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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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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로 가지만 위드 코로나라고 말할 순 없어”

정책이슈

정부가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단계적 일상 회복)를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실정은 위드 코로나를 향해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오미크론·델타크론·스텔스(BA2) 등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확진자 수가 하루 30만명 안팎으로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사적모임 인원수와 다중이용시설(식당·카페 등)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를 두 달째 계속 완화해오고 있다. 정부가 개개인의 동선까지 일일이 간섭하던 추적을 점차 포기하고 있다. 국가의 방역부담을 낮추고 민생경제 회복에 무게를 둠으로써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 전면에 나서겠다는 전제를 남겨 위드 코로나를 아직 공식화하진 않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해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1월 9일쯤 위드 코로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후 정부는 11월 1일부터 위드 코로나를 공언, 발걸음을 본격 내딛고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꾸리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의료현장이 마비 위기에 빠지자 12월 중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접종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위드 코로나 정책은 폐지되는 분위기로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 사적모임·영업시간 제약 풀고 출입기록 없애 정부는 2월에 6명 9시로 제한했던 규제를 6명 10시→6명 11시→8명 11시까지 단계적으로 완화하더니 4월 1일부턴 10명 12시(자정)까지 풀었다. 연말연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단축했던 대중교통 운행시간도 지난달부터 정상화하고 있다. 코레일과연계 운행하는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지난달 19일부터, 3호선은 이달 1일부터 심야 운행에 들어갔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는 지난달 7일부터 심야시간 단축 운행을 해제했다. 정부는 역학조사를 명분으로 코로나19 확진자의 개인 동선을 일일이 추적 공유하던 코로나 사태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기록과 추적을 단계적으로 중단해가고 있다. 다중이용시설 이용 때 방문기록을 남기는 QR코드·안심콜·수기명부 등 출입명부를 2월 19일부터 멈췄다. 이어 지난달 1일부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 11개 업종에 대한 방역패스를 시행한지 4개월만에 중단했다. 정부는 또한 코로나19 확진 여부 검사를 국민 개인에게 맡기는 자율화 조치로 방역감시망을 해제하고 있다. ━ 확진 검사 개인에 맡기고 무료 신속항원검사도 중단 이를 위해 그동안 보건소선별진료소와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행해온 코로나19 검사를 개인 자가검사로 바꾸고 있다. 구매비 부담과 정확성 불분명으로 논란이 여전하지만 국민이 자가검사키트를 생활필수품처럼 구매할 수 있도록 구매수량 제한을 풀고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확진자를 신속하게 선별·격리시키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던 신속항원검사도 오는 11일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신속항원검사 희망자는 11일부터 호흡기전담클리닉과 호흡기진료지정 의료기관을 찾아가야 한다. 60세 이상 고령층,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받은 사람, 밀접접촉자와 같은 역학적 관계자 등 검사 우선순위 대상자는 보건소에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계속 받을 수 있다. 구입가격이 부담되거나, 구매 근성이 떨어지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독거노인시설·의료취약주민 등에겐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가 자가검사키트를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무료 신속항원검사 중단 결정에 대해 “국내 확진자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동네 병·의원을 통한 신속항원검사 방식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각계의 의견을 반영 조율하기 위해 만든 일상회복지원위원회 내부에서도 사적모임 인원수와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감염 급증시 의료체계 혼란 등을 이유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 코로나19 감염병 등급 하향 움직임에 의료계 우려 정부의 방역망 완화에 대한 반응은 관련 입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등 소상공인·자영업자 관계자들은 정부의 방역규제 완화를 환영하면서도 일시 중단이나 단계적 시행보다는 적극적인 전면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방역 완화 기조에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대책 없는 방역 완화 방침”이라며 “혼란한 의료 현장을 정상화하는데 주력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의료계는 현재 1급으로 지정한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낮추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위험은 여전한데 감염 등급을 낮추는 것은 정부의 역할과 부담을 내려놓으려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는 “총리가 ‘변화된 상황에 맞게 코로나19 감염병 등급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주문했다는데, 감염병 등급을 낮추면 치료비용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부담하게 된다”며 “이는 정부가 방역·치료 부담을 개인에게 넘기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방역규제 완화 방침에 방역당국 한 관계자는 “방역과 민생경제 사이에서 오랫동안 거듭해온 고민의 결론으로 보인다”며 “사적모임 인원수와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도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3년째에 접어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계속 대처하기엔 부담이 큰데다 민의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 WSJ “한국,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완화·적응 움직임” 정부의 이 같은 기조에 해외는 “코로나19를 풍토병 수준으로 여기고 이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Despite High Covid-19 Case Counts, Asian Nations Learn to Live With the Virus’(높은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제목을 부연 설명하는 부제목엔 ‘South Korea is considering downgrading the way it categorizes Covid as an infectious disease; Singapore is steadily dropping restrictions’(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전염병 분류를 하향 조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방역규제를 꾸준히 완화하고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뉴스에서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방역규제를 하나씩 풀면서 코로나19를 팬데믹(pandemic 전세계적 유행병)에서 엔데믹(endemic 국지적 풍토병)으로 낮추려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선진국들 중 가장 큰 규모이지만 (정부는)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을 포기했다”며 “확산 급증을 필연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함께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 하는 동안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 발병률을 낮게 유지했지만 지금은 바이러스를 다르게 다루려 하고 있다”며 “최근 오미크론 유행으로 감염자 수가 급증했지만 높은 백신 접종률과 체계적인 보건 시스템을 바탕으로 위중증·사망자 비율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2.04.02 17:00

