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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늑장 규제에서 암호화폐 피해자가 보인다

정계·업계 “투자자 보호에 뒷짐 진 정부가 가해자가 될 것”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들에게 9월까지 사업자 신고·등록을 재촉하고 있지만, 정작 거래소의 자격 요건엔 투자자 보호 역할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아 법망의 허술함을 드러내고 있다. 도리어 암호화폐 거래소 업체들이 업계 자정에 필요한 규제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를 담은 제도를 하루 빨리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그래야 업계도 자금세탁 방지, 투기행태 규제, 시세변동 관리, 실명투자 확대 등 사회문제를 해소하는데 일조하고, 부적격 업체들이 난립하는 상황도 타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P2P금융 업계를 제도권 안으로 포섭하고 있는 정부의 조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개인과 개인의 금전거래를 온라인 플랫폼으로 중개하는 형태인 p2p금융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개업체 등록을 추진하면서 업체들에게 역할과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1년 간의 계도기간과 함께 지난해 8월말부터 시행에 들어간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은 업체들에게 ▶자기자본 등 요건을 갖춰 금융위원회에 등록 ▶이용자보호를 위한 인력과 설비 구비 ▶신용정보 및 개인정보 보호 ▶대출한도 및 투자한도 규정 ▶법령 위반 등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등을 부과하고 있다.  
 

투자자 피해 양산한 정부의 P2P 규제 공백

 
하지만 온투법을 마련하고 시행을 결정하기까지 규제 공백기 때 업계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P2P 업체의 대출 연체율이 높아져 투자자 피해가 늘어나고, 대형 업체가 중징계를 받거나, P2P 업체들의 신규 등록 심사도 미뤄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019년 11월 동산담보 대출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P2P 업체인 팝펀딩을 방문해 금융혁신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팝펀딩은 약 반년 만에 폐업했다. 업체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 3명이 서류를 위조해 허위대출 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에게서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7월 이들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부동산 담보 대출로 업계 1위에 꼽혔던 P2P 업체 테라펀딩도 법정 최고금리를 위반해 올해 1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3∼6개월 영업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P2P 업체들은 온투법에 따라 오는 8월 26일까지 금융위원회에 등록하지 않으면 영업을 할 수 없다. 금융위가 금감원의 제재안(법 위반에 대한 영업정지 중징계)을 그대로 수용하면 테라펀딩은 앞으로 3년간 등록이 불가능해 사실상 폐업 선고를 받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12월에 3개 업체가, 올해 1월에 2개 업체가 신규 등록을 신청했으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신청 업체에 서류 보완을 요청하고, 각종 요건을 조회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업계를 중심으로 업권법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오전 서울에 위치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가상화폐 업계를 중심으로 업권법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오전 서울에 위치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 거래 업계가 “규제 마련 필요” 요구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업체 등록과 운영을 두고 P2P 업계와 같은 추진 난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으로 불리는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관련 제도 마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암호화폐는 투기성이 강한,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며 “9월까지 특정금융거래정보의보고및이용등에관한법률(특금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폐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1월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암호화폐 거래금지 법안 준비,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 폐쇄” 등을 언급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거래소 등록에 필요한 규정조차 미비한 상황이다. 거래소 등록요건에는 제대로 된 투자자 보호 장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먼저, 암호화폐 사업자가 등록할 때 자산 규모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암호화폐를 현금으로 인출할 때 지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거래소 업체가 일정 금액을 계좌에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이에 대한 내용도 없고 강제하지도 않는다. 은행권의 예금자보호법이나 보험권의 재보험과 같은 거래소·투자자 보호 관련 내용도 전무하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 거래소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업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업권법은 규정된 범위 안에서 영업이나 사업을 할 수 있게 법으로 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법률은 특금법이 유일하다. 이 법은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은행권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사업자에도 부과한다. 이 규정 외에는 암호화폐 관련 법령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호화폐 시장에 투자자와 투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들을 보호할 규정이 필요함에도 전혀 정해진 것이 없다. 법의 공백에 따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규 마련의 필요성에 대해 “현재 업계에서 자체적으로 윤리강령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규정을 준수하려는 업체와, 사기 다단계 등을 악용해 다른 호주머니를 차려는 업체 간에 구별점이 없는데다 투자자도 이들을 구별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실명계좌 여부로만 이들을 구별하기에는 부족하다. 사업자에게 부담이 되더라도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강제력을 갖춘 행동규범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과거에는 규제대상에 불과한 암호화폐에 업권법이 필요한지 의문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증권시장의 경우 시세 조종, 내부 중요 정보 이용 등 규정이 있다. 이런 법령이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특금법을 발의했단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내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는 특금법 외에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금법은 자금세탁방지를 목적으로 한 법이고,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일 뿐”이라며 “건전한 발전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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