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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예고 없이 갑자기 발표된 윈도 11의 의미 [김국현 IT 사회학]

성대한 발표회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된 윈도 11…윈도 OS의 달라진 위상 상징
리눅스·안드로이드 앱까지 포용한 윈도 11…윈도 전용 프로그램에 대한 무관심 보여줘

윈도 11 이미지. [사진 MS]
윈도 11이 갑작스레 발표되었다. 뜬금없이 흘러나온 풍문은 유출 이미지로 퍼져나갔고, 특별한 예고 없이 공식화되었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발표되던 윈도가 아니었다. 좋았던 시절의 윈도를 돌이켜 보면 발표 수년 전부터 그 애칭, 즉 코드네임이 공유되고 비전이 공표되었다. 천지개벽의 신기술이 나올 그날을 모두 함께 기다리곤 했다. 성대한 발표회, 덩달아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세계 곳곳의 전자 상가의 군중들은 뉴스 토픽감이었다. 예컨대 윈도 95의 코드네임은 ‘시카고’. ‘리즈 시절’이었다.
 
IT 업계 최대 관심사를 윈도가 차지하던 시절 이야기다. 하지만 일 처리를 윈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점점 웹에서 끝내게 되고, 여기에 모바일 시대까지 열리면서 대중의 관심은 오로지 구글과 애플의 독차지가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윈도에게서 새로움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었다.
 
당대 주류였던 윈도 XP와 윈도 7은 적당히 쓸만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대한민국처럼 일국의 모든 전산 업무가 이 버전에 최적화된 액티브X 기술에 의해 점철될 정도였다. 신제품이 나와 평온한 일상이 변할까 걱정할 지경이었다. 업그레이드 때마다 미래를 미루려 대책 마련에 부심했으니 신제품은 부정적 감정을 줬다. 윈도 8의 실패는 상징적이다.
 
대중의 관심은 달라진 스마트 세상, 그리고 표준화된 웹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새 시대의 두 축을 지탱하는 기술은 윈도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와 iOS는 물론 커져 나가던 클라우드까지 모두 윈도의 숙적이었던 유닉스(혹은 그 변종 리눅스)의 산물이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윈도 자체마저 액티브X처럼 밉상이 될 위기였다. 과거와의 손절이 시급한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의 이야기다.
 
터치 태블릿 지원, 새로운 프로그래밍 모델, 윈도 스토어 등 윈도 8이 주장하는 모던함을 윈도 XP와 윈도 7에 안주하는 대중은 본체만체했다. 새 윈도 버전이 나오면 사람들이 몰려 들리라 기대했던 때는 흘러가버렸다. PC 대신 구글과 애플의 스마트폰을, 아마존이 개막한 클라우드를 궁금해했다. 그러니 정작 윈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줄어들었다. 존재감이 옅어지며 여차 IBM 전산기처럼 과거의 레거시가 될 위기에 처해있었다.
 
등판 예정인 윈도 10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윈도 10은 과거에 방치된 윈도를 현대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소비자가 철 지난 제품에 안분지족 하며 머문다면 PC 시장 전체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윈도가 이끌던 시장은 일종의 디플레, 혹은 장기적 경기침체에 빠져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카드는 마치 양적완화처럼 뿌려 대는 것이었다. 윈도 7에서 10으로의 대대적인 무료 업그레이드 캠페인이 장기간에 걸쳐 펼쳐졌다. “이렇게 거의 거저 뿌리는 데도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시렵니까”라고 보채는 듯했다.
 
“굳이 지금 쓰지 말고 다음을 기다려 볼까”라는 디플레 심리를 원천 차단하려는 듯 ‘윈도 10 마지막 윈도설(說)’도 공공연히 유포되었다. 정말 윈도 10이 데뷔하던 2015년에는 MS 직원이 행사에서 버젓이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지막이라니 한 번 구매하기만 하면 영속적으로 유지보수를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제 윈도가 단품 판매를 주력으로 하지 않고 일종의 서비스 제품이 된다는 뉘앙스의 “서비스로서의 윈도(Windows as a service)”라는 개념만은 분명히 말해왔다.
 
“마지막이라고? 그럼 이번에 업그레이드하면 끝인가? 그렇다면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하게 되고, 윈도 10은 무난한 운영체제로 성공한다. PC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혁신을 받아줄 기반으로서 윈도 10은 쓸만했고, 특히 게임방 풍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PC의 단골 소프트웨어인 게임 등에 있어서는 윈도만 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PC는 화제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의 PC와 2015년에 만들어진 윈도 10은 지금도 손색없이 잘 구동된다. PC는 약간씩은 좋아지고 있었지만, 그 사이 모바일과 클라우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비하면 밋밋하기 짝이 없고, 화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점진적 개선보다 급진적 변혁이 뉴스가 된다.
 
리눅스와 맥이 각각 서버와 클라이언트에서 유행을 선도하게 되고, 또 무엇보다도 컴퓨터의 범주가 모바일 단말 때문에 흐려지면서 윈도의 존재감은 또다시 시들어간다. 아무리 반년에 한 번씩 윈도 10 개량판을 출시해도 결국 2015년식. 그 연식은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정말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리셋이 필요한 기능들도 있다. 새 윈도가 필요한 때가 찾아온 셈이다.
 
2015년 7월 공식 출시됐던 윈도 10 이미지. [사진 중앙포토]

윈도 11에게 맡긴 역할

윈도 11이 공식 발표되자 윈도 10이 마지막 윈도가 되기로 했던 것 아니었느냐고 의아해하고 있지만, 이미 출시 당시부터 윈도 10은 2025년 10월이라는 서비스 종료 기간을 설정해 놓고 공식 언급하기까지 했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윈도 10은 퍼져나가 윈도 생태계가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전진하도록 하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이제 이를 딛고 도약이 필요할 때. 어디로 점프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윈도는 컴퓨터라는 친근한 존재의 가장 보편적 운영체제. “이거 하나면 있으면 뭐든지 된다”라는 위치를 지켜내야만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역할을 맥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윈도도 돌릴 수 있고 최신 기종에서는 아이폰 앱도 그대로 돈다. 다행히 맥OS는 PC 전체로 확장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크롬OS마저 윈도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크롬북에서는 웹은 물론 이제 리눅스 앱도 안드로이드 앱도 태연히 구동된다. 다들 자기 하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윈도 프로그램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윈도의 의미란 무엇인지 답을 내야만 한다.
 
윈도 11은 윈도 서브시스템 포 리눅스(WSL), 그리고 윈도 서브시스템 포 안드로이드(WSA)라는 얼개를 통해 PC에서 리눅스 앱도 안드로이드 앱도 간편히 돌릴 수 있게 했다. 전례 없는 포용력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윈도 전용 프로그램의 미래에 다들 관심이 없어졌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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