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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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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공급망,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 [스페셜리스트뷰]

산업 일반

2005년 나온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산간오지인 동막골에 들어간 북한 인민군 장교가 촌장에게 부락민들을 잘 통솔하는 비결을 묻자 촌장은 그저 “뭘 마이 멕여야지”라고 답한다. 결국 세상 모든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고, 이것은 일자리로 귀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걸 생생하게 전해주는 대목이다.필자는 기업에 재직 중이던 당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붕괴의 원인이 된 동일본 대지진 등 사건을 계기로 극단적 재난상황에서도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여러해에 걸쳐 한 적 있다. 당시 그룹내 많은 경영진과 외부의 전문기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핵심 계열사의 공급망과 운영체계를 다루는 것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하라'는 모토 하에 일어날 수도 있는 모든 위기를 상정하고, 사안별로 최적의 대비와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었다.얼마 전 공급망 분야 세계적 석학인 요시 셰피 MIT 교수의 책 '매직컨베이어벨트'를 전문가 2명과 같이 번역해서 출간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해당 책의 주요 부분 위주로 AI시대 지속가능한 공급망과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관점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흔히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이므로, 위험이 아니라 기회를 보는 긍정적 사고를 하는게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실제 비즈니스에 있어 위기라는 건 늘 있다. 그 위기를 잘 극복하면 성장하고 번영하는 것이고, 좌절하면 소멸되는 것이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이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공지능(AI) 이라는 또다른 위기AI 열풍이 느껴진다. 챗GPT로 촉발된 AI혁명은 이제 일상과 기업 운영방식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고, AI로 인한 일자리 소멸 전망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자리의 90%가 6년 뒤 AI로 대체 가능하다거나, 의사나 변호사 등 많은 일자리가 5년내 1400만개 사라진다고 하는데, 진행 중인 AI 기반 혁명은 이전의 산업 혁명들과는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 첫째 전문직 종사자와 광범위한 직업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만이 유일하게 가능했던’ 기능을 매우 빠르게 수행한다. 변화 속도를 주목해야 한다. 이전의 산업 혁명에서는 농부가 기계로 대체되는 경우 공장과 공급 생태계를 설계하고 구축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기 때문에 개인은 은퇴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거나 직업을 전환할 시간이 있었고, 기업들도 변화에 적응할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AI 기반 자동화, 클라우드 컴퓨팅으로의 전환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많은 기업과 조직이 이미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디지털화해왔기 때문에 전환은 매우 빠르다. 그렇다고해서 AI기술 주도 혁신이 바로 일자리 파괴와 대량 해고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정보기술 혁명은 소프트웨어 및 웹 개발자, 디지털 마케팅 전문가 등 많은 직업을 만들어냈다.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직업은 예측가능하므로 기업과 정부는 근로자 경력 재설계와 교육, 훈련을 통해 변화에 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둘째 일부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은 기존 일자리의 연장선상에서 확대될 것이다. 누구나 PC를 활용해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관련 교육,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필요했기 때문에 IT관련 직업은 소멸되지 않았다.결국 새로운 생성형 AI 도구는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전문가 수요를 창출할 것이다.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경우 바로잡아주는 AI트레이너와 분석을 돕는 전문가가 등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 발전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 가령 1970년대에 비해 오늘날의 항공여객 승객은 크게 늘었다. 항공업계를 뒷받침하는 기술발전이나 여건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여객기 조종석 승무원이 과거 5명에서 2명으로 줄면서, 승객당 인건비가 줄자 여행 수요가 늘었고, 규모의 혁신이 일어났다. 더 많은 조종사, 객실 승무원, 수하물 취급자 및 공항 직원을 필요로 하게 되어 일자리가 늘어났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다시 항공 여행의 증가로 이어졌다.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에 따르면 2005년 저비용항공사(LCC)설립 후 국적항공사의 조종사 수는 2022년 기준 6,382명으로 2010년 3,750명에 비해 70% 이상 증가했다.중요한 것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AI기술 혁신으로 인한 비약적 발전이 고용에 항상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근로자를 위한 충분한 교육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90년대 후반까지 주말에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들을 했던가? 신문 광고를 살펴서 주말에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어느 극장에 몇시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알아내고, 당일 몇 시간 앞서 도심의 극장에 나가서 현장 예매를 하고, 상영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국내에 아이폰이 상륙한 것은 2009년인데, 지금은 어린아이들까지 과거 노트북을 손에 하나씩 들고 다니며, 버스를 타거나 일기예보와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드웨어는 물론 애플리케이션 등 연계기술이 발전된 덕분이다. 현재 기술개발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이제 수많은 일터에서는 다가올 변화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을 계획하고 개발해야 할 때다. 계속해서 새로운 세상에서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술이 일자리를 파괴하는 방법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여러 방식과 형태로 탈숙련화를 가속화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광범위하게 일자리와 고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계별로 살펴보자.첫 번째, 탈숙련화(De-Skilling)이다. 저숙련 노동자가 고숙련 노동자에 비해 낮은 임금으로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 두 번째, 더 적은 근로자로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하는 확장(Scaling) 현상을 가져온다. 산업용 기계의 도입은 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양의 작업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된다.마지막으로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특정 직업이 완전히 없어지는, 일자리 제거(Elimination) 현상이다. 승강기 운전원, 전화 교환원, 전보 배달원, 버스 안내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역사 속 사라진 직업이다.사실 잃어버린 일자리들은 잘 알려진 것이지만, AI기술로 새롭게 창출될 미래 직업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이러한 관점은 앞으로 기업, 협회, 학계 그리고 정부 등 기술과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기술적 논의와 대비를 위해 해야 할 정책적 함의 도출에도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시스테믹 솔루션 영향력 막대AI기술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단일 포인트 솔루션(Single-point solution)이다. 잘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면 인식을 예를 들면, 인공지능 기능으로 휴대폰 잠금을 해제한다.이들 기술은 일자리 감소를 초래하지는 않으며 보안을 강화하고 잠긴 휴대폰 화면을 여는 절차를 가속화할 뿐이다.두번째 유형은 비즈니스 프로세스 솔루션(Business-process solution)인데, 이 기술은 특정 작업 수행을 위해 설계되며 해당 업무와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은행 대출 평가나 보험금 청구 업무라면 AI기반 솔루션은 단순 업무를 해결하고, 복잡한 문제는 숙련된 작업자나 관리자가 처리한다. 세 번째 유형은 시스테믹 솔루션(Systemic solution)이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변경하는 AI기술이 포함된다. 구글의 광고 타겟팅 시스템은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준다. 한 번 구축해 조정되면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필요하지 않으며, 자체적으로 의사 결정도 내린다.주목해야 하는 인공지능의 혁신적 잠재력은 대부분 시스테믹 솔루션 영역에 있지만, 새로운 기업의 출현이나 서비스와 일자리 개발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결국 오늘날 AI 기술의 대부분은 비용 절감(주로 노동력)에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 프로세스 솔루션이다. 이는 근로자들에게 두려움을 야기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알려지지 않은 발전을 이끌 것이며, 일부는 인간에 유익하고 일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기술 발전으로 제거된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돼 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우려, 또는 특정 업무 개선을 위한 무분별한 솔루션 도입보다는 앞에서 소개한 AI기술의 적용 유형과 방식을 고려해 기술 도입이 기업 내 임직원, 조직, 기업 문화에 미칠 영향을 다각적으로 타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프로세스 개선은 인간의 몫많은 전문가들이 자동화, 특히 AI와 로봇공학을 실존적 위협으로 보고 있지만, 로봇과 인간은 상호 보완적인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더 유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많은 협업의 경우 로봇이 경쟁자이기보다 협력자에 더 가까운 부분 자동화(partial automation)로 실현되고 있다. 인간 노동자는 기술과 판단을 요하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대표적인 협동 로봇의 형태는 공장 코봇(cobots)과 물류 코봇이다. 물류센터와 공장에서 공장 코봇은 더 숙련된 영역을 처리하는 인간 작업자와 협력해 단조롭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돕는다.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의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에서는 AI가 탑재된 코봇이 무거운 짐을 옮기고, 인간 작업자는 로봇의 움직임을 지시하거나 더 섬세한 작업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 로봇들은 휴대용 태블릿을 사용해 쉽게 재프로그래밍될 수 있으므로 벤츠는 다양한 고객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다. 궁극적인 코봇의 실현은 사람과 기계를 결합한, 착용 가능한 외골격 로봇(exoskeleton)일 것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기보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줄 가능성이 더 많다. 결국 로봇은 반복적인 표준 작업을 처리하고, 사람은 예외 처리와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대부분의 인간 학습은 사례 연구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식적인 견습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생성형 AI 시스템은 관찰을 통해 사람들이 하는 방식을 기계의 속도로 빠르게 학습하고, 대량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일단 생성형 AI 시스템이 훈련되면 그 응용은 다양하다. 특정 전문가 계층 사이에서 일자리 제거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복잡한 맥락적(contextual) 요소를 판단하여 기계나 장비 사용의 장점을 평가하고, 필요시 기계를 바꾸도록 지시하거나, 고장을 수리하고 교체하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호 보완적인 기능은 사람과 기술 간의 협업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VUCA 시대의 퓨처 트렌드AI의 도입으로 인해 비즈니스와 공급망의 VUCA 특성(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이 강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시대이다. 미래는 다음 3가지 트렌드의 상호 작용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고,특히 직업의 미래 관점에서 근로자에게 두가지 상반된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첫 째,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는 VUCA 수준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둘째, 세계 인구는 이미 상당한 지리적, 인구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셋째, 끝없이 발전하는 정보 기술은 이러한 세상에서 유용한 데이터, 의사 결정, 제어 및 기능을 제공할 것이다.이러한 트렌드의 상호 작용은 다음 두 가지 영향을 근로자에게 미칠 것이다. 첫 째, 기술이 새로운 유형의 작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기존 인력 중 일부를 대체할 것이다. 둘째, 자동화의 광범위한 확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를 뒷받침하는 비즈니스와 공급망의 모든 활동을 설계, 관리, 실행하기 위해 지속적인 인력수요는 있을 것이다.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2023년 일자리 미래 보고서(Future of Jobs Report)에 따르면 AI 및 머신러닝 전문가, 로봇 공학 엔지니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문가 등 일자리는 크게 늘고 단순하고 일상적인 관리나 물리적 작업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직업 범주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일자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가장 숙련된 직원이 될 것이다. 즉, 기계적 아웃풋이 어느 시점에 의미가 없는지, 기계가 고장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유경험자들이다.미래를 위한 인재 공급망 노동시장이 AI로 자동화되면서 숙련 인재 확보가 고용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단순 업무가 줄어들면서, 저숙련 신규 인력의 고용 기회가 줄어들 위험이 크다. 만약 회사에 신입채용이 없다면, AI나 통신 시스템이 실패할 경우 예외를 처리하고 기계의 잘못된 결정에 개입해 바로잡고, 공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숙련 직원을 개발할 방법이 없다. 기술 변화와 관련된 난제 중 하나는 기술이 새로운 업무 기법을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지만, 실직자들은 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0.68이라는 사상 초유의 합계출산율이 예상되는 대한민국의 2024년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앞에 두고 기업은 기술 격차(Skill Gap,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력과 직원의 역량 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 기존 인력의 재교육과 훈련에 집중해야 하며, 이는 기업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요소로 강조된다.앞으로 기술은 기업과 고용의 미래 모두에서 절대적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근로자들이 동일한 직위로 같은 직장에 계속 근무하더라도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자동화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들은 전체 업무 환경과 개별 작업 모두에 대해 점점 더 많은 데이터를 제때 확인하고, 업무에 적용되는 기술을 이해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또한 일부 프로세스 결함이나 발생가능한 오류를 발견하는 동시에 광범위한 환경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잠재적인 이상 징후가 수정해야 할 사항인지, 적응해야 할 변화인지,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 문제인지 판단하는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물론 컴퓨터와 AI가 공급망과 산업현장에서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교류하고 협력해야 한다. 문제 조치 노하우나 경험치가 쌓이지 않는 경우 자동화는 공급망의 복잡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점점 더 복잡해지는 공급망에서 관리자는 시스템 평가 및 분석 같은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IoT, 로봇, 자율주행차, 수학적 모델, AI 등 고급 공급망 도구를 인력과 통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또한 업무량 패턴을 예측하고, 작업자의 생산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모든 작업부하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기술 자원 수준을 예측하고 가용성 및 리드타임과 같은 예상 서비스 요구 사항을 유지할 수 있다.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고급 AI, 클라우드 플랫폼에 대한 광범위한 적용은 공급망 관리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7월 19일 협정 세계시(UTC) 새벽 4시경(한국 시간 오후 1시경)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상에서 실행되는 크라우드스트라이크(CrowdStrike)발 전산망 마비 및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다.이 사건은 기업들이 개별 구매하여 설치한 서드파티 소프트웨어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였고, 전 세계가 정보기술(IT) 먹통 사태를 겪었다. 미국, 독일 공항에서 비행기가 묶였고 영국, 호주 증권거래소와 방송사 등에선 컴퓨터 화면이 멈춰 서는 ‘블루 스크린 현상’이 발생했다. 850만대의 MS 윈도우즈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서버와 PC에 크라우드스트라이크(CrowdStrike) 보안 솔루션 업데이트가 배포되면서 발생한 장애로 IT로 이어진 ‘초연결 세계’의 잠재적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이러한 장애는 수많은 기업을 순식간에 마비시키고 공급망을 혼란에 빠트린다. 지나치게 많은 기업이 동일한 클라우드 기능, 소프트웨어 시스템 또는 데이터 흐름에 의존하게 되면 모든 기업이 동시에 장애에 취약해져 시스템적으로 광범위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디지털 시스템의 또 다른 취약점은 사이버 공격에 노출된다는 것인데, 한 회사의 시스템에서 공통적인 취약 부분을 활용해 다른 회사의 시스템을 다운시킬 수 있다. 2017년 6월 글로벌 컨테이너 운송사 머스크(Maersk)의 경우 76개 항구와 800척의 선박에서 회사의 컴퓨터 시스템 전체가 중단됐다.사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사이버 전쟁 공격으로 해커들이 유포한 악성코드가 전 세계 컴퓨터를 무차별 공격했던 것이었다.피해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전 세계로 퍼졌고, 시스템과 서비스 중단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회사에서, 담당자들은 피해를 복구할 때까지 최대한 수작업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앞에서 말한 사태들의 첫번째 교훈은 시스템 작동 방식에 대한 숙련인력들의 지식에 따라 복구, 정상화 시점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 지식은 아쉽게도 모두 자동화되기 어렵고 물리적 문서와 고도로 숙련된 현장 작업자의 기억과 경험에 저장돼 있는 경우가 많다.두번째 교훈은 인간이 관여하는 시스템은 한 번에 중단되거나 고장 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복잡하게 연결된 컴퓨터 시스템과 네트워크는 갑자기 셧다운이 발생된다. “실수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정말로 일을 망치려면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오류나 장애가 발생한 경우에도 프로그램된 작업을 고집스럽게 완수하는 컴퓨터의 특성 때문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의도한 대로 작동하더라도 컴퓨터의 경직성(rigidity)은 결국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다.인구 고령화,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장기적인 추세는 눈에 명백히 보인다. 변화가 가져올 충격과 영향에 대해 기업들은 예상은 하면서도 단기적 재무압박을 명분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다른 한편 장기적 변화의 또 하나의 속성은 긍정적인 잠재적 기회도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선견지명이 있는 어떤 기업은 적응할 기회를 갖게 되고 상대적으로 대응력이 취약한 회사에 비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근 많이 언급되고 있는 인구 변화 리스크에 있어서 핵심 요소는 이주와 저출산 고령화 문제일 것이다. 기후 변화, 지정학적 불안과 전쟁, 그리고 빈곤층에서 벗어나기 위한 갈망으로 인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더 삶의 질이 높은 안전한 국가로의 이주가 계속되고 있다. 이주의 긍정적인 측면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 수요, 추가 노동력이 유입되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부정적 측면은 이민자들이 이주 지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일자리 경쟁자로 인식되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다.정부 지출패턴에도 변화가 필요 또 하나의 인구 변화 관련 주제는 저출산 고령화로 최근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다. 고령 사회는 인구 감소와 맞물려 근로 연령층과 은퇴 시민 사이에 불균형 문제를 야기하며, 정부 지출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인구통계학적 변화는 미래의 일자리와 관련된 주요 문제이다. 근로자 고령화의 영향은 기업에게 중요하다. 대규모 인력의 은퇴가 임박하면 조직이 알고 있는 업무 지식, 즉 ‘제도적 기억(institutional memory)’이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퇴사전 보유 지식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인수인계가 모든 조직에서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될 것이다.기업은 문서화된 매뉴얼에만 의존하는 대신 첨단 AI로 구현되는 여러 대안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기존 직원으로부터 학습하고 데이터를 정리하며 해당 정보를 새로운 세대에 효율적으로 이전할 수 있는 몰입형 지식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명백한 장기적 추세인 인구변화 외에도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파괴적 혁신’도 있다.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존 제품을 꾸준하게 개선하는 ‘점진적 혁신’을 선택했던 노키아와 기존 휴대폰 시장을 전복하는 ‘파괴적 혁신’을 추구한 애플의 사례는 매우 유명하다. 짧은 시간내 소멸되는 태풍과 달리 비즈니스에서 일어나는 파괴적 혁신은 고객 수요와 시장구조에 영구적 변화를 만들어낸다.이렇게 장기 변화 추세, 장기 리스크, 전략적 대응과 관련해 기업이 예측 실수를 피하기 위해 시나리오 기법 훈련을 해보기를 권고한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다양한 ‘만약의(what if)’ 미래 모습들과 그 다양한 현실들이 회사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경영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진의 시각을 넓히고 다양한 미래 변화에 대비하는데 큰 효과가 있다.최초의 도로교통법이라는 영국의 적기조례는 1896년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30여년 간 작동하며 영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잃게 만든 결정적 계기로 평가 받는다. 보행자나 마차의 안전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차량의 무게,속도,주행방식 등을 규제한 법률인데, 실제로는 마차 관련업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동차는 도심 최고 시속 2mph (3.2 km/h)의 속도로 주행하도록 하고,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여러 대의 마차를 운반하는 도로 차량 앞에서 걷는 것을 요구했다. 말도 안되는 내용이다.최근 보여준 챗GPT 등의 엄청난 퍼포먼스 때문에 AI 시대에 대한 과잉의 두려움이 있다. AI 시대를 어느 개인이나 한 국가의 노력으로 피할 수도 없고, 새 일자리 창출효과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AI 시대 관련 국가가 할 일은 2050 탄소중립 대응과 얼개가 같다. 전체 사회의 공정한 전환을 위한 제도개선에 힘써야 한다. 기업이나 산업단위로 해야 할 일들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조금 더 앞서 나가야 한다.기업은 내부 자원과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인적자원 교육훈련에 앞서 나가야 한다. 눈앞의 현실과 자기 실력에 대한 과잉 과소평가 모두 금물이다. 개인은 필요한 쪽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AI나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종합적인 역량을 준비해야 한다. 국가적,사회적으로 그러한 준비를 하겠지만, 무엇보다 학습하는 인간, 발전하는 인간으로 본인의 정체성을 잡고 가야 한다내가 근무하던 조직은 운좋게도 90년대 PI(생산성혁신)에 한 발 앞서 투자하고 체질을 개선한 덕분에, 디지털 전환 시기에 선진 국가의 경쟁기업들을 앞서 나갔고, 장기 호황의 발판을 만들어 냈다. 1등을 지향하는 치열한 내부 경쟁 문화가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전체 조직이 위기의식을 갖고,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도록 만들고, 과감하게 투자를 한 최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미래는 어느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변화된 미래가 올 것이라는 건 모두가 안다. 이제 준비의 시간이다. 김효석 환경부 국립환경인재개발원장은_환경과 안전을 주제로 글로벌 제조기업의 공장과 본사, 지주사를 차례로 거친 이후 공직에 입문했다. 우리나라 환경공무원들의 직무교육과 환경기술인력들의 전문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앞서 전자업종에서 오래 일하며 사업지속성체계(BCM) 구축을 오래 맡았고, 그룹 연수원을 통해 EHS전문인력을 양성했다.

