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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소프트 이젠 알툴즈 기업이 아니다, AI 기업이다”

[인터뷰]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
병역특례로 입사, 17년 만에 이스트소프트 대표에 올라
2000만명이 사용한 알툴즈 기획자…과장에서 이사로 진급해
메타버스 시대 선도하려고, 실사형 버츄얼 휴먼에 도전

 
 
병역특례자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이스트소프트의 대표까지 오른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 [임익순 객원기자]
 
# 1998년 12월 어느 날, 서울대 수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은 운이 좋게도 병역특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IMF 구제금융 탓으로 한국의 경제는 얼어붙었다. 그 많던 병역특례로 일할 수 있는 벤처기업을 찾는 게 무척 어려웠다. 하이텔로 검색을 해봐도 병역특례자를 뽑는 벤처기업은 5곳도 채 안됐다. 다행히도 청년은 그중 한 곳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곳에서 알려준 대로 서울 서초동에 있는 허름한 건물 2층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여 명도 안 되는 조그마한 벤처기업이었다. 1993년 설립됐다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다. 점심시간만 되면 1층 식당에서 올라온 음식 냄새에, 추운 사무실을 덥히기 위한 석유난로에서 나오는 기름 냄새로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정말 헝그리한 곳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지만 며칠 일해 보니 그나마 사람과 일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낮에는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밤에 일하는, 말 그대로 밤낮이 바뀐 곳이지만 사람이 좋았다. 청년의 개발 능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좋았다. 3년 후 병역특례를 마쳤지만, 대기업이 아닌 월급도 제때 나오지 않았던 가난한 벤처기업에 남았다. 그곳의 성장에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벤처기업은 지금 한해 1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알집과 알약으로 유명한 이스트소프트다.  
 
# 2015년 12월, 이스트소프트의 창업가인 김장중 당시 이스트소프트 대표는 병역특례로 입사해 어느덧 이스트소프트 부사장을 지내는 그와 마주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창업가는 “이제부터 당신이 이스트소프트의 대표를 맡았으면 한다”라는 제안을 했다. 창업가는 이사회 의장부터 대표까지 모든 직책을 그만둔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창업가가 정말 힘든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PC 시대에 성장을 했던 이스트소프트는 스마트폰 시대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성장은 정체됐고, 영업이익도 계속 마이너스가 나고 있었다. 창업가는 이스트소프트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병역특례로 입사를 했던 젊은이는 17년 만에 5개의 계열사를 둔 이스트소프트의 대표를 맡게 됐다. 주인공은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다. 어느덧 대표 6년 차를 맞이한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를 알약과 알툴즈를 넘어서는 AI 기업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스트소프트 현재 만들었지만, 현재를 깨는 혁신 주도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에서 입지전적의 인물로 꼽힌다. 현재의 이스트소프트로 성장시킨 서비스를 론칭한 주인공이다. 2000만명이나 사용했던 알툴즈와 보안 사업의 주춧돌인 알약을 기획했다. 또한 이스트소프트에 입사한 후 처음 7년 간은 개발자로 살았지만, 이후에는 사업기획, 영업 등 이스트소프트의 다양한 사업 분야를 경험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창업가는 그를 빠르게 승진을 시켰다. 입사 7년 만에 알툴즈사업 본부장을 지냈고, 2013년 7월에는 줌인터넷 부사장이 됐고, 2016년 이스트소프트 대표가 됐다. 
 
그를 대표로 선임한 창업가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만 정 대표와 논의를 한다. 그 외 이스트소프트의 모든 일은 정 대표가 처리하고 있다. 정 대표는 “대표 제안을 받았을 때 그동안 회장님 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서 경영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다”면서 “잠을 자면서도 회사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표가 된 이후에 알게 됐다”며 웃었다.
 
