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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영 부동산 법률토크] 등기부등본 믿고 한 거래, 문제 생길 수 있다면?

국내에선 등기 공신력 부정…법원 강제경매 시엔 매수자 권리 보호돼

 
 
서울남부지방법원 등기국 내부 모습 [사진 구로구청]
 
부동산을 매수 할 때 많은 분들이 그 부동산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등기부등본)를 확인하는 일을 기본으로 칩니다. 등기부등본은 그 부동산에 대한 권리관계를 공시해주는 문서이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들로서는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내용이 맞다고 생각하고 거래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이렇게 등기부등본에 기재되어 있는 권리관계만 그대로 믿고 거래하면 부동산 매수인은 안전한 것일까요?
 
한 여성이 내연남과 짜고 니코틴 원액으로 남편을 살해한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여성은 남편을 살해하기 직전에 혼인신고서를 위조해 혼인신고를 했고 남편을 살해한 후 사망을 원인으로 그의 부동산을 상속받은 다음 곧바로 해당 부동산을 제3자에게 매도했습니다.  
 
이 사건은 그 자체로 끔찍한 사건이지만 등기부등본 내용을 믿고 한 거래의 효력에 대한 법원의 입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여성과 살해당한 남성의 혼인은 위조된 서류에 의한 것으로서 무효이고 남성 소유였던 부동산의 적법한 상속자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조카였습니다. 설령 혼인이 유효했다고 하더라도 민법 제1004조에 따라 고의로 피상속인을 살해한 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결론은 같습니다. 이에 그 조카는 위 부동산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며 여성으로부터 부동산을 매수한 제3자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제기했습니다.  
 
해당 사건에서 법원은 제3자에게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실질적 소유자인 조카에게 이전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제3자로서는 등기부등본에 소유자로 기재된 사람을 확인하고 부동산을 매수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진정한 소유자라며 소유권을 돌려달라고 하니 황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동산 매수인은 졸지에 부동산을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매도인인 여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상황에서 매수대금을 돌려받기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는 우리나라가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등기의 공신력'이란 설령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내용이 진실한 권리관계와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이를 믿고 거래가 이루어졌다면 그 신뢰가 보호되는 등기의 효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등기부등본은 부동산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자료로서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인데도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해방과 전쟁 등을 겪으면서 부동산 관련 서류들이 소실되는 경우가 많았던 배경에 기인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등기공무원에게 실질적인 심사권이 없어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별다른 조사 없이 서류만으로 등기가 이뤄지기 때문에 등기부등본의 기재가 100%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등기부등본의 기재 내용은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등기가 완료되었다'라는 것을 보여줄 뿐 해당 물권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정확하지 않은 등기부등본의 기재를 믿고 부동산을 매수해 마친 소유권이전등기와 그에 터 잡은 근저당권설정등기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6다72802 판결).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실체적인 권리관계 등에 관한 등기공무원의 실질적 심사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거기다 법원 역시 진정한 권리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등기부등본의 기재를 믿고 거래한 피해자를 구제할 방법이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등기를 믿고 한 거래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등기부등본의 기재 내용만 살피기보다 상대방이 진정한 권리자인지 매우 세심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경매에서도 채무자 명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원인무효임에도 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경매절차가 진행된다면 해당 부동산을 낙찰 받은 매수자는 소유권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경매에 있어서는 '공신적 효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일례로 강제경매는 법원 판결과 같이 집행력 있는 정본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국가의 강제집행권 행사입니다. 때문에 일단 유효한 집행력 있는 정본에 근거해서 경매 매각절차가 완결됐다면 나중에 그 집행권원에 기재되어 있는 권리가 애초 부존재 또는 무효이거나 경매절차 진행 중에 변제 등의 원인으로 소멸되었다고 하더라도 매각절차가 무효가 아닌 이상 매수인은 유효하게 경매 대상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게 됩니다. 이를 강제경매 공신적 효력이라 합니다. 따라서 금전지급청구 소송의 1심 판결에서 가집행선고부 승소판결을 받아 이를 집행권원으로 강제경매를 신청해 부동산 매각이 이뤄졌다면 이후 상소심에서 해당 판결이 취소되고 청구가 기각됐더라도 그 전에 완료된 강제경매 절차의 효력이나 이로 인한 매수인의 소유권 취득에는 아무 영향이 없습니다(대법원 1990. 12. 11. 선고 90다카19098 판결).
 
반면 임의경매 입찰을 통해 부동산을 취득했다면 공신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임의경매는 담보권자의 담보권에 기한 경매실행을 국가기관인 집행법원이 대행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담보채권의 소멸로 저당권이 소멸했는데도 이를 간과하고 경매절차가 진행돼 매각허가결정이 확정됐다면 이는 소멸한 저당권을 바탕으로 이뤄진 절차와 결정으로서 무효입니다. 이런 사례에선 매수인이 비록 매각대금을 완납했어도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12. 1. 12. 선고 2011다68012 판결).
 
국가에서 관리하는 서류를 보고 부동산을 매수해도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거나 등기공무원의 실질적 심사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 조금 더 신중하게 부동산 권리관계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필자는 법무법인 테오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건설 재경본부에서 건설·부동산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으며 부산고등법원(창원) 재판연구원, 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로 일했다.

임상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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