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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근이세요?”…‘중고’에서 나온 새로운 돈 냄새

[20조 ‘쩐의 전쟁’ 중고시장①] 치열해지는 경쟁자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 4조→20조 폭풍 성장
당근마켓·번개장터·중고나라 ‘빅3’ 점유율 96%
신세계 번개장터에 투자…중고시장 첫 도전장
롯데는 중고나라, GS는 당근…IT·금융도 눈독

 
 
당근마켓 중고거래 중인 사람들. [사진 유튜브 캡처]
 
“혹시 당근이세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중고 거래’. 중고품은 이제 단순히 돈을 절약하기 위해 누군가 쓰던 물건을 싸게 사는 개념이 아니다. 명품부터 굿즈, 한정판 스니커즈, 육아용품 등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제품을 얻어 만족감을 얻는 소비 형태로 점점 진화 중이다. 무려 20조원. 내수시장의 ‘2부 리그’에 그쳤던 중고산업 이야기다.  
 
이 엄청난 시장에 대목이 열리면서 돈이 몰리고 있다. 롯데, 신세계 등 대기업들이 속속 발을 들이고 있는 것. 이들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투자하거나 직접 플랫폼을 만들어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불황도 비껴간 사업으로 평가받는 만큼 통신기업이나 금융권에서도 눈독 들이는 업체가 많다. ‘황금알’ 시장이라는 중고거래사업. 잠재력 큰 시장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쩐의 전쟁’ 서막이 올랐다.  
 

중고에 ‘줄’대기…손정의가 투자한 ‘중고 플랫폼’도 가세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는 지난 11일 총 82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투자에 참여한 곳은 신한금융그룹, 프랙시스캐피탈, 미레에셋캐피탈 등이다. 특히 이들 중에서 주목받은 업체는 신세계그룹의 벤처캐피털(CVC) 시그나이트파트너스다. 그동안 중고 산업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신세계가 중고에 첫 투자를 하면서 시장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신세계그룹이 지난 2020년 7월 설립한 벤처캐피탈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상생하고 발전하는 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고 국내외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설립됐다. 현재까지 총 3개 펀드를 결성해 1000억원 이상 자금을 운용 중이며 중고 외에도 다양한 사업영역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중고나라에서 판매 중인 구찌 운동화. [사진 화면 캡처]
 
신세계가 번개장터라면 롯데는 중고나라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3월 원조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 지분의 93.9%를 인수하는 사모펀드 유진-코리아오메가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다. 롯데는 롯데아울렛 광교점의 ‘프라이스홀릭’,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광명점의 ‘리씽크’ 등 중고거래 매장도 운영 중이다.
 
GS리테일은 같은 해 8월 국내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인 당근마켓의 시리즈D 투자자로 참여했다. 지역 주민을 기반으로 한 인프라를 갖춘 당근마켓에 GS리테일의 유통 노하우를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3곳의 대기업이 투자한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는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 빅3로 꼽힌다.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96%에 달한다. ‘빅3’에 직접 대항하기 위해 전문적인 중고 플랫폼을 만들어 중고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KT의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리플’, 네이버의 스니커즈 중고거래 플랫폼 ‘크림’,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운영하는 중고 책 거래 플랫폼 ‘알라딘마켓’ 등이 대표 적이다. 롯데하이마트가 운영하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하트마켓’도 있다.  
 
중고 거래 시장판은 더 커질 전망이다. 유럽 1위 중고 명품거래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도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시장 진출을 본격 준비 중이다. 베스티에르는 글로벌 IT업계 큰손인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이 투자에 나서면서 주목받은 곳이기도 하다.
 

이유는 성장성…중고시장 주도하는 ‘Z세대’도 한 몫   

너도나도 국내 중고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성장성 때문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4조원 규모이던 국내 중고거래 시장은 2020년 20조원으로, 10여년 만에 5배 이상 커졌다.  
 
 
2003년 설립된 중고나라 회원 수는 2500만명에 육박하고 2020년 연간 거래액은 이미 5조원을 넘어섰다. 2015년 지역 기반 플랫폼으로 출시된 당근마켓은 월간 순사용자가 1551만명을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평가받은 당근마켓의 기업가치는 3조원이 넘는다. 번개장터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2011년 론칭 이후 2019년 거래액 1조원, 2020년 1조3000원, 2021년 1조7000억원을 돌파하며 매년 3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MZ세대 중에서도 1997년부터 2010년까지 태어난 ‘Z세대’가 중고 시장을 이끌고 보고 있다. 이들은 공유 경제를 경험하며 자란 세대로 상품을 자산으로 이해하고 다시 되파는 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중고물품’을 다시 쓰는 것이 환경친화적이라는 ‘가치 소비’라는 인식도 중고 소비 확산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J.W 앤더슨X컨버스 한정판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롯데백화점 본점에 대기중인 고객. [사진 롯데쇼핑]
 
신세계가 번개장터 투자에 나선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 조형주 팀장은 “고객 중 MZ세대의 비율이 경쟁사 대비 월등히 높고 취향에 기반한 중고 상품 거래, 빠르고 안전한 결제 및 배송 등 차별화된 강점을 보유한 번개장터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쇼핑 역시 코로나19 이후에도 가성비 중시 트렌드와 고가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 양극화에 따라 중고 시장 규모가 향후 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판단했다. 중고나라 투자를 통한 다양한 시너지도 노렸다. 롯데그룹이 보유한 오프라인 유통 매장과 물류 등과 결합하면 시너지가 배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사기거래로 인한 부정 이미지·수익 모델 ‘과제’ 

다만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아직 중고 시장에 사기거래가 종종 이뤄지고 있어 자칫 부정적 이미지에 함께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수익 구조도 넘어야 할 산이다. 중고거래 플랫폼은 개인 간 거래 특성상 직거래, 현금거래 위주로 이뤄져 수익모델이 마땅치 않다. 그렇다 보니 빅3 플랫폼들도 수익성보다는 이용자 확장을 통한 거래액 증가, 서비스 기반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파트장은 “당근마켓은 직거래 강자로서, 번개장터는 비대면 안전결제 강자로서, 특색 있는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향후 국내 중고거래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향후 중고거래업체 성장에는 외국 중고거래 업체처럼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고플랫폼 한 관계자는 “시장이 다양화되면서 이전과 달리 중고 거래에도 수수료 등 수익을 남길 수 있는 환경으로 점점 변화해나가고 있다”면서 “경쟁이 얼마나 더 치열해질지 유통 대기업들이 중고거래 시장에서 어떤 포지션을 선점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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