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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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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4개사, ‘건강친화기업’ 인증 획득

산업 일반

현대자동차그룹 4개사가 임직원의 건강 증진을 위한 노력을 인정받았다.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위아·현대로템이 보건복지부 및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주관하는 ‘건강친화기업’ 인증을 획득했다고 12일 밝혔다.‘건강친화기업 인증제도’는 임직원의 건강 관련 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정부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로, 지난해 처음 시행됐다.현대차·현대모비스·현대위아·현대로템은 ▲건강친화경영 ▲건강친화문화 ▲건강친화활동 ▲직원만족도 등 4개 부문으로 이뤄진 올해 심사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인증을 획득했다. 이로써 건강친화기업에 선정된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지난해 선정된 기아를 포함해 총 5곳으로 늘어났다.현대차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응급의료, 한양방 진료, 작업환경 및 정신건강 관리, 재활 복귀 프로그램 등 체계적인 건강지원과 더불어 여성·장년·협력사 근로자 등 취약 근로자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건강형평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건강 문제로 근로 능력을 잃은 직원을 대상으로 생계보조금 제도, 사외 재활 등도 추진해 복직 시 적응에 어려움이 없도록 돕고 있다.인증 심사에서 우수 기업으로 선정돼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은 현대모비스는 보건관리조직을 확대하고 건강정보 및 인프라를 데이터화해 임직원 건강관리 고도화를 추진하는 등 보건관리체계 확립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강통합관리시스템 및 전국 사업장에 비치한 체성분 분석기 등을 통해 전 임직원이 매년 건강 증진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자기주도형 건강관리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현대위아는 응급처치 및 건강검진 제도, 건강관리실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금연 캠페인 추진, 하지정맥류 치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등 근로자들의 건강 증진을 위한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건강친화제도 정착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근로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수렴 결과를 제도 개선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현대로템은 근로 시간 관리제도, 건강 휴가 지원제도 등 법적 지원제도의 규정을 명문화해 시행하고 있다. 건강친화제도에 대한 경영방침을 수립하고 전담 조직을 구성·운영해 임직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건강친화 활동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창원 공장에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는 사내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 예방 프로그램, 산재 복귀 프로그램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4개사는 이번 인증 획득을 통해 정부로부터 ▲건강친화적 직장환경 조성을 위한 컨설팅 및 교육 프로그램 제공 ▲여가친화기업 인증과 같은 정부인증제도 참여 시 가산점 부여 등의 혜택을 받게 될 예정이다.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현대차그룹 계열사 임직원 모두가 직장에서 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23.12.12 18:00

2분 소요
국민은행, ‘건강친화기업’ 인증 획득…보건복지부장관 표창 수상

은행

KB국민은행은 지난 21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주관하는 ‘2022년 건강친화기업 인증사업’에서 인증을 획득하고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고 22일 밝혔다. 올해 처음 실시된 ‘건강친화기업 인증제도’는 건강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에게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해 직장 내 문화와 환경을 건강친화적으로 조성하고, 직원 스스로 건강관리를 적극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 기업을 선정한다. 국민은행은 4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인증 심사단으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아 인증을 획득했다. 또한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캠페인과 모바일 앱 등을 활용한 다양한 관리 프로그램을 구성해 자발적인 직원 참여를 유도한 점을 높게 평가받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외에도 국민은행은 직원들이 스트레스 수준을 스스로 점검하고,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받는 등 다채로운 상시관리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도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joos2@edaily.co.kr

2022.12.22 14:40

1분 소요
“올해 첫 복지부 인증 ‘건강친화기업’은?”…장관 표창도 수여

유통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가 국내 식품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보건복지부 ‘건강친화기업’ 인증을 받는다. 21일 현대그린푸드는 건강친화적인 근무환경과 문화를 조성한 노력을 인정받아 건강친화기업 인증을 획득하고,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도 함께 수여받음을 알렸다. ‘건강친화기업’은 직장 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해, 근로자들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 지원하는 기업에게 정부가 부여하는 인증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평가 일환으로 ‘건강친화기업’ 제도를 지난해 시범 운영을 했고, 올해 처음 인증한 것이다. 현대그린푸드 측은 이번 평가에서 ▲건강친화경영 ▲건강친화문화 ▲건강친화활동 ▲직원만족도 등 4개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 건강친화기업에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특히, 건강친화활동 부문에서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제휴해 체력측정, 영양상담, 운동교실 등 체력증진 프로그램을 배치해 임직원 만족도를 높였다”며 “체력증진 프로그램 운영 결과, 참여자 평균 40.6%가 국가 공인 체력등급이 상승했고, 혈압과 체질량지수(BMI)가 감소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2020년부터 ‘건강경영’ 문화 정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기업 내 전문인력으로 구성한 안전보건관리 조직을 개편하고, 전사 차원의 건강친화제도 예산을 매년 정기 편성해 금연, 다이어트, 건강식단 등 임직원 건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현대그린푸드는 생활습관 영역에서 식습관 기반 영양상담 서비스를 통해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당뇨·다이어트 등 개인 맞춤형 건강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임직원을 위한 건강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전국 약 130개 병원과 협력해 진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임직원 근로환경 개선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매년 안전·보건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임직원 대상 건강 증진 프로그램과 캠페인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며 “소비자 식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회사라는 목표 아래 그 가치를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edaily.co.kr