5분 소요
유행따라 수익따라 골프·NFT 등 이색 ‘ETF’ 출시 이어져

증권 일반

상장지수펀드(ETF)에 돈이 몰리면서 메타버스·골프 등을 테마로 한 이색 ETF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ETF(Exchange Traded Fund)는 코스피200 등 특정 지수에 연동해 수익을 내는 인덱스펀드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상품이다. 최소 10개 이상 종목으로 구성된 ETF는 소액으로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가 가능하고, 테마 상품으로 유행이나 미래 산업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최근 코스피가 3000선 내외 박스권에 갇히면서 직접투자 대신 ETF 등 간접투자 상품으로 자금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이달 1일부터 19일까지 코스피에서 ETF 상품을 제외하고 1조7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반면 같은 기간 ETF 상품은 1조4700억원어치 사들였다. ETF의 투자 매력이 부각되면서 테마 ETF를 출시하는 증권사도 늘고 있다. 지난달 신규 상장 13개 ETF 중 11개는 메타버스와 기후변화 등 테마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테마 ETF는 메타버스·게임·웹툰 등 장기적인 성장이 예상되거나 최신 트렌드로 떠오른 종목을 모아둔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국내 ETF 시가총액(64조원)의 15%는 테마 ETF(9조7000억원)였다. 이달 24일엔 세계 최초 골프 테마 ETF가 국내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NH-아문디 자산운용의 ‘HANARO Fn 골프테마’ ETF로 2015년 3500만명 수준이었던 국내 골프장 이용객 수가 지난해 4700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최근 골프의 대중적 인기 상승이 출시 배경이 됐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테마 ETF의 인기 요인에 대해 “테마 ETF가 개별 기업에 대한 전망보다 이해하기 쉽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주식의 순환적 흐름에 투자하기보다 장기간 이어지는 사회적, 구조적 변화에 대한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마ETF는 수익률도 좋다. 최근 한 달간 종가 기준 테마ETF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게임에서는 KBSTAR게임테마(33.35%), TIGER K게임(32.73%) 등이 30% 넘는 수익을 냈다. 메타버스에서는 TIGER Fn메타버스(30.28%), KODEX K-메타버스액티브(28.99%), 콘텐트에서는 TIGER 미디어컨텐츠(17.87%)의 수익률이 좋았다. 테마 ETF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산업이나 종목을 따라가는 만큼 변동성이 크고, 테마가 ‘반짝’ 유행에 그칠 경우엔 수익률도 꼬꾸라질 수 있다. 같은 테마로 분류되더라도 추종하는 기초 지수와 구성 종목에 따라 수익률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정지원 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2021.11.22 18:26

2분 소요
평창, 로봇, 그리고 최저임금

IT 일반

#1.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이 올림픽에서 일부 빙상종목에만 집중됐던 ‘메달 편식’ 성향을 극복하고 썰매·스키 등 설상종목에서도 골고루 메달을 획득했다. 메달의 색깔과 획득 여부에 상관없이 참가했던 모든 우리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 중 특히 해외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던 이들은 아마도 ‘팀킴(Team Kim)’ ‘마늘 소녀(Garlic Girls)’ 등의 별칭이 붙었던 컬링 선수들일 것이다. 아쉽게 우승은 놓쳤지만 예선전부터 세계의 강팀을 파죽지세로 꺾어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팀의 주장인 김은정은 정확한 투구 등 대단한 경기력뿐 아니라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무표정으로 경기 상대방을 질리게 해서 ‘로봇’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2. 필자가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한 민영 TV방송국에서는 ‘마징가 제트’라는 일본 산 만화 영화가 초등·중학생 사이에서 절정의 인기를 얻으며 방영되고 있었다. 이 만화 영화의 주제가도 덩달아 큰 인기였다. 멜로디와 가사는 수십 년이 지나도 필자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을 정도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버트 마징가 제트,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 나타나면 모두모두 벌벌벌 떠네,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 목숨이 아깝거든 모두모두 비켜라’. 그런데 TV 화면 하단에 뜨는 가사의 자막에는 ‘로보트’가 아니라 항상 ‘로버트’라고 써 있었고 이를 부르는 남성 4 중창단도 그렇게 발음하고 있었다. 원래 발음이 ‘로보트’가 맞는지 ‘로버트’가 맞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상관없을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떠오르는 이 기계의 발음은 이제 ‘로봇’으로 일반화되고 있기 때문이다.로봇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걷기도 하고 말도 하는 기계 장치’ ‘어떤 작업이나 조작을 자동적으로 하는 기계 장치’로 나온다. 위의 두 에피소드에 나오는 로봇의 이미지는 긍정적이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이 말의 기원은 1920년 카렐 차펙이란 체코의 작가가 발표한 희곡인 이다. R.U.R은 ‘Rossumovi Univerzalni Roboti’의 약어이며 작가가 이 작품을 발표 당시에 영어로도 부제목을 붙였는데 약어를 쓰지 않고 ‘Rossum’s Universal Robots’라고 풀어서 썼다. 