정상원 대표는 2016년 대표에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그해 5월 ‘비전 2025’를 발표했다. 이스트소프트의 미래를 선포했고, 그 키워드는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삶을 더 편하게, 더 풍요롭게 만드는 회사’라는 미션을 완성하기 위해 방법으로 ‘AI를 바탕으로 하는 최고의 서비스 기업’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이스트소프트의 미래 사업 분야로 선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매출 1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구체적인 플랜도 발표했다. 그는 “1조원이 현재 추세라면 힘들겠지만, 우리 서비스들의 잠재력은 크다. 1조원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으로 믿는다”며 웃었다.  
 
비전 2025를 발표한 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의 성과를 자평하면 몇 점이나 줄 수 있나?
70점 정도 될 것 같다. 그동안 AI 사업을 위한 R&D 역량을 갖췄고 그 기술을 활용한 사업방향과 전략이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줄 수 있다. 아쉬운 점은 AI를 활용한 사업 기회 발굴을 위해 B2B 영역에도 많은 노력과 기회비용을 들였는데, 기술적 역량 외에 영업이나 매출 지속성을 위한 전략 등은 부족했다.  
 
2016년 3월 이세돌 사범과 알파고 대국으로 인공지능과 딥러닝 기술이 주목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AI 기술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 이스트소프트가 AI를 전면에 내세우게 된 계기가 뭔가?
2012년 ISLVRC(이미지 인식 경연대회)에서 제프리 힌튼 교수가 딥러닝 기술로 우승을 차지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부끄럽게도 2015년에 이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개발자로 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술의 잠재력을 충분히 느끼게 됐다. 왜 그제야 이 기술의 존재를 알게 됐는지 부끄러울 정도였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이 ‘태풍을 만나면 돼지도 하늘을 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인공지능 기술이 바로 그 태풍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하고 새로운 파도가 다가오는 것을 직감했다. 즉시 내부에서 딥러닝 스터디를 지시했고 인력 채용도 진행했다.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가 1월 17일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했다. [임익순 객원기자]

2026년 매출 1조원 시대 여는 게 목표

정 대표는 비전 2025를 발표한 후 이스트소프트를 AI 전문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AI 플러스랩’이라는 조직부터 당장 만들었다. 100여 명 정도 되는 임직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차출했다. 당시 외부에서 인재를 찾는 게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다.
 
10여 명의 임직원을 뽑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부’였다. 1년 여 동안 딥러닝과 AI에 관련된 스터디를 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했다. “딥러닝 북이라는 정말 두껍고 어려운 책이 있는데, 저도 그 책을 같이 읽으면서 정보를 쌓아나갔다”면서 정 대표는 웃었다. 현재 AI 플러스 랩은 30여 명의 전문 인력이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정 대표는 “초기에는 없었던 데이터 엔지니어만 10명이 넘게 포진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스트소프트라는 기업을 단순화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정 대표는 “대표 취임 이후 투자 유치를 시작했는데, 투자자에게 이스트소프트의 사업은 너무 복잡했다”면서 “투자를 받기 위해서 사업을 단순화해야만 했고, 그 방법으로 각각의 서비스를 분사하는 것이었다.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우선 이스트소프트의 캐시 카우 역할을 했던 포털 서비스 줌을 인터넷포털 사업으로, 알약으로 대표되는 보안 서비스를 하는 이스트시큐리티로 분사했다. 한때 PC 게임방에서 제2의 리니지로 불렸던 카발을 서비스하는 이스트게임즈도 분사를 결정했다. AI 기술을 접목한 가상피팅 안경 쇼핑몰 ‘라운즈’도 커머스 분야로 분사했다. 2018년 설립한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엑스포넨셜자산운용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주사격인 이스트소프트는 R&D에 집중해 그 기술을 필요한 곳에 접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복잡했던 이스트소프트의 사업은 5개로 단순화했다.
 