2022.12.21 10:06

2분 소요
김상국 비타민하우스 대표

CEO

비타민하우스 김상국 대표는 자본금 3000만원으로 시작해 매출 1500억원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남이 해보지 않은 길을 거침없이 내달렸기 때문에 이런 성공 스토리가 가능했다 #. 2000년 8월, 대기업을 다녔던 30대 후반의 김상국 대표는 “우리끼리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비타민하우스라는 조그마한 건강식품 업체를 설립했다. 자본금은 달랑 3000만원. 해외에서 건강식품을 수입해 파는 업종이었다. 이곳에 취업한 5명의 직원은 모두 고졸 출신. 대졸자 누구도 이런 곳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식품을 파는 업체는 많았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남들과 달라야만 했다. 약국을 노리기로 했다. 그해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된 것을 눈여겨봤다. “의사의 처방전으로 약을 제조하는 데 약사들이 시간을 빼앗기더라. 우리가 영양사를 고용하고 약국 한 켠에 건강식품을 전문으로 파는 코너를 만들면 될 것 같았다.” 김 대표의 말이다.지금으로 따지면 ‘숍인숍’ 형태다. 약국 한 켠에 건강식품 상담 코너를 만들어보자고 계획했다. 건강식품을 전문적으로 상담해주는 영양사도 고용했다. 약사들은 생소한 시스템에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 소개로 회사 설립 1개월 만에 전라도 광주에 있는 약국과 1호점 계약을 맺었다. 1개월 만에 건강식품 코너에서 올린 매출이 1500만원이었다. 약사는 물론 김 대표도 결과물에 놀랐다. 소문은 광주 시내에 있는 약국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에 처음으로 약국과 건강식품 상담코너가 함께 들어선 최초의 사례가 시작됐다. “우리는 약을 팔러 다니는 영업사원이 아니다. 약국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주는 컨설팅 회사라는 컨셉트로 영업을 했고, 그게 성공했다.” ━ ‘숍인숍’ 약국 영업과 홈쇼핑 판매로 성공 #. 2001년 5월 12평짜리 오피스텔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CJ39쇼핑(현 CJ오쇼핑) 전무입니다. 거기가 비타민을 수입해서 파는 곳입니까.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갈까요, 대표가 이곳으로 오시겠습니까?” 전화를 끊은 후에도 김 대표는 어안이 벙벙했다. “왜 우리같은 조그마한 곳에 전화를 했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 대표는 광주의 성공을 발판으로 서울 약국 공략에 나서고 있던 중이다. 서울 가락동에 마련한 12평짜리 오피스텔이 집이자 사무실이었다. 직원 몇 명과 함께 지내는 남자냄새 풀풀 나는 곳에 홈쇼핑 임원이 오는 것은 막고 싶었다.“우리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미팅 약속이 잡힌 날 홈쇼핑 본사로 찾아갔다. 전무는 물론 담당 부장, 과장, MD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김 대표를 만난 홈쇼핑 전무는 “귀사가 수입한다는 비타민을 홈쇼핑에서 팔고 싶다”는 파격 제안을 했다. 해외에서 오래 생활했던 전무는 한국에서도 비타민 제품의 대중화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함께 미팅에 참여했던 김 대표와 직원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홈쇼핑에서는 비타민 제품을 팔지 않겠습니다”였다.파격적인 제안에 No라는 답변이 나오는 황당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홈쇼핑 전무가 잠시 후 말을 이어갔다. “이유가 뭡니까?” “비타민을 수입하면 저희와 계약이 되어 있는 서울 약국 100여 곳에 납품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가 100여 곳의 약국을 모두 촬영해서 홍보해드리겠습니다. 비타민을 홈쇼핑에서 팔아봅시다. 언제 판매를 할 수 있습니까?” “캐나다 업체와 수입 계약을 맺은 것은 맞지만, 언제 들어올지는 모릅니다. 4~5개월 정도면 한국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우여곡절끝에 2001년 9월 27일, 홈쇼핑 사상 비타민 제품이 처음으로 판매됐다. “2시간 동안 1억8000만원이 팔렸다. 나는 최대 판매액이 3000만원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다”고 김 대표는 말했다. 2002년 월드컵 기간에는 2시간 만에 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록적인 판매고였다. 김 대표는 “당시 소비자들이 모두 TV 앞에 앉아서 축구를 기다렸기 때문에 홈쇼핑 매출이 높았다”고 설명했다.2000년 5월 설립해 15년 만에 1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비타민하우스 김상국(50) 대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을 일으키면서 회사를 성장시켰다. “우리들은 최초라는 기록을 많이 썼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비타민이 홈쇼핑을 통해 판매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약국에 숍인숍 형태로 건강식품 판매 코너를 만든 것도 김 대표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2008년부터 시작한 약국간판 교체사업으로 비타민하우스 로고가 붙은 약국 간판이 전국에 1000여 곳이나 된다.백화점에 비타민 판매 부스를 만든 것도 비타민하우스가 시초였다. 약국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선결제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업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대 제약사들도 약사들에게 선결제를 요구한 적이 없다. 우리는 갑과 을이 아니라 약국과 동반성장하는 동반자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선결제를 정착시킬 수 있었다”고 김 대표는 웃었다.광주에서 숍인숍 1호점을 낸 후 2개월 만에 서울에 도전한 것도 신의 한수였다. 전국에 2만여 개의 약국이 있는데, 현재 6000여 개의 약국이 비타민하우스와 계열사인 더닥터스 가맹점으로 등록되어 있다. “2000여 개 가맹점 약국이 목표였는데, 전국 약국의 30%를 가맹점으로 두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어느 것 하나 믿기 힘든 사건이고 성과다. 비타민하우스는 그렇게 신선한 시도를 하는 혁신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업계의 관행을 과감하게 깬 것이 비타민하우스의 성공 비결인 셈이다. 광주에서 비타민하우스의 위상은 상당히 높다.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보건복지부장관표창 등 3개의 장관 상을 받았고, 성실납세기업으로 국세청장 상도 받았다. 비타민하우스는 기부도 많이 하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 대표는 “기부는 하면 할수록 중독이 된다”며 웃었다.설립 초기 캐나다, 호주, 독일 등에서 비타민을 수입해 판매에 그쳤지만, 이제는 제조부터 유통까지 책임지는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비타민하우스가 제작하는 제품만 700여 가지나 된다. 수출도 하고 있다. “아직 수출 매출액은 미미하지만, 수출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됐다. 싱가포르가 첫 수출국이었고, 중국·인도네시아·러시아 등에 수출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10월 전남 담양에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인증을 받은 제조공장 ‘비타민하우스알앤피’를 준공했다. 비타민하우스 제2 공장도 계획 중이다. ━ 중국 웨이하이시 면세구역 입점 준비 대표와 고졸직원 5명에 불과했던 임직원은 5월 현재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계약직은 한명도 없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설립 초기 입사했던 고졸 출신 직원 5명 중 2명은 여전히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기업으로 키우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얼마 전에는 고졸 출신의 직원을 채용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전남 완도 출신인 김 대표는 한국외국어 대학교에서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전공했다. “김 양식을 하는 집이었고,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 홀로 5남 2녀를 키우셨으니 집이 가난했다”고 회고했다.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지하철에서 신문배달을 했던 최초의 대학생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생활했다.ROTC 장교로 제대한 후 들어간 곳은 미원(현 대상)그룹 식품 영업본부였다. “그때는 인도네시아를 가고 싶어서 입사했다”며 웃었다. 그의 바람대로 인도네시아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지만 몇 개월 만에 본사로 복귀해야만 했다. “인도네이사를 제2의 고향으로 알고 뼈를 묻으려고 했는데, 그게 안되서 무척 섭섭했다”고 말할 정도.그가 건강식품 분야에 눈을 뜬 것은 3년 동안 근무했던 건강사업부 경력 때문이다. “내 일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다. 2008년 부서에서 경험한 건강식품 몇 가지 아이템을 가지고 나와 대리점 사업을 시작한 것이 비타민하우스의 시초다.“제약회사에서도 비타민이 나온다. 비타민하우스가 이런 장벽을 어떻게 이겨냈나?”라는 질문에 “거대 제약사에 비해 자본과 인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제품의 질과 함께 콘셉트로 승부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비타민하우스 이전 비타민 제품은 어른 2알, 아이 1알 복용이 대부분이었다. 김 대표는 연령대별 맞춤형 비타민 제품을 선보였다. 남성, 여성, 노인, 임산부용 비타민 시리즈 제품을 내놓아 히트를 쳤다. 2006년 월드컵 기간에는 ‘박지성 비타민’을 출시해 대박을 터트렸다.올해 김 대표는 새로운 도전에 집중할 계획이다. OEM 계약이 첫 번째다. 다른 기업의 건강식품을 제조해주는 사업이다. 성과도 좋다. “얼마 전부터 타기업 제품의 OEM 생산을 시작했는데,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우리는 건강식품의 모든 것을 다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중국 시장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7개 제품을 수출 허가를 받았고, 중국 웨이하이시의 면세구역에 점포를 낼 계획이다.김 대표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13년 째 만들어 오고 있는 ‘Vitamin’이라는 제목의 사보를 보여줬다. “설립 3년 만에 사보를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고객들에게 건강에 대한 제대로 된 콘텐트를 알려주기 위해서다”고 강조했다. 건강식품을 만드는 회사의 CEO답게 소비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글 최영진 기자·사진 신인섭 기자

