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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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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시장은 버블 붕괴 중...반도체산업,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구조적 위기

산업 일반

“그동안 비상장사들에 거품이 많이 껴 있었는데 앞으로 반 토막은 날 것 같습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근 침체에 빠진 인수합병(M&A)시장과 관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쌓였던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다” 며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공급망 재편으로 전환기에 접어든 반도체산업에 대해선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 위기가 아닌 지정학적 갈등, 그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구조적 위기”라며 “메모리분야에서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되 대기업들이 패키징 등 후(後)공정분야를 적극 공략,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M&A시장, 금리인상으로 유동성 메말라...몸값도 하향조정 Q : M&A시장이 침체에 빠졌습니다. A : 이미 금리인상으로 시장 유동성이 메말라가고 있고, M&A 매물들의 몸값도 하향조정되고 있어요. 투자유치 단계를 올릴 때마다 몸값이 뛰던 스타트업들도 이젠 자금줄 자체가 막혀 허덕이고 있지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간 쌓였던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동안 비상장사들에 거품이 많이 껴 있었는데 반 토막은 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바이오업체들의 경우만 해도 지금 적자상태이고 언제 매출이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몸값이 2000억원씩 되요. 말이 안 되지요. 공유경제나 암호화폐 등에도 버블이 많아요. 언젠가 농수산물 매입하는 일종의 공유 플랫폼 업체가 투자해달라고 찾아와선 1조원을 부르더군요. 매출을 보면 기껏 몇백억원 수준인데 혀를 내둘렀어요. 1조원이라는 가치 산정의 근거가 불투명해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Q : 당분간 회복은 어렵겠군요. A : 그럴 것 같아요. 조 단위 메가딜이 쌓여 있지만, 매도자 측이 눈높이를 낮추지 않으면 소화되기 어려울 거에요. 내년까지는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금융위기 때에는 금융부문만 문제였는데 지금은 실물부문에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만큼 더 심각해요. 특히 중국에서 생산하는 게 원활하지 않은데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가 없잖아요.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품목을 중국이 공급하지 못하면 가격은 올라가고 인플레이션이 또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지요. Q : 이런 상황에서도 투자와 회수를 계속 이어가고 있죠. A : 지난해 프리미엄 다이닝 레스토랑 아웃백스테이크코리아(아웃백)를 성공적으로 매각했어요. 올 들어 연성동박적층필름(FCCl) 제조기업인 넥스플렉스 매각도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지요. 티맥스소프트를 인수했고 세포치료제 전문기업인 메디포스트도 품에 안았지요. Q : 투자하실때 어떤 점을 보시나요. 대표적인 성공작인 아웃백의 경우엔. A : 성장성을 보지요. 개선해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인수할만 하다고 생각해요. 아웃백의 경우에도 음식료 업종이니 서비스 업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제조업이라고 봐야 되요. 서플라이 체인을 손봐서 제조업을 잘하도록 만든 게 아웃백을 키운 비결이지요. 주말에 방문하는 고객 수를 90% 이상 맞출 수 있도록 예측을 잘하고, 그에 맞게 식자재를 준비한 거에요. 그러면 재료가 남지 않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고객이 몰리는 시간대에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인건비도 절약되지요. 재고관리가 되니 냉동고기 대신 냉장고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음식의 질을 높일 수 있게 됐죠. 그게 먹혔지요. ━ 반도체 기술적 한계 직면… ‘파운드리+패키징’ 복합전략 구사해야 Q : 반도체시장의 공급망 재편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미일반도체협정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A :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2년간 엔화는 달러화에 비해 66%가량 절상됐어요. 졸지에 한국의 반도체에 경쟁력이 생겼지요. 1년 후 반덤핑방지조약인 미일 반도체협정이 체결됐어요. 협정에 따라 일본 반도체업체의 미국시장점유율을 60%에서 20%로 내리라고 했지요. 기회를 타고 한국의 반도체가 약진했습니다.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한 83년부터 87년까지 누적적자를 88년 한 해 동안 모두 만회했어요. 당시 메모리반도체를 석권하던 NEC도시바 등 일본 업체들이 무너졌지요. Q : 칩4의 출범이 임박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겠군요. A : 미국이 블록을 형성해 중국 배제전략을 펼치겠다는 건데 반도체는 분명 미국이 우위에 있으니 이 전략은 상당히 먹힐 겁니다. 파장은 내년 초부터 눈에 띄게 나타날 거에요. 지금은 중국이 반도체 재료 등을 일정 부문 확보하고 있어 문제 없겠지만 시진핑 3연임 이후엔 IT업계, 전자회사 등에서 실상이 드러날 거에요. 지금 반도체 공급망 문제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처럼 중국내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품귀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요. 세계 전자제품의 3분의 2가량을 중국에서 만들잖아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서방에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더니 러시아 천연가스가 끊기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지요. Q : 전략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는군요. A : 블록 간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여러 갈등상황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되죠. 문제는 중국시장인데 눈치를 잘봐서 팔아야죠. 사실 중국시장이 고립된다고 해서 예전 코콤(COCOM·대공산권전략물자 수출통제위원회) 규제 때처럼 메모리반도체 등에 대한 수출을 전면적으로 제한하진 못할 겁니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우회로를 찾아 팔건 다 팔았어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되는 러시아 미사일을 보니 서양의 반도체가 모두 들어있었다는 것 아니에요. 이런 문제는 굳이 공식화할 필요 없어요. 미국이 수출을 제한해도 기업으로선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있으니 정부는 모르는 척하면 됩니다. Q : 반도체산업은 정말 격변기에 돌입하는군요.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까. A : 반도체는 기술적 한계에 직면한 지 꽤 오래됐어요. 앞으로 10년 후면 더 이상 혁신이 어려워지고 가격경쟁만 치열해지면서 반도체산업 전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패키징과 같은 후(後)공정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전력소모를 줄이고 반도체 칩의 속도와 성능을 올리기 위한 첨단기술은 설계(Fabless), 제조(Foundry) 같은 전공정 만큼 후공정에도 필요합니다. ‘파운드리+패키징’ 복합전략을 구사해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요. 현재 패키징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 정도로 팹리스나 파운드리와 거의 비슷해요. 대만과 중국이 80%가까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톱10에 들어가는 패키징 전문회사 하나 없습니다. 후공정쪽에 투자하는 대기업들이 따로 나와야 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분야입니다. ☞진 회장은=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메사추세츠 주립대 전자공학과 석사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IBM왓슨연구소 연구원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사장·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스카이레이크 에퀴티 파트너스 회장 ▶KAIST 석좌교수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khsong@edaily.co.kr·권소현 이데일리 마켓IN센터장 juddie@edaily.co.kr

