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암호화폐 규제 강화로 더욱 주목받는 블록체인] 모든 산업을 혁신할 인프라 기술

[암호화폐 규제 강화로 더욱 주목받는 블록체인] 모든 산업을 혁신할 인프라 기술

국내외 IT 대기업, 유통 업체 등에서 큰 관심...허가형 클라우드 블록체인망이 주류
# 1. 1894년 조선왕조 최대의 민중반란으로 기록된 동학농민 전쟁에서 빠지지 않았던 게 장부 소각이다. 동학농민군은 혁명 봉기 이후 각 지역의 관아를 습격해 가장 먼저 노비문서부터 태워버렸다. 조선왕조는 이미 공식적으로 노예제도를 폐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개인 간 노비 계약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학농민군은 노비 계약서와 거래 내역이 적힌 장부를 모두 태워버리면 이에 기대어온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1928년 중국 공산당의 토지혁명을 알린 것도 문서 소각이었다. 공산당은 하이펑 현에서만 지주들의 땅문서 4만장, 지대 거래 장부 5만권을 소각해 토지를 모두 몰수했다.

# 2. 미국에서 2015년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로봇]의 주인공은 언더그라운드 핵티비스트 그룹인 F소사시어티의 리더다. 그는 악의 축인 E코퍼레이션을 응징해 부패한 세상을 구하려고 한다. F소사시어티가 벌이는 일 중 가장 큰 것이 E코퍼레이션의 백업 서버가 있는 빌딩을 폭파하는 것이다. 이 빌딩을 폭파하면 많은 사람이 이 회사로부터 빌린 돈을 갚을 필요가 없게 된다. 서버에 보관된 거래 장부, 즉 원장이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혁명은 이처럼 계약 관계를 담은 문서인 장부를 소각하는 것으로 시작하곤 한다. 2017년 최고의 스타는 비트코인이었다. 한 해 동안 매매 가격이 20배 이상 뛰었던 암호화폐 비트코인과 이를 존재하게 하는 블록체인이라는 기반 기술을 쉽게 이해하려면 ‘원장’이라는 거래 장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경제체제 유지하는 거래 장부
블록체인은 단순하게 말해 원장 보관 방법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나카모토 사토시가 2008년 펴낸 9쪽짜리 논문 [비트코인: 개인 간 디지털 화폐 거래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서 블록체인의 개념이 나왔다. 원장을 디지털 세상에서 보존하기 위해서 금융회사나 정부 부처 등은 가장 강력한 보안 소프트웨어로 이를 보호하는 방법을 썼다. 해커가 침투하거나 이중지불이 되지 않도록 따로 백업 서버를 두고 외부망과 연결되지 않도록 철저히 감췄다.

비트코인이 제시하는 보안 방법의 핵심은 역발상이다. 온갖 기술을 동원해서 감추려고 할수록 오히려 보안상의 구멍이 더 늘어날 수 있다. 글로벌 공룡 기술기업이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커를 고용해 자사 망을 끊임없이 공격하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면 가장 강력한 보안 방법은 무엇일까? 장부 원본을 그대로 모두 공개하면 된다. 거래는 개인에게만 주어지는 디지털 서명과 공개된 원장을 결합해 체결한다. 문제는 이렇게 원본을 공개했을 때 누군가 나쁜 의도로 조작을 시도할 게 뻔하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의 창시자는 몇 개의 기술을 조합해 이런 조작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는 9년 동안의 비트코인 역사상 블록체인 자체가 해킹당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로 입증됐다.
 암호화폐 거래에 엄격한 규제 적용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객장 전광판. / 사진:전민규
하지만 이렇게 확실한 원장 보호 기술을 갖춘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각국 정부의 집중 규제 대상이 됐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말 암호화폐 거래소에 신규 계좌 개설을 금지하기로 하는 내용을 담은 규제책을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1월 20일쯤부터 암호화폐 거래소의 실명 확인 입출금 서비스가 시행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실명 확인 입출금 서비스는 거래소와 고객이 동일 은행의 계좌로만 입출금 거래를 하도록 제한했다. 만약 특정 거래소가 A은행 계좌만 갖고 있으면 고객도 A은행 계좌가 있어야 입출금이 가능하다. 이전부터 거래해온 고객이라도 실명 서비스가 도입된 후에는 거래소와 같은 은행 계좌가 없으면 추가로 입금할 수 없고 출금만 가능하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입금하는 방식도 규제한다. 지금은 거래소가 고객 이름으로 된 가상계좌를 열어주면 거기로 송금하면 됐지만 앞으로 가상계좌는 쓸 수 없게 된다. 고객이 암호화폐 거래소로 입금을 신청하면 은행은 고객의 이름과 계좌번호뿐 아니라 주민등록번호까지 확인해, 만 19세 미만인 미성년자,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의 투자를 차단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거래 실명제뿐 아니라 불건전 암호화폐 거래소 선별 작업도 본격화된다고 보도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스템을 전면 점검해 본인 확인과 미성년자·비거주자 거래 금지, 해킹 방지 등이 미흡한 곳과는 거래를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은행이 지급결제서비스를 중단하면 거래소는 입출금이 막혀 사실상 폐쇄된다.

