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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바이러스와 전쟁 시작…위기는 여전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인류와 바이러스 간 싸움의 상징이 된 도쿄
바이러스 유행 지속에 글로벌 분쟁·갈등 심화

 
 
도쿄 시부야 스카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2020 도쿄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연기됐던 ‘2020년 도쿄(東京)올림픽·패럴림픽’이 1년 연기 끝에 7월 23일 개막했다. 지난해 그리스에서 채화해 1년간 보관됐다가 올해 일본 47개 현을 돌았던 올림픽 성화가 도쿄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불을 밝혔다. 8월 8일까지 열전이 이어질 이번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악재, 일본의 아날로그 방역과 더딘 백신 접종, 준비 부족, 열기 저하 등 숱한 논란 끝에 개막했다는 점에서 어느 올림픽보다 관심을 끌고 있다.
 
이번 대회는 난민 대표팀을 포함해 전 세계 206개 국가·조직이 동참하고 1만1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33개 종목에서 339개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도핑에서 문제가 지적됐던 러시아는 국가 이름으로의 참가가 금지돼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이름으로 개별 선수가 출전한다. 북한은 지난 4월 6일 코로나19를 이유로 불참을 발표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오지 않으며, 도쿄2020올림픽에 불참하는 유일한 국가올림픽위원회(NOC)로 기록됐다. 올림픽이 통째로 연기돼 개최되는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125년 만에 처음이다. 도쿄 2020패럴림픽은 8월 24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열린다.
 
올림픽 1년 연기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코로나19의 충격은 올림픽 행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막식·폐막식의 네 행사는 ‘전진(MovingForward)’이라는 공통 주제를 담았다. 도쿄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TOCOG·이하 조직위)는 “우리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장애물인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 속에서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지금까지의 대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며 “스포츠가 가진 힘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개막식과 폐막식을 만들고자 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코로나19 범유행, 1년 연기 끝에 개막

7월 23일의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주제는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United byEmotion)’였다. 조직위는 “개막식을 통해 우리는 스포츠의 역할과 올림픽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모두 함께 해 온 노력에 대한 감사와 찬사를 전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직위는 그 배경으로 “전 세계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지난 1년을 살아왔고, 2020 도쿄올림픽은 전례 없는 범유행의 한가운데에서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무토 도시로 토쿄올림픽 사무총장이 올림픽 중도 취소 가능성을 언급한 가운데 21일 양궁 국가대표팀이 21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8월 8일 치러질 2020 도쿄올림픽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Worlds we share)’로 잡았다. 조직위는 “폐막식 주제는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그 세계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며 “우리는 폐막식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렇게 2020 도쿄올림픽은 인류가 바이러스와 벌이는 싸움을 상징하는 대회가 됐다. 대회 자체가 1년 연기된 것부터, 올림픽 선수단·관계자를 거품 안에 넣는 것처럼 외부와 접촉할 수 없게 분리한다는 ‘버블 방역’ 등 초유의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인류는 이런 상황에서도 올림픽을 결국 개최한 데서 자신감을 회복하고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하지 못한 방역과 골판지 침대 등 부족한 대회 준비 등으로 지적이 끊임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도쿄올림픽은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극복의 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이러스 말고도 올림픽을 위협하는 요인은 적지 않다. 국제 분쟁과 갈등이 그것이다. 올림픽 헌장에는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기 위해 스포츠를 통해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상일뿐 현실은 올림픽이 열린다고 분쟁과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분쟁 감시·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부기구(NGO)인 국제위기감시기구(ICR)의 로버트 맬리 전 회장은 ICR 웹사이트에서 기고한 글에서 세계 10대 분쟁·위기·긴장 지역을 제시했다. 아프가니스탄·예멘·에티오피아·부르키나파소·리비아·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한반도·카슈미르·베네수엘라·우크라이나 등이다. 이미 수시로 국제뉴스에 등장해온 지역들이다.  
 