2022.09.24 10:00

5분 소요
이재용 부회장, 2주간 네덜란드 출장

CE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오는 7일부터 18일까지 네덜란드 등 유럽 출장길에 오른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 측과 만나 공급망을 확보하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관한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ASML은 전 세계에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기업으로,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EUV 장비 역시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EUV 장비는 초미세 반도체 회로 제작을 위한 필수 설비라,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EUV 장비 확보전이 치열한 상황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에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방문한 바 있다. 3일 재계 등에 따르면 전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등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이달 7∼18일 네덜란드 출장으로 재판 출석이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며 검찰 측에 의견을 물었다. 검찰 측이 “이견이 없다”고 하자 재판부는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것이고 검찰도 동의했다”며 출장 기간에 예정된 두 차례의 재판에 이 부회장이 불출석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재계 안팎에선 이재용 부회장 등 일부 경영인에 대한 사면 목소리가 여전한 분위기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전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기업인들이 세계 시장에서 더 활발히 뛸 수 있도록 현재 해외 출입국에 제약을 받는 등 기업 활동에 불편 겪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같은 기업인들의 사면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2022.06.03 07:46

2분 소요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한국은 패권 유지할 수 있을까?

국제 경제

2021년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한 기대감과 ‘반도체 겨울’이 도래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뒤섞인 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도체는 수출 ‘대들보’ 역할을 했다. 2021년 11월까지 반도체 누적 수출액은 1153억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새 28.5% 늘었고, 역대 최대 수출액인 2018년(1267억 달러)에 근접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관심과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반도체 공급망을 차지하기 위한 국가별 패권전쟁이 본격화했고 기업들은 앞다퉈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2022년에도 ‘반도체 강국’ 타이틀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22년 세계 경제가 회복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2022년 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서 점차 벗어나 경제활동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경제가 회복하면 반도체·석유화학 등 제조업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사이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인공지능·메타버스·자율주행 뜨면 반도체도 뜬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메타버스 등 다양한 기술 서비스가 성장궤도에 오르면 반도체 수요처 역시 확대된다. 수요산업에 대한 전망이 좋아서, 반도체는 2022년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산업 전반으로 번진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2023년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수요는 많아지는데 생산기업들의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삼성전자, TSMC(대만 반도체 제조사) 등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가 앞다퉈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지만, 수요처가 다변화하고 반도체 주원료인 웨이퍼 품귀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품귀 현상은 2~3년 간 지속될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이 지속 성장하고 반도체 품귀현상이 이어지면 ‘반도체 제조’의 키를 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공급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 2021년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왕좌’를 탈환했다. 시장조사업체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삼성전자가 2021년 3분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6%로 인텔(13%)을 3%포인트 앞질렀다. 메모리반도체로 1위를 탈환한 삼성전자는 2022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향해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신규 파운드리 공장 투자를 확정하면서 한국(경기 용인·화성·평택)과 미국(텍사스주 오스틴·테일러)을 잇는 시스템 반도체 벨트를 구축했다. 20조원에 달하는 신규 파운드리 투자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경제안보’로 내세우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 체제에서 삼성전자의 미국 내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규 파운드리 공장은 내년 착공에 들어가 2024년 양산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키워 시장 1위인 TSMC 추격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21년 2분기 기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4%로 2위지만 1위 TSMC(58%)와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양사의 파운드리가 모두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TSMC 역시 120억 달러(약 14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 ‘파운드리 확대’로 시스템반도체 속도 특히 미국 빅테크 기업과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등 고객사 확보 여부가 관건이다. 최근 애플,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과 GM, 포드 등 완성차 기업들이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면서 이들의 생산을 맡을 파운드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은 엔비디아, 퀄컴 등 반도체 설계 분야 최강자들이 군림하고 있어 팹리스사들의 수주 역시 파운드리로 몰릴 예정이다. 삼성전자와 TSMC 모두 미국 신규 공장에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미만 최첨단 파운드리 라인을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에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의 3㎚ 반도체 양산에 들어간다. 생산능력 확대와 초미세공정 기술력 우위를 선점해 TSMC를 따라잡는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 역시 2021년 ‘폭풍 성장’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1년 3분기 점유율은 7%로 전 분기(6.2%) 대비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전년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이 48% 늘었다. SK하이닉스는 향후 시장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회사 측은 2021년 3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메모리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앞으로도 시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수익성 확보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파운드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10월 17년 전 매각했던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키파운드리를 다시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파운드리 생산 능력을 2배로 확대하기 위해서다. 8인치 파운드리는 반도체 주원료인 웨이퍼의 크기가 200㎜라는 의미다.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8인치’에 집중하는 이유는 차량용반도체 수급난으로 8인치의 위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 대부분이 8인치 웨이퍼 기반 칩이다. 하지만 경쟁력을 잃어가던 8인치 웨이퍼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응용수요처가 다양해지면서 수요처의 요구에 따른 다품종 소량생산은 파운드리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파운드리 시장은 이미 TSMC와 삼성전자라는 절대강자들이 양분하고 있다. 이 두 기업에 비해 파운드리 역량이 부족했던 SK하이닉스는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8인치 집중’ 전략을 꺼낸 것이다. 