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해풍 머금은 강북의 명차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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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해풍 머금은 강북의 명차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해풍 머금은 강북의 명차

▎삼면이 바다와 접한 라오산의 차밭.

▎삼면이 바다와 접한 라오산의 차밭.

칭다오의 봄은 차(茶)향에 실려 온다. 산둥성 칭다오시 동쪽에 있는 라오산(崂山, 해발 1132m)은 동경 120도, 북위 36도에 위치한 중국차 재배지의 최북단이다. 라오산의 햇차를 만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집을 나섰다. 지난 5월 1일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1시간 만에 착륙한 곳은 칭다오류팅국제공항이다. 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7성급 리조트호텔 더 라루(THE LALU)에 여장을 풀자마자 칭다오 시민의 자존심 5·4광장을 찾았다.
 섬이 아닌 칭다오 지명에 도(島)자 쓰는 이유는

칭다오 시청청사 앞 샹강중로에 조성된 5·4광장은 시청광장, 중심광장, 해변광장으로 구성돼 있다. 해변광장에 설치된 붉은 횃불을 상징하는 조형물 ‘5월의 바람’은 칭다오의 상징이다. 우리의 3·1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5·4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베이징이다. 그런데 칭다오에 5·4광장이 있는 이유는 일본의 식민지 상태였던 칭다오를 포함한 산둥성의 주권 회복이 5·4운동의 핵심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 승전국으로서 중국이 요구한 산둥성의 주권 회복이 일본에 의해 무산됐다. 이 소식을 접한 베이징의 학생들은 1919년 5월 4일 톈안먼 앞에 모여 군벌정치와 제국주의가 중국을 지배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비폭력 시위를 벌였다.

칭다오를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 2개월 여에 걸쳐 계속된 5·4운동은 민족운동으로 발전해 구국투쟁으로 이어졌다. 후난성에서도 군벌타도를 위한 5·4운동이 전개됐다. 그 선봉에 마오쩌둥이 나서며 정치 지도자로서 중국 역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학생과 지식인이 앞장서고 상인과 노동자가 함께한 5·4운동은 역사의 주체로 민중이 처음 등장한 중국 현대사의 시작이다.

칭다오의 상징이 5·4광장이라면 칭다오를 전 세계에 알린 선두주자는 칭다오맥주다. 라오산 가는 길목에 있는 칭다오맥주박물관에 잠시 들렸다. 1903년 설립된 칭다오맥주는 중국 최초의 맥주공장이지만 중국인이 아닌 독일인이 세웠다. 칭다오는 청나라 때 인구 1만이 채 안 되는 자오아오라는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무역 발전과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한 청나라는 1871년부터 북양함대를 창설해 자오아오에 해군 기지를 설치했다.

칭다오가 섬이 아니면서도 지명에 섬을 뜻하는 도(島)자를 쓰게 된 사연에는 아픔이 있다. 1897년 독일 정부가 자국 선교사 피살사건을 문제 삼아 군대를 보내 자오아오 앞에 있는 섬 샤오칭다오를 점령했다. 해안과 불과 720m 떨어져 있는 샤오칭다오는 10여 분이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샤오칭다오를 교두보로 자오아오반도를 점령한 독일이 자오아오를 발음하기 쉬운 칭다오로 부르면서 옛 이름 자오아오는 사라졌다.

칭다오를 탐내던 일본은 기습 공격으로 1914년 11월 독일을 몰아내고 칭다오를 점령했다. 독일이 세운 맥주공장에 일본 맥주공법을 더해 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죽의 장막 시절에도 해외로 수출하던 칭다오 맥주는 100여 년이 지난 오늘도 일본의 아사히 맥주가 최대주주다. 칭다오 맥주와 스낵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도교의 성지로 유명한 라오산에 올랐다. 해상제일명산(海上第一名山)인 라오산은 중국 국무원에서 첫번째 승인한 국가중점풍경명승지다. 설악산보다 커다란 라오산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졌으며 삼면이 바다와 접해있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 특성 때문에 구름과 안개가 수시로 피어올라 햇빛을 가려 찻잎이 웃자라지 않도록 도와준다. 비옥한 토질과 암반에서 솟구쳐 미네랄이 풍부한 광천수는 라오산차를 강북제일명차로 만들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듬뿍 머금은 라오산차는 따뜻한 기온에서 웃자라기 쉬운 중국 남방지대의 차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도톰한 찻잎에서 우러나오는 푸른빛이 도는 녹색의 찻물과 오래 지속되는 순정한 차향은 차를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저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칭다오의 명품으로 떠오른 라오산차는 저절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2000여 년 전부터 라오산에서 수행하던 도교 도사들이 차를 직접 재배해 마셨다고 하지만 그 맥은 일찌감치 끊어졌다. 간혹 야생화 된 고차수가 발견되어 전설이 아닌 역사임을 뒷받침할 정도였다. 차를 재배했다는 기록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예상을 바탕으로 1950년대부터 강남의 차나무와 씨앗을 가져와 실패를 거듭해가며 반세기 동안 공을 들인 결과가 오늘의 라오산차다.

 중국의 6대 차 모두 생산
칭다오시는 산업으로서 차의 미래를 내다보고 1957년 저장성에서 차 묘목 5000주를 가져와 남쪽 산자락에 묘원을 만들어 첫 이식을 시도했지만 모두 동사하는 실패를 겪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1958년 항저우 우량종을 가져와 다시 시도해 65%가 생존해 라오산 자락 도교사원 타이칭궁 경내에 있는 숲속에 옮겨 심었다. 중국 전역의 차나무를 가져와 시험 재배를 하면서 개량종을 연구했다. 1964년 봄 라오산에서 자란 차나무에서 처음으로 차 씨앗을 받아 심어 다음 해 싹이 나와 순수 라오산차 활착에 성공했다. 냉해에 견디는 새로운 품종 개발과 지구 온난화 덕분에 1990년대 와서야 대량 재배에 성공하면서 라오산의 녹차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칭다오시는 2004년 5월 라오산녹차축제를 열어 라오산 샤오양춘·완리지앙을 비롯한 60여 종류의 라오산 고유 품종의 차를 선보였다. 남쪽에서 손님으로 모셔온 차가 이제는 칭다오의 특산 토산품으로서 중국 전역에 라오산차를 알리며 강북제일명차로 유명해졌다. 중국의 6대 차 종류를 모두 생산하는 라오산차는 인기에 비해 수량이 많지 않아 남방에서 재배된 가짜가 많이 유통된다. 대표적인 예가 택시기사가 안내하는 라오산에 있는 차밭과 차농 집에 손님을 데려가 차를 구매하게 하는 경우다. 차농이 직접 만들었다는 창고에 쌓여있는 차는 진짜 라오산차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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