미국외교협회(CFR)는 현재 글로벌 분쟁·갈등·위기 상황을 더욱 자세하게 소개했다. CRR은 전 세계 갈등 지역을 ‘위기 상황’ ‘중대 상황’ ‘제한적 상황’으로 세분했다. 국제적 분쟁이나 내전, 갈등의 고조, 위기나 불안의 지역 또는 글로벌 확대 등 다양한 상황을 고루 반영했다. 미국 국익에 주는 영향을 기준으로 분류하긴 했지만, 상황의 심각도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올림픽 시작됐지만, 글로벌 분쟁·갈등·위기는 심화

CFR은 위기 상황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남중국해 영토 분쟁, 동중국해 긴장, 북한 위기, 미국과 이란의 대치의 다섯 가지를 꼽았다. 글로벌 5대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남중국해와 동중국해가 중국과 관련이 있다. 남중국해 분쟁은 중국이 베트남·필리핀·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와 벌이는 섬과 바다의 영유권 다툼이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2016년 7월 중국이 이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인공섬을 건설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마이동풍이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앞세워 여기에 개입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이기도 하다. 이 바다는 한국과 일본에도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이기도 하다. 동중국해 분쟁은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尖閣列島·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와 관련한 갈등을 가리킨다. 2020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에서 멀지 않은 바다는 이처럼 긴장 상황이다.
 
올림픽 개최도시인 일본 도쿄의 확진자 수가 닷새째 1000명을 기록한 19일 일본 도쿄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자위대 대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CFR은 중대 상황으로는 12가지를 추렸다. 시리아 내전, 이라크와 레바논의 정치적 불안정, 이집트의 불안정, 터키와 쿠르드 무장조직의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 절반이 중동에 집중됐다. 지리적으로 중동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이슬람권인 파키스탄은 이슬람 무장조직의 활동과 인도와의 분쟁 등 2가지 문제를 동시에 안았다. 남미는 멕시코에서 벌어지는 범죄와의 전쟁, 베네수엘라의 불안정 등 2가지가 제시됐다. 유럽에선 러시아가 개입한 우크라이나 분쟁이, 아프리카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학생들을 납치하고 인신매매하며 주민들을 학살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보코하람의 폭력이 각각 꼽혔다.  
 
미국의 국익에 대한 영향을 제한적이지만 현지 주민의 고통은 상당한 분쟁·갈등도 10가지가 거론됐다. 중동에선 리비아 내전과 예멘 내전(국제전으로 비화)이 꼽혔다. 유럽에선 카프카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벌이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이 들어갔다. 아시아에선 미얀마의 로힝야 위기가 제시됐다. 아프리카에선 말리 지역의 불안정,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민주콩고공화국(DRC)의 폭력, 소말리아 극단주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알샤바브의 발호, 에티오피아 분쟁, 남수단 내전이 6가지가 포함됐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분쟁이 벌어지거나 무장단체 조직원이 주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일시 총성이 멎었어도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팽배한 곳도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상황에도 세계 곳곳에 위기가 상존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살상이 벌어지지 모르는 곳이 한둘이 아니다. 분쟁이나 갈등과 관련한 이런 지적들은 올림픽이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올림픽 헌장은 인류의 이상을 보여주는 문구일 뿐이며, 현실에선 여전히 갈등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고대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 사실을 되새김질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고대 올림픽은 형식적으로는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행사였지만 현실적으로는 무력과 국력이 좌우하는 근육질 행사였다.
 