2024.11.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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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는 약 3630평 규모의 세계 최초 디지털 엑스레이 칩 생산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의료영상 기술 기업 나녹스(NANOX)가 한국에 설립한 시설이다. 이스라엘 기업은 어떻게 한국에 생산공장을 짓게 됐을까. 그 출발점에는 나녹스를 미국 나스닥 상장사로 키운 이스라엘의 대표 벤처캐피탈(VC) 요즈마그룹(이하 요즈마)이 있다. 요즈마는 히브리어로 ‘시작’을 의미한다. 요즈마는 이름의 뜻대로 설립 후 수많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시작을 함께했고, 그 중 20개 이상의 기업을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켰다. 그리고 2015년에는 한국에 진출했다. 요즈마는 한국 법인 요즈마그룹코리아를 설립하고, 국내의 우수한 아이디어와 기술들을 연계해 사업화하고 투자를 진행 중이다. 요즈마그룹코리아의 중심엔 이동준 대표가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019년 회사의 CSO전략 총괄 부사장으로 합류해 투자 및 사업개발 전반을 이끌어왔고 지난 2021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이 대표의 합류로 당시 200억원 수준이던 회사의 운용자산은 최근 3700억원 규모까지 커졌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요즈마그룹코리아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요즈마그룹코리아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들어봤다. 이스라엘 벤처캐피탈은 왜 한국에 왔나이스라엘은 7000여개의 스타트업과 100여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는 대표적 스타트업 강국이다. 요즈마는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강국으로 성장해온 여정을 함께해왔다. 요즈마는 1993년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이 공동출자해 요즈마펀드로 출범했고, 1998년 민영화가 되면서 지금의 요즈마그룹이 됐다. 지난 2015년 요즈마는 첫 해외 법인으로 한국을 택했다. 자원은 부족한데 기술력과 창의성은 뛰어난 국가라는 공통점에서 한국을 눈여겨본 결과다. 한국의 유망한 기술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스라엘의 기술을 한국 제조업에 접목하기에 요즈마의 경험과 전략이 먹힐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요즈마그룹코리아는 제조업이 발달한 한국과 스타트업이 발달한 이스라엘의 강점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스라엘 혁신 기술을 국내 제조기업과 연계해 함께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으로 탄생한 대표적 시설이 나녹스의 용인 공장이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나녹스가 한국을 제조 허브로 선택하도록 했고, 나녹스는 용인시에 3600평 부지를 매입해 공장을 설립했다. 이동준 요즈마그룹코리아 대표는 “해외 진출을 고려할 당시 미국은 제품을 제조하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중국은 제품 카피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국내 스타트업 업계 현황과 미래는국내 스타트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투자 혹한기를 겪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규제까지 더해져 사업을 운영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의 고비를 넘기 위해선 창업자의 철학과 스탠스(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냉정히 말하자면 다 내던질 정도의 자신감이 없다는 창업을 하지 않는 게 나은 시기“라며 ”사업에 대한 창업자의 확신이 필요하다. 내 돈 안 들이고 투자금만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는 있지만 이게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현실에 공감했다. 그는 “매출이 이미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자산유동화, 매출채권유동화, 신용대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스타트업은 한계가 있다”며 “스타트업도 투자 이외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 차원에서 창업을 원하는 이들의 부담을 덜어줄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규제 완화도 좋지만 중간 자금 조달 역할을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주변에서도 창업을 했다가 망한 이들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다”며 “이스라엘이나 외국의 경우 개인 횡령 이슈가 없다면 1년 내에 빚을 탕감해준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한다. 한때 바이오나 헬스케어가 중심에 있었고, 최근엔 ESG,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이 새로운 테마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바이오는 거품 가라앉은 시기”라며 “최근엔 메타버스와 AI 분야를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트리거가 돼서 성장하는 사업이 있을 것이란 의미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다양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유 중이다. ▲인공지능(AI) 솔루션 공급업체 ‘플래테인’, ▲클린테크 기술기업 ‘에어로베이션’, ▲초고속 배터리 충전 기술 개발 기업 ‘스토어닷’ ▲의료기기 전문기업 ‘알파타우’ ▲인공지능(AI) 기반 심장진단 영상 혁신기업 ‘울트라사이트’ ▲증강현실(AR) 기술 기업 ‘에브리사이트’ 등 이스라엘의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사업영역 분리로 몸집 키운다최근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전통적인 벤처캐피탈업 외에도 AC(액셀러레이터), 프리IPO, 메자닌, 그로스딜 등 모든 투자 영역에서 활동 중인데, 각 사업 영역의 분리를 시작한 것이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스스로 지주사 역할을 맡고 계열사들이 각각의 영역에서 투자 관련 사업들을 영위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이 대표는 “요즈마그룹코리아는 단순히 VC가 아니다. 우린 투자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VC와 PE(프라이빗 에쿼티)의 투자 인사이트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이런 영역들이 다 한 바구니에 있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우리도 이를 분리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며 “VC 업무를 위해 요즈마인베스트먼트 법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투자가 주업이지만 이외에도 투자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사업화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원천기술을 이전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거나 해외 진출을 컨설팅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부터 후속 투자, 사업화, 글로벌 진출, 기업공개까지 성장에 필요한 모든 일을 돕는 것이다.즉 투자 영역에 있는 다양한 버티컬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주요 사업전략이다. 요즈마그룹코리아는 이스라엘 혁신 기술과 한국 선도 산업 생태계를 연결하기 위해 컨설팅 회사인 요즈마이노베이션센터(YIC)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한국과 이스라엘을 잇는 ‘한-이 컨퍼런스’ 사단법인을 만들어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며 “양국의 관계를 저 긴밀히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목표 “글로벌 대표 기업으로의 도약”요즈마그룹코리아의 장기적인 목표는 이스라엘 VC에서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스라엘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투자 관련 사업 영위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존의 색을 차차 줄여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래서 그로스 영역 사업을 분리할 때는 ‘요즈마’라는 이름 대신 사용할 새로운 법인명을 검토 중이다. 이 대표는 “요즈마그룹코리아는 VC에서 투자 영역을 넓히는 변곡점에 있다”며 “색이 짙으면 왜 이스라엘 기업이 아닌 곳에 투자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어 요즈마그룹코리아의 성공을 위해선 경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경영자로서의 포지션일 뿐 ‘투자의 귀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투자를 할 때 내가 줄 수 있는 인풋은 심사역들의 판단에 합리적 의심을 주고, 투자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이 대표는 경영자로서 자신이 가진 책임감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투자의 앵글보다 더 큰 틀에서 경영자로서의 위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요즈마그룹코리아는 투자 이외에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업 영역이 분사가 잘 되면 아름다운 그림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3.07.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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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WEEK] 삶은 선택의 연속…'냉정과 열정 사이'부터 '오디너리 조'까지

