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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도 못 쫓아가는 ‘高물가’…금융위기 직전 수준까지 왔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한은 “4.7% 넘을 수도”
원자재 및 국제식량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등 원인
이 총재 빅스텝에는 ‘신중’…가계부채 부실 요인 고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물가 안정 목표 운영상황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고(高)물가 상황이 ‘위기’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한달 만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다시 올렸다. 올해 들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률이 심각해지자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경기 침체 우려 외에도 변동금리 비중이 높은 가계부채 상황이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이상의 조치는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연간 물가 상승률, 2008년 수준까지 도달할 듯

한국은행은 21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자료를 내놓고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달 내놓은 예상치인 4.5%를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8년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매달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3%대를 보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3월 4%를 넘었고, 5월엔 5.4%를 기록했다. 2008년 8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당시의 5.6% 수준까지 오른 것이다. 근원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 상승률도 4월 이후 3%를 기록했다. 근원물가는 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을 기준으로 산출되는 물가를 말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 [자료 한국은행]
여기에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가계와 기업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 상승률이다. 물가에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는 정도를 측정한 것으로, 이 수치가 오를 경우 근로자의 임금 인상 요구 분위기가 커지고, 기업은 임금 인상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게 되면서 물가 상승 악순환을 유발한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22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보다 0.2%포인트 오른 3.3%로 집계됐다. 2012년 10월에 3.3%를 기록한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날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수 있다”며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 간 상호작용이 강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요인이 국내 물가 오름세에 영향

한은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원자재 가격의 높은 오름세 지속 ▶공급망 차질 심화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소비 회복세 ▶미국 달러화 강세 등이 꼽았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 내 봉쇄조치 등의 요인으로 원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고, 환율 상승과 글로벌 공급 차질이 더해지면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특히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여건도 물가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방역조치 완화와 추경 등에 힘입어 민간소비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명목임금 상승도 겹쳐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상용직 정액급여는 올해 1분기 들어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했다. 지난 1년 동안 분기 기준으로 최대 상승률이다. 여기에다 전기·가스·수도요금이 올해 2분기 들어 인상된 것도 물가 억제력을 약화 시켰다.  
 

이 총재, 빅스텝에는 여전히 말 아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재는 현 상황을 진단하면서 앞으로도 물가 상승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며 “가파른 물가 상승 추세가 꺾일 때까지 물가 중심의 통화 정책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총재는 빅스텝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 이유로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 확대를 거론했다. 그는 “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가야 빅스텝을 한다는 이런 전제만 가지고 결정할 건 아니다”라며 “변동금리가 많아서 가계 이자 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총재는 “경기 침체 위험과 변동금리 부채 때문에 금리가 올라갈 때 이자부담이 커져서 소득불평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금융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수출, 경기, 환율, 자본유출, 취약계층 이자부담 등이 복합돼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잔액 기준으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변동금리 비중은 전체의 78.3%, 기업대출은 69.8%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각각 2.2%포인트 높아졌다. 신규취급액 기준 변동금리 기준은 가계대출이 같은 달 80.8%, 기업대출이 71.6%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출이 있는 가계의 22.1%는 3곳 이상의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로 나타났다. 이 비중이 22%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상훈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총재가) 물가 수준만 가지고 빅스텝 등 인상 속도와 폭을 결정하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며 “(이 총재는) 국내 여건이 5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과 다음 금통위까지 남은 3주간 데이터를 보고 결정하겠단 입장인데, 6월 물가 서프라이즈 경우 ‘빅스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용우 기자 yw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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