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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풀리며 전 세계가 물자 부족으로 골머리, 해법은?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자연재해가 낳은 식량·에너지 공급난, 대처 부족에 장기화 조짐 보여

 
 
아프리카 토고의 아동이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 예방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희망친구 기아대책]
 
글로벌 공급 부족이 가속화하고 있다. 애초 에너지 수요 급증에 따라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발생했지만, 이젠 거의 전 분야에서 공급 부족이 심화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식량 생산·공급까지도 모자라지면서 동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기아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월 25일의 추수감사절과 12월 성탄 특수를 앞두고 장난감·의류의 공급 부족과 물류 정체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선물 없는 명절’을 맞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일부 지역에선 심지어 화장지도 재고가 줄고 있다. 화장지를 비롯한 각종 생필품에 커피를 비롯한 기호품까지 공급 부족이 심각하다.  
 

위드코로나로 촉발된 ‘퍼펙트 스톰’

에너지 수급 불안정에 따른 정전 사태도 레바논을 비롯한 일부 한계 국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반도체 칩의 부족으로 반도체가 필수적인 각종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차까지 생산과 공급에 차질이 예상된다. 중국은 석탄 부족에 따른 전력난으로 산업체 가동 중단 사태를 맞으면서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 전력난은 반도체 생산 차질과 종이 부족까지 유발하고 있어 파장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는 2년이 다 돼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급 부족, 위드코로나 확산에 따른 수요 증가와 관련 기대감의 상승, 그리고 인력 부족 등에 따른 물류 대란을 꼽을 수 있다. 거기에 산업현장과 시장 감당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일부 국가의 무리한 그린 경제화도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런 인재에 더해 이상 기후로 인한 일부 지역의 자연재해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이 요인들이 대부분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펜데믹은 이미 8분기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익숙한 상황이다. 이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동시 부족은 상당 기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작용해왔다. 방역에 따른 인력 수급 부족도 마찬가지다.  
 
위드코로나는 이미 지난해 12월 시작된 코로나 백신 접종이 2021년 들어 궤도에 오르면서 지난 상반기부터 올해 가을쯤 시작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른 글로벌 수요 증가도 당연히 예상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측되던 상황이 한꺼번에 도래하면서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수요와 공급, 코로나라는 천지인 삼박자가 우연히 다 맞아떨어지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했다.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은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퍼펙트 스톰은 원래 기상학 용어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들이 우연히 겹치면서 증폭돼 발생하는 기상 사태’를 가리킨다. 개별적으로는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요인들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해 서로 결합하면서 예상 밖의 엄청난 위력을 갖게 되는 자연 현상이다. 주로 드문 기상 현상이 서로 결합하면서 발생한 강력한 폭풍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의미로도 쓴다.  
 
퍼펙트 스톰은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 후 개별적으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인이 복수로 동시에 터지면서 영향력이 대대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2011년 6월에는 월가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론자로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국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글로벌 경제가 2013년 퍼펙트 스톰을 겪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이 용어는 더욱 유명해졌다. 루비니 교수는 2013년이 되면 유럽 발 재정위기로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서 일부 국가가 이탈하고, 미국 경제의 거품이 붕괴하면서 성장이 둔화하며,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률도 함께 하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그는 미국 경제가 단기간에 걸쳐 성장세를 기록한 뒤 곧바로 다시 불황에 빠지는 더블딥(W자형 불황)을 우려했다. 더블 딥의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소비 침체와 정부 지출 확대에 따른 과도한 재정적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지나치게 빠른 자금 회수 등이 꼽힌다. 기업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다시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려도 경제는 소비 부족으로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늘어난다. 아울러 지나친 자금 공급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이자율을 높여 돈을 회수하면 경기가 다시 불황에 접어들 수 있다. 루비니의 부정적인 예측은 미국 연방준비의 대처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재정위기 극복 노력 등으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가장 큰 피해 지역은 아프리카 빈곤국, 식량부족 우려  

결국 당시엔 각국이 필사의 대처로 퍼펙트 스톰을 어느 정도 예방했다. 하지만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2년 가까이 겪은 지금, 새로운 포스트 코로나 경제가 시작되면서 글로벌 공급 부족 현상이 예기치 못한 퍼펙트 스톰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식량 부족으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기아 사태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케냐는 심각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부족 사태 등 국가적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9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 나라 기후는 우기인 3~6월과 나머지 건기로 나뉘는데 지난 2년간 우기에도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망쳤다. 비가 내리더라도 폭우로 이어져 농작물이 떠내려갔다. 이런 이상 기후로 농작물 생산량이 70~90%나 줄었다. 가축도 먹을 풀이 없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원조 식량 배분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이런 현상은 인근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그리고 고(故)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신생국 남수단 등 아프리카의 상당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개발원조(ODA) 정책의 하나로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아프리카·중동 등에 지원하는 한국산 쌀 공급을 늘려야 할 이유다.  
 
아일랜드의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10월 16일 발표한 2021 세계기아지수(Global Hunger Index) 보고서를 보면 소말리아가 기아 분야에서 ‘극히 위험’ 국가로, 예멘·중앙아프리카공화국·차드·콩고민주공화국·마다가스카르가 ‘위험’ 국가로 지목됐다. 대부분 정치적 분쟁과 코로나19를 동시에 겪은 나라다. 컨선월드와이드와 세계기아원조는 기아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2006년부터 세계기아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소말리아는 영화 ‘모가디슈’의 배경으로 수십 년 동안 내전을 겪은 데 이어 가뭄 등 자연재해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기아 국가로 지목됐다. 이 나라에선 영양결핍 인구 비율이 59.5%이며,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1.7%에 달해 나이지리아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아이들은 굶고 병들어서 목숨을 잃고 있다. 악명을 떨쳤던 소말리아 해적 활동이 최근에는 잠잠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상황이 악화하면서 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덴만에 파병된 한국 청해부대도 기본 임무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한국 선박을 지키는 일이다.  
 