유통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OTT 홍수 속에서 한 번쯤 볼만한 콘텐트를 소개한다. 피렌체로 떠나고 싶어지는 '냉정과 열정 사이'부터, 로맨스 소설 원작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까지. 다양한 콘텐트를 가져왔다. ━ 환절기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작품이다. 뜨거웠던 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남자 쥰세이(타케노우치 유타카)와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한 여자 아오이(진혜림)의 10년간에 걸친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름다운 풍경,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명대사들과 배우 타케노우치 유타카의 내레이션, 서정적인 OST가 돋보인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수많은 연인을 오르게 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냉정과 열정 사이' 개봉 후 피렌체를 찾는 일본인의 발길이 폭발적으로 늘어 화제를 모았다. ━ 수영은 어쩌다 안티팬이 됐나 시즌의 오리지널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는 동명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톱스타와 잡지사 기자의 티격태격 로맨스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단독 기사를 위해 톱스타가 온다는 행사장에 찾아간 주인공.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고 톱스타의 안티팬으로 낙인찍힌다. 이후 안티팬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톱스타, 얼떨결에 톱스타와 함께 살게 된 안티팬.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시즌에서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를 확인하면 된다. ━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지금 달라졌을까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불확실함을 안고 결정을 내리고, 만약 이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한다. 그 대학에 가지 않았더라면, 다른 직장을 선택했더라면, 조금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인내했더라면. NBC유니버셜의 드라마 '오디너리 조'는 선택에 따라 달라진 조의 세 가지 인생을 그린 드라마다. 조는 대학을 졸업한 날 인생의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계단에서 우연히 부딪힌 에이미와의 데이트, 오랜 친구였던 제니와의 여행, 그리고 가족과의 식사. 조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해 각각 가수, 간호사, 경찰로 살게 된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사는 조를 보며, 우리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어땠을지 상상을 자극한다. 선모은 기자 seon.moeun@joongang.co.kr

2022.03.1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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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 AI기술로 ‘치매=절망’ 편견 깰 것”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

CEO

“몇 년 만에 연매출 수백억 신화”, “고졸이 대박집 사장이 되기까지”, “유명 대기업에 수백억 투자받은 비결”, “스타트업, 나처럼 하면 성공한다”…. 창업 관련 기사를 수놓는 미디어의 헤드라인이다. 가시밭길을 밟아온 창업가의 역경 드라마를 소개하고,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는 식이다. 스타트업의 숱한 곡절을 생생하게 목격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전 디캠프 센터장)는 창업 시장이 일률적으로만 묘사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창업가의 성공에 손뼉만 치고 끝낼 게 아니라, 그들의 혁신 비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하자.” 가 ‘김홍일의 혁신우혁신’을 연재하는 이유다. 창업 요람의 리더 역할을 하던 VC 대표와 현직 기자가 스타트업 CEO를 만나 진중한 질문부터 가볍고 짓궂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릴 새 성장 동력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아홉 번째 대담의 주인공은 치매 조기 진단 및 예방을 목표로 하는 인지건강 플랫폼 실비아를 론칭한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다. 치매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대부분 깊고 어둡다. 냉정한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건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유효하다. 연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정확한 발생 원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탓이다. 확실히 증명된 예방법이 없고, 완전한 치료약도 없다. 치매인구의 증가는 곧장 사회에도 부담이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가족이 떠맡고 있어서다.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는 이 무거운 담론에 발을 디딘 창업가다. 치매 조기 진단 및 예방을 목표로 하는 인지건강 관리 모바일 플랫폼 ‘실비아’를 출시했다. 수백만원이 소요되는 치매 검사 대신 앱을 통해 두뇌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음성·안구 패턴·촉각 분석 등 비대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개인의 인지건강을 평가하고, 전문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인지건강을 기를 수 있는 생활습관도 안내한다. 시공간능력, 실행기능, 기억력, 주의집중력, 언어능력 등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인지 트레이닝 콘텐트’를 갖췄다. 치매 진단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게 당장의 목표다. ━ “깜빡 하지 말고 실비아 하세요” 실비아 플랫폼의 가치는 곳곳에서 인정받았다. 2019년 서울대 의과대와 디캠프가 공동 주관한 데모데이에서 우승의 영광을 누렸고, 2020년 8월엔 끌림벤처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삼성전자의 외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LAB 아웃사이드’에도 선발됐고, 지난해 8월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얼마 전엔 데이터산업진흥원 주관한 데이터-그로스 프로젝트에서도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WHO 서태평양 사무국이 주관한 헬스 이노베이션 포럼에서 한국 대표 치매 혁신사례 패널로 발표하기도 했다. 실비아 앱은 지난해 8월 오픈베타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월간활성사용자수(MAU)가 매달 180% 넘게 증가했다. 1인당 평균 방문 횟수는 13회에 이를 정도로 참여도가 상당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치매극복선도기업 선정, 광주광역시 서구, 시니어클럽, 금천 50플러스센터, 성남 고령친화 산업 동반 협력기업 선정 등 다수 지자체와의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지금은 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리더지만, 고명진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을 꿈꿨던 건 아니다. CEO 명함을 만들기 전엔 서울대에 재학 중인 의대생이었다. “치매는 많은 이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지만, 국가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그렇게 방관하던 사람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김홍일 대표) : 청운의 뜻을 품고 창업을 목표한 건 아니었다고요. 고명진 실비아헬스 대표(고명진 대표) : 실비아헬스의 주춧돌은 서울대 의과대학과 디캠프가 공동주관한 데모데이였습니다. 굵직한 경력의 심사위원을 상대로 창업할 서비스나 제품,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자리였죠. 그때 서류를 낼 때 비즈니스 모델(BM)을 적는 항목이 있었거든요. 저는 실비아헬스의 BM을 ‘비영리’라고 적었어요. 김홍일 대표 : 엉뚱한 시작이었네요. 고명진 대표 : 창업을 할 의지가 뚜렷하진 않았던 거죠. 데모데이 참가를 준비할 때만 해도 법인을 만들 생각이 없었고요. 저를 중심으로 친한 의대생이 모여 만든 동아리 형식의 팀이었죠. 김홍일 대표 : 그런데 우승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제서야 창업을 결심하게 된 건가요. 고명진 대표 : 맞습니다. 창업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저는 의대 재학중에는 창업에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창업이 저와 어울리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뭔가 창업가 특유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맨손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도저 같이 밀어붙이는 식의 정신이요. 2030 세대에게 창업은 중요한 생존전략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청년이 성공을 꿈꾸면서 스타트업을 만든다. 대개는 실패로 끝이 나는데, 성공한 이들을 추려보면 공통의 DNA가 드러난다.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길 갈망하는 뜨거운 에너지나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강한 도전 욕구가 대표적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창업가가 되기로 한 것처럼, 운명에 이끌리듯 창업을 길을 걷는다. 고 대표의 설명대로라면 그는 ‘어쩌다 창업가’가 된 것처럼 보인다. 실비아헬스의 초기 모델이 돈을 버는 회사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떠밀리 듯 실비아헬스를 만든 건 아니었다. 고 대표 역시 의대 연구동에 붙어있던 한 장의 포스터에 적힌 슬로건에 운명처럼 끌렸다. ‘소소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였다. 마침 그에겐 소소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치매를 AI로 진단하는 것이었다. 증상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면 그럴듯한 결과를 내지 않겠냐는 공상이었다. 의학은 빅데이터 기반 AI 기술 접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였다. 고 대표는 특히 진단의료 분야에서 성과가 탁월하단 얘길 들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 관련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진 못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데이터를 365일, 24시간 학습해 정확도를 높이면 인간 의사와 견줄 만한 정밀도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이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AI 전문가였다. 고 대표는 친구에게 관련 데이터를 보내고 이걸 AI에 접목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데모데이에서 우승하면 상금도 탈 수 있다”고도 꾀어냈다. 한참 뒤, 친구의 회신이 왔다. “기술적으로 가능해. 그런데 명진아. 나 이 아이디어에서 창업이 보여.” 소꿉친구는 실비아헬스의 공동창업자가 됐다. 전재민 최고기술책임자(CTO)였다. 김홍일 대표 : 전재민 CTO와 합심해 실비아헬스를 만들었습니다. 의사라는 안정적이고 창창한 미래를 걷어차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요. 고명진 대표 : 주변에서 극구 만류했죠. 그렇게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저는 오히려 열정이 샘솟았어요. 오히려 ‘아, 나는 실비아헬스를 만들기 위해서 그간의 삶을 살아왔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많은 창업가가 기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트리거 삼아 창업하잖아요. 저는 반대였습니다. 창업 자체가 제 삶의 변곡점이자 트리거가 됐습니다. 김홍일 대표 : 순서가 바뀐 셈이군요. 그렇게 뜻밖의 기회로 첫 발을 떼는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고명진 대표 : 무엇보다 창업가로서도 충분히 제 장점을 발휘할 수 있겠더라고요. 저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하고 이를 고민하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매 순간 끊임없이 문제와 부딪히고 이를 신속하게 해결해야 하는 창업이 그랬어요. 김홍일 대표 : 자, 이제 실비아헬스 얘길 해보죠. 치매 진단을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선정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 대표는 아직 20대잖아요. 하필 이 무거운 시장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명진 대표 : 어떤 현상이든 그림자를 봐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 그림자를 꽤 가까운 데서 목격했습니다. 고명진 대표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세계적 명문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국내외 대기업을 노크하면 손쉬운 취업을 기대할 수 있는 스펙이었다. 그런데도 고 대표는 방향을 확 틀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이번엔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하고 싶은 건 해내고 마는 고 대표의 독특한 정체성은 현재 실비아헬스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발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남다른 삶의 궤적을 든든하게 지탱했던 건 고 대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고 대표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그만큼 그에겐 각별한 존재였는데,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항상 작은 고민거리도 저와 나누던 할머니가 저 모르게 치매 유전자 검사를 받고 오셨더라고요. 다행히 결과엔 특이사항이 없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손녀 몰래 검사를 신청하고 받고, 결과를 초조히 기다렸을 할머니를 떠올리니까요. 그사이 얼마나 속앓이를 했겠어요.” ━ 노년층 위한 일상 속 전방위 케어 필요성 절감 고명진 대표는 치매가 우리 삶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바늘구멍 같은 명문대 입학을 두 번이나 돌파한 학습력으로 노년층의 인지건강 관련 공부에 파고들었다. 치매에 관련한 책을 읽고 웬만한 논문은 다 섭렵했다. 이를 바탕으로 어르신과 소통하는 방법이나 원격 인지재활 진행 매뉴얼, 상담 매뉴얼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치매를 대하는 인식이 곱지 않다는 걸 느낀 것도, AI와 인지건강 진단을 엮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도 이때부터다. 김홍일 대표 : 치매가 무서운 병인 건 사실이잖아요. 정말 한국 사회만 유별나게 대응하고 있나요. 고명진 대표 : 다들 절망의 병으로 치부하는데, 치매는 질환이 아닙니다. 상태를 의미하죠. 저는 치매란 단어부터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어리석을 치(癡)’에 ‘미련할 매(呆)’,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걸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주로 쓰던 게 일본이었는데, 지금은 바꿨어요. 인지증으로요. 김홍일 대표 : 다른 나라에선 뭐라고 합니까. 고명진 대표 : 디멘시아(Dementia).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정신이 없어진 것’이란 단순한 의미가 담겼죠. 전 세계를 휩쓴 넷플릭스 드라라 오징어게임의 오일남 캐릭터를 두고 미국 시청자가 이런 말을 써요. ‘디멘틱!(Dementic)’ 김홍일 대표 : 이름을 바꿔서 인식을 개선하기엔 숨은 고통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요. 고명진 대표 : 중증의 치매는 그렇죠. 조기에 진단하면 개선할 방법이 여럿 있어요. 그런데 치매의 치자만 꺼내도 엄숙해지는 분위기니까, 악화할 대로 악화해서야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 겁니다. 깜빡깜빡하는 현상을 두고 차라리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어르신이 상당하다는 거죠. 치매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요. 김홍일 대표 :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건 아닐까요. 고명진 대표 : 치매 환자를 위한 스타벅스까지 등장하는 일본과 견줄 순 없지만, 한국도 인프라는 훌륭해요. 특히 오프라인은요. 전국에 치매안심센터가 250여개가 있습니다. 땅끝 거제도에도 있죠. 60세 이상 국민에겐 무료로 검사도 해줘요. 그런데 심각성을 크게 느끼기 전에는 오프라인 문턱을 넘기가 어려워요. 김홍일 대표 : 이 문턱을 낮추는 게 실비아헬스의 임무군요. 고명진 대표 : 오프라인 상담소를 찾아가는 게 부담스럽고, 수백만원을 웃도는 검사·관리비가 부담이 되는 분도 손쉽게 조기진단을 받고 치매 예방에 대한 접근성도 높기 때문이죠 요샌 어르신도 유튜브 보고 카톡도 하잖아요. 그런 앱보다 쉽게 실비아 앱을 다룰 수 있게끔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김홍일 대표 : 치매에 드는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실비아헬스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실비아헬스가 앞으로 성장해서 더 많은 사람이 실비아를 접해야 할 텐데요. 가능할까요. 고명진 대표 : 될까, 안 될까를 확률로 재고 있진 않습니다. 꼭 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고령화 사회, 치매는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입니다. 실비아 앱을 통해 그 고통과 슬픔, 두려움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고 싶습니다. 김홍일 대표 : 치매를 마냥 두려워하는 완고한 사회 분위기가 정말로 바뀔 수도 있겠군요. 그것도 20대 청년 창업가를 통해서요. 고명진 대표 : 최종적으론 노화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실비아헬스는 그 변화에 크게 기여하고 싶고요. 이런 꿈같은 일이 가능하겠냐고 묻는다면, 저는 또다시 꼭 해낼 거라고 답할 겁니다. ━ 기자가 본 고명진 대표 고명진 대표가 “치매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고 강변하는 사이, 주변의 누군가가 치매에 걸렸다고 상상했다. 머릿속이 헝클어져 갔다. 소중한 기억이 흐릿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금세 쓸쓸하고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청년 창업가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폭과 깊이의 담론처럼 느껴졌다. 그의 전공인 경제학과 의학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인지도 궁금했다. 고 대표가 부연했다.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저 역시 절실합니다. 인생을 걸었거든요. 다행히 그간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을 다뤘어요. ‘사람은 이럴 거다’란 전제 아래 경제학은 사람과 사회의 행동 패턴을 탐구하고, 의학은 사람의 몸을 다루죠. 실비아헬스는 AI를 다루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닙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마음인 거죠.” 고 대표는 결이 다른 두 학문을 공부하면서 공통의 깨달음도 얻었다. 이론과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다. 경제가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전개되지 않고 환자의 상태가 의료진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듯 말이다. 이 때문에 한 가지 답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과 치료법이 등장한다. 의사가 아닌 창업을 통해 실전에 뛰어든 고 대표는 실비아헬스 경영에 이 깨달음을 적용했다. 모든 경영 결정이 사업을 위협하는 변수고, 정답이 없는 문제다. 그만큼 골머리를 썩이지만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스타트업 생태계에 발을 디뎌서인지 고명진 대표는 스테레오 타입의 창업가처럼 보이진 않았다. 대신 학구열에 불타는 ‘모범생’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노화가 두렵지 않은 세상’이란 대담한 꿈을 꺼내기 전까진 말이다. 그가 훤칠하게 커 보였다. 이 가시밭길 많은 공상을 실현해야 하는 건 고명진 대표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보단 더 많은 사람의 응원과 지지를 받았으면 좋겠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2022.02.01 18:00