2016.05.31 09:29

6분 소요
[응급의료 대안 제시한 분당차병원] ‘순환당직제·직접의료지도’로 의료공백 줄여

의료

응급의료시설 부족과 서울로의 과밀화 현상은 한국 의료계가 풀어야 할 고질적인 문제다. 급성 폐렴으로 응급실을 찾았지만 전문의가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거나, 밀린 환자가 많아 침상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는 뇌졸중 환자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환자 생명의 촉각을 다투는 119 구급차도 예외는 아니다. 전문의·중환자실·응급실 부족 문제로 응급환자들이 다른 의료기관으로 재이송되는 건수는 지난해 기준 1만2000여 건. 그나마 이 중 5%는 다음 병원에서도 거절당했다. 정부가 응급실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응급의료 이송 정보망’도 구축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지방의 경우 아예 응급의료 공백이 발생하기도 한다.이런 가운데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공조와 응급의료 순환당직제 등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공백을 최소화한 차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분당차병원은 먼저 야간과 휴일에 응급의료 순환당직제를 도입했다. 많은 응급환자가 전문의 부족으로 다른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런데 분당 차병원은 다수의 의료진을 당직제로 순환근무시켜 거의 모든 종류의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또 응급환자들의 증세가 중증이거나 응급 수술·시술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병원 내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의료진에게 실시간으로 환자 알림서비스를 제공하고, 24시간 응급의학과 주치의 제도를 통해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취통증의학과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응급수술 관리 등의 응급 의료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응급환자들에 대한 의료진의 진료 기피도 최소화했다는 자체 평가다.아울러 지역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응급환자 발생시 초기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무선통신망을 활용해 현장에 있는 119 대원들에게 의학적 지식을 전수하는 한편 의료적 판단을 조언하는 직접의료지도 체계를 지난 2013년 경기도 최초로 도입했다. 분당차병원 관계자는 “1995년 개원이래 안전하고 신속한 응급의료 서비스를 통해 경기도 응급의료의 발전에 기여하고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왔다”며 “야간·휴일 응급의료 순환당직제 사업 우수기관 선정, 직접의료지도 체계의 도입 등 경기도 내 응급질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분당차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이 같은 공로와 성과를 인정받아 11월에 열린 ‘제11회 응급의료전진대회’에서 응급의료 유공자 부문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 대회는 응급의료 발전을 위한 화합과 교류의 행사로, 응급환자의 생명을 위해 노력하고 국내 응급의료 체계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 응급의료 종사자와 단체에게 표창 및 격려하는 자리다. 분당차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옥준 교수는 “앞으로도 지역센터로서 체계적인 응급의료 시스템을 운영하고, 지역 내 응급의료기관과 119 구급대 등과 유기적으로 힘을 모아 경기도 지역 응급의료 체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2015.12.13 19:26