당연히 이상은 훌륭했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돼 기원후 394년까지 1000년 이상 계속됐던 고대 올림픽의 주관도시인 엘리스는 개막 전 그리스의 각 도시 국가에 3명의 사자를 보냈다. 올림픽 기간 중 전쟁을 중지하고 재판은 연기하며 사형은 미루도록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부정을 타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고대 올림픽은 스포츠 행사라기보다 신을 모시는 종교 제전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도시국가 엘리스의 성소인 올림피아에 모여 경기를 치렀다. 엘리스에는 높이 12m의 위압적인 제우스신 석상이 올림픽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국내와 국제 정치 대결장이었던 올림픽

하지만 고대 그리스 세계도 현실은 종교나 도덕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고대 군사 강국인 스파르타가 전쟁 금지 관례를 어겨 벌금과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지만, 벌금을 내지 않고 넘어갔다. 창과 방패를 들고 가공할 전투력을 지닌 스파르타의 경보병을 두려워한 다른 도시 국가들은 누구도 이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무장한 스파르타 전사들을 야단치고 벌금을 받아내기란 어지간한 배짱으론 어려웠을 것이다. 이처럼 이상보다 힘이 좌우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국제정치는 인간 본성의 하나인 지배욕을 반영한다는 주장도 있다.  
 
고대올림픽 기간 중 전쟁은 중지해도 정쟁을 자제했다는 기록이 없다. 올림픽은 국내와 국제 정치의 대결장이 됐다.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관련한 정치인의 위상과 인기가 단박에 오르내리는 것은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맞붙었다가 진 도시는 이긴 도시에 한참 동안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패배한 도시는 우울증을 겪어야 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대올림픽 성화 주자들의 봉송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의 항아리 장식 그림. 기록은 '봉송 주자들이 릴레이 선수처럼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를 순회했다'고 전한다. [중앙포토]
지금 올림픽에서도 문제가 되는 아마추어리즘이 고대 올림픽에서도 역시 문제가 됐다. 근대 올림픽을 제안한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올림픽이 아마추어리즘의 제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는 두둑한 상금과 격려금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근대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우승자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연애와 결혼은 물론 경제활동과 심지어 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처음엔 엄격한 아마추어리즘을 내걸었던 근대 올림픽이 현실을 고려해 축구나 야구, 골프 등 여러 종목에서 프로 선수의 참가를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마추어 선수라고 돈과 거리가 먼 가난한 스포츠 수도승은 아니다.  
 
그래도 종교행사였으니 고대 올림픽에선 경기를 정정당당하게 했을 것으로 여긴다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올림포스에 반칙 선수들의 벌금을 모아두는 자네스라는 상자를 만들어 둔 것을 보면 반칙이 수시로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심판이나 선수를 매수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도 수시로 벌어졌다.
 
근대 올림픽에선 국적을 바꿔 뛰는 경우가 왕왕 있어 세부 규정까지 마련됐다. 하지만 이런 일은 사실 고대 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소타데스라는 장거리 경주 선수는 출신 도시인 크레타 소속으로 출전해 우승했으나 다음 경기에선 다른 도시국가 에페스로 국적을 바꿔 출전했다. 두둑한 사례를 받고 움직였을 것이다. 스포츠와 돈의 관계는 역사적인 뿌리가 깊다. 고대 올림픽도 근대 올림픽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다. 올림픽이 더욱 성숙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고대 올림픽이 사라진 것은 이러한 부정이나 돈 때문이 아니다. 고대 올림픽은 종교로 시작해 종교로 막을 내렸다. 그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의 테오도시우스 1세(347~395년, 재위 379~395년)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공식 국교로 삼은 게 계기다. 기독교가 국교가 되니 이교도 행사인 그리스의 올림픽은 폐지됐다. 이집트에선 신전이 폐쇄되고 사제들이 쫓겨나면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맥이 끊어지면서 하나의 문화가 단절됐다. 이런 고대 이집트의 비극과 비교하면 고대 그리스 세계의 고대 올림픽 폐지는 그나마 평화로운 편이었다.  
도쿄올림픽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이런 형편에도 IOC가 중계료 수입 때문에 대회를 강행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개인의 안전과 명예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로 선수들의 참가와 불참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도전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지 세계가 도쿄를 주시하고 있다. 7월 23일 개막해 8월 8일까지 17일동안 열전이 벌어질 도쿄 2020 올림픽은 인류가 얼마나 더 성숙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축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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