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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한가위’ 11인의 시선 | 한세희-관계] 비대면 세상 ‘IT 기술’이 불러온 양극화

[‘코로나19 시대 한가위’ 11인의 시선 | 한세희-관계] 비대면 세상 ‘IT 기술’이 불러온 양극화

스마트폰 스크린, 카메라 렌즈 너머의 관계는 우리에게 맞는 옷인가?
지난 8월, 부산 북구 대덕여고 1학년 교실에서 한 선생님이 온라인 영상수업을 하고 있다.
'비대면 차례 지내도 괜찮을까?’

추석이 가까워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 보았을 듯하다. 예전이라면 먼 귀향길 떠날 생각에 답답함의 토로였겠지만,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 문제다. 스마트폰으로 차례상을 비추고, 줌 화상회의에 동참한 각지의 친척들이 덕담 한마디씩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민족 대이동의 와중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더 번지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혹시 그 전파자가 나라면, 희생자가 우리 부모라면 더 문제다. 추석날 차례를 ‘비대면’으로 드리지 않으면 조상님 ‘대면’한다는 농담이 오간다.

국무총리가 나서서 한가위 고향 방문 자제를 요청하고, 재난문자로는 벌초 대행 서비스를 활용하라는 안내가 날아온다. 여러 지자체가 온라인 화상 성묘 서비스를 시작했다. 명절 고향 방문 풍습이 점차 없어지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위기를 맞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바이러스 퍼지자 약자가 위험해졌다
올해 초부터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일상의 삶에서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를 하나씩 바꾸어 놓았다. 일은 직장에 모여 한다는 생각은 재택근무 확산과 함께 희미해졌다. 수업은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눈을 마주치며 하는 것이라는 믿음도 지키기 힘들어졌다. 사람들과 어울려 밥 먹고 술 마시는 일, 카페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떠는 일도 어려워졌다.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수영을 하던 사람들은 ‘홈트’ 앱이나 인근 공원으로 흩어졌고, 교회는 예배를 위해 모이지 못하고 있다. 해외여행은 그냥 사라져 버렸다.

반년을 지나 추석을 앞둔 지금까지 힘을 떨치고 있는 코로나19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관계, 가족과 친지의 만남까지 영향을 미치려 한다. 막히는 고속도로가 답답해도, 며느리의 제사 노동이 힘들어도, 1년에 한번 보는 친척 어르신의 취업·결혼 오지랖에 스트레스 받아도 질기게 이어져 온 가족 간의 끈끈한 고리가 신종 바이러스의 위협에 흔들린다. 조상을 모시고 복을 빈다는 오랜 풍습에 기댄 가족 만남의 의례가 힘을 잃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성은 도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강요된 사회적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혀 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IT 기술이다. 끊어진 사람과 사이의 거리는 화상회의 서비스와 온라인 협업 도구, 동영상 강의가 메웠다. 소셜미디어·게임· 동영상 등 집에서도 혼자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인기와 주가가 동시에 폭발했다. 우리들이 장 보러 나가지 않고 식사하러 나가지 않는 만큼, 모바일 앱으로 주문한 물건과 음식을 전해주는 택배기사와 오토바이 배달기사들이 바빠졌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공간을 함께 하고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교감, 오가는 술잔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사회적 관계란 어떤 모습일까? 스마트폰 스크린과 카메라 렌즈 너머로 서로 대화하는 ‘랜선 사회성’ 또는 ‘와이파이 사회성’은 우리에게 맞는 옷인가? 우리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이 질문 앞에 마주했다. 불가능하다 생각한 일이 실제로는 가능했음을 깨닫고 놀라기도 하고, 긍정적이리라 믿었던 일이 의외의 부정적 결과를 가져와 실망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재택근무는 미래의 근무 형태로 늘 거론되어 왔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 유의미한 수준으로 적용된 적은 없었다.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자 많은 회사에서 꼭 사무실에서 상사의 감독을 받으며 일하지 않아도 생산성은 더 높아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누가 일을 제대로 하고, 누가 무임승차 했었는지 뚜렷이 보이게 된 경우도 있다.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도 고민이 필요하다. 대기업의 지식 노동자가 안전한 집에서 재택근무를 이어 가는 동안 택배와 음식배달 오토바이 기사, 대형 물류센터 직원은 감염의 위협을 안고 오늘도 출근한다.

교육은 어떤가? 온라인 교육은 학생 개인의 능력과 관심에 맞춰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맞춤 학습의 비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하게 된 온라인 교육은 가정 형편이나 학생 역량에 따라 교육 효과를 양극화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가정의 관심 속에서 세심한 지도를 받는 학생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동영상 강의를 2배속으로 틀어 놓고는 자기 공부에 열중한다. 반면 부모가 돌볼 여력이 없는 집안의 아이는 온라인 수업 출석 체크조차 하지 않아 선생님이 속을 태운다. 중간층 학생은 줄어들고, 학력은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양극화된다.

코로나19로 가정과 직장, 학교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관계에 대한 인식도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부모 직원과 미혼 직원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페이스북은 재택근무를 실시하면서 자녀를 챙겨야 하는 기혼 직원들이 휴가를 쓸 수 있게 했는데, 자녀가 없는 직원들은 일이 늘어난다며 불평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가정·직장·학교의 경계가 흐려지다
현대인의 삶에서 직장인인 나와 가족의 일원인 나는 분리되어 있다. 가정과 일터를 나눠 직장에선 업무를, 집에선 가사를 돌본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며 우리는 동시에 직장인이자 가족이 되어야 했다. 나에 대한 가족의 요구와 직장의 요구를 동시에 한 곳에서 어떻게 조화시킬지 아직 우리는 알지 못 한다.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와 어울리며 때로는 부딪히며 배우던 것들을 이제는 집에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녀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통에 그전에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곤 한다.

비대면 시대의 우리는 대면 시대의 사회성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고 무엇이 합당한 삶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가 머지 않아 다가오리라 예감하고 있던 미래 삶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가오리라 막연히 그리던 미래가 갑자기 현실이 된 것이다. 지금의 혼란은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닥친 상황이지만,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빠르건 늦건 다가올 변화였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대화하는 법은 꾸준히 진화해 왔다. 2020년의 우리는 멀리 떨어진 부모님과 수시로 연락하고 손자 사진을 전할 수 있는 메신저와 영상 통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일년에 두 번 명절 방문을 초고해상도 가상현실 만남으로 대체하는 선택은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우리와 당신, 사회 전체의 무의식적, 집합적 선택의 결과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이번 추석 고향을 찾을지 말지, 온라인 성묘를 드릴지 말지 하는 당신의 고민도 우리의 미래를 향한 선택의 일부가 될 것이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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