2분 소요
정남식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의료

국내 최고의 의료 서비스 기관이자 첨단 의료기술 선도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이 올해 설립 130년을 맞이했다.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 제중원을 뿌리로 두고 국내 1호 의사면허 배출, 국내 최초의 표준의료 국제공인(JCI인증), 최초의 로봇 수술 등 수없이 많은 최초의 의료 업적을 쌓았다. 최근엔 국내 최고의 역량을 글로벌 무대에서 펼치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의료 기술, 의료 서비스, 의료 시스템을 통한 ‘의료한류’를 선도해 가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의 수장인 정남식 연세의료원장을 만났다. 뜻깊은 광복 70주년과 더불어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이 최근 중국 신화진 그룹과 함께 칭다오(靑島)에 세브란스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검진 센터나 전문병원이 아닌 대형 종합병원 규모로는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다. 특히 올해는 1885년 개원한 ‘제중원’을 모태로 한국 최초의 근대의학이 시작된 세브란스 병원이 설립 130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연세대 의료원으로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의료한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8월 11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만난 정남식(63)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하 의료원장)은 세브란스의 역사적인 중국 진출을 ‘이식(移植)’이라고 표현했다. 선교사로부터 수혜 받은 한국의 의료산업이 이제 다른 나라 국민을 보살피고 진료할 정도로 실력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로 들렸다. “130년 전 선교사님들이 세운 연세대학교의 문화와 시스템을 다시 다른 나라에 심는다고 생각합니다. 몸의 일부를 말이죠. 이는 ‘백성을 구제하라’는 제중원 정신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세브란스의 사명이 만들어낸 훌륭한 성공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도면 그대로 짓게 됩니다. 청도에 인술(仁術)이라는 열매의 씨를 다시 뿌리게 되는 겁니다.” ━ 중국에 세브란스병원 옮겨 심는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이를 위해 지난 7월10일, 중국 칭다오에서 신화진그룹과 ‘합자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는 연세의료원과 신화진그룹이 지분구조 50대 50으로 설립하는 합자회사를 통해 신화진그룹에서 추진중인 라오산구 국제생태건강도시 프로젝트 개발부지 내에 1000개 병상규모의 종합병원을 건립한다는 내용이다. 정 의료 원장은 “연세의료원은 일체의 현금 투자 없이 설계도, 브랜드, 자문 등 유무형 자산을 현물로 투자하며 신화진그룹은 토지를 제공하고 현금을 투자하게 된다”고 밝혔다. 연세의료원은 향후 칭다오세브란스병원 운영을 통해 배당수익뿐 아니라 병원 운영 지원 및 브랜드 사용료 등 추가 수익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칭다오세브란스 병원이 들어설 칭다오시는 인구가 900만명이고 인근 산둥성 인구는 1억 명에 달한다. 공공의료가 강한 중국에서 고급 민간 의료서비스가 자리를 잡을 경우 인근의 하북성, 하남성, 강소성 등 3억 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의 고객이 될 것으로 세브란스 측은 기대하고 있다.중국은 인구 1000명 당 의사, 간호사 수가 1.5명, 1.7명으로 우리나라의 2.2명, 10명에 비해 열악하다. 최근엔 식습관 변화와 노령화, 국민의료비 증가, 고급 의료서비스 수요 증가 등으로 인해 칭다오세브란스의 전망은 상당히 밝다. 중국 정부 역시 민간 및 해외자본 유입을 통한 민간병원 설립을 장려하고 있어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의 건립은 순조롭게 진행 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세대 의료원 주도로 ‘의료한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셈이다.세브란스병원의 해외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1년 중국 중대지산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장쑤성 이싱 시에 2016년 완공예정으로 VIP건강검진센터를 건립 중에 있다. 루이츠그룹, ENN그룹과도 계약을 맺고 중국 내 VIP검진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세브란스병원이 해외 진출에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1962년 국내 최초로 국제진료소를 개소해 운영해 오면서 해외 환자를 다룬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정 의료 원장은 이와 관련해 “2014년 한해 우리병원을 찾은 환자만 1만 명에 달합니다. 국내 기관 중 단연 최고로 글로벌 세브란스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실제 세브란스는 가장 많은 해외환자 유치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우리나라 종합병원들은 해외 환자 유치에서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특히 가족이 많고 지출이 큰 이슬람 환자 유치에 적극적이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모스크(이슬람 기도실)를 설치하거나 할랄 푸드(이슬람 음식)를 제공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세브란스도 마찬가지이다. 정 의료원장은 “고객 유치라는 생각이 아니라 환자 치료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어떤 종교라도 환자는 치료해야 합니다. 우리 병원은 이미 중동 국가들의 대사관 및 주요 기업 주재원 특히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 임직원 진료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편의를 위해 아랍 코디네이터를 배치하고 할랄 푸드 식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 ‘의료 경영인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 평가 정남식 의료원장은 2014년 8월, 연세대학교 의료원장에 취임했다. 정 의료원장은 그와 전주고 동창인 정갑영 연세대학교 총장과 함께 ‘일 만들기 좋아하는 인물’로 회자된다. 그만큼 아이디어도 많고 추진력도 강하다. 세간에는 정 의료원장을 ‘의사로서 많은 업적과 실력도 쌓았지만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조직의 비전과 목표 등 장기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의료 경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정남식 의료원장은 “제게 맡겨진 일에 감사하고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매출 2조원을 바라보는 연세의료원의 CEO로서 정 의료원장은 지난 1년간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일은 무엇일까? 정 원장은 “그동안 흔들렸던 암병원의 운영 체계가 정착됐다는 점”을 꼽았다. 1969년 국내 첫 암전문 진료기관으로 개원한 연세암병원은 세계 최고의 암병원으로 알려진 미국 MD앤더슨암센터와 자매결연을 맺은 국내유일의 암병원이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맨 앞에 위치한 암병동은 수년간이나 확장공사를 하면서 비용도 많이 들어가 병원 경영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 의료원장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수준 높은 서비스로 빠르게 안착해 이미 경영 정상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다. 연세암병원 곳곳에는 정남식 의료원장의 아이디어가 녹아있다.신축한 연세암병원에 들어서면 하얀 도자기로 덮인 거대한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기둥의 이름은 유명 조각가인 이재준 작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빛의 기둥’이다. 