9분 소요
[조지선의 심리학 공간] ‘봉테일’의 정수(精髓)는 공감 능력

전문가 칼럼

방송국 막내 스태프의 노고 위로한 거장… 연출능력과 균형·조화 이뤄 다 지나간 봉준호 감독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왠 뒷북이냐고 한소리 들을 테지만 못다 한 봉 감독 이야기가 있다. 돌아보면 지난 2월 오스카상 덕분에 기대와 환희, 여운을 차례로 느끼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다. 촌스럽다고 핀잔하거나, ‘국뽕’에 취했냐는 비아냥거려도 할 수 없다. ‘봉 하이브! 미친 해외 반응!’ ‘거장의 한마디에 세계가 열광.’ 이런 얘기를 들으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장면은 서너 번쯤 돌려봤다.냉정하게 따지자면 봉준호가 상을 받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실제적 이득이 손톱만큼도 없는데 남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내가 흥분할 이유가 무엇인가. 봉 감독을 대놓고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슬쩍 민망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봉 감독의 모교인(필자의 모교이기도 한) 연세대는 교정 곳곳에 ‘동문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상 수상 축하’ 플래카드를 걸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봉 감독은 학교가 이러고 있는 걸 알기나 할까?”그런데 이런 논리적 자각과는 별개로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촌스럽긴 해도 모교의 ‘자랑질’을 탓하고 싶지 않다. 우리 딸, 아들이 가요제 대상을 받았다고,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고 마을 어귀에, 집 담벼락에 대문짝만한 현수막을 거는 부모를 누가 탓할 수 있는가. 봉 감독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마치 제 일처럼 아카데미 경사를 기뻐하는 것은 국뽕 부작용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심리적 과정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 현상을 ‘반사된 영광 누리기(Basking in Reflected Glory)’로 설명했다. 우리의 감독, 봉준호의 영광은 곧 나의 영광이다.못다 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작정하고 ‘반사된 영광’을 누려보자. 한국 최초로 오스카상을 받은 우리나라 감독에게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심리적 역량이 있다. 이미 검증된 디렉팅 역량에 준하는 ‘사람됨’이다. 능력뿐 아니라 봉준호의 내면도 ‘진짜배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그의 금의환향 순간이었다. 지난 2월 16일 귀국한 그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짧은 소감을 밝혔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필자는 적잖이 놀랐다. ‘아, 이 사람! 이런 사람이었구나!’ 한 인간의 내면이 쉬익 드러나는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했기 때문이다.“작년 5월 칸부터 여러 차례 수고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미국에서 긴 일정이었는데 홀가분하게 마무리돼서 이제 조용히 본업인 창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다. 아까 박수도 쳐 주셨는데 감사하고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계신 국민들께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말의 내용도 훈훈하지만 ‘결정적’ 장면은 마지막 찰나였다. 귀국 소감을 밝힌 후 자리를 뜨기 직전 봉 감독은 젊은 스태프의 어깨를 두 번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팔 아프겠어요.” 통상, 인터뷰에는 무선 마이크 다발이 등장한다. 봉 감독이 발언을 이어가는 동안 무릎을 꿇고 마이크 묶음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벌 서는 자세를 유지해야 했던 젊은 친구에게 세계적 거장이 나지막하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오스카상 수상 때도 없었던 후광이 봉 감독의 독특한 헤어스타일 위로 펼쳐지는 듯했다. 아카데미급 매너라서가 아니다. 심리학 관점에서 봤을 때, 그 상황에서 봉 감독이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고 돌아왔다. “내가 손가락 하나를 까닥하면 할리우드 스타들도 한걸음에 달려올 걸.” 이것이 봉준호의 속내인들 어떤가. 상당히 현실적인 판단이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플래시로 꽉 채워진 45일 간의 북미 캠페인. 그 여정의 끝에서 금의환향의 상징인 수백 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순간에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친구, 팔이 아프겠는 걸.”권력이 없는 필자에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인사다. 그러나 프랑스 칸에서 시작돼 멈추지 않는 박수와 칭송이 일상이 되어버린 봉 감독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권력자가 되면 사람이 변할까? 변한다. 나는 아니라고? 미안하지만 권력을 얻으면 나도 변한다. 힘 있는 사람과 힘없는 사람의 심리적 체계는 확연히 구분된다.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에 따르면 권력의 부작용 중 하나가 자기중심성(self-focus), 즉 공감 능력의 상실이다. 공감의 기초가 되는 신경 네트워크인 거울 뉴런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까닭이다.젊은 스태프가 마이크 다발을 치켜들고 있을 때 이를 보기만 해도 내가 팔이 아픈 것처럼 느끼는 것은 거울 뉴런이 환하게 불을 밝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타인의 행동과 마음 상태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공감의 기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권력자가 되면 거울 뉴런이 어두워진다. 타인의 아픔에 무감해진다. ‘갑질’ 논란을 일으키는 권력자들을 보며 종종 이런 의문이 든다. “저 사람들, 혹시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잘못된 데가 있다면 아마 거울 뉴런일 것이다. ━ 권력 얻을수록 ‘거울 뉴런’ 닦아야 신예 감독 시절부터 예민하게 빛났던 그의 거울 뉴런은 권력의 정점에서 손상을 입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다. 그의 마음에 수직적 구조의 밑단에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려진 바다. 아파하는 사람을 모른 척 하지 않는 그의 공감 능력은 사실 감독으로서 그의 초기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참패한 상황에서 ‘살인의 추억’을 준비하던 봉 감독이 인기 배우 송강호를 캐스팅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송강호가 첫 번째 영화를 말아먹은 초짜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널리 알려진 대로 무명시절 송 배우가 ‘모텔 선인장’의 오디션에 탈락했을 때, 당시 조감독이던 봉준호가 삐삐에 남긴 위로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기회에 다시 뵙고 싶다며, 예의바르고 진심어린 메시지를 길게 남겨놓은 거예요.” 오디션 결과조차 통보해주지 않던 시절, 무시를 견뎌온 무명배우는 이 사건을 잊지 못했다.놀라운 연출 능력과 탁월한 공감 능력, 이 두 역량의 균형과 조화. 봉준호의 차기작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컴퓨터가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할 4차산업혁명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 리더십이다.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장면도 ‘팔 아프겠어요’ 장면만큼 마음을 울리진 못했다. 가장 작은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도 마음을 나눠주는 능력, 이것이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의 정수(精髓)다.- 조지선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 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필자는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조지선 #조지선 심리학 #조지선 이코노미스트