두 기업의 캐시카우인 메모리반도체 가격 역시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 2021년 10월 급격하게 하락했던 메모리반도체 D램 가격은 반등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우려보다 빠르게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가격은 하락해도 수요 시장이 견조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성에는 타격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수요 시장 회복이 빨라지자, 증권가에서는 정보기술(IT) 공급망 차질이 완화되는 2022년 2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과 주가도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비메모리와 메모리반도체는 스마트폰·서버·PC 등과 일반적으로 실적, 주가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2021년 하반기에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 이슈 및 세트 교체 수요 단기 종료 등의 영향으로 PC 및 모바일 판매가 부진하고, 서버업체의 보유 재고는 일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2022년 2분기부터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 내년 메모리반도체 수요 역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반도체 자립’ 위한 국가별 패권 전쟁 본격화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21세기 석유’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별 패권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2015년부터 자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생산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파격 지원을 하고 있다. 미래 산업의 필수 요소인 반도체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장 유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가능해서다. 미국 하원 승인을 앞둔 ‘반도체생산촉진법(CHIPsforAmericaAct)’은 미국 내 반도체 시설투자액의 40%를 세액 공제로 돌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역시 반도체 공급망 자립을 ‘경제안보’로 인식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성장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반도체는 미·중 공급망 경쟁의 핵심이다. 중국은 칭화유니, SMIC, 화웨이 등을 통한 ‘반도체 굴기’를 꿈꾸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ASML,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등 글로벌 최상위권 반도체 장비기업이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인텔의 중국 공장 증설을 막기도 했다. 인텔이 반도체 공급 부족 심화에 따라 중국 청두 공장에서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생산을 늘리려 했으나 미국 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백악관은 아예 반도체 기업의 해외투자 심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내재화를 위해 나섰다. 최근 10㎚ 이하 초미세공정을 이용한 반도체 공장을 유럽 내에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EU는 인텔, TSMC 등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의 생산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보조금 지원과 세제혜택을 내걸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약 6000억 엔(약 6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 중 4000억 엔(약 4조원)은 TSMC의 구마모토현 신규 공장 건설에 지원하고 나머지 2000억 엔(약 2조원)은 마이크론과 키옥시아의 공장 증설을 지원할 예정이다. 반도체 시설투자가 ‘국가전’으로 번지면서 한국의 입장이 애매해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추가 투자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이 없으면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지고, 중국을 포기하면 가장 큰 시장을 잃게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국내에 수입된 반도체 장비 중 일본산 비중이 39.3%로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산이 21.9%로 2위를 기록했다. 2020년 국내 반도체 소재 수입 국가는 일본(38.5%)이 1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중국(20.5%), 미국(11.3%) 순이었다. 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2020년 기준 수입량의 93.8%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들인 국가는 중국이었다. 2020년 한국 반도체 수출액의 43.2%(약 412억 달러)는 중국이 차지했으며 홍콩은 18.3%(약 174억 달러)를 차지해 이들 중화권 국가가 한국의 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61.5%에 달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을 벗어난 반도체 공급망 ‘리밸런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연구원은 “반도체 산업은 중국과의 연계성이 매우 높아 미국의 대중정책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생산공정의 대중국 의존도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며 “핵심기술의 보안 및 보호 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공급망에 있어서 취약 분야는 미국·일본·유럽 등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여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2.01.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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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주문 이미 끝났다"…차량용반도체 수급난, 끝날 기미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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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이어진 차량용반도체 품귀현상이 내년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완성차 기업들이 선주문한 2022년 차량용 반도체 주문량은 이미 내년 반도체 생산능력을 뛰어넘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이미 2023년 주문을 접수 중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지난 27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사들은 2022년 차량용 반도체 생산능력 대비 약 20~30%가 초과 예약됐다. 반도체 병목현상은 올 초보다 더 심해졌다. 주문 후 평균 납품 기간(리드타임)은 올해 1월 기준 22.9주에서 11월 23.3주로 늘어났다. 특히 전력을 통제하는 전력관리반도체(PMIC)와 차량에 탑재된 IT 기기 각 부분에 입력되는 전기 신호를 제어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의 공급난이 심각하다. 국내 1차 이하 협력사와 거래하는 반도체 대리점들은 1년 6개월 이후 인도 물량을 주문받는 상황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완성차업체의 생산차질과 수출 타격으로 이어지자 완성차 업체들은 생존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지난 27일 6대기업 총수들과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게 “차량용 반도체에서 삼성과 현대차가 더 긴밀하게 협력하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지난 5월부터 차량용 반도체와 관련해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완성차업계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에 맡기던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거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GM은 NXP·퀄컴·TSMC 등 반도체 회사와 손잡을 예정이다. 포드는 세계 3위 파운드리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와 전략적 협력으로 기술 수직통합을 계획 중이다. 현대차·도요타·테슬라·폭스바겐 등 다수 완성차 기업은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다. 소수의 고성능 반도체를 중심으로 통합·집중하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역할이 분산된 반도체를 하나로 통합해 반도체수를 줄여 생산을 효율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테슬라·폭스바겐·닛산 등은 소프트웨어 재설계를 통해 다양한 차종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반도체를 개발해 공급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GM은 현재 사용 중인 반도체를 3개 제품군으로 통합해 다양성을 95% 줄일 계획이다. 스텔란티스는 폭스콘과 새로운 반도체 제품군 4종을 개발해 칩 수요의 80%를 대체할 예정이다. 완성차업계의 반도체 공급망 관리 체계 역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축소하던 JIT(Just-in-Time) 방식을 선호했다면 반도체 수급난 이후 핵심 부품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한국 완성차 기업들도 종전의 단기 주문 방식에서 장기간 수요예측·생산계획과 연계한 부품 수요를 하위 협력사에 순차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외 주요 기업은 1년 단위 주문 후 매 6개월마다 주문량 예측 및 수개월치의 확정 주문량을 판매자에게 제공하지만 국내 기업은 단기(3개월 내외) 물량을 구매 주문하는 관행이 지속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이후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전망된다”며 “장기간 수요예측을 협력사와 공유해 반도체 공급 흐름을 원활화하는 등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2.29 17:47