중국도 여간 해선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지난 9년 동안 이미지 개선이 많이 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마약 자금이나 돈세탁에 쓰였던 비트코인의 과거가 문제시된다. 이와 달리 글로벌 대기업들과 여러 정부 기관들은 비트코인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블록체인이 암호화폐를 만들기 위해서 고안된 방법이자 일종의 하위 개념이기 때문에 암호화폐와 완벽하게 분리할 수는 없다. 이들은 그러나 블록체인의 개념을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이라며 애써 암호화폐와 떼어내려고 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좋은 점만 취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지만 원장의 혁신이라는 점에서 볼 땐 나쁜 점을 찾기가 더 힘들다.
 유통 업체 재고관리 등에도 쓰여
블록체인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의 글로벌 기술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IBM 등은 블록체인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다. 이들은 자사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해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어 팔고 있다. MS 애저(Azure)는 이더리움 블록체인망을 활용해 개발자들에게 블록체인 개발 환경을 제공한다. IBM은 리눅스 재단의 오픈소스 하이퍼레저 프로젝트에 4만 4000라인의 코드를 덧붙여 자사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인 블루믹스(Bluemix)에 개발자가 직접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생성·관리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미국 최대 유통 업체 월마트에선 재고관리에 블록체인을 적용했다. 망고와 같은 식품의 이력을 추적하는 시간을 1주일에서 2.2초로 줄였다. 중앙에서 한번에 처리하지 않고 각 매장별로 입력하고 이를 신뢰할 수 있게 하는 블록체인 기술 때문이다. 월마트는 IBM의 블록체인 제품을 쓰고 있다. 대만 벤처기업 아울팅은 블록체인을 농축산품 유통에 적용했다. 아울팅은 도축이 끝난 돼지고기에 QR코드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여 백신 접종 여부는 물론 출생일도 알 수 있게 했다. 하루 3000여 마리를 도축해 이를 블록체 인상에서 유통시킨다. 이 회사 CEO는 미국 매체 바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수익을 내지는 못하지만 미래에 기술을 더 잘 이용하기 위해서 블록체인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S·LG CNS도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삼성SDS는 자사 블록체인 서비스인 레저엑스를 선보이면서 보안 강화, 실시간 처리를 특징으로 소개했다. 삼성SDS는 지난해 8월 금융 외에도 해운물류에까지 블록체인을 적용했다. LG CNS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클라우드 시장을 노리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금융 블록체인 컨소시업인 R3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LG CNS 디지털금융신사업팀의 안필용 책임은 “블록체인 기술이 인터넷·유비쿼터스 기술처럼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이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해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블록체인은 모든 산업을 혁신할 인프라 기술”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에서처럼 블록체인의 기본 개념은 데이터베이스를 일괄적으로 한 곳에 저장해 놓을 필요가 없는 간편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를 클라우드 컴퓨팅의 한 제품군으로 밀고 있다. 과거에 기업들은 회사별로 서버를 구입해 원장과 같은 데이터를 회사 내에 저장해 놓았다. 서버를 둘 필요 없이 필요할 때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해 데이터를 내려 받기 시작한 게 10여년 전이다. 블록체인의 개념은 이조차 필요 없이 개인이 모두 거래장부, 즉 원장 원본을 분산해서 보관한다.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한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은 비트코인에서 시작한 블록체인의 혁신이라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오히려 탈중앙화와는 상반된 모양새다.

대기업들은 대부분 모두에게 공개됐다는 의미의 퍼블릭 블록체인과는 다른 허가형을 쓴다. 누구나 원장에 기록할 수 있고 이를 다른 이들이 승인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허가해 주는 사람만이 원장에 기록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이 허가형이다. 특정 조직 내에서만 돌아가는 블록체인을 허가형 블록체인이라고 보면 된다. 글로벌 대기업들의 블록체인 참여는 환영받고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 블록체인의 확장, 즉 신규 암호화폐에는 부정적인 시각의 저변에는 이런 큰 차이가 존재한다. 기업들은 화폐 발행, 익명성과 같은 민감한 이슈를 벗어나 실명을 기반으로 물류망이나 포인트 결제망 정도를 여전히 중앙화된 시스템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이들의 허가형 클라우드 블록체인망이 제도권에서 환영받을 수 있었다.