2020.04.05 15:54

5분 소요
[코로나19에 원격의료 첫발 뗄까] 설익은 정책, 의료계 반발에 20년째 ‘시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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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책임·의료 민영화 공방 여전… 미·중·일은 디지털 헬스케어 성큼 지난 2월 16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이던 다이아몬드프린세스호에 아이폰 2000대를 공급했다. 다이아몬드호 탑승객 3400여명 중 285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되자 의료 상담을 하기 위해 객실마다 ‘코로나19 대응 지원센터’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아이폰을 배포한 것이다. 승객들은 원격으로 의사·간호사에게 의료 상담은 물론 고민 상담, 약물 요청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서비스는 원격의료 상담서비스를 실시 중인 소프트뱅크·라인이 제공했다.위기 상황에 상당히 획기적인 방법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원격의료 상담 서비스는 한국에선 불법이다. 원격 기기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 것은 괜찮지만, 의료진이 환자에게 “규칙적 수면을 해라” “물을 많이 마셔라” 권고하는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중국 등 세계적으로 원격의료 서비스가 개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셈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선원·군인 등 격오지 근무자들은 제때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이런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의료 필요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의료진 부족으로 대구·경북지역 감염자 급증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거나, 의료진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일이 속출하자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실제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24일 전화로 의사 진단과 처방을 받는 원격진료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병원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전화 상담으로 진료·처방을 할 수 있게 됐다. 진료비는 계좌이체 등 송금으로 결제하고, 처방전은 팩스·이메일로 환자가 희망하는 약국에 전송해주는 식이다. 환자와 약사가 합의하면 약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지금까지 중소 산업단지나 노인요양시설 등 일부 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을 제외하고 원격의료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전염 속도가 빨라 불가피하게 일시 허용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김강립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은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정례 검진과 투약이 시급하다.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기간 내의 제한적 조치”라고 의사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 코로나19에 일시 허용했지만 의료계 거센 반발 그러나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원격의료 전면 허용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전화상담 및 처방은 환자의 진단을 지연하거나 적절한 초기 치료의 기회를 놓칠 위험성이 있다”며 “원내 조제의 한시적 허용으로 의료기관의 직접 조제와 배송을 함께 허용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정부의 이번 일시 허용 조치는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된다. 협회는 의사 회원들을 상대로 ‘코로나19 관련 대회원 긴급 안내’를 통해 “협회는 정부가 발표한 전화 상담 및 처방을 전면 거부한다. 회원님들의 이탈 없는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하기도 했다.하지만 원격의료 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경증 환자나 평소 고혈압·당뇨 등을 앓던 분들의 경우 원격으로 의료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면 어땠을까”라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최 의원은 또 원격의료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10년째 국회 계류 중인 데 대해서도 “각자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국민 모두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냉정하게 논의해 보자”고 말했다.의료계가 가장 반발하는 지점은 의료진의 책임소재에 있다. 원격진료는 화상·음성·문자 등 제한적 정보만으로 진단·처방을 내려야 하므로 오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책임소재와 진료 범위, 의사 재량권, 보험청구 등 세부적 지침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는 의료진이 진단의 주체이기 때문에 오진의 민·형사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원격진료의 일시 허용에서 정부는 ‘의사 판단에 따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료법상 원칙적으로 금지된 원격의료를 한 것에 대한 형사·행정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의료사고 발생 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져야 한다.특히 환자의 병력 등 의료정보를 활용할 수 없다는 점도 원격의료를 가로막는다. 국회에서 데이터3법이 처리돼 개인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범위는 격오지 근로·거주자의 가명 정보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니 환자의 건강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도 없는 실정이다. 한 대학병원 의사는 “원격의료와 개인의료정보는 묶음이다. 둘 중 어느 한 가지 규정만 풀려서는 실효성 있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현재 환자를 보고 있는 의료진이 화상 등을 통해 타지의 의료진과 상담·진단하는 행위는 합법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제공 동의가 필요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의료법 제34조에 따라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또 원격의료가 허용되면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심해져 동네 의원이 고사, 의료전달체계가 붕괴할 거란 우려도 있다. 여기에 병·의원이 오진 가능성까지 떠안으며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설비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작다. 게다가 한국은 영토가 그리 넓지 않고 의료접근성이 높아 원격의료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 “원격의료 외면하면 한국 갈라파고스 될 수도” 그러나 세계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추세로, 여론 또한 의료 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며 원격의료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하면 120만명의 의료 소외계층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불가피한데, 원격의료를 통해 사회·재정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현재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정보통신기술(ICT) 선진국들은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격오지 등 의료 사각지대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다. 영토가 넓고 의료서비스가 비싼 미국은 진료 건수 6건 중 1건이 원격의료일 정도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화상통화·앱 등을 통한 원격진료는 실제 대면 진료보다 비용이 70%가량 저렴하다. 스마트폰에 연결하는 웨어러블 심박 측정기나 혈압안정기 등 가정용 의료기기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보급되고 있다.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시행한 일본은 2018년부터 의료보험 및 건강보험에도 원격의료를 적용하고 있다. 중국도 2016년부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과 클라우드 서버 구축, 의료장비 기술의 발달 등으로 원거리 수술도 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이런 흐름은 구글·IBM·알리바바·소프트뱅크 등 글로벌 ICT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보다 통신 환경과 의료설비가 열악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원격의료를 확대하고 있다.한국은 세계 일류의 의료 기술을 갖고도 이런 세계적 조류에 발맞추지 못하면 갈라파고스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5G와 의료 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갖고도 활용할 수 없다”며 “메르스나 코로나19 같은 판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원격의료와 의료 데이터 활용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하고 의료정보를 활용하면 기업은 개인의 혈당·부정맥 등 만성 질환 정보도 습득해 일상 진찰이 가능해진다. 의료·생체 정보까지 습득하게 되면 정밀의료와 차세대 유전체 분석 등 첨단 의료 연구도 가능해진다.이런 필요성에 정부는 2000년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의료계의 ‘집단 휴진’ 등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삼성전자·삼성생명·SK텔레콤·LG유플러스·LG전자 등 대기업들이 2010~13년 원격 의료 시범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도 의료계는 의료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고객의 운동량에 따라 보험료를 절감하는 신기술·신개념 상품을 내놓아도 의료계의 반발이 겁나 홍보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 “원격 모니터링·의료전달체계 먼저 구축” 주장도 찬반의 경계가 분명해 이번에도 원격의료 논의가 용두사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효성 있는 정책 도입을 위해 원격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원격의료가 기존 의료 체제를 완전히 대체하는 게 목적이 아닌 만큼, 원격 모니터링을 전면 도입해 환자의 관리 수준을 높이고,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원격 모니터링은 환자가 자택에서 의료기기를 이용해 스스로 혈당·혈압·심전도 등 일상 건강 데이터를 병원에 보내면 의료인이 원격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다. 고혈압·당뇨·심장질환 등 만성질환환자 질병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원격 모니터링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다만 의료진이 환자에게 권고하는 것은 원격진료로 불법이기 때문에 서비스 활성화에는 부담이 된다.또 의료전달체계 먼저 제대로 구축할 필요성도 있다. 의료 전달체계란 대형 병원에 환자 집중을 막기 위해 지역 병·의원을 먼저 가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한국은 여전히 환자가 대형 병원으로 몰려 각급 병원이 무한경쟁을 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 환자들이 각급 병원에 나눠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1차 의료기관으로서 공공 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면 의료계의 반발도 감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동네 병·의원과 대학병원이 한 상에서 다투는데, 여기에 원격의료를 또 들인다고 하니 어떤 의료인이 찬성하겠느냐”며 “각급 병원의 체계를 먼저 잡는 게 먼저며, 이 실마리부터 풀어야 원격의료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2020.03.14 17:49

6분 소요
[STARTUP INNOMATE(4) 스파크랩스 | 글로벌 네트워크로 스타트업 한류 일으킨다] “한국은 가장 힙(hip)한 나라, 세계 무대 뛸 창업자 발굴”

스타트업

해외 네트워크, 130명 멘토단이 초기 스타트업 성장 지원… 한국의 와이콤비네이터 지향, 박찬호도 파트너로 합류 K팝을 세계화한 BTS, 전 세계 영화판을 휩쓴 기생충뿐이랴. ‘먹방’은 글로벌 표준어로 자리 잡았고, K뷰티는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음식 배달 앱서비스는 전 세계로 전파됐다. 온라인 플랫폼이 국경·언어의 장벽을 허문 덕에 한국의 문화 경쟁력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한류 열풍은 한국 기업의 세계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4조8000억원 가치로 해외에 매각됐고, 미미박스는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한반도에서만 뛰던 스타트업의 무대가 세계 시장으로 넓어진 것이다. 소프트뱅 크벤처스·요즈마펀드 등 주요 벤처캐피탈(VC)이 한국에 아시아 본부를 둔 것도 한국 스타트업의 확장성을 염두에 두어서다.글로벌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AC) 스파크랩스도 해외 시장에서 통할 한국적 콘텐트·기술·아이디어를 가진 기업을 발굴, 육성하고 있다. 스파크랩스는 재미교포인 김호민·버나드 문·이한주 공동대표가 2012년 설립했다. 한국의 와이콤비네이터(미국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글로벌 엑셀러레이터)를 지향하고 있다. 설립 후 초반에는 주로 시드 투자 등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했다. 현재는 시드 단계 전문운용사 스파크랩스글로벌벤처스, 후기 단계 전문운용사 스파크랩스캐피탈, 벤처펀드 운용사 스파크랩스벤처스 등 단계별로 투자그룹을 운영 중이다. 147개의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에 성공한 결과다.스파크랩스는 미국·중국·대만·홍콩·호주·오만 등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및 투자사 연합 ‘GAN’(Global Accelerator Network)의 회원사로, 스파크랩스의 투자를 받은 기업은 GAN의 교육·네트워크·투자유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스파크랩스가 집중하는 분야는 인터넷·모바일·온라인 게임·e커머스·디지털 미디어·헬스케어·핀테크 등 ‘스타트업 한류’를 이끌 수 있는 업종이다. 스파크랩스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조직 역량을 집중한다. 우선 피 투자사에 4~6명의 국내외 멘토를 지정한다. 멘토단은 사물인터넷(IoT)·모바일·온라인 게임·e커머스 등 분야에서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로, 스타트업의 사업화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원한다. 지난해 6월에는 국내 첫 메이저리거인 박찬호 선수가 스파크랩스의 파트너로 참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3개월의 엑셀러레이팅 과정이 끝나면 갖게 되는 데모데이는 스파크랩스 프로그램의 백미다. 데모데이는 국내외 투자사와 기업인들이 참여하며, 추가 투자나 대기업과 협업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지난 6월과 12월 각각 2000명이 참석해 글로벌 최대 규모로 열렸다.김호민 스파크랩 공동대표와 만나 스타트업 한류의 가능성과 최근 동향 등을 물었다. 그는 “한국은 유수의 대기업이 있고, 문화적으로 가장 힙(hip)한 나라”라며 “세계적인 정보통신(IT) 인프라를 갖춰 좋은 스타트업이 나올 토양이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 “세계적 IT 인프라는 좋은 스타트업 나올 토양” 스파크랩스는 어떻게 설립하게 됐나.“이한주·버나드 문 대표와 한국의 와이콤비네이터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설립 전에는 한국 경제가 재벌 위주의 생태계라 비관적인 생각도 했다. 연대보증 문제 등 스타트업 생태계가 자리 잡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러나 1000만명의 서울 인구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에서 기회를 봤다. 삼성·현대·LG 등 제조업 기반도 탄탄하다. 넥슨이 신규 게임을 출시하면 디즈니가 보러올 정도로 한국은 세계적인 국가다.”다른 AC와 차별점이 있나.“싸이월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세계적으로는 꽃 피우지 못했다. 한국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언어 장벽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부족해 성장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우선 한국에서 될만한 회사를 골라 해외 진출을 돕는 게 목표다.”어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나.“현재 130명의 멘토가 있는데, 한국인이 아닌 사람도 많으며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한국은 싸이월드나 네이버 지식인처럼 글로벌 트렌드 세터의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한국에 큰 관심을 갖는다. 클라우드 서버 등 기술 인프라도 좋아졌다. 국경을 넘어설 환경이 구축됐다. 타다 운영사 VCNC처럼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도 많이 나왔다.”가장 기억에 남는 회사는.“미미박스다. 2012년만 해도 K뷰티가 이렇게 성장할지 몰랐다. 한국 화장품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로벌로 나아가자는 스파크랩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회사였다.”현재 투자 현황과 성과는.“현재까지 147개사에 투자했다. 기업당 6만~7만 달러를 투자해 5~6%의 지분을 확보한다. 이후 엑설레레이팅을 통해 해외 진출을 돕는다. 1년에 두 차례 데모데이를 열어 우리가 육성한 스타트업을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선보인다. 와이콤비네이터가 만든 모델이다. AC는 후속 투자율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까지 65%의 기업이 데모데이 뒤 20억~2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현재까지 누적 후속 투자액은 5500억이다. 이전 기수까지 138개 회사의 기업가치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대표적인 엑시트 사례는.“미국 시장에 진출한 에듀테크 기업 ‘노리’와 미국 탭조이에 인수된 모바일 분석 기업 ‘파이브락스’가 있다. 2020년에도 엑시트가 활발할 것이다. 엑시트의 꽃인 상장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 투자한 ‘미미박스’, 일본에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제노플랜’ 등은 현지 상장을 바라보고 있다. 원티드도 해외에서 잘 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보다 지표 분석 등에서 냉정하다. 해외 매출이 중요한 이유다.” ━ 미국·일본 등 글로벌 증시 상장 목표 최근 창업 트렌드는 무엇인가.“인공지능(AI)이 e커머스부터 모든 기업,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고 있다. 앞으로 AI가 중심이 될 것이다. 이제는 데이터가 석유보다 비싼 시대다. 원유를 정제해 가솔린·항공유 등을 만드는 것처럼 데이터도 머신러닝으로 정제해 AI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밸류를 만드는 데 천착하고 있다. 모든 회사가 매출보다 데이터 소유권에 더 집착하고 있다.”한국은 데이터 발생량이 적지 않나.“빈익빈 부익부다.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IT 공룡이 커지는 데 대한 걱정은 있다. 다만 최근 트렌드는 심장박동 등 특정 분야에 데이터와 AI를 특화하는 것이다.”적합한 데이터를 모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AI 회사는 크게 데이터를 모으거나, 생성하거나, 분석하는 등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일단 데이터를 많이 모으는 게 최고라는 분위기다. 게임이나 e커머스처럼 회사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거나, 이를 시각화해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도구가 있는 회사가 주목받는다. 데이터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아직 어떤 함의를 담은 데이터인지는 몰라도 무조건 많이 모아두면 좋은 포지션에 설 수 있다. 기업을 인수·합병(M&A)할 때도 AI 엔진이나 데이터 유무 여부가 가격을 좌우한다. 데이터의 양으로 회사를 줄 세우고, 양질의 데이터가 있다면 관심을 갖는다.”아직 기술이 실체화되지 않은 것은 블록체인도 마찬가지 아닌가.“블록체인 기술은 확실히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분명한 킬러애플리케이션이 나오지 않았다. 최초엔 송금 분야에서 쓰일 것으로 봤는데, 블록체인의 컴퓨팅 파워를 생각하지 않고 접근해 한계를 노출했다.”글로벌 VC의 투자 트렌드는.“높은 기술력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가 몰린다. 특허를 몇 개 보유했나보다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까에 포커스를 맞춘 기업이 더욱 매력적이다. 실행력을 갖고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팀이냐가 중요하다.” ━ 자금 필요 없는 1등급 회사에 투자하는 게 실력 투자풀이 너무 좁아지는 것 아닌가.“자금이 필요 없는 기업에 하는 게 투자다. 잘 되는 회사에는 돈이 몰린다. 사실 투자 받을 자격이 없는 회사에도 돈이 몰리는 왜곡된 현상도 나타난다. 잘하는, 잘 되는 기업은 옥석을 가려가며 투자를 받을 것이며, 투자자로선 내가 돈을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자연스레 옥석이 가려진다. 학생의 질은 대학이나 교수가 결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1등급이 돼 선순환하는 것이 목표다.”좋은 기업은 어떻게 발굴하나.“발품밖에 답이 없다. 학연·지연부터 창업경진대회 심사위원으로 나가 열심히 접하고 찾아봐야 한다. 창업자가 문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열정적으로 풀 수 있는가를 먼저 본다. 열정이 있다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한다. 창업자의 능력보다는 인성을 더욱 중요하게 본다. 배우려는 마음가짐과 사명감이 중요하다. 투자를 받지 않아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높게 평가한다.”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 스타트업은.“다들 한국에 관심이 많고,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 등 대기업과 접점을 찾으려고 한다. 중국은 너무 크고 광활해 엄두가 안 나고, 일본은 폐쇄적이고 늙었다는 인식이 있다. 한국은 산업 인프라가 잘 닦였고, 인구도 적지 않으며, 아시아 문화를 주도한다. 아시아 시장의 접점으로 한국을 떠올리는 이유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유명한 것은 기술력과 유대인 네트워크, 마케팅 등 삼박자가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게임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이 있지만 언어와 네트워크, 마케팅이 약하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2020.02.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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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경의 ‘IF’ㅣ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16) 만약에 네버랜드에서 살 수 있다면] 강렬한 빚의 유혹 너머의 함정

