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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도 손사래 친 내 제품, 서포터가 알아봐줬습니다”

와디즈 펀딩 성공 기업 아이소라이프·댓타임비
창의력 무장했지만 은행·VC 자금 유치 외면
제품 개발 스토리·서포터와 긴밀한 소통 주효

 
 
 
스타트업 CEO들이 성수동 공간와디즈에서 한국의 크라우드펀딩 문화를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신우열 아이소라이프 대표, 송혜연 댓타임비 대표, 전주현 와디즈 PD.[임익순 객원기자]

스타트업 CEO들이 성수동 공간와디즈에서 한국의 크라우드펀딩 문화를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신우열 아이소라이프 대표, 송혜연 댓타임비 대표, 전주현 와디즈 PD.[임익순 객원기자]

“명함 앞머리엔 ‘CEO’가 붙고, 어딜 가든 대표님 소리를 듣는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쏟아진 올해, 연말 결산보고서의 매출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제2의 ○○○이란 별명이 생긴다….”
 
많은 창업가가 꿈꾸는 대박 스타트업의 미래다. 물론 현실은 딴판이다. 대박은커녕 초기 스타트업이 외부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위기를 겪는 시기인 ‘데스밸리’와 마주하기 일쑤다. 이 계곡을 무사히 건너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기업이 계곡에 휩쓸리고 만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9.2%에 불과했다. 10곳 중 7곳은 5년을 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내 창업 생태계는 그만큼 척박하다. 정부가 스타트업을 우리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라고 치켜세우며 수조원의 정책자금도 풀어도, 국내 벤처투자 규모가 코로나19 확산을 뚫고 2년 연속 4조원을 웃돌아도 마찬가지다. 이들 투자업계가 불확실성 높은 초기 투자는 꺼리는 탓이다. 요새 뜬다는 업종이 아니면 시큰둥하기 마련이다.
 
5월 28일 성수동에서 데스밸리를 넘고 있는 두 명의 CEO를 만났다. 이들은 개성과 창의성을 무기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제조 스타트업인 아이소라이프의 신우열 대표의 경우, 십수년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집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체형 교정 운동 도구를 직접 설계했다. 제품 제조도 국내에서 진행한다.
 
아이소라이프는 지난해 미국 킥스타터·인디고고, 일본 마쿠아케, 대만 젝젝 등의 해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알찬 실적을 냈다. 해외 50여 개국에서 누적 펀딩 9억원을 달성하고, 해외 사용자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선했다. 올해 초엔 그 결과물을 국내 플랫폼 와디즈에 론칭했다.  
 
댓타임비는 문화 콘텐트 기업이다. 미술을 전공한 송혜연 대표는 한국화 도록을 제작하고 있다. 김홍도·장승업 등을 교과서로 배웠을 뿐, 정작 국민들이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안타까워 사업을 시작했다. 전쟁과 침략, 약탈 등으로 그림이 많이 훼손된 데다 중국과 일본 그림을 더 선호하는 동양화 시장의 문화도 문제였다. 그래서 송 대표가 훼손된 한국화를 디지털로 복원하고, 이를 작가별로 엮어 도록으로 출시하고 있다.  
 
두 창업가의 비즈니스엔 접점이 없지만, 두 개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국내 VC에게 투자를 거절당했다는 점, 두 번째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쏠쏠한 시드머니 유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두 CEO의 특별한 크라우드펀딩 경험담이 궁금해졌다. 공연·컬쳐 카테고리 분야의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 중인 와디즈의 전주현 PD가 인터뷰를 도왔다. 자세히 들어보자.  
 
왜 하필 크라우드펀딩을 택했나.
송혜연 댓타임비 대표(이하 송혜연 대표) : 처음부터 와디즈의 문을 두드린 건 아니었다. 원본이 손상된 한국화가 많다는 현실을 파악하고, 이를 비즈니스로 꾀해보겠다고 판단했을 때 여러 정부 창업 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화 라이선스를 얻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모두 ‘No’였다. VC는 미팅 잡기조차 쉽지 않더라. 한국화는 시장이 없다 보니 성장 규모를 가늠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신우열 아이소라이프 대표(이하 신우열 대표) : 정부 지원을 받은 적은 있지만, VC 면접에선 번번이 탈락했다. 내 제품이 돈이 안 될 거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결국 자금 회수다. 사업 평가엔 냉정할 수밖에 없는데.  
신우열 대표 : 우린 제조업이기 때문에 제품의 내공을 쌓는 과정이 중요한데, 대뜸 판매실적 얘기부터 하더라.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를 중시하는 이도 있었다. 한창 플랫폼 기업이 눈길을 끌던 시기였다. 운동기구를 만드는 우린 구식처럼 보였을 거다. 그러다 문득 대중에게 직접 평가를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수단으로 고른 게 크라우드펀딩이었다.
 

VC·은행 외면받고 크라우드펀딩으로 … 

 
결국 정부나 VC의 예상을 뒤엎었다. 와디즈에서 펀딩에 성공하면서다.
신우열 대표 : 놀라운 경험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갑을 기꺼이 열어준 점이 그랬다. 수백조원을 굴리는 공적 연기금처럼 넉넉한 게 아닐 텐데도, 우리 회사를 응원해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송혜연 대표 : 투자금 유치를 여러 차례 거절당하자 자책하게 되더라. “내가 헛된 꿈을 꾸는 건가. 나 혼자서만 한국화 문화를 보존하고 싶은 건가.” 그렇게 한국화 도록 제작을 포기하려 할 때쯤 와디즈의 전주현 PD를 만났는데, 반응이 남달랐다. 아주 재밌는 사업 같다더라.
 