브라질은 1세기 만의 심각한 가뭄으로 올해 커피 생산량 급감이 예상된다. 올해 커피 생산은 자연 주기적으로도 줄어들 예정이었지만 여기에 서리 및 가뭄에 따른 수확 감소로 인해 품귀현상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더불어 해상 화물 운송료 증가와 컨테이너 부족 등이 겹치면서 브라질 커피는 심각한 공급난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원두 수출국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커피 공급난은 전 세계 카페에서 판매되는 원두와 이로 추출한 커피음료의 가격 상승은 물론, 커피를 원료로 한 다양한 가공식품의 공급량과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브라질의 가뭄은 전력난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브라질 전기 생산에서 수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올해 가뭄에 따른 수자원 부족은 이 나라 에너지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도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19년 브라질의 에너지 소비구조는 석유 38%·수력 29%·재생에너지 16%·천연가스 11%·석탄 5%·원자력 1% 순이다. 이에 따라 가뭄은 수력 발전량을 줄이고 국가 전체 에너지 수급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브라질 정부는 국민에게 절전을 호소하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하면 전기를 시간제로 배급할 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브라질 에너지 장관은 정부 기관에 에너지 사용을 20% 줄이라고 지시했다.  
 
세계적인 산유국으로 아프리카 대륙 최대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나이지리아도 액화천연가스(LPG)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국내 LNG 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지난 4월에서 7월 사이 60%가 치솟았으며, 이에 따른 가격 장벽이 높아지며 수많은 주민이 가스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수많은 가정과 식당은 가스 대신 숯과 화목 등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가스 가격 상승의 이유 중 하나로는 글로벌 공급 부족이 꼽힌다. 나이지리아는 에너지 수출국이지만 정유 관련 시설이 충분하지 않아 LNG를 비롯한 완제품은 수입에 의존한다. LNG 사태는 나이지리아 법정통화인 나이라의 가치 하락과 정부의 LNG 세금 신설 등으로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은 물론 주민 건강도 우려된다고 BBC는 지적했다.  
 

레바논 에너지 부족사태, 예고된 인재(人災)

지난 8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열린 시위 모습. [AFP=연합뉴스]
 
동지중해 중동국가로 오랫동안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구가하며 ‘중동의 진주’로 불렸던 레바논은 최근 심각한 전력난과 식수난까지 겹치면서 국가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레바논은 온갖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대표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퍼펙트 스톰 국가로 꼽힌다. 레바논은 1943년 독립 당시 맺은 국민대협약과 1979년 내전 종식을 위한 타이프 합의에 따라 마론파 기독교와 수니파 이슬람·시아파 이슬람·드루즈교 신자 등이 권력을 각각 분할해 겉으로는 종교·종파별 정치적 균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런 권력 나눠먹기는 무책임 행정으로 이어져 정부는 각종 위기 앞에 무능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정부 마비로 이어졌다. 2020년 8월 4일에는 베이루트 항구에 보관 중이던 2750톤 이상의 질산암모늄이 대폭발하면서 항구 기능이 마비됐으며, 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과 복구 작업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BBC는 레바논이 식수와 의약품 그리고 연료 부족의 우려가 크다고 보도했다. 레바논은 지난 18개월 동안 경제 위기를 겪어왔으며, 그 결과 인구의 4분의 3이 가난으로 내몰아 넣었다는 지적이다. 자국 화폐가치 하락과 생필품 가격 상승 등으로 국민은 현재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대규모 시위로 표출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런 상황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정부는 연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화력 발전소 운영을 중단했으며, 이 때문에 전력 공급이 줄어 수시 정전은 물론 하루 중 상당 시간을 전기 없이 사는 신세가 됐다. 상당수 국민은 석유로 가동하는 사설 발전회사나 가정용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사설 발전회사는 암거래 등으로 확보한 기름을 바탕으로 고가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병원 등 필수 시설은 정전에 대비해 발전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비용 상승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은 최근 석유를 실은 유조선을 베이루트에 보내 정치적인 지원을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시아파 시위대에 괴한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국내 상황이 더욱 혼잡해지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유엔의 레바논 인도적 지원 조정관인 나야트 로치디는 “수백만 명이 겪고 있는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연료 위기와 식수 공급 문제를 깊이 우려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을 정도다. 그런데도 마비된 정부는 뚜렷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한때 금융·유통·관광업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레바논은 코로나19와 글로벌 공급 부족, 그리고 정치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국제사회의 대표적인 실패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더욱 문제는 코로나19가 쉽사리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백신 접종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재감염이 확산하고 있다. 인구 대부분이 백신을 접종해 항체를 형성하면 코로나19가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은 새로운 변종의 출현과 돌파 감염의 확산 등으로 인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거기에 백신 접종 뒤 코로나19 사망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위드코로나 시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류는 이미 백신 접종과 치료제 보급을 비록한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얼마나 만연하고, 보건과 방역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지를 목격했다. 앞으로 위드코로나를 통한 경제 회복 과정에서 글로벌 사회가 얼마나 자국 이기주의를 앞세워 각축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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