전문가 칼럼

마이클 잭슨, 대저택 유지비와 낭비벽 등으로 추락... 빚테크도 지속가능한 투자여야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에서 부채가 계속 늘어났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기업·가계·정부 부채가 짐이 되고 있다. 부채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국가 경제나 민간 경제에 짐이 된다. 부채란 게 경제가 좋을 때는 잘만 활용하면 투자에 큰 도움이 된다. 누구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로 한몫 잡고 시장을 빠져 나간다. 이 시기에 성공담에 현혹되어 내 집을 사는 갭투자가 유행한다. 갭투자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여기 저기 들리면 사람들은 빚을 내서 ‘나도 성공하겠지’라는 마음으로 투자를 늘리게 된다. 빚지고 투자를 해야 더 빨리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조급증이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든다. 아뿔싸! 하필이면 그때가 집값이 정점을 찍을 때였다. 그 결과 갭투자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사람은 심한 경우 집값 하락으로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은 자신을 바라보며 세상은 투기꾼으로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주식은 어떤가? 2018년 4분기는 세계 증시가 큰 조정을 받은 기간이었다. 이젠 바닥이었지라는 생각으로 레버리지(차입) 투자 상품인 코스탁 ETF를 산 후 에상치도 않게 ‘지하실’로 지수가 내려가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레버리지 상품은 지수에 투자했더라도 산 지수보다 높아야지만 원금에 도달할 수 있으니 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다. ━ 위험천만한 부동산 갭투자 일본과 선진국의 국가부채, 중국의 기업·가계부채, 한국의 가계부채는 경제의 주름살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성장하는 경제에서 부채가 증가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문제는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증가 속도를 말하는 성장률보다 더 빨리 부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2008년에 비해 지금 GDP에서 총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세계 경제가 둔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세계적으로 부채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한번의 레버리지 투자로 성공했다고 성공이 계속 이어질까?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초대 주주로 릭 구에린이 있었다. 그는 한때 연평균 수익률이 부회장인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의 성과를 뛰어넘었다. 워런 버핏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와 찰리 멍거는 우리가 언젠가 부자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서두르지는 않았다. 릭 구에린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투자자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서둘렀다는 것이다.”더 빨리 부를 축적하기 위해 릭 구에린은 1970년대부터 돈을 빌렸다. 불행하게도 1973~1974년 다우존스가 거의 50% 하락한 베어마켓이 왔고 그는 레버리지 함정에 걸려들어 -62%의 손실을 보게 된다. 그는 레버리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워런 버핏에게 팔아야 했다. 하락하는 장에서 장사가 없는데 차입을 해서 그동안 쌓은 명성을 잃어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이 대목에서 첫 투자에 성공했다고 점점 더 많은 빚을 내서 투자에 나서는 것은 현명한 투자법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레버리지 투자가 성공하려면 경기나 투자상품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다. ━ 레버리지 함정에 걸려든 릭 구에린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강력한 소비의 유혹 때문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는 ‘빌리진(Billie Jean)’란 노래로 ‘문워크(Moon walk)’라 불리는 춤을 유행시켰다. 또 그의 ‘스릴러(Thriller)’ 앨범은 세계적으로 1억 4백만장이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80년대의 그의 뮤직비디오에는 공포영화처럼 으슥한 분위기에서 괴물로 변한 마이클 잭슨이 좀비들과 함께 추는 일명 ‘드릴러 댄스’가 나온다. 우리에게 친숙한 꼭지점 댄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인기에 가려진 그의 지나친 지출은 낭비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클 잭슨 사후 그의 빚과 관련한 논쟁이 이어졌고, 그의 낭비벽이 초점이 됐다. 그가 어린아이의 꿈을 생각하며 만든 대저택 네버랜드는 아이들이 결코 늙지 않는 동화 에 나오는 마법의 나라다. 한때는 직원이 150명에 달했으며 이곳에 15년 간 거주했던 마이클 잭슨은 네버랜드를 지상낙원으로 꾸미고자 했다. 그의 집을 보며 누군가는 만약에 내가 그처럼 대저택에 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네버랜드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내가 결코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원했습니다. 나는 항상 공연을 위해 투어를 떠났기 때문에 이곳에서 잃어버린 삶을 보상받고자 했죠.”마이클 잭슨은 1987년 1950만 달러를 주고 네버랜드를 매입했다. 그러나 그가 네버랜드를 담보로 빌린 돈 2450만 달러를 갚지 못하자 2008년 부동산 투자회사 콜로니캐피털이 23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후 콜로니캐피털은 부동산을 새로 단장해 시장에 내놓기 위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여하간 마이클 잭슨이 2009년 사망할 무렵 그는 네버랜드 탓에 거의 파산상태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어떻게 해서 그는 엄청난 수입을 얻는 팝의 황태자에서 빚쟁이가 되었을까? 어린아이 성추행과 네버랜드 대저택을 생각해 보니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성추행과 관련한 소송비용, 네버랜드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엄청난 비용, 잦은 성형 수술비를 포함해 그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해마다 3500만 달러를 사용했다. 이에 비해 그의 수입은 110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였다. 결국 수입을 넘는 과도한 지출이 그의 재정상황을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그의 꿈의 집 네버랜드가 압류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곳에서 살 수 없다는 것으로 상심의 나날을 보냈을 마이클 잭슨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아오며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에게 남들처럼 평범한 친구도 없고 유년기도 없이 오직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로서 성장해왔다. 중년이 되어서도 늘 남들의 어린 시절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의 지인이 말한다. “그는 항상 잃어버린 유년기를 떠올리면서 슬퍼했습니다. 마이클이 아이들을 특히 사랑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사연을 가졌기 때문입니다.”그가 유년시절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을 떠올리며 애절한 감성을 제대로 표현한 노래의 일부를 들어 보자.‘Have you seen my Childhood?(나의 유년 시절을 본 적 있나요?) / I’m searching for the world that I come from(난 내가 태어난 세상을 찾고 있어요) / ’Cause I’ve been looking around in the lost and found of my heart(왜냐하면 늘 내 마음속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기 때문이죠) / No one understands me(누구도 날 이해하지 않아) / …(중략)… / It’s been my fate to compensate, for the Childhood I’ve never known(내 운명에 대한 보상이 되어왔지요. 내가 절대로 알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대해서)’ ━ 부채 문제로 머리 아픈 G2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뒤로 하고 빚으로 가득 찬 현실을 주요 2개국(G2) 국가를 예로 들어 보자. 재정적자가 심한 미국의 국가부채는 트럼프 정부의 확대 재정정책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상환이 2019년부터 급증할 전망이다. 미국 기업들이 갚아야 할 빚만 3조 달러 안팎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신용등급 BBB급 회사들이 발행했으니 불안감이 느껴진다. BBB는 투자적격 기업 가운데 신용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기업이라고 신흥국 회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씨티그룹은 보고서에서 “신흥시장 불안 등으로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를 사려는 투자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탓에 미국 젊은이들의 부채 증가가 장기적으로 이들의 재산 형성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 학생들의 미상환 학자금 대출이 우리나라 1년 GDP 규모인 1조5000억 달러(1700조원)를 상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매월 학자금 상환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집을 살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관련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2008년 이후 130%나 늘어난 학자금 대출의 대부분은 밀레니얼 세대가 빌린 것입니다. 그중 여학생들이 전체의 3분의 2인 9000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네요. 미래의 주택 구매자들은 학자금 부채를 빨리 줄여서 주택 구매를 위한 신용을 쌓아 놓아야 하지만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으로 많은 젊은 부부가 임대 아파트 생활을 예상보다 더 오래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안타깝습니다. 이런 경향은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더 심각합니다.”우리나라나 세계 주요 국가들 역시 이와 무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도시지역에 사는 젊은 밀레니얼 세대의 푸념을 들으니 그들의 아픔이 크게 전해진다.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지난 5년 간 매달 수백 달러를 상환해왔지만 내 통장 잔고를 보세요.”울먹이며 말하는 그에게서 한국에서 결혼이나 출산율 저조를 이야기 하는 것은 사치로 보인다. 부모 잘 만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 장만은 언감생심이다.“누군가 내게 이런 지적을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신은 학자금 대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다음 빚을 진 것 아니냐고요. 그래요 맞습니다.”그렇다면 그는 어떤 불만을 제기하는가? 문제를 제대로 직시해야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우리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모든 것이 힘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죠. 기술이 발전하고 풍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요. 음, 정말 그런 말을 들으면 내 가슴이 찢어집니다. 학자금 대출에 대해 이 사회가 냉정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보수가 보장되는, 이른바 좋은 직장을 다니려면 최소한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요.”많은 밀레니엄 세대의 호소를 듣는데, 총체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라 위로의 말을 해줄 수밖에 없는 심정이다.“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을 보세요. 그들에게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일찌감치 집을 소유하는 것이 오랜 동안 소망해온 ‘아메리칸 드림’이었습니다.”이전 세대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 아버지·할아버지 세대는 여름방학 동안 일을 하면서 학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오늘날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 세대는 거의 반강제적으로 부채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요. 진정 정부와 기성세대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에 직면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인가요? 이런 상황을 몰고 간다면 우리에게 과연 미래가 있는 것입니까?” ━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미국 젊은이들 미국 대학의 수업료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비싸다. 지난 20년 동안 대학들은 연방정부의 수억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대출이 대학 수업료 인상을 억제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채를 안고 대학을 졸업한다. 통상의 일반 학생들에게 잘 나간다는 미국 경제 시스템에서도 학자금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직장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전문가들은 많은 대학이나 학생이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하려다 보니 고학력의 그렇고 그런 비슷한 학생을 대량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담배를 한 대 물고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열심히 살려고 하나 그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미래가 오버랩된다.더 나은 재무상황에 이를 때까지는 임대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임대생활을 한다고 해서 재정적으로 실패한 것도 아니다. 주택 소유가 자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수단이긴 하지만 무리한 주택 소유는 오히려 화근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무리하게 집을 사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 너무 많다. 미국 교육부 자료를 보면, 1995∼1996학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대출자 가운데 20년이 지나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은 사람은 38%뿐이다. 20년이란 세월은 청춘을 다 바치는 시기 아닌가! 2003∼2004년에 대출 상환을 시작한 사람 가운데 12년이 지나 대출을 다 갚은 사람은 20%에 그쳤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징조 아닐까? 빚과 함께 사는 인생이 늘어난다면, 내 미래를 빚에 저당잡혀 산다면 그것은 정말 생각하기 싫은 삶이라고 생각된다. 정부가 어떻게 이런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 시스템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세상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은행 보고서에서 학자금 대출 부채가 늘어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늦췄고, 주택 구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다행히 정부나 연방준비은행이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고 봅니다. 나 같은 사람은 학자금 부채 때문에 주택자금 대출 업체가 요구하는 소득 대비 부채 비율(DTI) 기준을 맞추는 것은 물론 계약금을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지금 결혼할 사람이 있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뉴욕연방준비은행은 보고서에서 2007∼2015년 28∼30세의 주택 보유가 감소한 것은 일정 부분 등록금 상승과 이에 따른 학자금 부채 증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의회에 출석해 학자금 대출이 계속 늘어나면 성장을 저해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 것은 문제를 제대로 직시한 것이라 봅니다. 신용카드 빚처럼 학자금 대출도 파산 때에는 탕감해주는 방안을 고려할 것을 제안한 사실 역시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소득 수준을 감안하고 정밀하게 조사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말이죠. 나는 가끔 미국 대학에 온 것이 후회되긴 해요. 내 친구 중에 세계은행에 다니는 아르헨티나인이 있어요. 아르헨티나에서 일을 하며 대학교를 다니다 독일에 가서 공짜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닌 친구인데요. 그곳에서 보험회사에 취직했다가 우연하게도 세계은행에 취직할 기회를 가졌다고 하더군요. 이른바 ‘짠돌이’ 생활을 하다가 좋은 직장을 얻은 케이스죠.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내 인생이 후회되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진학을 택했지만 빚을 갚는 부담이 졸업이 주는 혜택을 압도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중국의 총부채 증가율은 여전히 GDP 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 2018년 4분기 증시가 상당한 조정을 받았다. 세계 경제의 둔화 속에서 자산가격 하락과 부채 증가가 이어질지를 두고 설왕설래 중이다. 미중 무역갈등까지 겹친 중국 경제가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와중에 미국 등 주요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무분별한 저소득국 지원 정책이 해당 국가의 부채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데 대해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이는 중국이 자국의 정치와 안보상의 이익을 위해 부채상환 능력이 없는 나라에도 대출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려면 부채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한 척도가 필요하다. 파키스탄의 구제금융 심사에서도 IMF 라가르드 총재가 부채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미국은 중국의 자금 지원 탓에 부채위기에 직면한 나라에게는 IMF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나친 빚은 국가나 개인 모두에게 어려움을 야기한다.마이클 잭슨은 사후 43일 만에만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과 관련된 각종 마케팅 계약 등을 통해 유산 관리인들이 벌어들인 돈은 지금까지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 그를 통해 인기 스타의 사후 수입 신기록이 새워졌으며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잭슨 이전의 유명인 사후 사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모델은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여하튼 마이클 잭슨은 호화로운 생활로 생전에 빚더미에 시달렸지만, 사후에 재정적인 안정을 누리니 참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 자신에게 투자하라 투자 시점을 정확히 안다면 레버리지는 묘약이다. 불행히도 어느 유명한 투자자도 투자 시점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강렬한 빚의 유혹에 넘어가 더 큰 빚을 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면, 삶은 회복 불가능이다. 애써 번 돈이 대출이자로 빠져나가면 점점 더 깊은 빚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돈을 불리는 재테크에서 위기관리를 통해 가진 돈을 지키는 빚테크도 고려해야 한다. 부자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투자시점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분수에 넘치지 않은 생활과 절약이 답이다. 죽었지만 사후에도 꾸준히 수입을 만드는 마이클 잭슨의 아이러니함을 보라. 살아있는 사람들은 빚을 잘 관리해 생전에 꾸준한 수익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마이클 잭슨은 모방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원조로서 실패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을 지핀 그의 혼은 남아 있는 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남들은 내가 생각하는 걸 믿지 않았다. 모두가 의심이 많았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의심하면 최선을 다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나는 항상 자신을 가진다. 계획을 착수할 때는 그것을 100% 믿는다. 나의 혼을 작업에 불어넣는다. 그러다가 죽어도 상관없다. 그것이 나 자신이다.”빚테크 아닌 자신에 대한 제대로 된 투자가 부자로 가는 첫걸음이다. 만약에 네버랜드에 살 수 있으려면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 내 몸값이 그런 집에 살 여유를 줄 수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부자가 되고서도 소박한 집에 사는 워런 버핏이 더 빛나 보일 수도 있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19.04.21 16:13