2분 소요
차량용반도체 품귀에 '10만대 판매' 사라졌다…그랜저 판매 40% ↓

자동차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이 직격타를 맞았다. 올해 판매량 10만대를 돌파한 모델이 5년 만에 나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품귀로 자동차 생산공장이 가동을 중단하고 감산에 들어가면서다. 내수 판매 1위 자리를 지켜온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의 판매량은 올해 들어 지난해 대비 40% 이상 줄었다. 그랜저를 생산하는 현대차 아산공장은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올해 여러 차례 가동을 중단했다. 5일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발표한 11월 누적 판매실적에 따르면 그랜저는 1월~11월 8만1344대가 팔리며 2위를 차지했다.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현대차의 소형트럭 포터다. 포터는 1∼11월 8만4585대가 팔렸다. 3위는 기아 카니발(6만7884대), 4위는 현대차 아반떼(6만4801대)였다. 완성차업계에서는 12월 실적이 아직 남았어도 올해 10만대 이상 판매되는 모델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0만대 판매를 돌파한 자동차가 없었던 해는 2000년 이후 2003년과 2004년, 2013년, 2016년 등 4차례뿐이었다. 2016년에는 경기침체와 현대차 파업 등이 영향을 미쳤다. 2000년 이후 연간 10만대 이상 팔린 모델은 7개다. 쏘나타가 14회로 가장 많았고 이어 아반떼 6회, 그랜저 5회, 모닝 3회 등이었다. 포터와 싼타페, SM5는 각 1차례씩 1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2011년에는 아반떼와 모닝, 그랜저, 쏘나타 등 4개 차종이 10만대 이상 팔렸다. 인기 차종뿐 아니라 대부분 차종의 내수 판매도 줄었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내수 판매량은 3월 이후 9개월 연속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올해 판매 목표를 416만대에서 400만대로 하향 조정했지만 업계에서는 400만대 돌파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올해 1~11월 현대차 누적 판매량은 355만2180대에 그쳤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은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해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최근 오미크론 변이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자동차업계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차량용 반도체의 주요 생산지인 동남아시아 지역의 코로나19가 확산해 반도체 공장이 멈추면 완성차업계 역시 밀려드는 주문에도 감산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완성차업계, 고수익 모델 판매 집중하고 반도체 자립 선언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으로 완성차업계의 생산원가 인상과 생산 차질로 인한 수익 하락을 예상한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반도체 구매 가격이 일괄적으로 10% 상승하면 생산원가는 약 0.18% 상승하고 완성차·부품업체들 모두 영업이익이 1%대 감소하는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차종의 생산이 줄면서 수익성 악화 역시 예견된 수순이다. 미국의 컨설팅업체인 알릭스파트너스는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올해 세계 자동차업계 매출 손실액을 기존 추정치 2100억 달러(248조4000억원)로 추산했다. 반도체 품귀로 수익성 하락이 예상되자 완성차업계는 고수익 모델 판매에 집중하는 등 수익성 방어에 나서고 있다. 수익성과 직결되는 반도체 확보를 위해 반도체 자체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 여러 번 반도체 자립 의지를 내비쳤다. 독일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기업에 맡겼던 반도체 개발 및 설계 역량을 직접 갖추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반도체 내재화를 위한 핵심 역할은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맡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말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기술과 사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 역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와 직접 협력하며 생산을 위한 공급망 확보에도 열을 내고 있다. 포드는 미국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글로벌파운드리’와 반도체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포드 자동차에 특화된 칩을 설계하고 글로벌파운드리에서 이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GM도 퀄컴·NXP반도체와 함께 차량용 반도체 공동 개발과 생산을 위한 전략적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2.05 14:00

