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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시위 근본 원인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코로나19에 관광‧해외 송금 끊기면서 ‘휘청’

 
 
한 여성이 7월 12일 쿠바 정부 반대 시위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7월11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중심지에 있는 엘 카피톨리오(옛 쿠바 국회의사당) 주변에 인파가 몰렸다. 1929년 완공된 쿠바 국회의사당은 우아한 돔 지붕과 수많은 기둥이 이어진 주랑 현관으로 이뤄진 네오클래식 양식의 기품 있는 건물이다.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사당과 흡사하다. 1899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해 쿠바를 스페인에서 독립시킨 미국의 민주주의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건축물로 구현한 유서 깊은 장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리베르타드(Libertad·자유)”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쿠바에선 드문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쿠바 국회의사당은 혁명광장과 함께 쿠바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혁명광장의 내무부 청사 벽에는 강철 케이블로 만든 체 게바라의 이미지와 그가 했다는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국회의사당은 이처럼 관광객들이 쿠바의 역사와 혁명을 소비하는 두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것은 충격적이다. 

  

쿠바 리브레가 反공산당 시위 구호된 까닭  

소셜미디어에는 한 여성이 “우리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외치는 영상이 올라왔다. 트위터 등에는 ‘#비바쿠바리브레(자유 쿠바 만세)’와 ‘#SOS쿠바’라는 해시태그가 줄을 이었다. 쿠바 리브레는 스페인에 대항하던 시절부터 쿠바 독립과 해방을 상징한 구호다. 럼주와 콜라를 섞어 만든 쿠바 칵테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 살면서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럼과 라임, 박하로 만든 칵테일), 다이키리(럼과 라임, 설탕으로 만든 칵테일)와 함께 쿠바를 대표하는 칵테일이다. 그런 쿠바 리브레가 생활고를 호소하며 공산당 반대 시위를 벌이는 쿠바 주민의 구호가 된 것은 그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바나 서남쪽 26㎞에 있는 산 안토니오 데 로스 바뇨스에서도 수많은 시위대가 줄을 지어 리베르다드(자유)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됐다. 일부는 유튜브로 전파됐다.  
 
일부 지역에선 주민들이 쿠바 정부가 운영하는 고가품 상점을 약탈하기도 했다. 쿠바는 2011년 개혁 조치로 일부 잡화 상점이나 작은 식당은 개인이 운영할 수 있지만 값비싼 전자제품이나 주류 등을 파는 가게는 국영으로 운영된다.  
 
아바나 동쪽 150㎞에 있는 인구 13만의 도시 카르데나스에선 심지어 시위대가 공산당 간부와 경찰 차량을 뒤집고 환호하는 장면이 SNS에 올랐다.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카르데나스는 쿠바가 외국 자본(주로 스페인)을 유치해 개발한 해안 관광지인 바라데로에서 10㎞쯤 떨어진 곳이다.  
 
바라데로는 육지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온 긴 반도로 가운데에 주도로가 있고 그 양쪽, 남북으로 수많은 리조트와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미국 플로리다 주 키웨스트에서 160㎞쯤 떨어진 곳으로 과거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는 사람들이 배나 뗏목을 타고 출발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쿠바 관광산업의 핵심으로 외화를 버는 곳으로 변모했다.  
 
인구 32만명으로 쿠바에서 셋째로 큰 도시인 중부 카마궤이에서도 시위대가 공산당 간부의 차량을 뒤집었다. 카마궤이는 중심부가 식민지 시대의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가득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를 보러 관광객이 줄을 이었던 곳이다.  
 
카르데나스와 카마궤이는 쿠바의 관광산업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시위가 유난히 격렬하게 진행된 배경에는 경제적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로 쿠바의 주요 산업인 관광산업이 마비되면서 주민들의 생활이 팍팍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쿠바 경제 현황을 살펴보자. 인구 1135만명의 쿠바는 국내총생산(GDP)이 2018년 유엔 통계로 1050억 달러, 2019년 세계은행(WB) 통계로 1031억 달러다. 1인당 GDP는 2019년 유엔 통계로 9296달러, WB 통계로 9100달러에 이른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인 중남미에선 비교적 괜찮은 경제를 꾸리는 편이다.  
 
