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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최대주주라도 경영 못하면 교체하는 게 자본시장 순기능”

[류영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 “최대주주라도 경영 못하면 교체하는 게 자본시장 순기능”

한진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자본시장에 큰 획…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는 지극히 시장적인 행위
류영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국내에서는 여전히 사외이사들이 대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 사진:김현동 기자
한국 기업 거버넌스(지배구조)가 변화의 기로에 선 가운데 주목받는 단체가 있다. 연기금과 사모펀드, 창업투자회사 등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금융기업 중심으로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다. 발기인으로는 강성부 KCGI 대표를 비롯해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박영옥 스마트인컴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등이 참여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의 초대 회장은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맡았다. 류 회장은 영국 애슈리지경영대학원(Ashridge Business School)에서 MBA를 취득했고 메리츠증권, SK증권, 동방페레그린증권, 현대증권 등을 거쳐 2006년부터 서스틴베스트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투자공사 운영위원회 위원,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기업 거버넌스 수준에 점수를 준다면.


“후하게 줘도 50점 이상은 어렵다. 제도적인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제도는 아무래도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상장사 경영진과 지배주주 등 핵심 의사결정자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아직도 비상장회사(private company)처럼 경영하고 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나.


“이사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 거버넌스의 3대 주체는 주주와 경영진, 그리고 이사회다. 주주들은 이사회를 통해서 경영진을 감독하고 경영진은 그에 맞춰 경영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사외이사들이 대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지배주주들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을 동일시한다.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에 20여년 전에도 IMF 사태가 발생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외이사 연임제한 등 변화가 많다. 일시적 인재 대란 우려도 있는데.


“어떤 제도도 도입 시기에는 혼란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제도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일반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고 감시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오너 경영자들이 일시적 문제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측면이 있다. 또 지금까지 국내 기업의 사외이사는 고위 공무원 퇴직자나 법조인, 교수 등에서만 선임하다 보니 인력풀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의무적으로 교체해야 하면 기업들도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사외이사를 찾게 될 것이다. 연임 제한 제도가 도입돼 이사회를 구성할 때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을 뽑고,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나아가 현재 지배주주라도 기업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사회에서 쫓겨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기업 대다수가 지배주주 본인이나 친인척이 경영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도 경영을 제대로 못하면 교체 하는 게 자본시장의 순기능이다.”



한진그룹에 공개토론회를 제안한 것도 시장의 순기능인가.


“그렇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자본시장에 한 획을 그을 중요한 사건이다. 과거 소버린이나 엘리엇 등이 분쟁을 일으킨 적이 있었지만, 국내 자본을 주축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기업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전략과 계획을 과연 누가 갖고 있는지 공개토론을 통해 제시하고 주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거대해진 국민연금은 최선보다는 차선 선택해


대한항공 노조는 조원태 회장을 지지하고 있는데.


“KCGI가 사모펀드다 보니까 과거 사모펀드들이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던 점이 부각됐을 수 있다. 또 최근 수년간 대한항공 경영 실적이 부진하다 보니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오해 때문에 공개토론이 필요하다. 조원태 회장이 토론으로 주주들의 신뢰를 얻고 주총에서 연임에 성공한다면 그것도 주식회사 제도 아래서 주주들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봐야한다.”



최근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표방했는데.


“국민연금은 이제 국내 시장에서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거대 투자자다. 운용 자산이 700조원이 넘는다. 여기서 국내 주식만 해도 130조원 정도라 자산운용사나 일반 투자자들처럼 주식을 거래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만 해도 국민연금 지분율이 10%로 35조원 쯤 된다. 이 주식을 한번에 시장에 내놓으면 제값 받고 팔기 어렵다. 즉 과도한 출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경영을 잘못하거나 배당을 낮추더라도 일반 투자자들처럼 팔고 나올 수가 없다. 해외 연기금들도 동일한 문제 때문에 주식을 팔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마찬가지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을 선택해서 가고 있다.”



어떤 점에서 차선인가.


“앞서 말한 것처럼 덩치 때문이라도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기금운용위원회 20명 가운데 5명은 당연직으로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차관급 인사가 앉아 있다. 나머지 14명은 노동조합 연합단체나 지역가입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추천한다. 세계 3대 연기금의 기금운용위원회에 기금운용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한심할 정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구조를 갖춰야 하고 투자 전문가를 영입해야 한다. 이미 노무현정부 시절부터 논의했지만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국회에서 법개정이 안 되다 보니 차선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도 도입하고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의결하고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구성할 수밖에 없다.”



연금사회주의나 관치 논란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큰 흐름에서 연금사회주의나 관치 논란은 본질을 호도하는 문제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면 지금까지 기업의 이익을 사유화한 국내 기업 지배주주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시장적인 행위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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