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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피어오르는 혁명의 향기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혁명의 향기

쿠바의 최고급 시가 브랜드 ‘코이바’, 신분을 상징하는 사치품을 뛰어넘어 문화적 산물로
코이바 시가의 담뱃잎은 쿠바의 유명한 담배 산지인 부엘타 아바호 최고의 농장 다섯 군데에서 재배된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최근 국제적인 유명인사들의 방문이 잇따랐다. 지난 3월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국빈방문이 있었고, 영국 록그룹 롤링스톤즈의 무료 콘서트가 열렸다. 5월엔 킴 카다시안 가족이 이곳에서 휴가를 즐기면서 리얼리티 TV쇼 ‘4차원 가족 카다시안 따라잡기’를 촬영했다. 또 샤넬의 2016/2017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가 열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와 세계적인 패셔니스타들이 아바나를 찾았다.

나도 지난 5월 말 아바나를 방문해 ‘시가의 바티칸’으로 불리는 ‘엘 라기토’의 잔디밭에서 연설했다. 엘 라기토는 20세기 초에 지어진 우아한 건축물이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프티 트리아농을 연상시키며 대리석으로 된 거대한 웨딩케이크 같기도 하다. 이곳에는 세계 최고급 시가 브랜드 ‘코이바(Cohiba)’의 생산 공장이 있다.

코이바는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난 스위스 시계 회사 제니스의 행사에 초청돼 연설했다. 제니스는 코이바 50주년을 기념하는 시계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후 시가와 시계 관련 기사를 많이 쓴 내게 그 두 문화에 관한 연설을 부탁했다. 난 연설에서 “시가와 시계가 비슷한 시기(15세기 말~16세기 초)에 유럽에 소개됐으며 그 후 줄곧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코이바의 역사는 공식적으로는 50년에 불과하지만 그 뿌리는 훨씬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492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페르디난드 국왕과 이사벨라 여왕은 이탈리아 제노아 출신의 젊은 선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로 개발을 후원했다. 콜럼버스는 동인도제도로 향하는 서쪽 항로를 찾고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금과 향신료 등의 무역 협정을 맺으라는 명을 받았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동인도제도가 아니라 바하마제도의 섬에 도착했다. 벌거벗은 원주민이 사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금이나 향신료는 없었다. 콜럼버스는 항해일지에 ‘원주민이 과일과 나무로 만든 창, 특이한 향이 나는 말린 잎을 가져다 줬다’고 썼다.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원주민이 준 과일을 먹고 말린 잎은 바다에 버렸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더 가면 ‘콜바’(콜럼버스가 나중에 ‘쿠바’로 개명했다)라는 이름의 큰 섬이 나온다는 말에 다시 출항했다. 그 섬에도 금은 거의 없었지만 콜럼버스는 토착민 타이노족이 트럼펫 크기의 나뭇잎 뭉치에 불을 붙여 입에 물고 다니는 걸 봤다. 바하마제도에서 바다에 버린 잎과 같은 종류였다.

콜럼버스의 항해에 동행했던 스페인인 선원 로드리고 데 헤레스가 최초의 유럽인 흡연자로 전해진다. 그는 나뭇잎이 머스킷총 모양으로 말려 있었으며 향기로운 연기가 났다고 말했다. 타이노족은 이 연기 나는 나뭇잎 뭉치를 ‘타바코(tabacos)’, 담뱃잎은 코이바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470여 년이 지난 1960년대에 피델 카스트로(당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경호원은 ‘에두아르도 리베라’라는 쿠바인이 만든 시가를 그와 함께 피우기 시작했다. 카스트로는 그 시가를 매우 좋아해서 1966년(쿠바 혁명이 일어난 지 7년 후였다) 개인 생산 브랜드를 설립했다. 이 브랜드는 카스트로와 최고위 관리들에게만 시가를 공급했다.

브랜드 개발 50주년 기념 코이바 시가 50개비를 특별 제작한 저장상자에 담은 50개 한정판 제품 중 하나가 지난 3월 경매에서 약 4억1200만원에 팔렸다.
시가의 이름은 제국주의적인 이미지를 배제하기 위해 타이노족의 구어에서 따온 ‘코이바’로 붙여졌다. 2006년 브랜드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코이바 베이케’는 초고가 한정판이었다. 로고에 들어 있는 타이노족의 옆 얼굴 모습은 자랑스런 쿠바인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오리지널 코이바는 끝이 돼지 꼬리처럼 말려 있는 가늘고 긴 형태의 ‘란세로’ 시가였다. 카스트로의 경호원이 피우던 시가를 바탕으로 했다. 카스트로는 코이바 시가를 외국 정치인에게 외교적 선물로 주곤 했다.

그 후 반 세기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89세가 된 카스트로는 시가를 피우지 않지만 코이바는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 중 하나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1982년부터 일반인도 살 수 있게 됐다). 혁명적인 사회주의 이상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높은 신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고급 시가를 생산한다는 사실은 모순이다. 하지만 코이바를 단순히 신분을 상징하는 사치품으로만 봐선 안 된다. 코이바는 쿠바 최고의 시가일 뿐 아니라 문화적 산물이다.

코이바의 담뱃잎은 쿠바의 유명한 담배 산지인 부엘타 아바호의 최고 농장 다섯 군데에서 재배된다. 다른 시가와 달리 코이바 시가에 들어가는 담뱃잎은 추가적인 발효과정을 거치며 숙성 기간도 더 길다. 그리고 쿠바 최고의 블렌딩과 롤링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브랜드 확장은 품질 저하와 고급스런 이미지를 해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쿠바는 여러모로 놀라움을 주는 나라다. 경기침체와 세계적인 담배 소비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코이바는 사업이 날로 번창한다.

코이바는 수십 가지 형태와 크기의 시가를 생산한다. ‘메디오 티엠포(medio tiempo)’의 재생산 등 혁신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메디오 티엠포는 희귀한 종류의 담뱃잎을 사용하는 시가로 쿠바 시가 산업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제품이다.

코이바는 또 올해 ‘메디오 시글로(medio siglo)’를 출시해 흡연 제한 추세에 대응했다. 태우는 시간을 약 30분으로 줄인 짧은 시가로 코이바의 에스프레소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코이바가 시간에 쫓기는 흡연자를 위한 시가를 만든다고 해서 고급스러움을 포기한 건 아니다. 오히려 1966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브랜드 설립 50주년 기념 코이바 시가 50개비를 특별 제작한 저장상자에 담은 50개 한정판 제품 중 하나가 지난 3월 경매에서 약 35만 달러(약 4억1200만원)에 팔렸다. 시가 한 개비의 가격이 7000달러를 웃돈다는 얘기다. 유감스럽게도 50주년 기념 코이바 시가는 피우지 않고 수집가의 소장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좋은 일인지 모른다. 쿠바에 큰 변화가 찾아온 이 시점에 그 시가는 ‘혁명이 제국주의자와 독재자가 군림하던 시절보다 더 뛰어난 시가를 생산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로 역사 속에 자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기로 공중에 산화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훌륭한 유산으로 남는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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