그런데 무역 실적과 내용을 보면 산업 구조상 문제가 보인다. 쿠바의 수출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 2017년 추정치로 26억3000만 달러다. 주요 수출품이 석유·니켈(쿠바는 주요 니켈 산지다)·의약품·설탕·담배(주로 시가)·수산물·감귤류·커피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베네수엘라(17.8%)·스페인(12.2%)·러시아(7.9%)·레바논(6.3%)·인도네시아(4,5%)·독일((4.3%) 순이다.  
 
수입은 110억6000만 달러로 석유·식품·기계장비·화학제품의 비율이 높다. 주요 수입국은 중국(22%)·스페인(14%)·러시아(5%)·브라질(5%)·멕시코(4.9%)·이탈리아(4.8%)·미국(4.5%) 등이다.  
 
한눈에 봐도 무역 적자가 상당하다. 내다 팔 상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쿠바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기형적인 플랜테이션(선진국이나 다국적기업의 자본 및 기술과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이 결합돼 상품작물을 대규모로 단일 경작하는 농업 방식)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해 데려온 노예(1886년 해방)를 동원, 플로리다에서 식량을 수입해 이들을 먹여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이를 원료로 설탕을 생산해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삼각 무역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가 산업과 관광업, 그리고 니켈을 중심으로 하는 광업이 추가되는 정도다.  
 
비스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현재 설탕의 국제가격은 파운드당 17센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제설탕협회(ISO)에 따르면 글로벌 설탕 생산은 인도·브라질·태국·중국·미국 등 대규모 농업 국가가 주도한다. 2019년 기준 쿠바의 설탕 수출은 브라질의 거의 30분의 1 수준이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아니더라도 쿠바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셈이다.  
 
쿠바는 무역적자와 경쟁력 부족을 관광산업과 해외 송금으로 보충해왔다. 지난 2017년 쿠바는 관광산업으로 25억 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미국 등으로 망명한 해외 동포(과거엔 배신자였지만 쿠바의 정책이 바뀌면서 동포로 간주한다)들이 친척들에게 송금하거나 쿠바 내 소규모 비즈니스에 투자한 30억 달러가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이 외화를 이용해 외국에서 석유를 사와 아이들에게 먹일 분유와 관광객들에게 팔 육류를 들여온다. 쿠바 내 축산업은 미미하다. 사료용 옥수수와 콩을 대규모로 들여와 가축을 키워야 하는데 거기에 투자할 외화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1959년 1월 1일 쿠바에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 경제사를 살펴보면 쿠바 경제가 왜 이런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쿠바 공산 정부는 식량 배급, 무상 교육, 무상 의료의 사회주의 정책을 펴왔다. 이러한 무상 체제는 소련의 원조를 바탕으로 작동했다. 자립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대신 사회주의 우호 가격이나 원조에 의존해왔다. 
 
일당 독재 국가인 쿠바의 최고 권력자 라울 카스트로 공산당 총서기(오른쪽)가 8차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4월 19일 후임 총서기가 된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쿠바 경제의 이유 있는 ‘몰락’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원조가 끊기면서 쿠바 무상 경제의 품질이 추락했다. 특히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 설탕 산업이 흔들리면서 경제 전반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소련의 농약, 비료, 농기계, 연료 원조가 끊기자 농업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급기야 식량난까지 덮쳤다.  
 
고기가 필요한 주민들이 동물원을 약탈하고, 길거리의 고양이까지 잡아먹는 일이 생겼을 정도다. 쿠바의 ‘특별한 시기’다. 이는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유사하다.  
 
이런 비극 속에서도 쿠바는 강력한 통제를 바탕으로 일당 독재의 공산체제는 유지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생존 방식은 현저히 달랐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거부했지만, 쿠바는 변신에 도전했다. 49년 동안 국가평의회장(대통령 격)을 맡던 피델 카스트로가 2008년 물러나면서 뒤를 이은 혁명 동지이자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는 체제 안에서의 개혁을 시도했다. 2011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경제사회개혁방안’을 의결하면서 신(新)경제체제를 시작했다.  
 
국가가 책임지던 국민 경제활동을 민간으로 과감하게 이양하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사실상 외화와 세수 부족, 실업자 증가로 더는 과거 무상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대신 소규모 자영업을 육성해 경제 활성화의 길을 찾기로 방향을 틀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권위 상, 체면 상 자신이 이런 개혁을 하지 못하고 동생이 하는 것은 방관했다.  
 