당시 세계 경제의 중심인 영국에서도 이 연극을 공연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이 작품은 1920, 3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공연되어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카렐 차펙은 1890년에 태어나 1938년에 사망했다. 그는 희곡뿐만 아니라 수필 및 공상과학 소설도 여러 편 썼으며 여행기도 상당수 남겼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7번이나 올라갔으나 끝내 상은 받지 못했다. 창작 활동 이외에도 그의 기본 직업은 언론인이었는데 나치 등 파시즘에 대한 맹렬한 비판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래서인지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는 그를 ‘공공의 적’으로 지목하고 있었고 1939년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게 되자 제일 먼저를 그를 체포해 죽이려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생 골초였던 덕택에 그는 그 몇 달 전 폐렴으로 세상을 떠서 ‘험한 꼴’은 피할 수 있었다. 허탕을 친 게슈타포는 대신 분풀이로 그의 아내와 형 요셉 차펙을 잡아갔다. 결국 요셉은 나치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그런데 이 요셉 차펙이 로봇이라는 용어의 탄생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R.U.R을 굳이 우리말로 바꾸면 ‘로썸의 범용 로봇’으로 번역된다. 극중 한 인물의 이름으로 쓰인 이 로썸(Rossum)은 ‘이성·지혜·논리’라는 뜻을 가진 체코어 ‘로줌(rozum)’에서 왔다. 그리고 로봇이라는 말은 ‘강제 노역’이란 의미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왔다. 그러므로 R.U.R을 조금 무리해서 의역하자면 ‘이성의 범용 노예’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 카렐 차펙은 라틴어를 차용해 극중 인조 인간의 명칭을 만들려 했으나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망설이던 차에 화가이자 시인인 그의 형 요셉이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이 희곡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기 2000년경 R.U.R이라 불리는 인조 인간 공장이 있는 섬에 한 여성이 찾아온다. 로썸(Rossum)이라는 해양과학자가 1920년에 연구차 이 섬에 왔다가 우연히 생명의 근원물질(원형질)을 발견하고 동물과 사람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이 공장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때 마침 그의 조카가 삼촌을 보러 들렸다가 큰 돈을 벌 기회를 포착하고는, 이에 반대하는 삼촌을 감금한 후 인조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공장을 방문한 여인의 이름은 헬레나(Helena)로, 로봇을 해방시키려는 인권단체 소속이다. 그러나 그녀도 곧 이 로봇을 해방시키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이 공장의 매니저와 결혼해 이 섬에 눌러 앉는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로봇이 세계 경제를 좌우할 정도를 넘어 반란을 일으킨다. 세상의 인간을 모두 죽이고 공장에도 들이 닥친다. 무슨 이유에선지 헬레나는 로봇을 만드는 ‘제조 비법’을 태워버린다. 결구 헬레나까지 포함한 모든 인간은 죽임을 당하지만 이 로봇은 자신들과 같은 종족을 계속 생산해줄 알퀴스트(Alquist)라는 엔지니어는 살려 둔다. 그러나 제조 비법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도 더 이상 로봇을 생산할 수 없게 되자 로봇들에게 자기를 도와 제조 비법을 되살릴 인간을 찾아 달라고 하지만 로봇 정부는 이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다. 생존한 인간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면서 가져올 우울한 미래를 그린 것이다.정부가 최저임금을 크게 인상한 지 두 달이 넘었다.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월 취업자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3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고 하니 언뜻 보아서는 그 충격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최저임금 인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만 명 이상 줄었고, 지난해 12월 6만 명 가까이 줄아든 데 이어 고용이 계속 위축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업급여 청구 건수도 크게 늘어났다는 보도도 이어진다.고용을 줄이는 것 외에 기업·자영업자 등 노동 수요 측의 대응은 자동화로 옮겨 가는 모습이다. 전체 주유소의 20%인 2400여곳은 이미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PC방 등의 무인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무인 주문기 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계 전반에서도 무인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한 대형 물류 업체는 창고에서 주문수량만큼 상품을 골라 담는 작업을 로봇에 맡기는 시스템을 쓰고 있는데, 사람을 쓰는 과거에 비해 작업효율이 약 5배 높아졌다고 한다. 30%이던 당일배송 비율은 70%까지 뛰었다. 게다가 근로시간을 크게 줄이는 정책이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무인화 바람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무인 기계는 로봇이니 이는 ‘로봇의 사람 대체’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정책에 따라 자발적 가속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안타깝기도 하다. 만약 지금 카레 차펙이 살아있다면 정책 당국자와 정치인에게 어떤 경고를 말해줄까 궁금하다.