3분 소요
'반도체 강국'에 인재가 없다...서울대, 반도체 인재양성·팹리스 생태계 강화 나서

산업 일반

"공정 기술은 있지만 설계를 할 인재가 없다" 한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 업체들의 성장을 막는 큰 걸림돌은 인재난이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이런 한국 반도체 시장을 두고 "좋은 식재료와 음식을 만들 요리사는 있지만 좋은 레시피가 없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반도체를 생산할 시설과 공정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설계 등 원천기술이 없다는 지적이다. 메모리반도체와 공정기술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는 이제야 태동하고 있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산업 현장에 투입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호소해왔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1~2020년 연평균 반도체학 석‧박사 졸업생은 60명, 전자공학과는 1000명이다. 이마저도 대부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으로 향한다. 중소형 기업이 대부분인 한국 팹리스에는 인재가 오지 않고, 인재가 없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자연스럽게 인재양성소인 대학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학내에 산재해있는 시스템반도체 관련 전문기구와 연구집단을 한데 모아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SIPC)를 지난 10월 출범했다. SIPC는 서울대에 축적된 전문 역량을 결집하고 팹리스 생태계와 연결해 팹리스 기업의 성장을 돕는 생태계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인재양성과 자금 지원, 정책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9일 SIPC는 시스템반도체 상생포럼인 ‘테크비즈콘서트 2021’을 열고 팹리스 생태계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각 기업별 네트워킹과 멘토링을 진행했다. 이날 이혁재 SIPC 센터장을 만나 한국 팹리스가 마주한 문제와 성장방안에 대해 물었다. ━ 지난 10월 SPIC 출범…팹리스 성장 돕는 허브 역할 반도체 강국 한국에서 팹리스가 성장하지 못한 이유 가 무엇인가요. "우리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한 결과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인력 수급과 자금력 부족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경쟁국가는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신기술 스타트업 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면서 내수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전자기업들이 해외 공장으로 이전을 하는 등 중소형 기업들이 수요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품귀 현상이 불거지면서 한국 중소형 팹리스의 생산 주문이 대형 팹리스나 수요기업들 주문의 뒷전으로 밀리는 것 또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소형 기업이 대부분이라, 자금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 보입니다. "자금력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지능형반도체를 하나 개발하는 데는 200억원가량 비용이 발생합니다. 중소형기업이 감당하기엔 초기 비용이 너무 높죠. 양산에 들어가기 전 IP를 확보하고 이를 설계하고 시제품을 제작하는 데 비용이 필요합니다. 오늘 포럼에 참석한 ‘파두’라는 기업도 초기 자금의 문턱을 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제품 개발에만 몇 백억이 드는 만큼 수 십 만개, 수 백 만개 시장이 확보돼야 지속성장이 가능해집니다. 팹리스가 수요시장을 찾는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죠. 이후 양산에 들어가면 양산 물량만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는 투자 또는 정책자금 대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팹리스 창업기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 SIPC는 초기 R&D에 수반되는 비용을 경감하는데 지원사업의 방향을 두고 있습니다."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파운드리 기업의 공정라인이 부족해지면서 팹리스 기업들의 시제품 제작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와 생산의 분업화가 확실한데요. 팹리스가 반도체를 설계하면 파운드리가 하나의 웨이퍼에서 여러 고객사의 반도체 시제품을 제작하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를 반드시 거치게 돼있습니다. 팹리스들에게 R&D나 시제품 제작을 위해 반드시 MPW가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파운드리 기업들의 생산라인이 부족해서 팹리스의 R&D나 시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반도체 인재난 해결을 위해 대학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반도체 전공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수도권 정원 제한이 있어서 대만이나 미국처럼 한 산업군의 정원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의 절반이 전기‧전자 및 정보통신 분야 전공자입니다. 전체 공학계열의 60%를 반도체 유관 전공 분야로 보고 있지만,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만 보더라도 전공자 161명 중 반도체만 전공하는 학생은 30~40명뿐이거든요. 이 학생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건 아직 선택지가 아닐 수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험실 중심 창업활동의 성공모델을 발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전공자 교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비전공자가 대학이 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다양한 형태의 인증(마이크로 디그리)을 해주고 적정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반도체 학사학위를 취득하게 해주는 교육과정을 통해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자금지원에도 나서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팹리스 기업의 반도체 개발 비용구조를 살펴보면 IP 확보에 30%, 설계에 30%, 시제품 제작에 40%를 쓰고 있습니다. 팹리스 창업기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 초기 R&D에 수반되는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요. 2020년 중기부-서울대-ARM 간 기업 체결을 통해 팹리스 창업기업에게 무상으로 ARM의 IP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총 14개 기업이 이 같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IP만큼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는 EDA(반도체 설계 자동화)툴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글로벌 EDA툴 업체인 시놉시스사와 케이던스사의 EDA툴을 18개 기업에게 지원했습니다. 수요시장 연계를 위해 스마트팜, 데이터센터, 미래모빌리티 등 다양한 산업과 팹리스 기업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향후 SIPC 계획이 궁금합니다. "내년에는 글로벌 역량 강화와 수요연계 네트워킹 고도화, 파운드리 생태계 강화를 중점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기업들이 겪고 있는 MWP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묶음 발주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공용 IP 개발과 확산을 주도할 IP 뱅크 사업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서울대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컨설팅 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2.02 13:49

4분 소요
美·日 ‘반도체 기업 모시기’…세금 90% 환급해주고 투자비 절반 지원

산업 일반

‘30년간 세금 90% 감면’, ‘공장 설립 투자금의 절반 지원’ 미국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생산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파격 지원을 하고 있다. 미래 산업의 필수 요소인 반도체 패권을 차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장 유치를 통해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가능해서다. 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지로 테일러시를 선택한 결정적 이유도 텍사스주와 테일러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일러시는 30년간 최대 90%의 재산세를 환급하기로 했고 테일러시 독립교육구는 3억 달러(약 3500억원)의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테일러시 윌리엄슨카운티도 첫 10년간 재산세 90%를 환급하기로 했고 이후 10년은 85%를 환급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에 텍사스주는 텍사스 산업 펀드(TEF)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2700만 달러(약 320억원)의 보조금도 지급할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 연방의회가 ‘칩스 포 아메리카’라는 반도체 기업 지원 관련 법이 통과되면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공장 부지 선정 당시 텍사스주뿐 아니라 애리조나주와 뉴욕주 등 후보 5곳을 놓고 고민했다. 이 중 텍사스주 테일러시가 기존 오스틴 공장과 가까워 기반시설 공유가 가능하고, 부근에 첨단 IT기업이 대거 들어서고 있어 인프라 조성 차원에서도 가장 큰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텍사스주가 이처럼 파격적인 혜택을 내건 이유는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주지사와 존 코닌 상원의원은 지난 24일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에 수차례 감사 표시를 했다. 이번 투자로 직접적인 일자리만 2000개가 창출된다. 현지 언론은 2년간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건설노동자나 자재 수급자 등 간접 일자리 창출에 대한 기대감도 표하고 있다. ━ ‘반도체 격전지’ 떠오른 미국…파운드리 경쟁 본격화 삼성전자뿐 아니라 TSMC, 인텔 등 반도체 공룡들의 연이은 시설 투자로 미국이 반도체 산업 격전지로 떠올랐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설계와 장비, 수요 등 반도체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15대 반도체 업체 중 8개가 미국 회사다. 하지만 ‘생산’에서 뒤처졌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생산은 한국과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부터 반도체 품귀현상이 발생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됐다. 미 정부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친 ‘자립’을 결정했다. 일본 역시 반도체 공급망 자립을 ‘경제안보’로 인식하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약 6000억 엔(약 6조원)을 배정할 예정이다. 이 중 4000억 엔(약 4조원)은 TSMC의 구마모토현 신규 공장 건설에 지원하고 나머지 2000억 엔(약 2조원)은 마이크론과 키옥시아의 공장 증설을 지원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용인에 조성되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클러스터 추진에 최대 2조6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대표 기업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10년 동안 120조원을 용인 클러스터에 투입해 공장 4개를 가동할 예정이다. 첫 번째 공장은 2024년 초 착공할 계획이며, 2025년 첫 번째 공장의 양산 준비가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경쟁국가에 비해 지원금이나 세금감면 혜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정부가 약속했던 '반도체 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정부가 소위 'K-반도체 전략‘을 제시하고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건 지난 5월이지만 여전히 발의 된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강화하는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놓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은 타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 유치를 위한 보조금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한국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자국 기업 밀어주기’라는 시비가 불거질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 조심스러울 수 있다”며 “정부가 기존 반도체 특별법을 국가전략핵심산업특별법으로 확대해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1.25 21:22

