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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금융을 바꾸는 핀테크

인도 금융을 바꾸는 핀테크

전통적으로 은행 예금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인도 사람들이 예금 이외의 투자수단으로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인도 청년 쇼에브 셰이크는 2018년 러시아에서 열리는 FIFA 월드컵 관람 여행 계획을 짜기에 여념 없다. 그는 스크립박스를 통해 돈을 모은다. 일반인의 뮤추얼 펀드 투자를 돕는 신생 벤처다. 셰이크가 지금까지 하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이용한다. 지난 수년 동안 그는 대다수 인도 중산층과 마찬가지로 예금계좌에 돈을 모았다. 그러나 두어 번 큰일을 치르면서 돈이 많이 줄었다. 2012년 브라질 월드컵을 보고 난 뒤 모아 놓은 돈이 거의 바닥났다. 셰이크는 “이번 여행으로 빈털터리가 되면 안된다”며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겠다(분산 투자를 하겠다)”고 말했다.

축구광 셰이크의 월드컵 여행 포부는 중학교 2학년 때인 1999년에 시작됐다.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영국 구단 최초로 유럽 축구 팬들이 말하는 이른바 ‘트레블(treble)’을 달성했다. 트레블은 프리미어 리그, FA컵(아마추어 구단까지 포함한 축구협회 컵),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럽 대륙 클럽 대항전) 3관왕을 가리킨다. 맨유는 그 역사적인 경기의 인저리 타임(injury time, 정규시간 이후의 추가 시간) 마지막 3분 동안 2골을 넣어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2대 1로 물리치고 UEFA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멀리 인도에서 그 경기를 지켜보던 어린 셰이크는 축구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월드컵 여행은 연봉의 절반 정도가 들기 때문에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스크립박스를 이용한 셰이크의 투자는 인도 도시 지역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하면서도 초기 단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최근까지 상류계급을 포함한 인도 부자들은 뮤추얼 펀드에 투자하지 않고 은행 예금으로 돈을 굴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용에 기반한 지출에 눈뜨기 시작했을(젊은층이 변화를 주도한다)뿐만 아니라 은행예금 이외의 투자수단으로도 눈을 돌린다. 한 추산에 따르면 인도의 인터넷 이용자가 올 연말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이 주도하는 인도의 인터넷 혁명으로 누구든 구글을 검색하면 금융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뱅크 바자 같은 신생 벤처의 등장으로 개인융자나 보험상품을 비교 구입하기가 쉬워졌다. 아마존닷컴이 투자한 인도의 벤처기업 중 하나다.

인도의 자본시장 규제당국인 ‘인도 증권거래위원회’도 개혁에 나섰다. 예를 들면 전자상거래 업체의 인도 내 뮤추얼 펀드 판매를 허용해 일반인의 주식 투자를 장려하는 식이다. 미국에선 뮤추얼 펀드가 주로 장기투자이며 은퇴계획에 초점을 맞춘다. 그와 달리 인도의 뮤추얼 펀드는 휴가여행이나 결혼 같은 단기 투자를 꾀하는 개인 대상으로 설계됐다. 이 같은 인도 금융시장 규제 완화가 “많은 핀테크(finance와 technology의 융합) 기회”를 촉발할 수 있다고 바스카르 마줌다르가 말했다. 벤처 자본 업체 ‘유니콘 인디아 벤처스’의 파트너인 그가 최근 블룸버그 TV 인디아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도의 핀테크는 결제분야를 제외하고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다.” 그의 회사는 최근 인도 신생 벤처 투자 자본으로 2500만 달러 정도를 조성했다.

정보기술에 밝고 교육 받은 신세대 인도인 그룹이 이 같은 미개척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유형의 자산관리를 모색한다. 셰이크가 그 표본이다. 그는 고향인 인도 서부 도시 푸네의 유명 대학에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PR 분야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인도에서 기반을 다지던 방갈로르 소재 다국적 기업에 취업했다. 하지만 방갈로르에서 싹트던 신생 벤처 산업에 매료돼 고소득 직장을 포기하고 친구 2명이 설립한 PR 대행사 아이디어스피어에 합류했다. 급여가 훨씬 적은 파트너 자리였다. 동료들이 대신하는 설명회를 통해 신생벤처 스크립박스를 알게 됐다. 셰이크는 그 회사를 이용해 자신의 저축을 불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와 같은 자금계획은 대다수 인도인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스크립박스의 창업자 산지브 싱갈은 앞으로는 달라지리라고 기대한다. 인구 12억5000만 명의 인도에서 은행계좌를 보유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업계 추산에 따르면 주식시장의 실제 증권 거래 계좌는 250만 개 정도에 불과하다. 뮤추얼 펀드 투자자는 그 2배 정도라고 싱갈 창업자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주식투자를 겸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매년 인도의 정기 예금에 쌓이는 금액은 주식투자자 총액의 몇 배에 달한다. 인도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수입이 생기면 투자보다는 3분의 1 정도를 은행에 예금한다.