11분 소요
[유튜버 되면 돈 많이 벌까] 확률 낮은 ‘대박’ 꿈은 금물

IT 일반

상위 5%에 못 들면 푼돈 벌기도 쉽지 않아…리스크에 대한 사회적 인지 필요 구글이 가진 글로벌 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YouTube)’에 손수 제작한 영상을 올려 다른 이용자들과 공유하는 일명 ‘유튜버(Youtuber)’의 세계가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취미로 영상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부업으로, 심지어 본업으로 삼고 영상을 정기적으로 업로드하는 유튜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인기 유튜버가 되면 웬만한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회자되면서다. 정말일까. 전문가들은 유튜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환상에선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왜 그런지, 인기 유튜버들은 어떤 콘텐트로 성공했는지 짚어봤다. #1. ‘밴쯔’(본명 정만수·28)는 약 3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다. 먹는 방송을 뜻하는 ‘먹방’이 그가 구독자들과 공유하는 콘텐트다. 떡볶이와 라면 같은 대중적인 국내 음식부터 해외 여행에서 접한 각종 이채로운 음식까지 다양한 음식을 카메라 앞에서 쉴 새 없이 먹는다. 그리고 입담을 과시한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 따르면 그의 지난해 총수입 추산치는 약 7억원. 대표 고소득 집단으로 알려진 국내 프로야구리그에서도 감독 가운데 최고 연봉을 받은 트레이 힐만(55) 전 SK와이번스 감독과 같은 액수다. 밴쯔는 한 방송에서 “먹방을 더 잘하고자 하루에 12시간씩 운동하면서 몸 관리를 했다”면서 프로 의식을 강조했다. 그의 체지방률은 8%로 성인 남성 평균치(16%대)의 절반 수준이다.#2. 배우 신세경은 20대의 젊은 나이로 시트콤 , 드라마 , 영화 같은 히트작에 출연한 인기 연예인이다. 그는 지난 10월 “팬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싶다”며 유튜브에 자신의 채널을 만들고 첫 영상을 올려 관심을 모았다. 반려견과의 나들이 등 일상을 공개한 영상들이 올라오면서 채널 개설 두 달 만에 약 38만 명의 구독자가 모여들었다. 개그먼 김대범, 개그우먼 강유미, 가수 홍진영 등의 연예인들도 유튜버가 부업이다. 아이돌그룹 출신인 ‘지오(본명 정병희)’는 인터넷 방송 진행자인 BJ를 아예 새 본업으로 택했다. “BJ가 된 지 10일 만에 3000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고 깜짝 고백한 그는 연인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과거였다면 TV 화면을 통해서나 팬들과 만났을 인기 연예인들까지 유튜버의 세계에 뛰어들고 있다.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도 급성장한 유튜버의 세계, 그리고 이들 유튜버가 양산한 콘텐트를 등에 업고 한층 위력적인 플랫폼이 된 유튜브의 현재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과거보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 시청률이 급락했으며 출연 기회도 한정적인 TV가 ‘지는 해’라면, 창작 제한이 덜하되 창작자에게 짭짤한 부수입까지 안겨주는 유튜브는 ‘뜨는 해’다. 국내에서 유튜브는 얼마나 인기를 모으고 있을까. 시장조사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유튜브 애플리케이션(앱)의 국내 월간 순이용자(MAU)는 지난 8월 기준 3093만 명에 달했다. ━ 인기 연예인까지 가세한 유튜버의 세계 같은 달 국내 이용자의 유튜브 앱 이용 시간은 총 333억분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나 증가했다. 이용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10대(112억분)와 20대(65억분)가 여전히 많이 본 가운데 50대(64억분)의 이용 시간이 급증하면서 30대(50억분)와 40대(42억분)를 추월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다른 시장조사 업체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7월 기준 국내 이용자의 월간 영상 플랫폼 체류 시간은 유튜브가 약 251억분으로 ‘옥수수’(SK브로드밴드, 9억5624만분) ‘아프리카TV(7억4132만분)’ ‘U+비디오포털(LG유플러스, 5억3351만분)’ ‘네이버TV(4억5809만분)’ ‘넷플릭스(1억1323만분)’ 등을 멀찌감치 따돌렸다.왜 이처럼 노소를 불문하고 유튜브로 유독 이용자가 모여들고 있을까.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누구나 영상 콘텐트를 만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 열린 플랫폼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검색하면 여느 플랫폼보다 방대한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유튜브에선 누구든지 무료로 클릭 한 번에 세계 각국 이용자가 올린 글로벌 콘텐트를 접할 수 있다. 또 TV나 책으로 보던 기존의 대중적인 콘텐트와 달리, 개인화와 전문화로 무장한 유튜브 콘텐트들은 그만큼 더 깊이 있게 이용자들을 파고든다. 내게 어울리는 화장법이 궁금하면 뷰티 콘텐트를, 새로 생긴 음식점이 궁금하면 먹방 콘텐트를 찾아서 보면 되는 식이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 못잖은 정확도를 갖춘 검색 기능이 양질의 영상 정보를 찾아줌으로써 이런 욕구를 충족시킨다.이런 이유로 기업 등 전문 제작자의 영상을 주로 취급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콘텐트가 국내용에만 한정된 경쟁 상대들보다 유튜브를 이용자가 친숙하게 여기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 중심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플랫폼 안에서 자발적으로 수많은 콘텐트를 ‘공급’하고 있는 유튜버들이 있다. 구글코리아에 따르면 구독자가 10만 명 이상인 국내 유튜브 채널은 지난해 기준 1275개로 해마다 배로 증가(2015년 368개, 2016년 674개)하는 추세다. 인기 유튜버가 급증한 이유는 유튜브 측이 영상 광고 수익을 유튜버와 적극 나누면서 풍부한 콘텐트를 확보하는 일종의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 전략을 펼치고 있어서다. 원래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연구·개발과 상용화 과정에서 대학이나 다른 기업·연구소 등 외부 전문가들의 기술과 지식을 활용, 효율성을 키우는 경영 전략을 의미한다. 여기서 외부 전문가의 범위를 요즘은 더 폭넓게 가져간다. 즉 요즘처럼 정보통신기술(ICT)과 이를 활용한 ‘공유경제’ 모델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엔 일반 소비자라도 전문가만큼 기업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기업이 이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한다는 얘기다. ━ ‘오픈 이노베이션’ 경영 전략의 힘 한때 파산 위기에 처했다가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기사회생했던 덴마크의 글로벌 완구 기업 레고(Lego)가 대표적 예다. 이 회사는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을 고안, 소비자가 이를 통해 직접 제품 개발과 개선에 참여하도록 허용했다. 일부 우수 결과물은 실제 제품으로도 출시했다. 그 결과 레고 마니아들이 결집하면서 감소세였던 수요가 반등하고, 새 수요 창출에도 성공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일반 이용자들에게 창작 자율권을 주고, 자연스레 아이디어를 흡수하면서 양과 질 모두 급속도로 강화를 거듭하는 콘텐트 공유 생태계를 만든 유튜브의 전략도 넓게 보면 오픈 이노베이션의 하나라는 분석이다.물론 그 이면에서 유튜브가 수익 공유라는 확실한 ‘당근’을 제시했기에 외부의 빠른 호응이 뒤따를 수 있었다. 앞서 유튜브는 2006년 구글에 인수되면서 구글의 광고 플랫폼인 ‘애드센스(Adsense)’를 도입하고 첫 광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7년 수익을 유튜버들과 나누기 시작하면서 광고 수익의 분배 요구에 부응했다. 이때부터 많은 아마추어 제작자들이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본격적으로 유튜버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유튜브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인 모기업 구글의 기조를 그대로 따랐다.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다. 유튜브는 외부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대가로 콘텐트와 이용자라는 성장동력을 계속 확보해나가고 있다.유튜브 수익은 구글 계정에 가입할 때 동시에 만들어지는 애드센스 계정을 통해 공유된다. 선택 화면에서 유튜버가 자신의 영상에 광고를 붙이겠다는 조항을 고르면 된다. 이후 영상을 제작해서 올리고, 최근 12개월 간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와 총 시청 시간과 같은 특정 조건을 충족하고 나면 유튜브 측이 영상에 짧은 분량의 광고를 삽입해 노출시킨다. 그 수익을 45(유튜브) 대 55(유튜버)의 비율로 나눠 가진다. 정산된 금액이 유튜버가 미리 계정에서 등록해둔 통장으로 특정 시기 월급처럼 지급되는 식이다. 광고 단가는 조회 수 하나당 약 1원으로 알려졌다. 조회 수 외에 구독자 수와 긍정적 피드백을 의미하는 ‘좋아요’ 숫자, 영상 길이 등도 단가 책정에 복합적으로 적용된다. 수 년 간 이렇게 유튜브와 광고 수익을 나누면서 고소득 달성에 성공한 유튜버가 급증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나도 유튜버 한 번 돼볼까?’라며 새롭게 유튜버의 세계로 진입하는 경우도 급증했다. 유튜브가 미국 등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까지 영상 플랫폼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인기 유튜버들은 과연 얼마나 벌고 있을까. 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지난해 기준 누적 조회 수로 집계한 추산치에 따르면(괄호 안은 콘텐트 분야) 1위는 ‘팜팜토이즈(키즈)’로 31억6000만원, 2위는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키즈)’로 19억3000만원의 고소득을 각각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도티(게임, 15억9000만원)’ ‘허팝(과학실험, 12억3000만)’ ‘대도서관(게임, 9억3000만)’ ‘악어(게임, 7억6000만원)’ 그리고 밴쯔 등이 뒤를 잇는다. 각각 부수입은 빠진 액수다. 이들 중 다수는 기업화가 됐다. 상위 0.1% 유튜버가 되면 이처럼 웬만한 기업 최고경영자(CEO) 못잖은 연간 수입을 올릴 수 있다.비슷한 경우 해외에서라면 한층 더 고소득이다. 가히 ‘신흥부자’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업계 1위 대니얼 미들턴(게임)은 지난해 1650만 달러의 소득을 달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약 187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그의 영상을 찾는 구독자만 전 세계에 2000만 명이 넘는다. 에번 퐁(게임), 듀드 퍼펙트(스포테인먼트), 로건 폴(일상), 마크 피시바흐(게임), 펠릭스 셀버그(게임), 제이크 폴(코미디), 스모시(코미디)도 같은 기간 1100만~155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성공한 유튜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상만 재밌으면 돼서다. 이제 갓 일곱 살인 해외 어린이 유튜버 라이언(키즈)은 또래나 학부모들에게 장난감 리뷰를 제공하면서 지난해 1100만 달러를 벌었다. 국내에도 어릴 때부터 유튜버가 돼서 초등학생임에도 구독자 30만 명 이상을 확보한 경우가 적잖다. ━ 해외 최상위 유튜버는 100억원대 연소득 이러다 보니 국내외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유튜버를 꿈꾸는 이용자가 급증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엔 “현재 초등학생이고 유튜버가 되고 싶은데 뭐부터 준비하면 되느냐” “직장 동료가 유튜브로 ‘대박’이 나서 퇴사했다는데…” 등의 질문 글이 홍수를 이룬다.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1순위, 직장인이 꿈꾸는 제2의 진로 1순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말 유튜버가 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ICT 전문가들은 ‘평균의 함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실적 좋은 극소수가 유튜브의 공유 수익을 사실상 독식하는 구조에선 이들이 상상을 초월한 고소득을 올리면서 다수 유튜버가 대체로 돈을 적잖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월 100만원을 벌기는커녕 영상 제작에 투입한 시간과 비용만큼의 본전도 못 뽑는 경우가 허다하다.일단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어렵사리 구독자 수백 명을 모았어도 당장은 1원 한 푼 벌지 못한다. 유튜브가 요구하는 애드센스 설정 승인 조건에 부합해야만 광고가 붙어서다. ICT 업계에 따르면 이 승인의 최소 조건은 ‘누적 구독자 1000명 이상, 4000시간의 누적 시청 시간’이다. 여기까지 몇 달이 걸리든, 몇 년이 걸리든 그전까지는 광고가 안 붙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처럼 언제 조건이 충족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노동력과 시간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는 데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8월 게임 방송을 하는 유튜버가 된 김장엽(27·가명)씨는 이런 문제로 몇 달 새 고민이 깊다. 현재 그가 확보한 구독자는 570여 명. 채널 개설 초반에는 인맥을 동원하고 ‘초심자의 행운’까지 따라 순식간에 300여 명이 모였다. 이때만 해도 성공이 눈앞에 있는 듯했지만 최근 한 달간 신규 구독자가 50여 명에 그치는 등 정체 상태다. 당연히 수입도 아직 없다.김씨는 “신작이 출시될 때마다 게이머들이 움직이면서 트렌드가 미묘하게 바뀌고, 그걸 커버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다양한 게임 분석과 영상 제작에 할애해야 하는데 취업 준비까지 하다 보니 쉽지 않다”며 “유튜버 생활을 접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지금껏 공들인 게 아까워 그러기도 어려울 듯싶다”고 토로했다. 영상 제작을 위해 PC와 카메라 등의 장비를 나름대로 고가인 제품으로 바꾸느라 줄어든 통장 잔고가 쉽게 그만 둘 결심을 못하게 한다. 다른 인기 유튜버들의 게임 분석 영상을 틈틈이 보며 내 채널과 달리 왜 많은 구독자가 모이는지 고민도 해보지만, 단기간에 나만의 경쟁력을 발굴해서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 김씨는 “차라리 그 시간에 알바(아르바이트)를 했으면 생활비는 벌었을 것”이라며 씁쓸히 웃었다. 김씨처럼 ‘희망고문’을 받으면서 어렵게 유튜버 생활을 하는 경우가 성공해서 목돈을 버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고생해서 구독자 1000명 이상, 4000시간의 시청 시간을 확보했더라도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유튜브 정책상 ‘구독자=수익’ 공식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0만 명이 아니라 10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채널이더라도 후속 영상을 올리지 않으면 수익은 공유되지 않는다. 매주 꾸준히 영상을 올려 조회 수를 착실히 쌓아나가야만 한다. 이 정도 헤비 유튜버가 되려면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의 생활은 포기하고 전업(轉業)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유튜브 하나로 최소 기존 월수입 정도만큼의 돈이라도 버는 걸 기대할 수 있다. 직장과 학교 다녔을 때 못잖게 성과에 대한 압박감도 계속해서 생겨난다. ‘좋아요’ 반응을 많이 얻어 유튜브가 시시각각 소개하는 ‘인기 급상승’ 영상에 내 영상이 노출돼야만 광고 수익도 그만큼 불어난다. 이용자들은 생각보다 냉정해서 구독하더라도 콘텐트 만족도가 떨어지면 금세 다른 채널로 옮겨간다. 그만큼 많은 공급이 매일같이 이뤄지는 ‘레드오션’이 됐다. ━ 최소 조건 충족해야 광고 수익 공유돼 물론 알려진 대로 상위 5% 이내 유튜버만 돼도, 대도서관이나 밴쯔 같은 톱10이 아니더라도 꽤 많은 돈을 번다. 구독자가 약 39만 명인 인기 유튜버 ‘생물인 정브르(동물)’는 개인 사육장을 갖추고 두꺼비와 도마뱀 같은, 시청자가 일상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동물을 기르면서 영상으로 찍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방송에서 ‘누적 시청 시간 3175만 분, 누적 조회 수 1065만’ 등의 데이터를 보여주면서 “월수입 최고치로 약 1만8700달러를 찍어본 적이 있다”고 공개했다. 약 2115만원에 달하는 고액이다. 12개월을 곱하면 연간 2억5000만원대 소득을 달성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그는 “이보다 높은 월수입을 올려본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따라서 실제로는 연간 수입이 1억원대일 가능성이 크다. 무직의 10~20대가 보기엔 고소득이지만, 연간 수천만원을 버는 직장인이라면 회사를 포기하면서까지 도전하기엔 망설여지는 액수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사육장 유지 등엔 많은 돈이 든다. ‘홍대(서울 홍익대)에서 하루 만에 100만원 쓰는 데이트하기’ 같은 기상천외한 실험 영상으로 인기를 모으면서 구독자가 약 181만 명인 또 다른 유튜버 ‘공대생 변승주(일상)’도 유튜브 수익이 얼마나 되느냐는 구독자의 질문에 “한 달에 1000만원 들어올 때가 있지만 세금 200만원, 촬영비 150만원, 직원 월급 250만원 등이 빠지는 걸 고려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50만원 안팎”이라고 했다.무엇보다 애드센스로 나눠 갖는 수익 자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유튜버들은 입을 모은다. 영상 안에 자사 제품을 넣어 홍보해주기를 원하는 기업의 협찬 등, 즉 부수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공대생 변승주는 “유튜브로는 크게 돈이 모이지 않는다”며 “두세 달에 한 번 들어오는 기업 광고(협찬)로 적금하고 대학등록금을 모은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런 부수입 자체가 구독 수익보다도 한층 불규칙하게 발생하며, 꼭 협찬이 들어오리라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이다. 약 3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로버(게임)’도 방송에서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그는 조회 수 하나당 1원으로 알려진 광고 단가 역시 현실과 다소 다르다고 지적했다. “조회 수 하나당 1원이 되는지 보려면 영상 길이와 영상 내 광고 개수까지 따져야 하는데 유튜브 영상의 경우 10분 미만 길이엔 광고가 하나 밖에 안 붙습니다. 10분 이상이어야만 여러 광고가 들어가죠. 즉, 조회 수 하나당 1원이 되려면 10분짜리 영상에 광고 3~5개는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일반적으로는 조회 수 하나당 0.5원이라고 봐야 더 정확합니다. 유튜버가 조회 수로 목돈을 번다는 건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잘못된 정보입니다.” 그는 “10분 이상 길이의 영상을 재밌게 만들고, 잘 볼 수 있게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며 “5분짜리 영상을 만드는 데만 최소 2~3시간의 편집 시간이 소요된다”고도 했다. 결국 계산대로라면 20만 조회 수의 10분짜리 유튜브 영상으로는 약 5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세금으로 빠질 금액도 고려해야 한다.이 밖에 유튜버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한둘이 아니다. 저작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저작권이 있는 음원인데 이를 모르고, 또는 무심코 영상에 포함시켜 유튜브에 올렸다가는 곤욕을 치를 수 있다. 저작권 위반 신고가 들어오면 유튜브 측은 해당 콘텐트를 차단한 다음 이를 올린 유튜버에게 경고를 하고, 경고가 3회 이상 누적되면 더 이상 영상을 올릴 수 없도록 계정을 차단한다.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차후 수익 배분 심사 과정에서 저작권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수익을 공유 받지 못한다. 애써서 만든 영상에 저작권 문제가 있진 않은지 늘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가 하면 유튜브 측이 해가 갈수록 심사 기준을 강화해서 더 까다롭게 수익 배분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유튜브 정책에 변화가 있진 않은지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불규칙한 수입에 따른 스트레스 관리와 구독자가 많아질수록 커지는, 철저한 자기관리 필요성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 저작권 위반 여부, 유튜브 정책 변화 점검해야 유튜버로 성공하려면 이처럼 알려진 것보다 훨씬 승률이 낮은 승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래도 관심이 있다면 처음엔 취미 삼아 소소하게 도전해보는 편이 낫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유튜버가 되기 위해 무작정 회사나 학교부터 그만두는 일은 절대 금물이라는 얘기다. 특히 초등학생들까지 유튜버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 등, 사회적으로 기존 경제활동 대신 영상 제작에 ‘올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데 대해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의 선택이므로 (유튜버 도전을) 누구도 막을 권리는 없겠지만, 리스크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분야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인식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다만 산업적인 측면에선 유튜브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자, 전망 밝은 플랫폼이다. 신동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유튜브의 인기는 콘텐트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기에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유튜브의 미래를 낙관했다.

