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웅담은 어혈 푸는 치료제 - 이코노미스트

Home > >

print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웅담은 어혈 푸는 치료제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웅담은 어혈 푸는 치료제

▎윤종흠·윤용희 선생이 1·4후퇴 때 월남하면서 가져온 경혈도(明堂圖)와 웅담. /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윤종흠·윤용희 선생이 1·4후퇴 때 월남하면서 가져온 경혈도(明堂圖)와 웅담. /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 짐을 싸거라.” 춘원당의 3대 한의사 윤기찬(尹基燦) 선생의 부인 양씨(梁氏) 할머니는 18세가 갓 넘은 손자 윤종흠(尹宗欽)에게 평양으로 떠날 것을 종용합니다. 끊어진 가업의 맥을 잇고자 손자를 평양에 있는 한의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1847년 윤상신 선생이 한의원을 창업한 이래 2대, 3대까지 별 탈 없이 유지된 춘원당이 4대째인 윤단덕 선생 때에 이르러 위기에 처합니다. 1915년 평안도 지역에 창궐하던 콜레라에 걸려 윤단덕 선생이 53세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3대 윤기찬 선생이 별세한 지 3년 만이고, 윤종흠 선생이 5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약 70년을 이어온 춘원당이 맞은 첫 번째 위기였습니다. 한의업의 맥이 끊기게 된 것입니다.
 끊어질 뻔했던 한의업 맥 이어
윤기찬 선생의 아내인 양씨는 평범한 촌부가 아니었습니다.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신념과 결단력을 가진 여장부였습니다. 할머니 양씨는 손자가 제대로 한의학을 전수 받아야 한다는 데에 가장 큰 목표를 두었습니다. 집안의 스승이 있지 않으니 집 밖의 스승을 찾아야 했습니다. 양씨가 수소문해서 찾은 스승은 당시 평양에서 명의로 이름을 떨치던 김춘성(金椿性) 선생이었습니다. 윤종흠 선생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공부했던 한의서를 소중히 챙겨 들고 김춘성 선생의 문하로 들어갔습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한의 공부를 시작한 지 어언 10년. 윤종흠 선생은 1938년에 일본이 시행한 의생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리고 평양시 창전리에 ‘춘원당’이라는 간판을 다시 걸고 5대째인 한의원을 열었습니다. 4대 윤단덕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박천의 ‘춘원당’이 문을 닫은지 23년이 지난 때입니다.

평양의 춘원당은 금세 자리를 잡았습니다. 명의로 소문난 김춘성 선생의 처방법을 제대로 배웠을 뿐만 아니라 가전의 비방과 유주침법을 써서 병을 잘 고쳤으니 이것이 입소문을 탄 때문입니다. 해방이 되고 북한에 정부가 수립된 이후 윤종흠 선생은 북한 부수상의 가족 주치의를 맡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명의로 자리 잡았습니다.

6대 윤용희(尹容熙) 선생 역시 한의학의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갔습니다. 선조들과 달리 근대교육을 받고 평양의전에 입학합니다. 그는 북한의 정치이념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의전 2학년 재학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4후퇴 때 아버지인 윤종흠 선생과 함께 잠시 몸을 피할 요량으로 월남합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그렇듯 한두 달만 있으면 집에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가족들과 헤어진 것입니다.

부자가 월남하면서 봇짐에 챙긴 짐은 세 가지였습니다. 선대부터 내려온 한의서 몇 권과 경혈도(明堂圖), 웅담 2개, 금 한 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월남하는 중에 금덩어리는 짐을 수색하던 군인에게 빼앗기고 한의서와 웅담 2개만 부자와 함께 남쪽 땅을 밟았습니다. 이 물건들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춘원당한방박물관에 보관돼 내려오고 있습니다.

윤종흠 선생이 많은 물건 중 경혈도와 웅담을 챙긴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춘원당의 자오유주 침법을 시술하려면 제대로 된 혈 자리를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썼던 경혈도가 꼭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춘원당에서 전해 내려오는 경혈도에는 명당도(明堂圖)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경혈이란 질병에 대한 오장육부의 반응이 피부에 나타나고 에너지가 모이는 반응점인데, 이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 경혈도입니다. 침구학의 경혈(침자리)이나 풍수에서 보는 묘혈(묏자리) 둘 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혈(穴) 자리이기 때문에 경혈도를 다른 말로 명당도라고도 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피난 온 1951년경이나 지금이나 한방에서 최고로 치는 약재 중 하나는 웅담입니다. 웅담은 곰의 쓸개를 말린 것인데, 1g만 써도 어혈을 풀거나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탁월한 약이기 때문에 봇짐에 넣어온 겁니다. 사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물건인 셈입니다.

그런데 웅담은 보약이 아닙니다. 열이 심하거나 경련이 있을 때, 교통사고나 타박으로 어혈이 심할 때에 쓰는 치료제입니다. 해독작용이 뛰어나기 때문에 간 기능이 떨어졌을 때나 담낭질환에도 씁니다. 체내의 각종 유해 성분과 독성 물질을 걸러내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해독의 목적으로도 많이 씁니다. 또한 각막이 혼탁해지거나 충혈이 심할 때 0.1g만 생리식염수에 타서 눈에 넣어주어도 호전될 정도로 소염 효과가 좋습니다.

웅담의 색깔은 어두운 황갈색이고 무척이나 맛이 쓰고 비린내도 약간 납니다. 일반적으로 한번에 0.5g씩 복용하는데 소주 반 잔 정도의 뜨거운 물에 3시간 정도 녹였다 복용합니다. 사고 등으로 인한 어혈 치료에는 소주에 녹여 마시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귀한 약재가 그렇듯이 웅담 또한 약효의 편차가 많습니다.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링거바늘을 꼽고 강제로 추출해낸 담즙에는 담낭의 염증으로 인한 세균과 고름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외국의 관광지에서 구입한 웅담은 거의 대부분이 저급한 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웅담은 CITES협약(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반드시 한의사에게 처방을 받고 복용해야 문제가 없습니다.
 멧돼지 쓸개도 웅담과 비슷한 효과
웅담을 복용하기 어려울 때에는 멧돼지 쓸개를 쓰는 것도 괜찮습니다. 중국에서 발간된 중약대사전에는 멧돼지 쓸개(山猪膽)도 웅담에 비해 약효는 떨어지지만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언급돼 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어혈 통증이 심하거나 열이 떨어지지 않을 때에 보조 요법으로 멧돼지 쓸개를 복용하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팥알 크기만큼 떼어내어 물과 함께 삼키면 됩니다. 특히 담력이 약하고 쓸개를 제거한 사람에게는 더욱 좋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