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의 미래’ 새 군비경쟁인가, 국제안보지형 변화인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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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의 미래’ 새 군비경쟁인가, 국제안보지형 변화인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냉전 산물 나토 체제, 러시아 침공으로 새로운 전기
나토, 소련 붕괴 후 동유럽 국가들 합류로 세력 확장
러시아 자극 우려에 우크라이나 가입 허용에는 ‘머뭇’

 
 
나토 깃발과 러시아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나토 깃발과 러시아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4월 4일로 창설 73주년을 맞은 군사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어떤 변화의 전기를 맞을까. 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나토의 동쪽 국경이 불안해지면서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토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쟁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6일 키이우 서북쪽 부차를 순찰하고 있다. 러시아군 후퇴 뒤 이곳에선 수백 명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6일 키이우 서북쪽 부차를 순찰하고 있다. 러시아군 후퇴 뒤 이곳에선 수백 명의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 [EPA=연합뉴스]

 
사실 국경이 무려 6993㎞에 이르는 영토 대국 우크라이나는 루마니아(서부 362㎞+남부 169㎞=531㎞)·폴란드(428㎞)·헝가리(103㎞)·슬로바키아(90㎞) 등 4개 나토 회원국과 접경하고 있다. 비나토 회원국인 러시아(1974㎞)·몰도바(939㎞)·벨라루스(891㎞)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벨라루스는 동맹인 러시아의 군사 훈련 기지와 침공로를 제공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불과 100㎞ 떨어진 곳이 벨라루스 국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나토의 동쪽 경계선 바로 밖에서 살상용 미사일과 포탄과 로켓탄, 총탄이 날아다니는 셈이다.
 
나토 창설 이래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전쟁에 벌어진 적은 없다. 냉전 뒤 유럽에서 벌어진 1992~95년의 보스니아 전쟁도,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도 나토 국경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물론 러시아는 지금도 에스토니아(138㎞)·라트비아(271㎞)·리투아니아(266㎞) 등 1940~91년 옛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발트 3국과 폴란드(204㎞)·노르웨이(196㎞) 등 5개 나토 회원국과도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역외영토(본토와 육로로 이어지지 않는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독일령 동프로이센의 북부)와 경계를 맞댄다.
 
러시아 본토와 국경을 맞댄 나토 회원국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노르웨이뿐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라트비아 국경까지는 직선으로 약 490㎞ 거리이며, 도로 주행거리는 538㎞다. 모스크바에서 에스토니아 국경까지는 직선거리로 809㎞, 도로 주행거리로는 1019㎞ 떨어졌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스토니아 국경까지는 338㎞ 거리다. 러시아는 나토 가입 가능성이 거론되는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인 핀란드(1272㎞)와도 접경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가까운 핀란드 국경까지는 약 150㎞ 떨어졌다. 하지만 이들 나라가 러시아에 적대적인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러시아는 유럽 대륙에선 우크라이나 외에 동맹국인 벨라루스(1239㎞)와 캅카스에선 조지아(876㎞)·아제르바이잔(373㎞)과 각각 접경한다. 중앙아시아에선 카자흐스탄(7513㎞), 동아시아에선 몽골(3485㎞)·중국(4209㎞)·북한(17㎞) 등과 각각 국경을 맞댄다.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다 보니 국경도 거대하다.
 
미군 82공수사단 장병들이 올해 2월 5일(현지시간) 독일 군 기지에 도착한 모습. [사진 미국 육군 트위터]

미군 82공수사단 장병들이 올해 2월 5일(현지시간) 독일 군 기지에 도착한 모습. [사진 미국 육군 트위터]

 
사실 나토 체제는 냉전의 산물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1949년 4월 4일의 나토 창설은 미국이 그 한 해 전인 1948년 유럽 동맹국들의 전후 재건·원조 프로그램인 마셜 플랜(유럽부흥계획)과 함께 서방 세계의 결속을 다진 중추였다.
 