모든 것의 국영화를 포기하고 일부 자영업 육성을 위해 쿠바는 택시, 렌터카, 민박집, 민영 식당, 이발소, 청소업, 수리업, 건설 노동 등 관광업 진흥과 관련이 큰 181개 분야를 민영화했다. 무상급식 등 정부 부담 서비스의 제공을 일부 폐지하거나 축소했다.  
 
2011년 자동차와 주택 매매도 가능해지면서 관련 산업도 발전을 시작했다. 2013년 1월 쿠바인의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비공식 무역이 늘었다. 파나마 자유무역 지대에 가서 국내 자영업 운영을 위한 재료와 소모품을 사왔다. 변화와 수구, 정부 주도와 민영화의 갈림길에서 쿠바는 변화와 민영화를 택했다.  
 
그 결과 2008년 15만명에 불과하던 자영업자가 2015년 50만명을 넘어섰다. 자영업자의 60%는 과거 실업자였다. 친지 창업을 돕기 위한 해외거주 쿠바인들의 국내 송금도 매년 30억 달러 이상에 이르러 튼튼한 외화 자금원 구실을 했다.  
 
관광객도 늘어 매년 25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안겨줬다. 90년대부터 전략적으로 국영 호텔과 리조트를 확충한 것과 함께 민박집과 민영 식당 등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인프라를 확충한 덕분이다. 외국인을 배척하는 북한과 달리 쿠바는 외국인을 외화 수입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16년 400만명의 외국인이 쿠바를 찾은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1월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고 4차례에 걸쳐 경제 제재를 완화한 것도 쿠바의 이러한 경제 민영화 강화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현재도 유지하지만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제조업이 빈약하다 보니 무상교육으로 대학이나 고교를 졸업해 직장에 배정받아도 할 일이 없는 상황이 속출했다. 무상의료를 제공해도 출산율은 1.6%까지 떨어져 인구까지 줄었다.  
 
미화 기준 25~30달러 수준의 국가 급여를 받는 쿠바인 의사들이 4배가 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등 해외 근무에 대거 나서면서 국내 의료에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 젊은이 사이에선 해외 이주를 탈출구로 여기는 풍조도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쿠바 경제는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쿠바 경제를 지탱하던 관광과 해외 송금이 끊기면서 쿠바는 심각한 외화 부족 사태에 빠졌다. 자립 경제 기반이 부족하고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도입이 늦은 쿠바가 코로나19확산으로 인한 한계 국가의 대표적인 사례로 등장한 셈이다.  
 
여기에 쿠바의 새로운 권력자가 된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의 경제 악수가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디아스카넬은 2018년 4월 19일 라울 카스트로에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이 됐으며 2019년 10월 10일 대통령직이 43년 만에 부활하면서 제15대 대통령에 올랐다. 지난 4월 19일에는 라울 카스트로의 뒤를 이어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를 맡았다. 카스트로에 이어 국가의 새로운 1인자가 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0일 25년 넘게 적용해온 이중 화폐제를 올해 1월 1일부터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쿠바는 ‘특별한 시기’에 전통 페소화(CUP)의 가치가 추락하자 미국 달러화를 사실상 통화로 사용했다. 그러다 1994년 북한식으로 말하면 ‘외화와 바꾼 돈’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태환 페소(CUC)를 도입했다. 구어로 각각 쿱과 쿡으로 불리는 두 가지 화폐가 통용되는 이중 화폐제도다. 1쿡은 미화 1달러에 가치를 고정했다. 달러화를 현지에서 공식적으로 바꾸면 약간의 커미션을 떼고 쿡을 준다. 쿱은 외환과 교환되지 않는다.  
 
디아스카넬은 이중화폐제를 폐지하면서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이 조치는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페소화 가치의 하락 탓이다. 디아스카넬은 통제로 사회주의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어차피 코로나19로 외국 관광객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 경제는 의미가 없다고 봤던 것일까.  
 
이런 통화 정책 실패는 국민의 불만을 부르고 거대한 시위의 소용돌이로 쿠바를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쿠바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경제 체제의 모순이었던 것이다. 쿠바 공산당은 여전히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시위가 벌어지자 디아스카넬은 맞불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뒤에 있다”며 미국 탓을 하며 음모론을 앞세워 주민의 분노를 힘으로 누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인데, 이를 정치 구호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모양새다.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다. 진단을 못 하니 처방도 나오기 힘들다. 쿠바의 앞길이 어두운 이유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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