2018.03.03 08:41

5분 소요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의 이 한 문장] 병법의 도는 승리의 도다

산업 일반

불교의 도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고, 유교의 도는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며, 의학의 도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한 시인의 도는 시(詩)를 지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알리는 것이다. 무사는 일대일로 싸우든, 군사를 이끌고 싸우든지 간에 반드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요컨대 병법의 도는 곧 승리의 도이다. - 오륜서, 땅의 장 일본에는 신(神)이 많은 것처럼 도(道)도 많다. 검도(劍道), 유도(柔道), 공수도(空手道), 다도(茶道), 서도(書道) 등 운동에서 글씨와 음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특유한 관점을 도(道)로 귀결시킨다. 칼과 무사의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 미야모토 무사시는 역사상 최고의 사무라이로 인정받는다. 전국시대 말기인 1582년에 태어나 도쿠가와 막부 초기 1645년에 64세로 세상을 떠난 불패의 검객으로서 전설의 검성(劍聖)이 되었고, 자신이 터득한 검법을 고도의 정신성으로 승화시킨 를 남겨 검도(劍道)의 원조가 되었다.무사시의 관점에서 무사의 도는 승리에 있다. 무사는 승리라는 결과로 말한다. 죽음을 각오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승부에서 이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전쟁은 죽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전쟁이 죽기 위해 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하면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도 이성을 잃는다. 살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생각해야 정신의 건전성도 유지된다. 병법의 도(道)는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다.무사시의 삶은 3부분으로 나뉜다. 13세에 처음 결투를 시작해 30대 초반까지 검법을 연마하고 강호를 유랑하며 천하의 고수들과 60여 차례의 결투에서 승리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이후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져 50세까지 ‘병법의 도’를 정립했고, 뒤이은 10여년 동안 필생의 역작 를 집필해 후세에 남겼다. 서화와 조각에 능한 예술가이자 불교와 노장사상을 깊이 이해한 철학자였던 무사시는 육체적 무기인 칼의 세계를 정신적 문화인 도(道)의 경지로 고양시켰다. 의 소재는 칼싸움에서 상대를 먼저 베는 검법이지만, 핵심 주제는 몸과 마음을 수련해 승리에 이르는 전략과 리더십, 생존을 위한 자기 수련이다. 무사시는 칼싸움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출발해 승부사의 사생관, 개인은 물론 조직의 리더로서 상대방을 이기는 전략, 심신을 갈고 닦는 자기계발에 이르는 폭넓은 세계로 확장했다. 무사시의 위대성은 통념화된 관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칼과 전투에서 출발해 보편적인 사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불교나 유교 등 어떤 가르침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군기(軍記)나 군법서(軍法書)의 기록도 인용하지 않을 것이다’고 기술했다.1982년 미국에서 오륜서가 번역돼 출간되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문판의 부제목이 ‘일본 비즈니스 관리학의 진정한 예술’로 당시 급성장하던 일본 기업의 성공 원인에 대한 본질적 통찰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무사도의 명확한 가치관에 기반한 엄격한 수양과 수련은 서양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자기 계발과 리더십 함양의 가이드북이 됐다. 5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삶, 승부의 세계에 대한 본질을 통찰해 동서양 고전의 반열에 를 통해 21세기 글로벌 경제 전쟁터의 비즈니스 무사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생존하고 발전하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16.09.03 09:14

