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열광하는 ‘멍때리기’, 광고에도 나온 까닭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광고 대상 예약한 시몬스 '멍때리기' 광고
동시대 문화현상에 대한 통찰로 시작
광고를 문화 콘텐트로 표현해 대중 공감 얻어
표준어도 아닌 ‘멍 때리기’란 말이 유행이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멍하니 보고 있는 ‘불멍’, 강이나 바다, 호수를 가만히 쳐다보는 ‘물멍’ 숲이나 나무를 보는 ‘숲멍’은 늘 쫓기 듯 사는 이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목적 없는 시간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일종의 웰빙 트랜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성수동에는 서울숲에서 ‘숲멍’ 때리기 좋은 까페로 소문난 ‘그린랩’이란 카페가 성시를 이루고, 영화관 메가박스는 자사의 스크린에 장작불영상을 보여주는 ‘메가릴렉스-불멍’상영프로그램까지 내놓은 적이 있다.
‘멍때리기’는 심지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에까지 소개됐다. 이 비속어 같은 우리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했을 까라는 호기심과 더불어, 왜 미국의 언론이 주목했을까가 궁금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21년 11월 “멍때리기-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은 구름과 나무를 응시하기위해 돈을 쓴다”(Hitting Mung: In stressed out South Korea, people are paying to stare at clouds and trees)라는 타이틀로 ‘멍때리기’를 소개했다.
미국의 NBC는 'NBC the Today Show'에서 “스트레스받는가? 한국의 웰빙 트랜드 ‘멍때리기’를 해보라(Stressed out? Try the South Korean wellness trend ‘hitting ming)”라는 기사를 다뤘다. 혼잡함, 압박감,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세상 속, 미국인들도 한국의 웰빙 트렌드 ‘멍 때리기’에 주목하고 있다.
‘멍 때리기’는 그저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멀리한 채 의미 있는 휴식이 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캐나다 트랜트 대학 심리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니스벳(Elizabeth K. Nisbet) 교수는 “멍 때리기는 삼림욕과 매우 유사하다. 아무런 방해 없이 자연에 몰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특히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고립감과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멍때리기’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새로운 힐링 방식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현상을 브랜딩의 기회로 활용한 브랜드가 있다. 침대 없는 침대광고를 만들기로 유명한 ‘시몬스’가 주인공이다. 영상은 이렇다.
이상하게 만족감을 주는 영상, OSV
눈이 시릴 정도의 밝은 물을 초록 치마를 입은 다섯명의 여성들이 찰랑거린다. 영상 속 그녀들의 발동작으로 시선이 향하지만, 그녀들이 찰랑거리는 물가는 바람 없고 고요하다.
#2
초록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세 명의 여인이 초록 하이힐을 신고 바람을 주입하는 풋 펌프를 천천히 밟는다. 기분 좋은 펌프질 소리만 반복해서 들린다
#3
새소리만 들리는 녹색의 정원에 하얀 담장을 배경으로 세 그루의 귤나무가 서 있다. 잠시 후 귤나무에서 잘 익은 귤들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ASMR로 들인다.
#4
그 정원에서 게이트볼을 하는 사람의 발이 보이고 클럽으로 볼을 치기 위해 시계추처럼 적확하게 반복적으로 빈 스윙을 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만 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5
빈 스윙이 드디어 친 듯한 공이 잔디를 굴러 3개의 게이트를 시원하게 통과해 굴러간다. 반복적으로.
#6
하나의 다른 볼은 굴러서 잔디밭 스프링클러 앞에 정확히 서자, 스프링클러가 시원하고 상큼하게 물을 분사한다. 시원한 물이 분사되는 ASMR과 함께.
총 8편의 디지털 아트 형식으로 제작된 이 광고는 이상하게 만족감을 주는 영상(Oddly Satisfying Video)이란 의미의 OSV 요소를 이용했다. 배경 음악도 없다. 다만 ASMR 기법의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 나무 열매 떨어지는 소리 등, 백색소음 만들어 있다. 기분 좋게 광고를 응시할 수밖에 없는 영상을 보여준다.
광고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유튜브 누적 조회 수 2000만회를 가볍게 넘어, 많아야 수십만에서 백만 회를 넘나들던 국내 브랜드 광고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같은 크리에이티브를 방영한 TV 광고 역시, 론칭과 동시에 2월 둘째 주 광고 시청률 1위에 올랐다. 또 국내 최고 권위의 광고상인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시상하는 한국광고총연합회도 이 광고를 올해 1~2월의 광고 중 ‘베스트 크리에이티브’로 선정하면서 연말 광고대상을 예약하기도 했다.
시몬스 광고의 제작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만도 유튜브 조회 수 100만회를 넘겨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시몬스의 이번 광고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못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이 광고들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더 놀랍다. “1시간 반복 재생 광고 만들어 주세요”, “영상을 보면 긴장감이 사라진다”,“ 광고를 일부러 찾아보긴 처음이다” “영혼이 빠져나가는느낌” 등….
한마디로 소비지들에 편안함과 위로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란 제품 콘셉트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 기능적 특성을 감성적 가치로 전환 시키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제품 광고 속 침대를 보여 주지 않는 대신에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와 힐링의 영상을 보여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이란 기능적 속성조차 감성적 편익으로 전달한 가장 이상적인 브랜드 효능감을 만들어 냈고 이는 팬덤 현상으로 이어졌다.
시몬스 광고 전략의 비결
시몬스는 여기에 주목했다, ’멍때리기의 심리적, 의학적 효능이 검증되고 이로 인해 실제로 멍때리기 대회까지 열려 언론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자 다른 모든 브랜드가 코로나를 이용해 더 저렴한 제품, 더 기능적인 제품을 팔려고 할 때, 시몬스는 그들에게 위로와 힐링을 주는 브랜드의 ‘멍때리기’영상을 선사한 것이다. 소비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동조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기꺼이 브랜드의 팬이 되어준다.
두 번째 비결은 광고를 문화 콘텐트로 만든 용기다. 이런 용기가 아무런 상업적 메시지 없이,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편안해 지는 문화 콘텐트로 만들었다. 소비자의 길목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찾아서 보는 광고를 만든 것이다. 브랜드가 광고를 만들면서 제품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는 데에는 용기와 확신이 필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광고가 당장의 판매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놓고, 제품을 굳이 보여 주지 않아도 경쟁자의 어떠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여유와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 브랜드나 할 수 없기도 하다.
세 번째는 제품기능보다 브랜딩에 집중하는 브랜드를 중심에 둔 마케팅 전략이다. 신제품이 나오면 단 며칠 만에 유사한 기능을 갖춘 제품이 나오고, 제품에 대한 가짜 뉴스가 판을 치며, 최저가를 내세운 온라인 쇼핑몰을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을 브랜딩임을 임을 일찌감치 알아챈 것이다.
시몬스가 이런 광고와 더불어 서울의 성수동, 부산의 전포동에 지역 문화에 부합하는 ‘시몬스하드웨어스토어’를 만들고 침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브랜드 팝업 스토어를 열어 MZ세대의 감성에 불을 지른 것도 같은 이유다. 최근엔 소셜라이징 프로젝트로 서울의 청담동과 부산의 해운대에 ‘시몬스그로서리스토어’를 만들어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이 지역 전체를 MZ세대의 성지로 만든 것 역시 다른 이유가 아니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한신대 IT 영상콘텐츠학과 교수다. 광고회사와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브랜딩에 관심을 가졌고 공기업 경험으로 공기업 브랜딩,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2023년 서울에서 열리는 ADASIA 사무총장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허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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