미국은 1948년 4월 3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한 해외원조법을 바탕으로 4년 동안 서유럽에 130억 달러(2016년 가격으로 1300억 달러에 해당)를 지원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립된 유럽경제협력기구(OEEC) 회원국이 대상이었다. 미국은 경제는 마셜 플랜, 정치·국방은 나토 체제라는 두 가지 트랙을 앞세워 서방 세계의 맹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1949년 4월 4일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으로 창설된 나토는 냉전 시기(1946~1991년)에 서방 군사동맹의 기둥으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북대서양조약은 미국 주도로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포르투갈 등 서유럽 국가와 북미의 캐나다가 미국 워싱턴에서 체결한 집단안전보장 조약이다.
 
이 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리스에서 좌·우파가 치열한 내전을 펼치면서 냉전이 격화하자 서방세계의 결속을 위해 체결됐다. 당시 그리스에선 친서방인 정부군과 공산당의 군사조직인 민주군이 1946~49년에 걸쳐 내전을 벌였다.
 
나토 헌장 제5조는 “회원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고 상호 원조를 한다”고 규정했다. 바로 집단안보, 공동방위를 규정한 핵심 부분이다. 매년 나토 정상회의 때마다 미국의 대통령은 이 부분을 읽음으로써 동맹 보호를 약속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시 이를 거부해 약간의 갈등이 생겼다.
 

나토, 냉전 시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도입의 척도 역할 맡아

벨기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사진 나토]

벨기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본부. [사진 나토]

 
나토는 단순한 안보 동맹에서 머물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서구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으로 진화해나갔다. 나토의 확장 역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서독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점령된 상태여서 1949년의 나토 창설 논의에는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
 
점령지 독일은 서방 점령지(서베를린 포함)엔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들어서고 소련군 점령지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이 들어서면서 2개의 주권 국가가 됐다. 서독은 민주주의 헌법과 삼권분립의 국가체계를 갖춘 민주주의 국가로 재출발했지만,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 정착을 검증한 뒤 나토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서독 지역의 연합군 점령은 1952년 체결된 본-파리 협정이 1955년 관계국 모두에서 비준되면서 끝났다. 독일의 재기를 두려워한 프랑스가 비준을 한차례 거부해 시간이 걸렸다. 민주주의 국가로 재출발한 서독도 이런 과정을 거친 뒤 1952년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나토 가입국. [사진 나토]

나토 가입국. [사진 나토]

 
서독은 나토 회원국으로서 군대를 유지하고 냉전 시절 상당한 전력을 보유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독일이 나토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국방비를 높이기로 한 것은 두고 ‘독일 재무장’이라고 주장하는 소리도 있는데, 이는 실상과 거리가 있다.
 
독일은 이미 서독 시절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해 나토의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군대라는 이름 대신 자위대라는 어정쩡한 명칭을 사용하면서 상당한 군사비를 지출하는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 냉전 뒤 통일 독일은 영국, 프랑스 등 다른 나토 회원국처럼 재래식 전력과 군사비 지출을 축소해오다 이번에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을 뿐이다.
 
서독은 1990년 10월 동독과 통일을 이룬 뒤 동독지역까지 포함한 통일 독일로서 나토 회원국이 됐다. 스페인도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의 집권 시기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서방세계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토와 유럽경제공동체에 들어갈 수 없었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의 사망 뒤 1978년 민주 헌법을 제정했지만 1981년 불발 군사 쿠데타가 터지는 등 정치적인 위기가 계속돼 나토 회원국이 되지 못했다. 1982년 혼란이 가라앉고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이루면서 비로소 나토 회원국이 됐다.
 
그 뒤 국내에서 나토 탈퇴 움직임이 벌어지자 1986년 3월 12일 국민투표에서 56.9%의 찬성으로 나토 잔류를 확정했다. 스페인의 나토 가입과 잔류 결정 과정은 나토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동맹임을 잘 보여준다.
 

냉전 뒤 공중분해된 바르샤바 조약기구, 나토는 그 사이 ‘동진’

이동하는 독일군 공수부대 장병. [사진=독일 국방부]

이동하는 독일군 공수부대 장병. [사진=독일 국방부]

 
나토에 대항해 1955년 옛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주도해 8개 회원국으로 창설했던 동유럽 공산권의 군사동맹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1991년 자진 해산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1956년 헝가리 민주혁명 당시 헝가리 침공,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삼 당시 소련의 무력 사용의 기억이 재소환되고 있다.
 