정 의료 원장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낮과 밤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빛의 기둥을 생각했어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빛의 기둥’이 암 환자들에게 완치의 희망과 약속이라면 그 옆 병원 출입구 전면에는 생명을 구한다는 의미의 ‘노아의 방주’가 자리잡고 있다. 삼나무로 만들어진 이 조형물은 배의 앞부분을 형상화했으며 연세암병원이 환자들의 확실한 길잡이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했다. 정 의료원장은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는 정서적 안정감과 함께 위로를 주는 동시에 병원에는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재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런 그의 긍정적인 답변은 ‘의료 경영인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증명하는 듯 했다.정 의료원장은 암병원과 함께 융합진료센터 개설에도 힘을 쏟았다고 했다. 융합진료센터는 많은 환자수를 보이는 간, 척추질환, 수면장애 진료를 한 곳에서 받도록 한 통합진료구역으로 환자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진료와 더불어 연구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부연구비 수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는 1000억 원의 연구비를 수주해 전국에서 연세의료원은 가장 많은 연구비를 수혜 받았다. 연세대학교가 정 의료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정남식 의료원장은 병원 밖으로는 지역병원과의 ‘상생’을 중시했다. 그는 “285곳의 지역병원과 협력관계를 맺고 최신 의학정보 제공과 함께 급성기 치료가 끝난 환자를 지역 내 우수 협력 병원으로 전원(轉院)시켰습니다. 지난해는 입원 환자 4500명, 외래환자 6000명 정도를 전원 시켰죠”라고 말했다. 게다가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한 희귀난치성질환자 600명에게 후원기관에서 기부를 받도록 연계하기도 했다. ━ 재난대응 의료안전망 사업단 출범시켜 정남식 의료원장의 탁월한 능력은 올해 메르스 사태에서 더 빛났다. 메르스는 올해 의료업계뿐 아니라 우리사회의 최대 이슈였다. 세브란스 병원은 다양한 위험을 감수하고 메르스 치료병원을 자원해 귀감이 되기도 했다. 이는 전국 병원 중 가장 많은 음압격리병실을 자체 예산으로 보유한 덕분이었다. 세브란스에는 총 81병상의 음압격리병실이 있다. 세브란스가 국내 최초로 JCI인증을 받기위해 자연스럽게 준비해 둔 것이라고 한다.정 원장은 “캐나다는 2003년 맹위를 떨쳤던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사스(SARS)’ 종료 선언 2주 뒤 다시 사스 환자가 발생해 앞서 유행 때 발생한 수만큼 감염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상시적인 감염질환 통제센터를 운영하고 병문안 문화에 대한 시민 의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메르스 사태 이후 세브란스는 감염예방을 위한 방문객 제한사항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하루 2시간씩 두 차례만 면회 시간을 정해 문병하고 면회장소도 병동에 있는 휴게공간에서만 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응급실의 경우 각 진료 구역 내의 혼잡과 감염예방을 위해 환자등록정보가 표시된 바코드를 지참한 보호자 1인만 출입할 수 있도록 출입을 강화했다.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포괄간호제를 추진하고 있다. 보호자나 간병인이 아닌 전문 간호사가 24시간 환자를 돌보게 함으로써 환자와 보호자 모두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정부가 추진중인 포괄간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의견을 밝혔다. “동의합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제 생각에는 10년을 목표로 매년 10%씩 전문간호인력과 재정을 확충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석했던 류성 세브란스병원 홍보과장이 의견을 덧붙였다. “10만 명의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데 사실 간호 인력은 충분합니다. 매년 1만1000명의 신규 간호인력이 배출되고 정원 확대가 되면 2만 명을 배출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된 업무에 지친 연간 8000명의 간호사가 퇴직하고 있습니다. 간호 수가와 근무환경 개선도 반드시 필요합니다.”정 의료원장은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재난의료를 정착시키는 데 매진하겠다는 구상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를 위해 안전행정부, 정몽구 재단과 함께 국내 최초로 재난대응 의료안전망 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응급의료의 상위 개념이 재난의료입니다. 메르스와 같은 재난상황을 통해 민관협력의 중요성이 드러난 것 아닙니까! 처음 사업단을 만들 때 정몽구 회장님이 ‘국가가 할 일을 왜 연세의료원이 나서서 하느냐’고 묻더군요. 정 회장께 민관의 협력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드렸어요. ‘정몽구 재단을 설립한 것도 국가가 다 하지 못해 만드신 것 아닙니까?’라고 말씀 드렸더니 수긍하시더군요.” 재난대응 의료안전망 사업단 출범 과정을 설명하는 정 의료원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 선진 의료기술 그리고 ‘U세브란스 3.0’ 정 의료원장 취임 이후 의료기술 측면에서도 세브란스 병원의 장점이 더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세브란스 병원은 로봇수술을 통한 첨단 암치료로 유명하다. 2005년 국내 최초로 미국 인튜이티브 서지컬사의 로봇수술장비 ‘다빈치’를 도입해 전립선암, 갑상선암 분야에서 점차 위, 대장, 간 등 소화기암과 부인암, 폐암 등을 치료했다. 심장혈관수술 분야에서도 국내에서 처음 로봇수술을 적용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도입 8년 만에 세계 최초로 1만 건의 로봇 수술을 달성했고 미국 의료진이 방문 교육을 청할 만큼 기술도 뛰어나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사는 아예 아태지역 교육센터로 세브란스병원을 지정하기도 했다. 정남식 의료원장은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100건이 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2011년에는 한국 로봇수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로봇수술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에는 미관을 생각해서 갑상선암 환자들이 로봇수술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연세암병원은 로보틱 IMRT(세기조절 방사선 치료기)를 아시아 최초로 도입했다. 6개의 관절로 구성된 로봇에 광자선 에너지를 부착해 치료 효율을 극대화한 치료기이다. 관절 로봇이기에 치료 방향에 제약이 없고 전신 치료도 가능하다. 치료 중 실시간으로 종양의 위치를 추적해 종양에만 균등한 방사선량을 집중시킬 수 있다. 세브란스 의료진은 2014년 6월에는 3D 프린터를 이용한 두개골 성형수술에 성공하며 첨단기술을 추가하기도 했다.선진의료기술과 함께 정남식 의료원장이 각별히 챙기는 것이 ‘U세브란스 3.0프로젝트’이다. 정 의료원장은 “연세의료원의 정보화 마스터플랜 3단계 중 1단계 프로젝트가 2016년 상반기 완료를 목표로 진행 중입니다. 무엇보다 자체 인력을 활용해 초기 개발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금은 병원 인력에 외부 인력을 추가해 협업하고 있죠”라고 설명했다.U세브란스 1단계 목표는 ‘사용자 화면 최적화’이다. 의료진이 화면을 보는 시간을 단축시켜 진료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2단계에선 모니터 크기나 해상도에 상관없이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 3단계는 원내 전화, 메신저 등의 기능을 추가해 교직원의 업무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복안이다. 