3분 소요
새들의 불륜에 관한 달콤살벌한 진실

산업 일반

조 우 석“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매년 5월이면 들려오는 노래, 들을 때마다 우리 가슴 뭉클해지는 노래 ‘어머니 은혜’는 희생과 돌봄의 상징인 위대한 모성(母性)에 바쳐진 찬사다. 하지만 이미 ‘근사하지만 맞지 않는 말’로 드러났다. 심할 경우 거짓말이다. 생물학의 관점에서 그걸 폭로했던 유명한 책이 생물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가 펴낸 ‘어머니의 탄생 :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였다. 당혹스러운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지금까지 알았던 어머니는 잊어라. 세상 모든 엄마·암컷의 진짜 역사에서 자녀 사랑과 양육이란 절대로 본능이 아니다.”엉뚱해도 유분수지, 대체 뭔 소리람? 그 책에 따르면 침대에서 섹스할 때 수동적이며, 정숙하다는 여성상 역시 가짜 신화이거나 가부장제 사회가 심어준 이데올로기 혹은 음모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려고 인간역사에서 흔했던 영아(갓난아이)살해·유기 같은 사례와 진화생물학의 각종 ‘무자비한 진실’까지 들이댄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거둬들인 금싸라기 정보들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책은 ‘진화론의 성자’인 찰스 다윈을 때리며 시작한다.19세기 사람인 다윈 자체가 케케묵은 빅토리아 시대 낡아빠진 윤리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떨어지며 추상적 사고가 뒤진다는 엉뚱한 발언까지 했다. 이제 진화론을 새롭게 흡수한 우리시대 페미니즘 생물학은 ‘자기희생적 어머니, 수동적 여성’이라는 믿음을 통째로 뒤집는다. 오히려 여성은 맹목적인 양육자이기보다는 야망을 좇는 기업가에 가깝다. 저자가 다윈을 때린다고 했지만, 그건 그를 되살려내는 노력이다.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과 함께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다. 짝짓기의 열쇠는 암컷이 쥐었다는 얘기다.한 번 봇물이 터지니 정신이 없다. 꼭 1년 전 등장했던 ‘어머니의 탄생’에 이어 ‘더 강력한 놈’이 등장했다. 제목부터 파격이다. ‘암컷은 언제나 옳다’(이순 펴냄), 조류행동생태학자 브리짓 스터치버리가 지은 이 책의 얄궂은 부제목부터 소개한다. ‘인간보다 복잡하고 은밀한 새들의 사생활’.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과 정절, 모성의 신화를 벗겨낸 암컷의 진화적 본성에 관한 충격적인 연구다. 실은 저자 자체가 엽기적이다. 그는 20년 이상 새들의 간통을 연구해왔다.그에 따르면 새들은 짝짓기 전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놀랍도록 복잡한 성 전략을 진화시켜왔는데, 이를테면 새끼 중 절반에 해당하는 남의 자식을 먹여 살리는 아카디아딱새 수컷 등 바보 수컷 새가 참 많다. 그뿐인가? 배우자 암컷이 마치 옆집 수컷과 간통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듯 행동하며 남의 자식을 키우려고 1000번 이상의 먹이 조달 여행을 떠나는 두건솔새 수컷도 있다. 왜 이들은 배우자의 혼외정사에 속수무책인가? 그리고 어째서 암컷들은 옆집 수컷과 수시로 ‘불륜’을 저지르는가?저자는 짝짓기와 번식에 관한 한 암컷이 선택권을 갖고 수컷들을 무한경쟁으로 몰고 간다는 성 선택 이론으로 조류 세계의 엽기적 진실을 설명한다. 상식이지만 암컷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컷의 외모 역시 암컷에게 잘 보이려는 생존 경쟁이다. 이것은 야생동물이 자연에서 살아가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하여 선택하는 다양한 생존 전략 중 하나로, 이 책에는 이러한 번식 행동 외에도 둥지 찾기, 동기간의 경쟁, 공동양육, 군집 생활의 전모, 생사를 건 철새의 이동 등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새들의 이혼 중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작은 유럽산 명금류인 유럽오목눈이에게서 나타난다. 이 새들의 경우 이혼이 워낙 쉽게 일어나서 파트너들 간의 결합을 부부의 결합으로 보기 힘들 정도다. 유럽오목눈이 수컷은 노래를 통해 짝을 유인하여 정교한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 암컷은 수컷이 둥지를 짓는 것을 돕는다(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암컷이 알을 낳기 시작하자마자, 둘 중 하나가 관계를 청산한다. 이혼율은 100퍼센트이며….”(127쪽)다른 새들의 경우 수컷들이 양육의무를 다하는데, 혹시 제 짝의 부정을 의심할지라도, 의무를 게을리 할 수 없다. 저자가 관찰해보니 외도로 출산한 새끼가 포함된 둥지에는 다른 혈통이 섞여 있었다. 최소한 한 마리는 실제 자식이다. 수컷은 어떤 새끼가 자기 자식인지 구분할 수 없다. 수컷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간단하게 정리된다. 마치 간통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듯 행동하는 전략을 발전시킨다.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명금류(참새목의 노래하는 새)에 속하는 아카디아딱새 수컷이 그렇다.20년 이상 남·북 아메리카의 새들을 연구해온 브리짓 스터치버리는 새들의 간통 연구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가 밝히는 학문적 진실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물론 과학적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인데, DNA 감식으로 친자 확인 검사가 가능해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새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인식되어왔다. 실제로는 많은 새가 상당히 높은 비율로 불륜을 저지른다.그렇다면 암컷은 어떤 스타일의 수컷을 좋아할까? 보라큰털발제비 암컷은 나이가 많은 수컷을 선호하고, 유럽 푸른박새 암컷은 다양한 노랫소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하고, 멕시코양진이 암컷은 선명한 빨간색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암컷은 성공적인 번식을 위해 수컷의 가치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명금류 철새들에게 생존은 쉬운 게 아니다. 따라서 에너지가 많이 드는 노래를 잘 부르는 수컷은 스태미너와 건강이 좋다는 나름의 검증(푸른박새의 경우)을 거치는 것이다.다시 ‘어머니의 탄생’ 이야기로 돌아가자. ‘어머니의 탄생’과 ‘암컷은 언제나 옳다’는 완벽하게 서로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인데, 두 책에 따르면 성 선택 이론은 19세기의 ‘불편한 진실’이라서 쉬쉬해오다가 20세기 후반에야 페미니즘과 만나면서 꽃을 피운다. 그 하나인 다윈주의 페미니즘 신간 ‘어머니의 탄생’과, 새들의 불륜을 다룬 ‘암컷은 언제나 옳다’는 잘못 꿴 첫 단추 때문에 으르렁거렸던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의 화해 무드를 보여준다.‘어머니의 탄생’이 보여주듯 동화 ‘샬럿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어미 거미처럼 새끼가 자기 몸을 파먹게 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현실의 어머니·여성은 기회주의자라서 바로 번식할까, 나중에 천천히 할까를 저울질한다. 한정된 먹이를 자식에게 동등 분배할지를 매번 선택해야 한다. ‘암컷은 언제나 옳다’에도 ‘불편한 진실’이 나온다. 그대로 옮긴다. “내가 목격한 것은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죽이는 형제살해의 장면이었다. 왜가리 세계에서는 흔한 일이다. 부모 새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새는 혹시나 알이 수정에 실패하거나 사고로 알을 잃을 것에 대비하여 첫 번째 알을 낳은 지 며칠 뒤에 나은 ‘보험용’ 알이기 때문이다.”(144쪽)