이와 달리 비트코인을 비롯한 1000여종의 암호화폐는 나카모토 사토시의 논문에 충실하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법정통화가 있고 국세청이 있는 나라라면 이에 대한 대비가 없는 암호화폐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혁신적이든 규제의 대상이다. 기업용 거래에 초점을 맞춘 몇 개 암호화폐 만이 제도권에서 환영을 받는다. 대표적인 게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2015년 7월 러시아 프로그래머 비탈릭 부데린이 만든 암호화폐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는 거래 기록 외에도 스마트계약서나 평판과 같은 다양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이더리움 내에서 다른 형태의 코인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도 있고, 기업용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있다.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주목받는 암호화폐 리플은 아예 은행 간 송금 시스템에 최적화했고, 발행도 개인이 아닌 리플 개발진이 책임지고 있다. 결제 속도를 높이고 확장성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역시 기업용으로 적합하다.

이렇게 용도가 엇갈리고 있는 블록체인이 미래를 바꿀 기술이 될 수 있을까? 거래의 신뢰를 보장하는 혁신적인 방식 때문에 미래를 바꿀 기술인 것은 확실하다. 암호화폐의 매매와 관련된 논란과 신규 암호화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데도 기업들이 앞다퉈 이를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입증해준다.

블록체인상에서 과거 거래 기록을 조작할 수 없는 원리를 [제4차 산업혁명시대 비트코인에 투자하라]에서는 기독교 성서와 조선왕조 계보에 빗대어 쉽게 설명한다. 성경 창세기 편에는 아담의 계보가 나온다. ‘아담은 셋을 낳았고, 셋은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았고…(중략)…므두셀라는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노아를 낳았다.’ 이처럼 아담의 계보에서 한 문장의 정보라도 조작되면 앞 문장의 아들과 다음 문장의 아버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조작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국사를 배우면서 ‘태정태세문단세~’로 외우고 있는 조선왕조 계보도 마찬가지다. 이를 블록체인 형식으로 바꾸면 1번 블록의 내용이 ‘태종 다음 왕은 정종’이고, 2번 블록이 ‘정종 다음 왕은 태조’, 3번 블록이 ‘태조 다음 왕은 세종’처럼 표현될 수 있다. 마지막 왕 이름이 다음 블록을 시작하는 왕 이름이 되기 때문에 중간 블록을 바꾼다면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참가자의 선의를 통한 합의가 블록체인 정수
이렇게 앞 블록과 뒷 블록이 연결되도록 해서 중간 부분만 조작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을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서명이 들어간 블록이 체인처럼 연결되려면 블록이 주기적으로 생성되어야 한다. 나카모토 사토시의 논문에선 이를 타임스탬프 서버라는 항목에서 설명한다. 생성된 시간이 찍힌 블록을 암호화해 이 내용을 다음 블록에 기록하고, 그 다음 블록은 이전 블록 내용을 암호화한 값을 다시 암호화 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블록이든 거기에 기재된 거래내역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암호화해 새 블록을 체인에 연결하는 과정을 작업증명이라고 한다. 특정한 작업을 했다는 증명을 거쳐 합의에 의해 연결된다.

중앙 컨트롤타워가 없는 개인 대 개인의 거래 네트워크인 블록체인에서 거래내역이 조작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가 디지털 서명만 했다고 형성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블록이 이전 거래내역을 다 담고 있는 원본임을 인증하는 것은 이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사람(편의상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노드라고 하는 블록 생성에 가담한 이들)들이다. 과반수 이상이 원본이라고 믿고 거래를 한다면 원본이고 그렇지 않다면 원본으로 채택되지 않는다. 이런 선의를 표현하는 방식이 복잡한 암호화를 검증하는 작업증명이라는 단계다. 51% 이상의 참여자가 이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원본으로 인정받아 체인에 연결이 된다. 여기서 51%는 단순히 머릿수가 아니라 블록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파워를 얼마나 제공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

6독일 Z세대 3명 중 1명 “유대인에 역사적 책임 동의 못한다”

7미국, 마이크론에 반도체 보조금 8.4조원…삼성전자와 규모 비슷

8이재명, 조국에 “정국상황 교감할 게 있어” 러브콜…오늘 비공개 만찬

9크라우드웍스, AI 언어 모델 사업 ‘본격화’…웍스원 개발

실시간 뉴스

1G20 일부 회원국 “억만장자 3000명에 부유세 걷어 불평등 해소하자”

2이재명-조국 “수시로 대화하자…공동법안·정책 추진”

3 미국 1분기 GDP 경제성장률 1.6%…예상치 하회

4연세대·고려대 의대 교수들, 5월 말까지 주 1회 휴진한다

5경찰, ‘이선균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천지검 압수수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