물론 상황은 다르다. 소련의 헝가리 침공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손잡고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를 침공한 수에즈 전쟁과 맞물려 소련에 강력한 항의를 하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소련과 함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을 설득해 전쟁을 중단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당시 서유럽은 68혁명으로 외교에 신경 쓸 여유가 별로 없었으며, 미국 등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성사를 위해 소련과 척지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비록 미국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무리하면서까지 철군하면서 일종의 고립정책이나 대외 개입제한 정책을 펼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전차와 대공 무기를 지원하면서 항전을 돕고 있다. 러시아에 유례없이 대대적인 경제제재도 가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맞아 중국과의 정면 대결도 일시 유보하는 모양새다.
 
냉전 당시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이던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알바니아 현재는 모두 나토 회원국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뒤 두 나라 모두가 나토 회원국이 됐다.
 
심지어 옛 소련의 일부였다가 독립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도 회원국이 됐다. 과거 비동맹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다가 독립한 크로아티아·몬테네그로도 가입했다. 한국은 호주와 뉴질랜드·일본 등과 함께 나토의 협력국가(Global Partner)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밑에서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도 보인다. 그동안 EU에만 가입하고 군사동맹인 나토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스칸디나비아 국가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도 나토 가입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웨덴은 오랫동안 중립국으로 있으면서 전투기와 군함, 전차 등을 스스로 개발·생산해 운용하고 있는 방위산업 강국이다.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도 나토 가입을 탐색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나토의 확장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토라는 울타리에서 집단 방위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크라이나 상황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의 동진에 불만을 터뜨려온 러시아가 오히려 21세기 침략 전쟁으로 나토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확인시켜준 셈이다.
 
미국도 2021년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행정부가 들어선 뒤로 나토 동맹국들에 더욱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비용 부담을 다그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딴판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6월 14일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동맹국들을 다독거렸다.
 
올해는 3월 23~25일 브뤼셀을 방문해 24일 나토 정상회의를 연 데 이어 25~26일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폴란드를 방문하고 26일 영국을 찾은 뒤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올해 6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다시 나토 정상회의를 소집한다. 내년에는 러시아의 코앞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나토 정상회의를 열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두고 고민 깊어진 나토 “전쟁 길어질 수도”

나토 로고와 러시아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나토 로고와 러시아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오랫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게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에서 독립한 이듬해인 1992년 나토와 관계를 맺었다. 2008년에는 나토 가입 전 단계인 회원국 행동계획(Membership Action Plan: MAP)을 신청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2010년 대통령에 당선한 친러파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비동맹을 추구하면서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 절차를 중단했다. 그러자 친서방 국민이 들고 일어나 2013~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 끝에 야누코비치는 탄핵당하고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망명했다.
 
그 직후 들어선 임시정부도 나토 가입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그해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하고 쇠락한 산업단지가 있는 동남부 돈바스 지역에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이라는 분리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해 10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헌법에 EU와 나토 가입을 국가 전략이라고 규정한 조문을 삽입했다.
 
나토는 2021년 6월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과거 2008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MAP를 통해 나토에 가입하려고 결정하는 것은 지지하기로 한 결정을 재확인했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회원국으로 즉각 받아들이지 않고 MAP 과정을 요구하면서 러시아가 침공하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확대와 책임 사이에서 갈등해온 나토의 고민이 드러난다.
 
결국 우크라이나를 위해 당장 피를 흘리기에는 나토 회원국들의 정치적 부담이 너무도 크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아울러 핵보유국인 러시아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과 서방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AFP=연합뉴스]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AFP=연합뉴스]

 
게다가 러시아의 전략적 계산과 자존심 등이 겹쳐 전쟁이 단시일 안에 끝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6~7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 앞서 취재진에게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이 이를 잘 보여준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체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버렸다는 징후는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고 이것(전쟁)이 오랫동안, 수개월, 심지어 몇 년간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톨텐베르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유지, 그리고 나토 회원국의 방위 강화 등을 비롯한 장기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발언은 이번 전쟁이 얼마나 난마처럼 얽힌 요소로 가득 차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나토도 새로운 위상과 목적, 갈 길을 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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