2011.05.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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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접은 사업 일으켜 세웠다”(부제목수정)

산업 일반

대기업이 손을 뗀 사업을 맡아 ‘옥동자’로 키워낸 중소기업이 있다. 경기도 화성에 자리잡은 파트론(PARTRON)이 그런 회사다. 2003년 5월 삼성전기의 유전체 필터 사업부분이었다가 분사 독립한 지 6년 만이다. 유전체 필터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 중 필요한 주파수만 통과시키는 정밀장치로 중계기나 휴대전화의 필수부품이다. 삼성전기는 2001년 세계적인 IT거품 붕괴에다 경쟁사들에서 초소형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자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필터 연구팀에 분사를 제안한 이유다. 김종구 파트론 사장을 비롯한 삼성전기의 연구원들이 당시 홀로서기의 주역들이다. 파트론의 2008년 매출액 증가율은 70%(692억원→1174억원)였다. 세계적인 경기 동반침체를 겪는 올해에도 목표매출을 54% 증가한 1811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영업이익률도 최근 3년 동안 16~17%였다. 세계 주요 부품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1%일 뿐이다. 대우증권 박원재 연구원은 “파트론의 지난해 영업이익률 17.3%는 부품업체로선 놀라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이 회사의 주력 생산 부품 7개(유전체 필터, 아이솔레이터, 칩안테나, GPS용 패치안테나, 내장형 안테나, 수정발진기, 카메라 모듈) 중 5개는 국내시장 점유율 1위다. 특히 칩안테나의 매출액은 210억원 선으로 회사 전체 매출액의 18%를 차지한다.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전자업체에 납품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65%다. CEO의 발 빠른 대응이 창업 초기 회사의 연착륙을 이끌었다. 분사 직후 김종구 사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LG와 팬택 계열 최고경영진의 도움을 받아 거래선을 확대하면서 매출을 키웠다. 2003년 첫해 128억원의 매출과 4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때 회사는 자신감까지 덤으로 얻었다. 파트론은 주력 상품인 유전체 필터 부품을 뛰어넘을 새로운 아이템 개발에 나섰다. 회사 이익금의 상당부분을 안테나와 카메라 모듈 등 새로운 제품의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이 제품들은 지난해 파트론 매출의 70% 이상을 담당할 만큼 효자 아이템으로 떠올랐다.한때 삼성전기가 예상했던 대로 주력제품이었던 유전체 필터 시장에 한파가 몰아 닥쳤다. 2004년 봄부터 10개월 동안 적자 수렁에 빠졌다. 회사 전체에 일순 위기감이 감돌았지만 꾸준히 공들여온 안테나 부문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아이템이 새로운 시장을 뚫으면서 파트론의 활로도 뻥 뚫렸다.연구인력이 주축을 이룬 이 회사는 기술개발력이 최대 강점이다. 본사 직원 247명의 64%인 159명이 연구원이다. 연구개발비는 매출액 대비 10.2%다. 김 사장은 “휴대전화 부품은 재료비 비중이 낮은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휴대전화 디자인이 자주 바뀌는 만큼 부품의 주기도 짧다”고 말했다. 핵심 기술 인력은 대부분이 삼성전기 시절부터 손발을 맞춰온 터라 특유의 팀워크를 발휘한다. 구성원의 주인의식도 남다르다. 파트론은 2006년 12월 코스닥에 등록하기 전에 입사한 임직원들에게 주식을 지급했고, 생산 품목별로 목표를 조기 달성하면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삼성전기에서 분사하면서 기본적인 하드웨어도 좋았다. 먼저 감가상각을 다한 고가의 생산설비를 헐값으로 건네 받아 고정경비를 아꼈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있는 삼성전기의 부품 제조공장을 인수했던 점도 행운이었다. 파트론은 모든 부품을 이곳에서 생산한다. 회사가 생산하는 7개 부품 가운데 수정발진기와 카메라 모듈을 제외한 5개는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 특성을 지녔다. 중국 공장의 근로자 인건비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톈진, 상하이, 선전보다도 30%나 싸다고 권오용 IR파트장은 말했다. 나아가 아무리 가격 경쟁력이 있는 부품이라도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행히 중국 산둥공장은 거리적 이점 때문에 돌발성 주문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다. 중요한 기술을 요하는 생산 공장을 중국에 뒀다가 기술 유출이나 모방 가능성은 없는 걸까? 걱정 없다. 특허도 특허거니와 제품별로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특성상 원천기술 없이는 수시로 바뀌는 휴대전화 모델의 부품을 흉내 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파트론은 당분간 탄탄대로를 달릴 듯하다. 게다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도 성장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통상적으로 휴대전화 이용자 수가 전체 인구의 70%에 이르렀을 때 둔화되기 시작한다”고 대우증권 박원재 연구원은 말했다. “주요 시장인 중국이 6억 명 안팎, 인도는 2억 명을 갓 넘은 가입자를 보유해 시장의 기회는 아직도 충분해 보인다.”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로 휴대전화 등 완제품 제조업체들의 단가 인하 압력은 점차 거세지리라 예상된다. 파트론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런 외풍을 이겨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 회사는 삼성전자(53%), LG전자(10%), 팬택 계열(6%)을 비롯한 국내외 250여 개사에서 매출을 올린다. 이런 든든한 반석 위에서 해외에서 매달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200만 달러를 해외에 지불한다. 더구나 해외 시장은 활짝 열려 있다. “품질·가격 경쟁력 모두 우리가 최고” Q&A 김종구 사장 “모든 직원은 일에 푹 빠져있다” 파트론 김종구(60) 사장은 1973년 삼성전자 TV 개발실에 입사한 이래 꼭 30년을 삼성맨으로 일했다. 2003년 삼성전기 부사장 시절 유전체 필터 사업부 인수 제의를 받고서는 한동안 망설였다. 당장 회사를 떠난다고 해도 생계 걱정은 없는 데다 몇몇 굵직한 기업으로부터 ‘러브콜’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이 분야의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데다 후배들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첫 출발선에 섰을 때나 선두를 달리는 지금이나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그를 뉴스위크 한국판 박성현 기자가 만났다. 분사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당시 삼성전기가 이 사업을 접으려고 한 건 당장 이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1년 후를 장담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전체 사업은 분사하던 2003년만 해도 경영실적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이듬해부터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가장 어려운 순간에 미리 개발을 진행해 오던 아이템들이 이익을 내면서 위기를 넘겼다. 파트론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정말 열심히 하면 꿈에서라도 해결책이 찾아진다고.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결국 얼마나 심취하고 몰입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인적, 물적 여건이 열악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우리는 출발도 늦은 편이다. 남보다 더 많이 뛰는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아닌 걸 지워 나가다 보면 결국 목표했던 길을 찾게 된다. 우리가 늘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다. 직원들이 힘들었겠다. 창업초기엔 밤낮 없이 회사에서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면서 과로로 쓰러진 직원도 있었다. 워낙 업무가 많고 연애할 시간이 없다 보니 젊은 직원들의 사내 결혼 비율이 높게 나타날 정도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체력을 고려해 외모가 날렵해 보이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뽑는다.(웃음) 최고경영자와 임원들도 직원들과 함께했나? CEO와 임원들이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주나 대주주가 회사 돈을 유용하는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직원들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가 있겠나? 윤리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선 단호하면서도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직원들도 한몸이 돼 움직인다.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하는 이유는? IT 부품사업은 휴대전화의 기종이 바뀔 때마다 부품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테나든 카메라 모듈이든 직전 모델에 들어간 부품을 다음 모델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종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연구인력과 개발비의 비중이 크다. 칩안테나 외에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제품은? 삼성전자에 독점 공급하는 부품을 경쟁사에 공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테나 하나를 만들자면 특정 휴대전화의 디자인과 성능을 모두 알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같은 부품을 다른 회사에 동시에 공급해야 되겠는가. 따라서 이미 공용화된 부품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해봄 직하다. 범용성이 있는 광마우스나 전자나침반 등을 고려한다. 글로벌 불황을 맞아 납품 단가 인하 압력이 거세진 않나? 대기업이 무조건 깎자고 들진 않는다. 나름대로 타당하고 비용절감 요인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경쟁사에 비해 품질 경쟁력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있다. 부품업체 입장에서 국내에 삼성과 LG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있다는 게 우리로서는 행운이다. 앞으로 시장 전망은 어떤가? 불경기라지만 휴대전화 사용자가 줄지는 않는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에서는 휴대전화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9.04.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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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에서 즐기는 책 한 권의 여유