3분 소요
"파운드리 시설투자에도 웨이퍼가 없다" 반도체 부족 2023년까지 이어져

산업 일반

산업 전반으로 번진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2023년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AI와 자율주행, 데이터센터 등 수요는 많아지는데 생산기업들의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가 앞다퉈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지만, 수요처가 다변화 되고 반도체 주 원료인 웨이퍼 품귀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품귀 현상은 2~3년 간 지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시장 전망 세미나’에 모인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는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와 이세철 씨티그룹 상무,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 등 업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반도체 시장을 전망했다. 안기현 전무는 반도체 시장이 지속 성장하면서 반도체 공급기업이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 전무는 “7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은 TSMC와 삼성전자 2개사만이 생산 가능한 만큼 반도체 공급과잉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모두 공급자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파운드리 업체의 존재감과 가격협상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철 상무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전망과 공정기술 전환에 대해 발표했다. 이 상무는 “지난 10년간 PC와 모바일 수요가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서버 수요가 가장 중요하다”며 “AI·자율주행·메타버스를 중심으로 수요처가 다변화되면서 반도체 수요는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측면에서는 D램도 낸드플래시처럼 미세공정을 넘어 셀을 적층하는 3D로직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저장 공간을 늘리기 위해 회로 선폭을 좁히고 반도체 소자를 집적화하는 미세 공정 기술을 고도화해왔다. 하지만 칩 속도가 빨라질수록 미세공정에는 한계가 있어 셀을 위로 쌓는 적층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이 상무는 “차세대 D램인 DDR5는 기술이 고도화 돼도 칩 크기는 15~20% 더 커진다”며 “D램도 낸드플래시처럼 셀을 위로 쌓는 3차원 구조로 공정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반도체가 미세화 경쟁에서 적층경쟁으로 넘어가면 한국기업의 경쟁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상무는 “한국은 그동안 미세공정에서 대만보다 약했지만 적층기술이 도입되면 한국기업들이 강한 증착이나 에칭 기술이 중요해지면서 한국 기업의 퀀텀점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영우 센터장은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파운드리 업체들이 앞다퉈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나섰지만, 반도체 주 원료인 웨이퍼 부족으로 반도체 품귀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센터장은 "웨이퍼 공급 업체들은 생산시설 투자에 보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어 신규 시설투자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공급량은 올해 한계치에 다다를 것"이라며 "웨이퍼 수급이 어려워 반도체 품귀현상이 2023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im.yeongeun@joongang.co.kr