 
정 대표의 말대로 분사 효과는 그대로 나타났다. 줌 인터넷과 라운즈, 이스트시큐리티가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2018년 6월에는 NHN엔터테인먼트가 이스트시큐리티에 30억원 규모의 투자를 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줌 인터넷이 3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라운즈는 2019년 11월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와 산은캐피탈 등이 참여한 5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투자 유치의 전면에 나섰던 그는 “투자를 받는 게 성장에 대한 증명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투자 유치가 정말 필요했던 때였다”면서 “처음 IR 활동을 할 때는 네트워크도 없어서 고생했는데, 지금은 투자 관련 네트워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각 분야를 독립한 이후 매출 비중도 고르게 나타났다. 이스트소프트의 전체 매출액 중 인터넷포털 사업이 25%, 이스트시큐리티가 35%, 게임이 25%, 라운즈가 6%, 엑스포넨셜자산운용이 6%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2019년 6월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포털 서비스 줌 인터넷이다. 대표적인 포털 서비스인 네이버와 카카오와 비교하면 줌은 일반인에게도 낯선 서비스다. 그럼에도 온라인 광고로 매년 200억~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지만,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정 대표는 “줌은 PC 시대를 대비해 4~5년을 준비했던 거대 프로젝트였지만, 예상치 못했던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서비스다”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줌을 재테크 콘텐트 플랫폼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는 "줌이 모바일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고, 야후 파이낸스처럼 재테크 콘텐트 플랫폼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2월 두나무에서 사업 총괄을 했던 이성현 씨를 줌 인터넷 대표로 선임했다. 
 
이스트소프트가 열고 있는 AI 관련 컨퍼런스 'AI 플러스 2020'에서 정상원 이스트소프트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이스트소프트]

올해 이스트시큐리티 상장에 도전  

이외에도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의 체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요즘 집중하고 있는 것은 B2B 서비스로 성장하고 있는 이스트시큐리티의 상장이다. 그는 “보안 사업은 이스트소프트의 캐시카우이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올해 20% 이상의 성장이 기대된다”면서 “올해 상장을 위해 주관사를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트시큐리티는 2019년 줌 인터넷의 상장 이후 이스트소프트에서 두 번째 상장 기업이 되는 것이다.
 
아직 매출이 100억원도 되지 않지만, 라운즈도 정 대표의 관심사다. 라운즈의 제휴 매장이 벌써 300개를 돌파하면서 국내에서 2번째의 안경점 체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정 대표는 “한국의 안경 관련 시장 규모는 3조원이 넘는다. 라운즈처럼 앱과 온라인 중심의 서비스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좋은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신사업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다. 캐릭터를 통해 메타버스에서 이커머스와 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게 게임과 비슷하다. 또한 지난해 게임주는 NFT와 P2E라는 새로운 흐름 덕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이스트게임즈라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스트소프트에게는 새로운 기회라고 보고 있다. 메타버스 분야에서 각광받는 버추얼 휴먼이라는 캐릭터 제작에서 우선 기회를 찾고 있다. 그는 “메타버스에서 몰입감을 주기 위해서는 실사형 버추얼 휴먼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YTN의 변상욱 앵커를 버추얼 휴먼으로 만들어 방송하기도 했고, 소통과 리더십 교육에서 유명한 이민영 교수를 버추얼 휴먼으로 만들어서 교육 플랫폼에 적용하기도 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있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는 R&D 과정이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업부도 만들었다”면서 “버추얼 휴먼이 이스트소프트의 메인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의 현재를 만든 주역이다. 줌 인터넷, 알집, 알약, 알툴즈 등이 이스트소프트의 현재를 만든 중요한 서비스들이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들은 모두 정 대표가 나서서 기획하고 론칭한 서비스이기도 하다. 정 대표는 이스트소프트의 현재를 만들었지만, 그것을 혁신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내 역할은 이스트소프트의 과거를 빨리 깨고 새로운 모습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스트소프트는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앞서가는 기업이다.”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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