인구 12억5000만 명의 인도에서 주식시장의 실제 증권 거래 계좌는 250만 개 정도에 불과하다. 인도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수입이 생기면 투자하기보다는 그냥 은행에 예금한다.
“연간 정기예금 총액이 자본시장의 누적투자 금액보다 많다. 하지만 정기예금 금리가 물가상승을 따라잡지 못해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싱갈 창업자가 말했다. 셰이크는 만일 스크립박스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돈을 저축할 때 인플레를 감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갈로르에서 자금계획 업체 피크 알파를 공동창업해 운영하는 프리야 순데르도 같은 의견이다. 인플레로 인해 정기예금의 리스크가 뮤추얼 펀드 투자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단순히 은행 예금으로는 인플레를 따라잡지 못한다”며 “리스크를 피하려다가 오히려 훨씬 더 큰 리스크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선진국 시장에 인도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교훈이 있다고 순데르 공동창업자는 지적한다. 금리 측면에서 인도도 언젠가는 그들이 간 길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정기예금 이자율은 현재 약 8~8.5%다. “하지만 우리 부모 시대의 이자율은 13.5~14%였다.” 인도에선 4%에 약간 못 미치는 물가상승률과 은행 예금 이자에서 공제되는 세금을 반영할 때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자산이 줄어든다.

순데르 창업자는 “우리 부모나 조부모 시절이었다면 은행 이자율이 꽤 높아 주식시장에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엔 뮤추얼 펀드와 주식시장 투자가 “위험하다고 외면할 처지가 못 된다.”

인도의 신세대 금융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셰이크 같은 개인 소비자뿐이 아니다. 중소 업체들과 방갈로르의 신생 벤처들도 대형은행의 번거로운 각종 서류와 엄격한 조건을 건너뛰는 대안을 활용하고 있다.

대형은행을 이용할 때는 그 절차에 한 달 넘는 기간이 걸릴 수 있고 담보를 수반한다고 패션의류 판매업체 댄거스 RM을 운영하는 산제이 싱 구자르가 설명했다. 그의 고객 중에 인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플립카트의 패션 사업부 민트라가 있다. 민트라를 통해 캐피털 플로트를 소개받았다. 벤처 자본 회사 SAIF 파트너스가 후원하는 융자업체다. 중소 사업체 대상으로 간편하고 탄력적인 융자를 전문으로 한다.

구자르는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처리를 했다. 3일 만에 마무리됐다”고 전화로 말했다. “과거 기록을 검토해서" 송장에 근거해 200만~1500만 루피의 단기 운전자본을 융자해 준다고 그가 덧붙였다.

아지트 카림파나 CEO는 급성장하는 가구 렌트 사업체 펄렌코를 경영한다. 캐피털 플로트를 가리켜 “신생 벤처에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평했다. 2년 전 카림파나 CEO는 방갈로르에서 운영하는 신생 벤처를 위해 6~7개월 간의 자금이 필요했다. 오늘날 펄렌코의 광고는 방갈로르의 FM 라디오 채널 광고방송에서 들리지 않으면 이상할 만큼 익숙해졌다.

정보기술에 밝고 교육받은 인도의 신세대가 새로운 자산관리 방식에 눈 뜨고 있다(왼쪽). 인도 금융당국은 전자상거래 업체의 인도 내 뮤추얼 펀드 판매를 허용해 일반인의 주식 투자를 장려한다. 뭄바이 증권 거래소 건물.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한 신생 업체에 전통적인 은행 융자는 언감생심이었을 터. 같은 신생 벤처라면 카림파나 CEO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이다. 캐피털 플로트는 인도의 그런 ‘비은행계 금융기업’의 모든 요건을 맞추면서 그를 도왔다. 그때의 경험에 이끌려 지난해 다시 캐피털 플로트를 찾게 됐다고 그가 이메일에서 밝혔다.

소규모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캐피털 플로트는 인터넷 신생 벤처와 유사하다. 인도의 금융 당국이 그와 같은 변화에 편승하려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은행계좌를 개설하도록 장려할 뿐 아니라 금융 서비스 업종의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올해 초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은 ‘결제은행’ 사업면허를 처음 발급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사업면허 발급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사업자는 예금을 받고 결제를 지원할 수 있지만 대출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업면허를 받은 업체 중에는 중국 알리바바 그룹이 후원하는 원97 커뮤니케이션스도 있다. 인도에서 페이티엠(Paytm)으로 불리는 모바일 지갑을 운영하는 업체다.

전자상거래 업체의 뮤추얼 펀드 판매를 허용하는 은행법 완화와 함께 이 같은 변화는 사회의 분위기를 바꿔간다. 그런 환경에선 스크립박스 같은 기업이 사람들의 “투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고 싱갈 창업자는 말했다.

스크립박스에선 “투자를 시작하는 데 4~6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싱갈 창업자가 말했다. 더 시간이 걸리는 오프라인 절차에는 ‘고객파악(know-your-customer, 신원과 투자목적 등의 고객 정보 파악)’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면 적게는 1만 루피(약 150달러)부터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

현재로선 도시에 거주하는 중산계급만 이 같은 변화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주로 ‘피라미드 상부’에만 도움을 준다는 데 싱갈 창업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스크립박스는 월 투자 기준선을 5000루피(약 8만7000원)로 낮추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스크립박스 이용자 중 뮤추얼 펀드에 처음 투자하는 사람이 3분의 2에 가깝다고 싱갈 창업자가 말했다. 투자 목표에도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젠 단순히 은퇴자금 마련이 전부가 아니다. 1년 휴가 받아 여행 떠나기 또는 축구 월드컵 관람 여행 등을 목표로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셰이크는 지난해 8월 스크립박스에 투자를 시작했다. 이제껏 2018 월드컵 여행에 필요한 예산의 15% 선을 모았다고 추정한다. 시간 그리고 뮤추얼 펀드는 그의 편이다.

- HARICHANDAN ARAKALI IBTIMES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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