산업 일반

골프광으로 유명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휴가 때만은 골프채 대신 책을 손에 들었다고 한다. 쉼 없이 달려온 CEO들도 휴가 중에는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겨보는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CEO들이 휴가 때 읽을 만한 책 10권을 소개한다. 추천·서평한 사람들(가나다 순) 김성희 중앙일보 스포츠 문화부 부장 김종수 중앙일보 논설위원(본지 서평위원) 남윤호 중앙데일리 경제팀장(본지 서평위원) 표정훈 출판 칼럼니스트 “경제 기본 원리 점검하세요” 토머스 소웰 지음, 서은경 옮김, 물푸레, 1만3,000원 여름 휴가철에 피서지에서 읽을 책으로 딱딱한 경제학 이론서를 권한다면 달가워 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딱딱하지 않은 경제학 책은 어떨까. 그렇지 않아도 경제 이야기만 하면 골치가 아픈 터에 휴가까지 가서 경제 서적을 읽을 게 뭐냐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거꾸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평소에 읽기 어려운 책을 한 번 마음먹고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은 피서법이 될 것이다. 경제라면 웬만큼 꿰고 있을 CEO들에게 굳이 원론적인 경제학 책을 권하는 이유는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 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황당한 일들이 하도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물론 경제 현장을 이끄는 CEO들조차 우리 경제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이럴 때 경제의 기본 원리를 한 번 점검해 보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도처에서 난무하는 반시장적 궤변의 허상을 꿰뚫고 시장 경제의 바른 길을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은 목차만 보면 언뜻 경제학 교과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책을 펴 들면 책 목차의 제목에서 풍기는 교과서적인 냄새가 싹 가신다. 무엇보다 다행스런 점은 도표와 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나직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듯 경제학의 여러 주제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주로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경제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신흥시장 기업에서 배운다 앙트완 반 아그마엘 지음, 김민주 · 송희령 옮김, 김영사, 2만7,000원 “차세대 마이크로소프트나 GE는 이머징마켓에서 나올 것이다!” 한 국제적인 투자 전문가의 이 단정적인 전망은 어쩌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 판도의 거대한 지각 변동을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는 말일런지 모른다. 저자는 1980년대 초반 선진국 투자은행 중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이른바 제3세계 경제권이 앞으로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이 될 것임을 간파했다. 그리고 그는 81년 제3 세계란 부정적인 말 대신 흔히 신흥시장으로 번역되는 ‘이머징마켓’이란 말을 처음 고안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신흥시장은 실제로 국제 자본의 핵심적인 투자 지역으로 떠올랐다. 이 책은 신흥시장 투자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저자가 우리나라의 네 개 기업을 포함해 신흥시장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으로 떠오른 25개 기업의 성장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한 보고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앞으로 세계 경제는 이들 기업과 앞으로 신흥시장에서 발흥한 새로운 기업들이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책에 소개된 신흥시장 기업들의 성공 사례는 이들이 어떻게 신흥시장의 척박한 기업 환경을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바꾸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역별·분야별로 판이한 기업들의 다양한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다. 시공을 초월한 용인의 지혜 최우석 지음, 을유문화사, 1만2,000원 적게 잡아도 국내에서만 1,000만 명 이상의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를 경영의 관점에서 풀이한 책이다. 저자는 유비와 조조, 그리고 손권을 국가 CEO로 보고 기업 경영에 대한 교훈과 시사점을 이끌어낸다. 특히 중국 고대의 영웅담을 현대의 기업과 경영인들에게 대입하는 식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컨대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현대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 등 실제 인물의 경영 스타일을 군주들의 국가 경영에 비유하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난세의 치국과 격변기의 경영은 기본적으론 같은 원리라는 전제에서다. 이 책에서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국가와 기업의 성쇠는 얼마나 잘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사람 보는 안목과 받아들이는 그릇, 그리고 사람을 제대로 쓰는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곳곳에 CEO들이 귀 담아 들어야 할 경구가 많이 나온다. “눈 밝은 CEO만이 인재를 고를 줄 알고 통 큰 마음이어야 그들을 부릴 수 있다”, “위대한 경영자는 항상 되는 방향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준비는 빈틈없이 한다”, “CEO는 생전에 후계자 지명과 함께 후계자를 보필할 통치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작은 일엔 적당히 고개를 숙일 줄도 알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 한번 읽고는 서가에 모셔둘 게 아니라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펼쳐 들 만한 책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1만4,000원 시오노 나나미의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초점은 로마 제국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느냐다. 지은이는 로마의 멸망을 국가의 망국보다는 문명의 종말이라는 큰 시각에서 바라본다. 로마는 한바탕 큰 전쟁을 치르다 장렬하게 무너진 게 아니라 시름시름 기운을 잃어가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쓰러져 버렸다. 도대체 로마 내부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길래 영광의 역사를 그처럼 허무하게 접고 말았는가. 바로 이것이 지은이의 탐구의 원점이다. 제1권에서 지은이가 로마인에 대해 갖게 된 의문이 있다. 지력은 그리스인에게 밀리고, 체력은 게르만족에 밀리고, 기술력은 에르토리아인에게 처지고, 경제력은 카르타고인에게 뒤진 로마인이 어떻게 1,000년의 영광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 이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번엔 반대의 의문을 갖고 마지막 권을 읽어보자. 아마도 로마사가 지닌 드라마적 요소를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가 재구성한 로마사는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따라서 독자의 지위나 처지, 또는 눈높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교훈도 많다. 특히 CEO라면 조직의 영고성쇠와 관련해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책도 책이지만 40여 년 동안 로마사 하나에 매달려온 지은이의 열정과 집중력에도 새삼 감탄하게 된다. 작은 차이가 기업 운명 바꾼다 마이클 레빈 지음, 김민주 외 옮김, 흐름출판, 1만원 미국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은 1982년 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것들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깨진 유리창 이론’을 발표했다. 이는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행인들은 건물 주인이나 주민들이 이 건물을 포기했다는 인식을 갖는다고 한다. 점차적으로 건달들이나 노숙자들이 모여들고 절도나 폭력 등 강력 범죄가 자주 일어나 마침내 슬럼화한다는 이론이다. 책은 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기업 경영에 원용한 것이다. 기업에 문의 전화를 했는데 자동 응답기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분통을 터뜨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또 얼룩진 식탁보를 깐 레스토랑이나 판매원이 불친절한 상점에 간 기억도 있을 것이다. 