정 의료원장은 “내부 사용자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닌 국내외 의료기관에서도 선진화된 병원정보시스템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진화시킬 예정입니다. 해외 진출 시 가치창출에도 기여할 것이고요. 대형병원에 적용할 수 있는 U세브란스 외에 작은 병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보급할 계획도 수립하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정남식 의료원장은 취임 후 교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에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왔다. 그의 말이다. “세브란스병원은 직원들에게 일하기 편한 직장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 배우기 좋은 직장이죠. 전문 의료진인 전공의들에게는 많은 이론 및 임상 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항상 시간이 부족할 겁니다. 하지만 세브란스를 나서는 순간 국내 어디를 가든 탄탄한 전문의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모든 교육과 연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간호사들도 전문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자체 간호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특수대학원에 진학하면 학비감면, 해외연수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내 병원 중에는 최초로 간호부원장직을 신설해 간호사들의 고충과 건의사항을 전담해 처리할 수 있도록 행정 조직도 다 갖췄습니다.”정남식 의료원장은 세브란스의 미래 비전과 관련해 “사랑과 신뢰의 상징이 되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친절하고 깨끗하고 실력을 갖추는 건 기본이고요. 신뢰는 안전, 친절, 전문성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중요한 건 서번트 리더십으로 환자를 섬겨야 한다는 점입니다.” 의료 원장으로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역시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였다. 그는 “세브란스는 2011년부터 4년 연속 국가 고객만족도(National Customer Satisfaction Index, NCSI) 1위를 차지했어요. 종합부문 역시 세브란스보다 서비스가 좋다고 평가 받은 곳은 호텔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세브란스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호텔도 있어요. 대형마트, 소매 판매점들 보다도 서비스 평가가 높습니다”라며 뿌듯해했다. ━ 서비스 강화해 사랑과 신뢰 이어간다 이처럼 환자와 서비스에 집중해 온 세브란스도 작년엔 ‘경영 위기설’이 퍼지기도 했다. 경영 위기는 세브란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종합병원들마다 되풀이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석한 세브란스 병원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큰 폭으로 영상수가가 인하됐고 선택진료비 및 상급 병실료 개선, 초음파 검사 급여화 등으로 의료수입이 계속 줄어드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진료 패러다임의 변화, 새로운 먹거리 창출, 운영효율화가 필요합니다. 중증·희귀난치질환 치료중심으로의 전환, 중국 및 중동 등의 의료 해외시장 개척,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 기술 이전의 의료 산업화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 점에서 앞서 중국 청도의 세브란스 병원 설립은 해외시장 개척의 적극적인 실천인 셈이다. 정 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영리법원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대할 것이 아니라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가 들어와야 서비스가 더 좋아집니다”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정남식 의료원장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세브란스 병원에 몸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기자에게 “세브란스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치료할 수 있도록 첫 한국인 의사를 배출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 1호부터 7호까지 의사면허는 모두 세브란스 졸업생이다. 정 의료원장은 세브란스 130년 사가 남긴 의미와 관련해 “세브란스 병원은 한국 근대의학의 요람이고,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을 위한 기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세브란스가 세워질 당시는 국운이 기울던 구한말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둔 많은 세브란스 구성원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세브란스병원 약제국 직원이었던 이갑성 선생은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중 한 명이었다. 세브란스의전 세균학교수였던 스코필드 교수는 일제의 수원 제암리교회 참사를 해외로 알리는 역할을 했는데 이 역시 세브란스병원의 보호와 지원 속에 이뤄졌다.지난 1년간 탁월한 성과를 낸 정남식 연세대학교 의료원장은 합리적인 경영마인드와 균형잡힌 사고를 갖춘, 국내에서 몇 안되는 전문 의료경영인으로 꼽힌다. 그의 두 어깨에 연세의료원의 성장은 물론 한국 의료산업의 또다른 미래가 걸려있음은 물론이다.- 글 유부혁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 정남식 의료원장은 누구? - 대통령 주치의 지낸 의사이자 탁월한 경영자 정남식 의료원장은 의사로서 뛰어난 실력에다 의과대학장, 의학전문대학원장, 세브란스병원장을 차례로 거치며 학교와 병원 행정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쌓은 보기 드문 인물이다. 정남식 의료원장의 의사로서의 실력은 ‘국내 최고 심장전문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및 가족 주치의’라는 타이틀이 말 해준다. 대한심장학회 이사장, 아시아태평양 심장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학계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폐렴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했을 당시 중환자실 옆 의사실에서 쪽잠을 자며 치료에 전념한 건 유명한 일화다. 올해 3월에는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피습당하자 신속히 이송, 수술하도록 직접 챙기는 등 위급상황에서 빠른 대처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경영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다. ━ 설립자 세브란스와 그의 후손들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1838~1913)는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기업가로 록펠러와 함께 미국 스탠더드오일을 창업한 대부호이다. 평소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많은 자선사업을 펼쳤다. 190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 제중원 4대 원장인 올리버 R.에비슨 박사는 조선을 위한 병원 설립 이유와 건립 후원을 호소했고 세브란스는 5만 5000달러를 기부했다. 이는 현재 가치로 약 1000억 원 정도이다.세브란스 씨의 후원으로 서울역 앞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은 처음에 ‘세브란씨’병원으로 명명됐다가 세브란스 병원이 됐다. 세브란스 씨 사망 이후에는 그의 아들 존 롱이 12만 4500달러를 기부했다. 존 롱은 자신의 유산으로 ‘존 롱 세브란스’펀드를 조성했고 미국 기독교 고등교육연합재단 ‘유나이티즈보드(UB)’를 통해 매년 수익금을 세브란스병원에 보내고 있다. 이후 세브란스 씨의 아들과 딸은 모두 자녀 없이 사망해 직계 자손은 단절됐다. 고손녀인 루이지프랭크가 생존해 2005년 세브란스 본관 개원에 참석했다.

