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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제2의 금 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이 제2의 금 될 수 있을까

지난 3월 초 출시 이후 처음으로 금값 추월…불안정한 세계 정세와 통화시장, 중국의 수요 증가가 주된 요인
중국 상하이에 설치된 비트코인 ATM. 중국 당국의 제동에도 중국인의 비트코인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암호통화 비트코인이 2009년 등장한 이래 언론은 이 디지털 가상화폐의 사망 선고를 100차례 이상 내렸다. 급기야 지난해 1월엔 비트코인의 주요 개발자 중 한 명인 마이크 헌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비트코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며 “비트코인의 가격은 단기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든 장기적으로는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비트코인 개발에 참여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비트코인을 매각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1비트코인의 가격은 약 350달러였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두고 보란 듯이 가치가 계속 상승했다. 지난 3월 초 비트코인 가격은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며 3월 3일 1293달러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1비트코인이 금 1온스(3월 3일 당일 1230달러)보다 더 비싸진 것이다.

이처럼 비트코인의 놀라운 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특히 중국에서 생겨난 강한 수요, 불안정한 통화시장, 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연속,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등이 대표적이었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게 작용했다. ETF는 인터넷 기업가 타일러와 캐머런 윙클보스 형제(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마크 저커버그가 도용해 페이스북을 만들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해졌다)가 개발한 펀드다. 그러나 지난 3월 1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ETF 출시를 불허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날 비트코인의 가치가 장중 1326달러까지 올랐다가 1022달러까지 밀렸다. 하지만 트레이더들이 중국 거래폭증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13일 다시 급등세를 보였다. SEC는 윙클보스 형제가 신청한 ‘윙클보스 비트코인 트러스트’의 불승인 이유로 “비트코인 거래의 관리감독이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중국의 비트코인 열기는 계속 뜨겁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해외로 불법 자금을 빼돌리는 것을 우려한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1월 중국 3대 비트코인 거래소인 훠비와 오케이코인, BTCC에 대한 조사를 전격 시작했으며 이들 거래소가 돈세탁과 외환 관련 법률을 준수하지 않으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런 제어 노력은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윙클보스 형제의 비트코인 ETF에 대한 의지도 크게 꺾이지 않았다. 타일러는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에 비트코인 ETF 출시를 “여전히 낙관한다”며 “SEC와 계속해서 공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TF 기대감으로 비트코인은 출시 이후 처음으로 금값을 추월하면서 ‘제2의 금’이자 ‘미래의 돈’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인기 있는 비트코인 지갑 ‘블록체인’의 공동창업자인 니콜라스 케리는 세계 통화시장의 붕괴도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에 일조한다고 본다. 영국 파운드화와 이집트 파운드화의 가치는 지난해 미국 달러화 대비 크게 떨어졌다. 나이지리아 나이라화, 아르헨티나 페소화,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의 가치도 폭락했다.

이런 통화 가치의 폭락에도 비트코인의 가격은 치솟았다. 케리 CEO는 “충격 받으면 더 강해진다는 ‘안티프래질리티(antifragility)’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요인이나 충격, 공격, 실책의 결과로 능력과 회복력이 강해지는 속성을 가리킨다. 비트코인은 실적 면에서도 주식시장을 크게 앞섰다. 맥도널드, 홈디포, 디즈니 같은 브랜드가 1.6% 이하의 성장을 기록한 반면 비트코인은 그 70배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

미국 대선과 영국 브렉시트를 둘러싼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으로 눈을 돌린 건 분명하지만 지난해 비트코인의 운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큰 것은 그보다 덜 알려진 사건이었다. 비트코인 세계에서 ‘반토막(halving)’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이 비트코인 채굴 방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7월 9일 비트코인 채굴의 바탕이 되는 코드가 변경됐다. 비트코인 채굴은 컴퓨터의 처리능력을 사용해 새로운 비트코인을 생성하는 과정이다. 코드가 변경되면서 비트코인 채굴의 보상이 사실상 반토막 났다. 그래서 그날은 일명 ‘비트코인 반감기(Bitcoin Halvening)’로 불렸다.

비트코인 거래 내역들을 모아 블록(거래 데이터 원장)을 만든 뒤 이를 다시 블록체인에 올리는 대신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고,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받는 이들을 채굴자(miner)라고 부른다. 이들이 받는 보상이 25비트코인에서 12.5비트코인으로 줄어든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2009년 처음 등장한 비트코인은 애초에 2100만 비트코인까지만 발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비트코인 수가 늘어날수록 기존 화폐 대비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비트코인이 너무 많이 발행되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막기 위해 초기 개발자들은 비트코인 반감기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당시에는 1개 블록을 생성할 때마다 채굴자들이 받는 수익은 50비트코인이었다. 그러나 비트코인 초기 개발자들은 채굴자들이 더 좋은 성능을 가진 컴퓨팅 자원을 활용할 경우 더 빨리, 더 많은 비트코인을 모을 수 있게 되면서 전체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반감기를 고안했다.

비트코인 반감기는 21만 개 블록이 생성될 때마다 채굴자들이 1개 블록을 생성할 때 받는 수익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말한다. 2012년 첫 반감기를 통해 채굴 수익은 50비트코인에서 25비트코인으로 줄었다. 이후 다시 21만 개 블록이 생성된 뒤에 1블록 당 12.5비트코인을 보상으로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64번의 반감기를 거치면 채굴자들이 얻는 보상은 거의 0에 가깝게 된다.

비트코인 반감기가 작동하면 채굴자들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먼저 이전 대비 새롭게 발행되는 비트코인 수가 25비트코인에서 12.5비트코인으로 줄어드는 만큼 비트코인 가격은 오르게 된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른 것이다. 비트코인을 달러화 등 다른 화폐로 환산했을 때 가격이 오르는 만큼 비트코인 채굴자들이 실제로 얻는 수익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비트코인 시세에는 비트코인 반감기라는 ‘이벤트’에 대한 기대 가치가 반영됐다. 비트코인 거래 플랫폼인 훼일클럽의 최고운영책임자(COO) 피터 지브코프스키는 예상되는 공급 감소로 인해 가격이 오른 것을 두고 “2016년 비트코인 세계에서 일어난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변동성 때문에 현재의 추세가 계속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케리 CEO는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기하급수 기술은 우리 사회에 믿을 수 없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런 기술이 우리에게 활력을 주기도 하고 타격을 주기도 하면서 세계를 바꿔놓는다. 비트코인이 매년 조용히 규모를 배로 늘이면서 예상을 뒤엎고 더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가 더 많은 사람이 채택하고 있다. 올해도 비트코인이 아주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 앤서니 커스버트슨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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