전주현 와디즈 PD(이하 전주현 PD) : 와디즈 플랫폼에 참여하는 소비자는 저마다 관심 분야가 뚜렷하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 소비하는 ‘가치소비’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훼손된 한국화를 복원하는 사업이라면 충분히 니즈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처음부터 펀딩 대박을 예상했는가.
송혜연 대표 : 예상치 못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을 때였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처음엔 꿈만 같았다. 목표액 1900만원이 허무맹랑한 수치처럼 보였는데, 이를 뛰어넘는 429%를 달성했다.  
 
전주현 PD : 크라우드펀딩에선 전문 투자자가 아닌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만큼 비즈니스의 당위성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옅어지는 한국화 문화에 관심을 갖자는 송혜연 대표의 메시지는 설득력이 충분했다. 잘 될 거라는 판단은 있었지만, 이렇게 크게 흥행할 거라고 내다보진 못했다.  
 
신우열 대표 : 처음 플랫폼에 올렸을 땐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한 서포터(펀딩 참여자)가 공간 와디즈에 방문해 미리 체험 해본 수기를 올려줬다. 제품을 만든 나보다 더 생생하게 효과를 짚어냈는데, 이 글이 올라간 이후로 펀딩 금액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펀딩 이후 바뀐 점은 뭔가.
송혜연 대표 : 창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게 되겠냐’였다. 많이 위축됐는데, 펀딩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고 사업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됐다. 단순히 돈이 문제가 아니다. 펀딩에 참여한 서포터의 열렬한 응원과 피드백이 좋았다.
 
신우열 대표 : 아이소라이프 역시 서포터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무실에 직원이 많지 않다 보니 전화를 직접 받는 편인데, 불편한 점이나 개선됐으면 하는 요소를 많이 듣는다. 질책이 아니라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의 메시지라서 오히려 힘이 됐다.  
 
두 CEO 모두 서포터를 많이 언급한다. 플랫폼에서 그들의 역할이 중요한가.
송혜연 대표 : 댓타임비의 첫 번째 제품이 단원 김홍도의 도록이었다. 한 서포터가 “표지에서 한국적인 멋이 드러나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복원에 집중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요소였는데, 덕분에 표지를 수정할 수 있었다.  
 
신우열 대표 : 크라우드펀딩을 성공적으로 하고 싶다면, 서포터와 진중한 소통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 제품의 미래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이게 귀찮다면 그냥 쿠팡이나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몰 진열대에 제품을 등록하는 게 낫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에 셀러로 등록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많다.  
신우열 대표 : 따지고 보면 온라인 쇼핑몰에 제품을 등록하는 것 역시 크라우드펀딩인 셈이다. 얼굴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이들에게 제품을 사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 다만 그런 쇼핑몰은 우리 같은 스타트업 제품을 두고 ‘얼마나 싼가’를 두고 줄 세우기를 한다. 제품 제작 스토리와 효용을 설명할 기회는 많지 않다.  
 

펀딩 참여한 서포터 ‘팬슈머’로 활동  

 
국내에선 크라우드펀딩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가령 와디즈의 경우, 로고와 패키지만 바꾼 중국 OEM 제품 판매나 허위 정보 기재 논란에 시달렸는데.  
전주현 PD : CEO들이 서포터의 피드백을 받고 제품을 개선하는 것처럼, 와디즈 역시 플랫폼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기회를 받을 수 있게끔 보완해 나가고 있다.  
 
신우열 대표 : 외국의 여러 플랫폼에도 제품을 등록한 경험이 있는데, 그중 와디즈가 입점 기준이 가장 깐깐하더라. 그만큼 한국 소비자가 날카롭고 꼼꼼하다는 얘기다. 국내엔 스타트업이 크라우드펀딩을 참여하는 문화가 이제 막 시작됐다. 플랫폼 참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성장통 같은 거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더 커질 공산이 크다.
 
창업을 꿈꾸는 예비 CEO에게 크라우드펀딩을 추천한다면.
신우열 대표 : 당신의 비즈니스에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를 따져보라. 간절하게 대해야 할 대상이 VC인가, 은행 직원인가. 아니다. 대중이고 소비자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그들에게 직접 평가를 받아보자. 펀딩에 실패해도 좋다. 제품이 부족하면 날 선 비판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고쳐서 다시 도전하면 된다. 투자를 받고 실패하면 빚쟁이가 되지만, 크라우드펀딩은 잃을 게 없다.  
 
송혜연 대표 : 우리 같은 낯선 일을 하는 기업에 VC 투자나 은행 대출은 언감생심이다. 물론 시장에서 먹히는 기술인지를 눈에 보이는 지표로 가늠하겠다는 그들의 논리도 설득력은 있다. 다만 더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원하는 대중과 눈높이가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기업의 제품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초기자금 부족’이란 난관을 해결해 세상에 드러났으면 좋겠다.  
 
전주현 PD : 한 가야금 전공자가 크기가 작은 ‘포터블 가야금’을 만들려다가 포기했다. 주변 전공자가 ‘그런 게 팔리겠냐’ ‘진정한 가야금이 아니다’라며 핀잔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디즈에서 펀딩을 통해 대박이 났다. 부디 본인이 속한 산업군의 평가와 분위기만 믿고 ‘된다 안 된다’를 판단하지 말아 달라. 이 넓은 세상에서 당신의 제품을 응원할 팬이 꼭 있을 테니까.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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