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로 가지만 위드 코로나라고 말할 순 없어”
정부 방역규제 완화, 빗장 해제 수준까지 와
확진 검사 방법·비용, 개인에게 전가 자율화
신속항원검사도 11일부터 중단, 의료계 우려
해외 “풍토병 수준으로 낮춰 적응하려는 듯”
정부가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단계적 일상 회복)를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실정은 위드 코로나를 향해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오미크론·델타크론·스텔스(BA2) 등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고 확진자 수가 하루 30만명 안팎으로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사적모임 인원수와 다중이용시설(식당·카페 등)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를 두 달째 계속 완화해오고 있다.
정부가 개개인의 동선까지 일일이 간섭하던 추적을 점차 포기하고 있다. 국가의 방역부담을 낮추고 민생경제 회복에 무게를 둠으로써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방안을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 전면에 나서겠다는 전제를 남겨 위드 코로나를 아직 공식화하진 않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지난해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11월 9일쯤 위드 코로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후 정부는 11월 1일부터 위드 코로나를 공언, 발걸음을 본격 내딛고 일상회복지원위원회를 꾸리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의료현장이 마비 위기에 빠지자 12월 중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와 백신 접종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위드 코로나 정책은 폐지되는 분위기로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사적모임·영업시간 제약 풀고 출입기록 없애
연말연시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단축했던 대중교통 운행시간도 지난달부터 정상화하고 있다. 코레일과연계 운행하는 서울 지하철 4호선은 지난달 19일부터, 3호선은 이달 1일부터 심야 운행에 들어갔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는 지난달 7일부터 심야시간 단축 운행을 해제했다.
정부는 역학조사를 명분으로 코로나19 확진자의 개인 동선을 일일이 추적 공유하던 코로나 사태 초창기와 달리, 지금은 기록과 추적을 단계적으로 중단해가고 있다.
다중이용시설 이용 때 방문기록을 남기는 QR코드·안심콜·수기명부 등 출입명부를 2월 19일부터 멈췄다. 이어 지난달 1일부턴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 11개 업종에 대한 방역패스를 시행한지 4개월만에 중단했다.
정부는 또한 코로나19 확진 여부 검사를 국민 개인에게 맡기는 자율화 조치로 방역감시망을 해제하고 있다.
확진 검사 개인에 맡기고 무료 신속항원검사도 중단
정부는 심지어 코로나19 확진자를 신속하게 선별·격리시키기 위해 무료로 제공하던 신속항원검사도 오는 11일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신속항원검사 희망자는 11일부터 호흡기전담클리닉과 호흡기진료지정 의료기관을 찾아가야 한다.
60세 이상 고령층, 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받은 사람, 밀접접촉자와 같은 역학적 관계자 등 검사 우선순위 대상자는 보건소에서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계속 받을 수 있다. 구입가격이 부담되거나, 구매 근성이 떨어지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독거노인시설·의료취약주민 등에겐 지방자치단체와 보건소가 자가검사키트를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무료 신속항원검사 중단 결정에 대해 “국내 확진자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동네 병·의원을 통한 신속항원검사 방식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각계의 의견을 반영 조율하기 위해 만든 일상회복지원위원회 내부에서도 사적모임 인원수와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감염 급증시 의료체계 혼란 등을 이유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감염병 등급 하향 움직임에 의료계 우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의 방역 완화 기조에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대책 없는 방역 완화 방침”이라며 “혼란한 의료 현장을 정상화하는데 주력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의료계는 현재 1급으로 지정한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낮추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위험은 여전한데 감염 등급을 낮추는 것은 정부의 역할과 부담을 내려놓으려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무상의료운동본부 관계자는 “총리가 ‘변화된 상황에 맞게 코로나19 감염병 등급 조정을 논의해달라’고 주문했다는데, 감염병 등급을 낮추면 치료비용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부담하게 된다”며 “이는 정부가 방역·치료 부담을 개인에게 넘기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방역규제 완화 방침에 방역당국 한 관계자는 “방역과 민생경제 사이에서 오랫동안 거듭해온 고민의 결론으로 보인다”며 “사적모임 인원수와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에 대한 규제도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3년째에 접어든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계속 대처하기엔 부담이 큰데다 민의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WSJ “한국,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완화·적응 움직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Despite High Covid-19 Case Counts, Asian Nations Learn to Live With the Virus’(높은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제목을 부연 설명하는 부제목엔 ‘South Korea is considering downgrading the way it categorizes Covid as an infectious disease; Singapore is steadily dropping restrictions’(한국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전염병 분류를 하향 조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방역규제를 꾸준히 완화하고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뉴스에서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방역규제를 하나씩 풀면서 코로나19를 팬데믹(pandemic 전세계적 유행병)에서 엔데믹(endemic 국지적 풍토병)으로 낮추려는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한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선진국들 중 가장 큰 규모이지만 (정부는)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을 포기했다”며 “확산 급증을 필연적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함께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 하는 동안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 발병률을 낮게 유지했지만 지금은 바이러스를 다르게 다루려 하고 있다”며 “최근 오미크론 유행으로 감염자 수가 급증했지만 높은 백신 접종률과 체계적인 보건 시스템을 바탕으로 위중증·사망자 비율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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