 원인이 될 수 있다.

한편, 집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다양해지는 것도 중요한 배경이 된다. 사람들에게 집이 단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거실에 작은 책상을 두면 순식간에 사무실로 변한다. 굳이 외부에서 친구들과 모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간단한 모임과 미팅을 가질 수도 있다. 집의 역할이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중간 즈음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1~2인 가구의 경우에는 집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더 쉽다.

결국 소비자가 집 안의 전문가, 인스퍼트로 변화하는 것은 단지 비용 절감과 같은 의도 때문만은 아니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소비자가 기업에게 바라는 것이 비용 절감인지, 시간과 노력의 절감인지, 비용과 시간에 상관없이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감의 극대화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를 제품의 구매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콘텐트를 개발하는 기술자 혹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로 보고 함께 발전해나갈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가진 전문성과 노하우를 집 안의 전문가인 소비자에게 이전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민할 때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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