2021.10.27 19:25

2분 소요
코로나 풀리며 전 세계가 물자 부족으로 골머리, 해법은?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글로벌 공급 부족이 가속화하고 있다. 애초 에너지 수요 급증에 따라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발생했지만, 이젠 거의 전 분야에서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 생산·공급까지도 모자라지면서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월 25일의 추수감사절과 12월 성탄 특수를 앞두고 장난감·의류의 공급 부족과 물류 정체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선물 없는 명절’을 맞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선 심지어 화장지도 재고가 줄고 있다. 화장지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에 커피를 비롯한 기호품까지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 ━ 위드코로나로 촉발된 ‘퍼펙트 스톰’ 에너지 수급 불안정에 따른 정전 사태도 레바논을 비롯한 일부 한계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칩의 부족으로 반도체가 필수적인 각종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까지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중국은 석탄 부족에 따른 전력난으로 산업체 가동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 전력난은 반도체 생산 차질과 종이 부족까지 유발하고 있어 파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는 2년이 다 돼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 부족, 위드코로나 확산에 따른 수요 증가와 관련 기대감의 상승, 그리고 인력 부족 등에 따른 물류 대란을 꼽을 수 있다. 거기에 산업현장과 시장 감당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국가의 무리한 그린 경제화도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인재에 더해 이상 기후로 인한 일부 지역의 자연재해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이 요인들이 대부분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펜데믹은 이미 8분기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익숙한 상황이다. 이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부족은 상당 기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해왔다. 방역에 따른 인력 수급 부족도 마찬가지다. 위드코로나는 이미 지난해 12월 시작된 코로나 백신 접종이 2021년 들어 궤도에 오르면서 지난 상반기부터 올해 가을쯤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른 글로벌 수요 증가도 당연히 예상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측되던 상황이 한꺼번에 도래하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수요와 공급, 코로나라는 천지인 삼박자가 우연히 다 맞아떨어지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했다.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퍼펙트 스톰은 원래 기상학 용어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들이 우연히 겹치면서 증폭돼 발생하는 기상 사태’를 가리킨다. 개별적으로는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요인들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해 서로 결합하면서 예상 밖의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되는 자연 현상이다. 주로 드문 기상 현상이 서로 결합하면서 발생한 강력한 폭풍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의미로도 쓴다. 퍼펙트 스톰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 후 개별적으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인이 복수로 동시에 터지면서 영향력이 대대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2011년 6월에는 월가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론자로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국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글로벌 경제가 2013년 퍼펙트 스톰을 겪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 용어는 더욱 유명해졌다. 루비니 교수는 2013년이 되면 유럽 발 재정위기로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서 일부 국가가 이탈하고, 미국 경제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성장이 둔화하며,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률도 함께 하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그는 미국 경제가 단기간에 걸쳐 성장세를 기록한 뒤 곧바로 다시 불황에 빠지는 더블딥(W자형 불황)을 우려했다. 더블 딥의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소비 침체와 정부 지출 확대에 따른 과도한 재정적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지나치게 빠른 자금 회수 등이 꼽힌다. 기업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다시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도 경제는 소비 부족으로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늘어난다. 아울러 지나친 자금 공급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자율을 높여 돈을 회수하면 경기가 다시 불황에 접어들 수 있다. 루비니의 부정적인 예측은 미국 연방준비의 대처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재정위기 극복 노력 등으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 가장 큰 피해 지역은 아프리카 빈곤국, 식량부족 우려 결국 당시엔 각국이 필사의 대처로 퍼펙트 스톰을 어느 정도 예방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2년 가까이 겪은 지금,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경제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예기치 못한 퍼펙트 스톰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식량 부족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기아 사태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케냐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부족 사태 등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9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나라 기후는 우기인 3~6월과 나머지 건기로 나뉘는데 지난 2년간 우기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망쳤다. 비가 내리더라도 폭우로 이어져 농작물이 떠내려갔다. 이런 이상 기후로 농작물 생산량이 70~90%나 줄었다. 가축도 먹을 풀이 없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원조 식량 배분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이런 현상은 인근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고(故)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신생국 남수단 등 아프리카의 상당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개발원조(ODA) 정책의 하나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아프리카·중동 등에 지원하는 한국산 쌀 공급을 늘려야 할 이유다. 아일랜드의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10월 16일 발표한 2021 세계기아지수(Global Hunger Index) 보고서를 보면 소말리아가 기아 분야에서 ‘극히 위험’ 국가로, 예멘·중앙아프리카공화국·차드·콩고민주공화국·마다가스카르가 ‘위험’ 국가로 지목됐다. 대부분 정치적 분쟁과 코로나19를 동시에 겪은 나라다. 컨선월드와이드와 세계기아원조는 기아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2006년부터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영화 ‘모가디슈’의 배경으로 수십 년 동안 내전을 겪은 데 이어 가뭄 등 자연재해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기아 국가로 지목됐다. 이 나라에선 영양결핍 인구 비율이 59.5%이며,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1.7%에 달해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아이들은 굶고 병들어서 목숨을 잃고 있다. 악명을 떨쳤던 소말리아 해적 활동이 최근에는 잠잠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상황이 악화하면서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덴만에 파병된 한국 청해부대도 기본 임무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한국 선박을 지키는 일이다. 브라질은 1세기 만의 심각한 가뭄으로 올해 커피 생산량 급감이 예상된다. 올해 커피 생산은 자연 주기적으로도 줄어들 예정이었지만 여기에 서리 및 가뭄에 따른 수확 감소로 인해 품귀현상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더불어 해상 화물 운송료 증가와 컨테이너 부족 등이 겹치면서 브라질 커피는 심각한 공급난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원두 수출국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커피 공급난은 전 세계 카페에서 판매되는 원두와 이로 추출한 커피음료의 가격 상승은 물론, 커피를 원료로 한 다양한 가공식품의 공급량과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브라질의 가뭄은 전력난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브라질 전기 생산에서 수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올해 가뭄에 따른 수자원 부족은 이 나라 에너지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9년 브라질의 에너지 소비구조는 석유 38%·수력 29%·재생에너지 16%·천연가스 11%·석탄 5%·원자력 1% 순이다. 이에 따라 가뭄은 수력 발전량을 줄이고 국가 전체 에너지 수급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국민에게 절전을 호소하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하면 전기를 시간제로 배급할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브라질 에너지 장관은 정부 기관에 에너지 사용을 20% 줄이라고 지시했다. 세계적인 산유국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대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나이지리아도 액화천연가스(LPG)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국내 LNG 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지난 4월에서 7월 사이 60%가 치솟았으며, 이에 따른 가격 장벽이 높아지며 수많은 주민이 가스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수많은 가정과 식당은 가스 대신 숯과 화목 등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가스 가격 상승의 이유 중 하나로는 글로벌 공급 부족이 꼽힌다. 나이지리아는 에너지 수출국이지만 정유 관련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LNG를 비롯한 완제품은 수입에 의존한다. LNG 사태는 나이지리아 법정통화인 나이라의 가치 하락과 정부의 LNG 세금 신설 등으로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은 물론 주민 건강도 우려된다고 BBC는 지적했다. ━ 레바논 에너지 부족사태, 예고된 인재(人災) 동지중해 중동국가로 오랫동안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구가하며 ‘중동의 진주’로 불렸던 레바논은 최근 심각한 전력난과 식수난까지 겹치면서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레바논은 온갖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대표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퍼펙트 스톰 국가로 꼽힌다. 레바논은 1943년 독립 당시 맺은 국민대협약과 1979년 내전 종식을 위한 타이프 합의에 따라 마론파 기독교와 수니파 이슬람·시아파 이슬람·드루즈교 신자 등이 권력을 각각 분할해 겉으로는 종교·종파별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런 권력 나눠먹기는 무책임 행정으로 이어져 정부는 각종 위기 앞에 무능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정부 마비로 이어졌다. 2020년 8월 4일에는 베이루트 항구에 보관 중이던 2750톤 이상의 질산암모늄이 대폭발하면서 항구 기능이 마비됐으며,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과 복구 작업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BBC는 레바논이 식수와 의약품 그리고 연료 부족의 우려가 크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지난 18개월 동안 경제 위기를 겪어왔으며, 그 결과 인구의 4분의 3이 가난으로 내몰아 넣었다는 지적이다. 자국 화폐가치 하락과 생필품 가격 상승 등으로 국민은 현재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대규모 시위로 표출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정부는 연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화력 발전소 운영을 중단했으며, 이 때문에 전력 공급이 줄어 수시 정전은 물론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전기 없이 사는 신세가 됐다. 상당수 국민은 석유로 가동하는 사설 발전회사나 가정용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사설 발전회사는 암거래 등으로 확보한 기름을 바탕으로 고가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병원 등 필수 시설은 정전에 대비해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용 상승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은 최근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 베이루트에 보내 정치적인 지원을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아파 시위대에 괴한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국내 상황이 더욱 혼잡해지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유엔의 레바논 인도적 지원 조정관인 나야트 로치디는 “수백만 명이 겪고 있는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연료 위기와 식수 공급 문제를 깊이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마비된 정부는 뚜렷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한때 금융·유통·관광업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레바논은 코로나19와 글로벌 공급 부족, 그리고 정치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실패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 문제는 코로나19가 쉽사리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신 접종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재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인구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해 항체를 형성하면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은 새로운 변종의 출현과 돌파 감염의 확산 등으로 인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거기에 백신 접종 뒤 코로나19 사망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위드코로나 시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류는 이미 백신 접종과 치료제 보급을 비록한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얼마나 만연하고, 보건과 방역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지를 목격했다. 앞으로 위드코로나를 통한 경제 회복 과정에서 글로벌 사회가 얼마나 자국 이기주의를 앞세워 각축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10.23 18:00