2015.08.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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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국수 한 그릇 말아준 분 생각하며 나눠요

산업 일반

부의 환원은 지역사회에 해야 한다. 노동일 민코코리아 대표의 지론이다. 그 대상에 그는 지역의 다문화가정을 포함시킨다. “이것저것 새로운 복지사업을 벌이는 건 그래야 지자체가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도와 군에 예산이 책정돼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해나갈 수 있죠.” 노동일(59) 민코코리아 대표는 “사업의 터전인 전남 곡성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방치하면 나중에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문제를 개인 기부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회와 국가에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있고, 그와 별개로 이런 일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이 행복합니다.”2010년 그는 필리핀에서 곡성군으로 시집 온 카멜라씨 가족을 비롯해 다문화가정 다섯 가족 열여덟 명을 고향에 보냈다. 아이들로서는 첫 외갓집 방문이었다. 항공료 등으로 그는 10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남지회에 기탁했다. 반응을 보고 곡성군이 다문화가정 고향방문사업 예산을 책정했다.“불과 몇십년 전 우리나라 여성이 재일교포에게 시집가서 겪었던 일입니다. 그 시절엔 같은 동포니까 말이라도 통했죠. 이벤트성으로 벌이는 다문화가정 사업이 적지 않은데 그 나라 문화를 이제 이쪽의 배우자들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비용인 다문화가정의 갈등을 줄일 수 있어요. 곡성군에만 9개국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꾸린 210여 개의 다문화가정이 있습니다.”수녀회에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쉼터로 마련한 ‘친정집’이 폐쇄 위기를 맞았을 땐 사재를 털어 조립식 주택을 지어주려고 했다. 친정집은 국적이 다른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모여 회포도 풀고 서로를 위로하는 곳이다. 엄마를 따라나선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그런데 폐가에 꾸민 친정집이 명소가 되자 임대수입을 노린 집주인이 방을 빼라고 요구했다. 친정집을 꾸밀 때 보수 비용을 댔던 그가 대안으로 조립식 주택을 짓겠다고 나서자 이번에도 군이 그 일을 떠맡았다.노 대표가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그의 회사에서 일하던 태국 출신 다문화가정 여성의 사정을 알고 나서다. 대학까지 나온 그녀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친정집 나들이 한 번 못했다.“사실상 사기결혼을 당한 사람, 정신장애가 있는 남편에게 시집온 여성 등 딱한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 다문화가정 여성이 친정집에 못 가는 건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남자 쪽에서 돌아오지 않을까 봐 안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돈 받고 팔려왔다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건 예삿일이죠.”한국말이 서툰 엄마 밑에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말이 어눌하다. 그 바람에 왕따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이 일도 도에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그가 다문화가정의 자립만 돕는 건 아니다. 곡성경찰서 아동안전보호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 초등학교 여학생을 위해 조립식 주택을 짓고 있다. 경찰관과 1대1 결연을 맺은 아이다.“다른 아이들과 광양제철소 견학을 갔는데 머리에 생긴 이 때문에 함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엄마는 병사했고 아빠는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죠. 두 오빠 중 큰 오빠는 군에 입대했고 중학생인 작은오빠와 한방을 씁니다. 그런데 한방 쓰는 이 오빠가 정신장애가 있어요. 이 때문에 아빠는 물론 결연을 맺은 경찰관이 마음을 놓지 못했죠. 마침 LH공사에서 12월 20일까지 집을 지으면 화장실 달린 욕실을 제공해 준다기에 공동모금회 전남지회에 조립식 주택을 지어달라고 건축비 800만원을 지정 기탁했어요.”모교인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엔 5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법학도와 후원자를 1대1로 맺어주는 코디네이터 역할도 한다. 도움을 받을 학생 선발은 학생회에 일임했다. 4년째 그는 전남대 법대 동창회장도 맡고 있다. 전남대 의대에도 후원금을 냈다.노 대표는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생계를 떠맡은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남에게 신세지지 말라”고 가르쳤다. 조선대 부속중학교 2학년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장학금을 받았다. 전남대 법대 재학 시절엔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일주일에 1000원씩 집에서 용돈을 타 쓰는 다른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대학 때 상경해 서울시 7급 공무원(당시는 4급을) 시험을 치른 일도 있다.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대학을 마치기 위해 공무원의 길을 포기했다.법대를 나왔지만 사법시험은 치르지 않았다. 취업보다 창업을 하고 싶었다. 