모두 고객을 밀어내는 사소한 ‘구멍’들이다. 지은이는 이 같은 사례를 기업의 ‘깨진 유리창’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어떤 것이 ‘깨진 유리창’이고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코카 콜라 · 맥도널드 · K마트 · 아메리칸 에어라인 등의 사례를 들어 생생하게 알려준다. 지은이에의 말을 빌리자면 ‘깨진 유리창’은 사소한 곳에서 발생하며 예방이 쉽지 않다. 문제가 확인되더라도 소홀하게 대응한다. 문제가 커진 후 치료하려면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 치료법도 제시한다. 결론은 이렇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 사소한 일이란 없다. 작은 차이가 사소한 당신의 인생과 비즈니스의 운명을 바꾼다.” “노래 잃은 카나리아가 되지 말라” 요시다 덴세이 지음, 김선민 옮김, 웅진윙스, 1만2,000원 흔히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란 말을 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적도 좋고 조직 생활도 잘하는 직원이 꼭 유능한 간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본 언론인 출신이 쓴 리더십 개발서다. ‘유능한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세 가지 함정’ 등 진단 파트는 넘어가도 좋다. 단 ‘노래 잃은 카나리아 신드롬’은 눈여겨 볼 만하다. 유능한 팀장이 원맨쇼를 하다시피 하면 팀원들은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게 돼 의욕도, 창의력도 없는 복종형이 됨을 뜻하는 용어다. ‘유능한 사람을 키워내는 사람의 기술’ 등 처방 파트는 실제적이고 재미있다. ‘무능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기술’로는 무능한 부하가 지금 하고 있는 일(Doing)뿐만 아니라, 지금의 느낌(Feeling)에 접근하고, 조직원으로서의 자질 외에 인간으로서 어떤 사람인지(Being)에 관심을 기울이는 ‘세 가지 ING’를 강조한다. 이런 인간적 관심을 기울이면 퇴근 후나 주말을 할애할 필요 없이 업무 시간 중에도 충분하다고 한다. 여기에 ‘무능한 사람에게 내 뜻을 전달하는 기술’과 ‘대화를 이끌어내는 기술’이 추가되면 금상첨화다. 일본 것이긴 하지만 사례가 많아 쉽고 흡인력이 있다. 물론 실천은 그리 쉽지 않고 유능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예 필요 없는 책이긴 하다. 개혁 성패는 도덕성과 무관 이중톈 지음, 강경이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1만6,000원 “현명한 사람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CEO에겐 역사 공부를 권하고 싶다. 11세기 송나라 때 재상 왕안석의 개혁과 그 실패는 중국 역사상 유명하다. 대체로 뜻은 좋았지만 사마광을 중심으로 한 구법당의 반대가 실패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지은이의 시각은 색다르다. 지은이는 왕안석의 독단주의가 개혁 실패의 근본 원인이라고 봤다. 왕안석은 “천하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의 구설수에 주눅 들지 않고 옛 제도와 법규의 개혁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삼불주의(三不主義)’를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기와 뜻이 다르면 사람마저 배척했다. 그러니 가깝던 사람들이 그와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개혁에 쓸 사람이 없었다. 개혁의 오른팔이었던 여혜경도 나중에 왕안석에 누명을 씌우려 했을 정도였다. 민심도 무시했다. 현실을 무시한 개혁정책으로 부패가 들끓어 농민 1,000여 명이 집단 상경해 자기 집 앞에서 항의를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왕안석은 개인적으로 총명하고 박학다식했으며 고결했다. 중국 역사상 수레를 이용하지 않았고, 첩을 들이지 않았으며 사후에 유산을 남기지 않은 유일한 재상이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지은이는 “개혁의 성패는 도덕성과 무관하다”고 말한다. 군사력보다 강한 힘 크리스토퍼 히버트 지음, 한은경 엮음, 생각의 나무, 1만4,000원 경제, 문화·예술, 정치 분야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이다. 부자가 지켜야 할 책임과 도덕, 요즘 말로 하면 기업 메세나에 해당하는 문화·예술에 대한 적극적 후원의 방식, 권력의 부침(浮沈)에 대처하는 자세,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에 관한 통찰 등,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현재적 주제들은 매우 풍부하다. 메디치 가문의 지도자들은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하드파워에 해당하는 군사력보다는 소프트파워에 해당하는 문화·예술 분야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지배가 정당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또한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 즉 돈이야말로 정치적 권력의 진정한 기반이 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로렌조는 뛰어난 학자, 작가, 예술가들이 시골 별장에 모일 때면 그 역시 함께 자리하고 싶어 했다. 매년 11월 7일이면 피에졸레나 카레지의 별장에서는 플라톤의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다.’ 진정한 문화의 힘을 이해했던 사람들이 바로 메디치 가문임을 알 수 있다. 300 년에 걸쳐 지중해 지역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메디치 가문도 그러나 유럽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그 흥망성쇠의 드라마가 그야말로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책이다. “딱 한 가지에만 미쳐라” 안대회 지음, 휴머니스트, 1만9,000원 부제목이 책 내용을 잘 말해준다.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18세기 조선에서는 벽(癖)과 치(痴)라 불렀다. 어느 한 가지에 단단히 미쳤다는 뜻이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어느 한 가지에 미쳐서 시대를 너무 앞서 간 탓에 사회 변방으로 밀려난 조선 시대 인물 10명의 인생 역정을 담고 있다. 여행가 · 책 · 장수 · 원예가 · 천민 · 시민 · 기술자 등등. 화훼 전문가 유박은 꽃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화원을 경영하면서 화훼 전문서까지 집필했다. 유박은 과거를 보거나 벼슬을 하지도 않았고, 오직 꽃 가꾸는 일에만 전념했다. 사대부 집안 출신 정란은 전문 여행가였다. 그는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조선의 모든 명산을 등반하며 여생을 보냈다. ‘“일본과 중국을 여행할 수 있다면 노비가 돼도 상관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8세기 프로페셔널은 조선 왕조의 근간이 되는 주자학적 인간관, 세계관과 결별해 주체적으로 살려는 의지를 보였으며 세계와의 불협화음을 감내하며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들은 틀 속에 안주하려 하지 않고 틀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으로 그 시대의 고독한 창조자가 됐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들어 있다. 미국 미래는 전통 계승에 달렸다. 페터 벤더 지음, 김미선 엮음, 이끌리오, 1만3,000원 고대 서양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 현대 세계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미국 제국. 이 두 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로마와 미국 모두 ‘섬’이란 지정학적 특성에서 출발했다. 로마는 지중해,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일종의 보호막으로 삼아 제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바다가 더 이상 보호막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부터, 국가 안보라는 목적 아래 활발한 대외 진출 또는 정복 사업을 펼쳤다. 물론 차이점도 많다. ‘로마 제국은 정치적 본능, 국민적 규율과 군사적 강대함이 힘의 근원이었던 반면, 미국은 기업가적 에너지, 역동적인 경제와 진보하는 기술이 힘의 근원이다. 또한 결과 역시 차이가 있다. 한쪽은 군주제로 통치된 제국이 된 반면 다른 쪽은 민주주의적으로 이끌어지는 비공식 제국이 됐다.’ 저자는 미 제국의 미래를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다만 고대 로마 제국이 고전적 그리스 문화의 유산을 수용하여 발전시켰듯이 미국도 그 문화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온고지신(溫故知新) 또는 법고창신(法古創新), 즉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새롭게 재발견해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 여부에 미 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보는 셈이다.

2007.08.0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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