8분 소요
'반도체 자립' 선언한 완성車업계, 파운드리와 협업 성사될까

산업 일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반도체 자립'을 선언하고 있다. 그동안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에 맡겨오던 반도체 개발과 설계를 내재화하고 생산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에 넘긴다는 의미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자체 해결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 및 자율주행 기술 도입 등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반도체 직접 개발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 "내재화 필요성" 완성차업계, 반도체 자체 개발 움직임 21일 자동차업계 등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 등으로 올해 전 세계 자동차업계의 피해 범위는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는 올해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매출 손실이 연초 예상치인 610억 달러(약 71조원)보다 3배 이상 많은 2100억 달러(약 24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완성차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공급난 대처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반도체 직접 개발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차량용 반도체를 최대 10배가량 더 소모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미래 모빌리티 사업의 핵심인 전기차와 자율주행 차량에 들어가는 고성능 반도체 및 전력 반도체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자체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는 차량에 직접 설계한 자율주행 반도체를 일부 적용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도 자율주행차용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일본 도요타의 경우 지난해 4월 부품 자회사인 덴소와 반도체 개발사 미라이즈 테크놀로지를 설립하고,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완성차업체에서도 반도체 개발 움직임이 감지된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반도체 내재화에 대한 목소리는 꾸준히 들려온다. 지난 13일(현시시간)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사장)은 현지 기자들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반도체 제조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현대차그룹이 직접 생산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반도체 내재화와 관련해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12월 차량용 반도체 분야 개발 역량 확보를 위해 그룹 내 계열사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이에 대해 현대모비스 측은 "향후 소프트웨어와 반도체가 합쳐진 최적화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해 오트론의 반도체 부문을 인수한 것"이라며 "차량용 반도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장홍창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대차가) 반도체 자체 개발을 하게 된다면 기술의 난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부 마이크로콘트롤러유닛(MCU) 및 전력 반도체를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며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AEC-Q100(자동차 부품 신뢰성 평가규격) 인증을 받아서 양산해야 하는 만큼 기술력이 필요한 반도체 제품에 대해선 국내 파운드리 기업 중 삼성전자 정도와 협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차량용 반도체 생산 꺼리는 파운드리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선 완성차업체들의 다음 스텝은 생산을 위해 파운드리와 협업하는 일이다. 문제는 반도체 자립에 나서는 게 완성차업계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스마트폰업체 등도 최근 반도체 내재화에 나서고 있다. 파운드리업체들이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지만 공장 증설까지는 2~3년 정도가 소요돼 당장 급증하는 물량을 감당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욱이 차량용 반도체는 공정이 까다로운 데다, 기존 PC나 모바일용 칩을 생산하던 파운드리업체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라인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PC나 스마트폰용 반도체보다 제조, 품질관리가 훨씬 까다롭지만 수익률은 낮아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삼성과 TSMC는 운영 중인 생산라인의 품목을 당장 바꾸기 어렵고,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아직까지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9% 정도로 규모가 작아, 파운드리업체가 비용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에 대비해 국내외 반도체 공급망을 더욱 체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 18일 발표한 산업동향 보고서에서 일본 도요타 사례를 언급하며 이 같이 밝혔다. 도요타는 수년간 위기 대응 시스템과 부품 공급망을 개선했으며, 정부 지원으로 일본 르네사스, 대만 TSMC 등 반도체업체와의 협력 체계를 강화했다. 그 결과 1차 반도체 공급난에도 도요타는 올해 상반기 약 500만대를 판매했다. 전 세계 상위 5개 완성차업체 중 지난해 상반기 대비 판매량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임수빈 기자 im.subin@joongang.co.kr

2021.10.21 06:00

3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