대학 졸업 이듬해 그는 민코코리아를 창업했다. 민코코리아는 용광로용 소모형 온도계와 용광로에서 성분 측정을 위한 시료를 뽑아낼 때 쓰는 샘플러를 만든다. 그가 생산해 수입품을 대체했다. 이들 제품을 그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납품한다. 연간 매출액은 90여 억원, 직원 수는 17명이다. 그는 직원들은 모두 자신과 동반자라고 말했다.“우리 회사는 이직률이 0입니다. 어느 여직원은 다른 직장에 다니는 남편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습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직원들의 삶의 질에 더 신경을 쓰게 됐죠.”한번은 1년 근무한 인도네시아인 직원이 퇴근 후 잔업이 있는 직장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잔업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도 동의했다. 그 후 다른 공장을 알아보더니 그냥 눌러앉았다. 거기서 다리가 절단되는 산재 사고가 난 것을 알고 마음을 돌린 것이었다. 그 직원과는 영어로 소통한다. 그는 “서로 다름을 알고 상대방을 배려할 때 소통도 잘 이루어진다”고 말했다.나이 쉰 넘어 번 돈이 내 돈노 대표는 어음 거래를 일절 하지 않는다. 은행 돈도 쓰지 않는다. 젊은 날 회사를 키우겠다는 욕심에 외국에서 무리하게 기계를 들여왔다가 부도를 맞은 후 그렇게 결심했다. 은행 빚을 갚는데는 꼬박 7년이 걸렸다. 그 덕에 곧 이어 닥친 외환위기 때 오히려 돈을 벌었다. “쉰 넘어 번 돈이 진짜 내 돈이라는 소리를 실감했습니다. 젊어서 돈을 벌면 유혹도 많고 아무래도 한눈을 팔게 마련이죠.”2006년 성실 납세자로 뽑혀 국세청장 표창을 받은 그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도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정이 투명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세청의 우리 회사 담당 직원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포스코와의 상생도 잘 이뤄져 저는 광양제철소에 일년에 한 번도 안 들어갑니다. 가장 중요한 거래처지만 선물 하나 주고받을 수 없게 돼 있어요. 그만큼 투명해진 거죠.”중학생 시절 그가 어머니와 단칸방에 세들어 살 때의 일이다. 그 집에 문원회라는 세입자가 살았다. 그보다 10여 년 위였던 문씨는 작은 상회에서 일했다. 그때까지 그가 만난 어른 가운데 가장 성실한 사람이었다. 좋은 학교를 나왔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한 문씨는 공부 잘하는 그를 퍽 아꼈다. 귀가해 야참으로 국수를 말 때면 그의 부인이 꼭 어린 동일을 챙겼다.한여름 밤 누런 설탕을 얹은 시원한 국수는 별미였다. 상회 주인의 신임을 받은 문씨는 훗날 그가 설립한 사립중고교의 재단 이사를 지냈다. 노 대표는 어린 시절 그와 맺은 인연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반듯하게 자란 그의 자녀들은 노 대표를 동기간처럼 따른다.“저에게 나눔의 멘토 같은 분이죠. 그 어렵던 시절 국수 한 그릇엔 그 아저씨의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배려는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고 꿈을 꾸게 하죠. 아저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그런 저를 그 집 동생들이 따랐습니다. 아저씨가 저의 멘토였다면 제가 그 집 동생들의 모델이 된 셈이죠.” 노 대표는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당시 익명 회원이었으나 나중에 실명으로 전환했다.“저 자신을 홍보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러웠습니다. 여기 저기서 기부를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오는 것도 달갑지 않았고요. 그런데 5억원을 기부한 전남대에서 홍보 좀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 응했죠. 이를 계기로 아너 쪽도 실명으로 전환했습니다. 부탁 전화가 많이 오기는 하지만 얼굴드러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두 자녀에게는 유산의 일부만 물려줄 생각이다. 그가 세상과 나누는 것에 처음엔 반대하던 아내도 그의 편으로 돌아섰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이 관심이 있다면 회사일을 가르쳐 물려줄 생각입니다. 가업 승계는 리스크도 있어요. 지역사회에 2대를 못 가는 회사들이 많습니다.자식한테 줄 줄만 알았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죠. 무엇보다 지역 어른들을 섬기고 남들과 나누는 걸 가르쳐야 해요. 어렵사리 1000억원대 재산을 일구고 남을 위해서는 한 푼도 못 쓴 채 파산하는 사람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100억원을 대학에 기부했다면 회사는 망하더라도 장학기금은 남지 않습니까.”그의 마지막 꿈은 곡성 땅에 노인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노인들이 청결한 환경에서 무료로 식사를 해결하고 문화적 욕구도 충족할 수 있는 곳이다. “이를테면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친정집’ 같은 곳이죠. 일손은 자원봉사자들이 돕게 하려고요. 이곳에 들어와 돈을 벌었으니 부의 환원도 여기에 해야죠.”그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너무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증이 도를 넘은 것 같아요. 대학 1학년 때부터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꿈도 꿀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부모 세대 탓도 있습니다. 자녀의 꿈을 부모가 만들어줘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아이의 취미마저 부모가 정해 주면 되겠습니까.”

2012.12.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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