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의 호적수(20)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국운을 뒤흔든 며느리와 시부의 정쟁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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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호적수(20)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국운을 뒤흔든 며느리와 시부의 정쟁

서로 협력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간신이 판을 치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한 시대의 영걸들이 반목하는 것이다. 서로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경쟁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면, 그들 자신에게만 손해가 아니다. 힘을 합쳤다면 이룩했을 수많은 업적은 차치하고서라도, 싸우느라 낸 상처가 공동체에 짙게 새겨진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난 만큼이나 더욱 깊고 아프게.

 
19세기 후반, 황혼에 접어든 조선에는 두 사람의 걸물이 등장했다.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등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범상치 않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뛰어난 정치력으로 정국을 휘어잡았고 열강의 인정을 받았던 인물, 바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과 명성황후(明成皇后, 1851~1895)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흥선대원군은 둘째 아들 명복이 익종(효명세자)의 양자가 되어 왕으로 즉위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했다. ‘대원군’은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했을 때 왕의 생부에게 내려주는 작위인데, 조선에서 나온 4명의 대원군 중 생전에 이 지위에 오른 것은 흥선대원군이 유일하다. 그런데 대원군이란 호칭은 왕의 생부를 예우하는 차원일 뿐, 그 자체에 제도적인 권력이 보장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이 섭정이 되어 국정을 관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렴청정이라는 합법적 권한을 가진 익종비 순원왕후(고종의 양어머니다. 흔히 조대비라고 불린다)가 자신의 권력을 양도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권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조선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왔다. 60년에 걸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종식시켰고,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부정부패를 엄단했다. 많은 폐단을 양산하며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던 서원을 47개소만 남겨놓고 모두 철폐하였으며, 군포(軍布)를 개혁하는 등 각종 경제제도․조세제도를 바로잡았다.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을 편찬하여 법질서를 확립하였고, 사치를 단속하고 의복을 간소화하여 사회 분위기를 일신한 것도 흥선대원군이다. 그는 쇠락해가는 왕조를 중흥시키기 위하여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 무리하게 경복궁 중건을 추진하여 백성의 원성을 들었고, 쇄국정치를 강화함으로써 근대화를 가로막는 실책을 범하긴 했지만, 그의 개혁정치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명성황후(추정) [중앙포토]

명성황후(추정) [중앙포토]

고종의 아내이자 정치적 동반자  

 
그런데 흥선대원군은 10년이 지나도록 섭정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공식적인 수렴청정 기간이 끝나고 고종이 성년이 된 뒤에도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들이 아직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이 엄중한 시국을 감당할 사람은 나뿐이다’라는 생각이었겠지만, 어쨌든 순리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스물두 살 청년이 된 ‘왕’이 계속 그의 그늘에 머물고 싶어 할 리도 만무했다. 결국 1873년 11월, 고종은 친정을 선포하고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강제로 실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고종의 비 명성황후다. 명성황후를 왕비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흥선대원군이었는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하는 등 친정 식구가 변변치 못하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외척 가문의 발호에 학을 뗐던 대원군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훗날 고종이 직접 지은 명성황후의 행록(行錄)을 보자. “내가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주었다. 특히 외국과 교섭하는 문제에서 수원(綏遠, 먼 나라를 끌어들여 가까운 나라를 견제함)하길 권하니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감복하였다. 황후가 일찍이 나에게 말한 것들이 지나고 보면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황후의 통달한 지식과 멀리 내다보는 안목, 앞날에 대한 헤아림은 고금에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훌륭한 공덕으로 나를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내가 정사를 돌볼 수가 있었다.”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지은 글이니 최대한 좋은 말들로 채워졌겠지만, 명성황후가 고종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상담자였으며 외교 정책에도 깊이 관여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민씨 일가의 전횡을 촉발하고 무속에 빠져 국고를 낭비하는 등 여러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명민한 판단력과 총명한 지혜로써 조선의 생존을 도모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일본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도 그녀가 일본의 조선 침탈을 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흥선대원군이 일찌감치 섭정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서로 싸우느라 조정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았더라면. 외세의 위협 앞에서는 힘을 합칠 줄 알았더라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조선의 마지막 자취가 훨씬 더 품위 있지 않았을까?
흥선대원군 [중앙포토]

흥선대원군 [중앙포토]

 

고종을 둘러싼 정권 찬탈 공방전  

 
한데 이렇게 능력이 있는 두 사람이 도대체 왜 정적이 되었을까? 흥선대원군이 무리한 치료 방법을 강요하여 명성황후가 낳은 원자를 죽게 만들었고, 원한을 품은 명성황후가 대원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근거가 충분치 않다. 성년이 된 임금을 아랑곳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국정을 처리하는 대원군에게 반발하여 임금과 중전이 힘을 합쳐 권력을 회수해온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대원군이 행사하는 권력은 본래 왕의 것이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강제로 물러나게 된 흥선대원군은 분노했다. 며느리의 농간으로 아들이 자신을 배반했다고 여긴 대원군은 원망의 화살을 명성황후에게 돌렸다. 명성황후 역시 대원군의 재기를 막고자 대원군 세력을 강하게 탄압했다. 이와 같은 갈등은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한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가 승하했다고 선포하고(장호원으로 피신한 명성황후의 복귀를 막기 위해서다), 명성황후는 청나라와 교섭하여 대원군을 납치, 청에 유폐시킴으로써 더욱 악화하였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반목을 일삼았는데 명성황후가 청에서 돌아온 대원군을 계속 압박하자, 대원군의 울분은 극도에 달했던 것 같다. 위안스카이와 공모하여 쿠데타를 도모하고, 동학농민군과 연계를 시도했으며,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과도 손을 잡았다. 이듬해에는 장손 이준용을 왕으로 옹립하려다 실패하기도 한다. 명성황후를 끌어내리고 다시 정권을 잡을 수만 있다면 누구와도 한 편이 될 수 있고, 무슨 짓인들 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이에 대해 명성황후는 고종을 통해 대원군의 집 앞에 순검을 배치하고 “높고 낮은 신하와 백성들이 칙명 외에는 감히 대원군을 만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왕의 생부이니 처벌하지는 못하지만 대놓고 가택 연금을 한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흥선대원군이 을미사변에 얽혀 들어 가는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 시해에 협조했다는 주장, 묵인했다는 주장, 일본에 이용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비극이 벌어진 뒤에야 끝나게 된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만약 흥선대원군이 일찌감치 섭정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복수심에 눈이 멀어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또한, 명성황후가 흥선대원군을 예우하고 존중했다면? 어떻게든 남편과 시아버지를 화합시키고자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서로 싸우느라 조정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았더라면. 외세의 위협 앞에서는 힘을 합칠 줄 알았더라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바꾸진 못하더라도 조선의 마지막 자취가 훨씬 더 품위 있지 않았을까?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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