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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E, 놀이와 돈벌이, 게임과 메타버스 사이 그 어디 [한세희 테크&라이프]

베트남 ‘엑시 인피니트’, 한국 '미르4' P2E 성공사례로 꼽혀
게이머 P2E 게임에 불만…‘돈 버는 요소’가 게임 재미 해친다는 우려 나와

 
 
게임 아이템과 캐릭터 NFT가 거래되는 미르4 XDRACO 홈페이지. [사진 위메이드]
 
게임은 놀이다. 그런데 게임을 하며 돈도 벌 수 있으면 더 좋을까?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게임은 게임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요즘 돈 버는 게임, 이른바 P2E(Play to Earn)가 게임계 화두다. P2E 게임은 게임 안에서 미션을 수행해 토큰을 받고, 이 토큰을 외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실제 돈으로 환전할 수 있는 게임을 말한다.
 
베트남 게임 스타트업 스카이마비스가 개발한 ‘엑시 인피니트’가 P2E의 대표적 성공 사례이고, 우리나라 게임 중에서는 위메이드가 개발한 ‘미르4’가 인기를 얻고 있다. 게임 내 재화의 환전을 금지하는 우리나라 법 때문에 정작 미르4의 P2E 기능은 해외 시장에만 적용되어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희귀 아이템에 높은 가치가 부여되고, 이런 아이템이 외부 시장에서 거래되는 현상은 이미 오래 전에 나타났다. ‘리니지’의 게임 아이템 하나가 중형차 가격에 거래된다는 등의 기사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온라인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은 게임사에 귀속된다. 게이머는 아이템을 이용할 수만 있을 뿐이다. 온라인 아이템 거래 시장은 양지의 음지 사이 회색 영역에 속해 있다.
 

게임인가 현실인가? 토큰 경제 구현 꿈꾸는 P2E 게임

반면 최근 P2E 게임은 처음부터 암호화폐 기반 생태계와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다. 게임 내 경제가 아니라 암호화폐를 매개로 게임과 외부 세계가 연결된 토큰 경제를 지향한다. 게임을 하며 쌓은 재화는 곧바로 현실 세계의 재화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기술로 소유권을 인증해 게임 안팎에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캐릭터나 게임을 하며 얻은 디지털 아이템 등을 NFT로 만들어 거래할 수 있는 게임들도 있다. 토큰 거래, NFT, 거래소, 메타버스 등 최신 트렌드가 모두 P2E 게임에 녹아 있다.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NFT, 리셀 운동화, 명품 등 모든 자산 가치가 폭등하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시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P2E는 경제 이슈이고, 투자 이슈이다. 이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부동산 대신 그나마 새로운 부의 기회를 약속하는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은 절박할 수밖에 없다.
 
이 절박한 관심은 국내에서 거의 잊혔던 게임 기업 위메이드의 주가를 1년 사이에 거의 7~8배 끌어올렸다. P2E 게임이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불만은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우리나라 게임 정책의 불변의 원칙이었던 ‘환전 금지’, ‘사행성 금지’ 방침에 대한 공공연한 의문 제기로 이어졌다.
 
대선 후보까지 이 이슈에 반응했다. 최근 출범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게임·메타버스 특보단은 “블록체인·메타버스·NFT 등의 신기술이 게임과 융합하면 파급력은 더 커질 것”이라며 P2E 게임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P2E 게임은 게이머들의 자발적 참여에 바탕을 둔 탈중앙화된 온라인 경제를 약속하고, 이러한 비전은 많은 사람이 꿈꾸는 메타버스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는 확실히 매력적인 미래이며, 개인과 기업 모두에 새롭고 거대한 기회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비전에 공감하고 참여할 사람은 누구일까? 역시 게이머들일까? 일단 게임 기업들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위메이드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가운데,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컴투스 등 주요 게임사들이 P2E 게임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P2E 게임에 관심 보이는 게임기업, 반발하는 게이머

해외에서도 대형 게임 기업들이 조금씩 NFT나 P2E 게임에 발을 들이고 있다. 역할수행게임(RPG)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스퀘어에닉스의 마츠다 요스케 대표는 최근 발표한 신년사에서 P2E와 NFT에 대한 관심을 밝혔다. 그는 ‘플레이를 통해 기여한다(Play to Contribute)’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토큰 경제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게임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P2E가 현재 인터넷이 사용자제작콘텐트(UGC) 창작자에게 별다른 보상을 돌려주지 못 했던 전철을 밟지 않고, 지속적 참여를 끌어낼 동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유비소프트가 공개한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 '유비소프트 쿼츠'. [사진 유비소프트]
 
‘어새신 크리드’ 시리즈를 서비스하는 유비소프트는 지난해 12월 대형 글로벌 게임사로는 처음 NFT를 도입했다. 게이머가 게임을 하며 얻은 ‘디지트’라는 NFT 아이템을 거래하는 ‘쿼츠’라는 플랫폼을 열었다. 온라인 총쏘기 게임 ‘고스트 리콘: 브레이크포인트’에 처음 적용되며, 향후 자사 다른 게임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유비소프트는 "게임과 NFT의 결합을 시도하는 대규모 시험 프로젝트”라며 “게이머가 스스로 만들어낸 가치를 활용해 게임 환경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총쏘기 게임 ‘스토커2’를 만든 GSC게임월드는 게임 진행을 도와주는 NPC에 플레이어 사진을 합성해 NFT로 만들어 판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게이머들의 커뮤니티로 많이 활용되는 디스코드는 NFT와 암호화폐 지갑 기능을 디스코드에 통합하는 것에 대한 사용자 의견을 묻기도 했다.
 
P2E나 NFT 도입을 검토한 이들 해외 게임 기업들의 공통점은 게이머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 했다는 것이다. 유튜브의 쿼츠 플랫폼 홍보 영상에는 ‘싫어요’ 4만개가 쏟아졌다. ‘좋아요’는 1700개였다. 플랫폼 오픈 후 2주 동안 판매된 NFT 아이템은 15개, 매출은 1755달러에 불과했다. GSC게임월드와 디스코드도 사용자들의 강한 반발에 계획을 전면 취소하거나, 시험적 아이디어였을 뿐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게이머들은 암호화폐를 악용한 사기가 많다, NFT 생성에 많은 컴퓨팅 자원이 소모되어 환경을 해친다 등의 이유를 들며 게임과 블록체인의 연계를 반대한다. 
 
하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돈 버는 요소’가 게임 자체의 재미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일 것이다. 돈을 번다는 목적이 재미에 우선하게 되고, 돈을 많이 쓰는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게임 기업으로서는 P2E를 앞세워 토큰 경제와 메타버스로 사업을 확장한다면 새로운 고객과 시장을 얻을 수 있다. 게임 산업의 중심이 하드코어 게이머 대상 콘솔 게임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캐주얼 사용자를 위한 모바일 게임으로 이동하면서 시장 규모가 도약한 것보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P2E 게임에는 게임 기업과 투자자, 암호화폐와 메타버스 관련자 등 게임 생태계 내부 및 주변부 관계자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호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다만 게이머들만 떨떠름한 마음을 떨치지 못 하는 셈이다.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 경우와 같이 게임은 메타버스의 모습을 앞장서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게이머는 미션과 보상, 디지털 세상에 대한 적응력과 활발한 콘텐트 생산 능력 등 메타버스에 적합한 자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게임과 놀이, 생활과 노동은 다르다. P2E를 통해 놀이하는 게임과 생활하는 메타버스를 하나로 합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게이머를 배반한 후 게임보다 더 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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