2018.12.08 17:04

12분 소요
[서광원의 인간과 조직 사이(1) | 왜 못된 상사가 잘 나갈까?] 일은 입으로, 성과는 관계로

전문가 칼럼

절제력 있고 아래위 관계 형성에 공 들여…진취적 태도와 추진력에 호평 받기도 누구나 한 번쯤 회사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고민하고, 화가 나고, 맥이 탁 풀리는 경험을 한다. 우리 조직은 왜 이럴까,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마다 ‘원래 세상살이가 그렇지 뭐’라는 말이 전부일 때가 많다. 진짜 그럴까?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알 수 없는 조직 속의 일을 탐구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김 팀장은 1년 전 이 맘 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주말이라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정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앞 카페에 있으니 잠깐 보자”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하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주말에 굳이 집 앞까지 찾아온 이유가 뭘까 하고 나간 그에게 정 팀장은 밑도 끝도 없는 제안을 했다. 김 팀장이 모르는 회사 상황을 두루두루 얘기해주며 “O팀장이 요즘 사장과 단둘이 만나는 일이 많다”며 “둘이 힘을 합쳐 잘해 보자”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말이라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헤어졌지만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의에서 그가 하는 말에 동의를 해달라는 건지, 아니면 같이 할 아이템이 있다는 건지, 만일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회사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좀 더 친한 척했지만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그가 다른 회사로, 그것도 한 직급이나 높여 옮겨갔다. 그런데 그가 떠난 후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그는 팀장 이상들끼리 모이면 “도대체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 “O대리는 그렇게 좋은 학교를 나왔는데 왜 그렇게 굼뜬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하곤 했다. 그러니 다들 성과는 그 혼자 낸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팀원들이 한 일을 독차지한 것이었다. 그가 내세웠던 성과를 조사해 보니 거의 거짓 수치였다.그런데도 팀원들에게는 자신의 상사인 이사가 사사건건 자기를 견제하는 바람에 팀원들의 고생한 결과가 위로 전해지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 말 하고, 저기서는 저 말하는 줄타기를 했던 것이다. 협력 업체를 얼마나 닦달하고 대가를 요구했는지 그들의 불만도 무성했다. 인사팀이 그의 이력서를 확인해 보니 거짓투성이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입사를 했을까? ━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입사했을까 1년 반 전 유력한 사장 후보로 여겨지는 전무가 인재라면서 그를 데리고 왔기에 별 절차 없이 입사할 수 있었다. 전무는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자전거 동호회에서 그를 만났는데 능력이 있다 싶어 데려왔다고 했다. 조회해 보니 이전 회사에서 했다는 성과도 거짓이었다. 완전히 속았던 것이다. 아마 옮겨간 회사에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김 팀장이 가슴을 쓸어 내렸던 것은 이런 소란이 한바탕 지나간 후였다. 우연히 O팀장과 술 한 잔 하게 됐을 때 그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을 하자, O팀장이 깜짝 놀라며 “내게도 왔었다”고 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그에게 끌려들어가 무슨 일에 연루될 지 몰랐을 뻔했다.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가끔씩 보게 된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잘 나간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못된 사람’ ‘못된 상사’들이 잘 나가는 일은 의외로 흔하다. 예를 들면 이런 유형들이다. 우선 경쟁심이 유난히 강한 이들이 주변에 있거나 상사가 되면 하루하루가 피곤해진다. 이런 이들은 대체로 적극적이고 사교적이어서 발이 넓다. 사람 사귀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필요하다 싶으면 금세 가까운 사이로 만든다. 호감형에 말솜씨까지 좋아 소문에 빠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특히 경영진이 참석한 회의에서 혹할 만한 뭔가를 보이는 솜씨는 따라 하기 힘들 정도다. 당연히 경영진의 눈길을 사로잡아 유능한 인재로 인정 받는다. 물론 그의 눈에 들지 못하면 찬밥이 따로 없다. 앞에서 말한 정 팀장의 직원들처럼 영문도 모른 채 ‘의문의 1패’를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여기저기에 험담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찍혔다가는 큰 일이니 다들 몸조심을 하게 되고, 그럴수록 그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어떤 이들은 상사의 상사와 친해지는 재능이 있다. 사람들은 보통 상사만 만나도 긴장하는데 이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상사의 상사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가 금방 친해진다. 그들의 사무실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이런저런 소식을 전해준다. 사내 알짜 정보가 그들을 통해 흐르니 주위에 사람들이 모인다. 이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자기 자랑을 하는 능력은 보면서도 감탄할 정도다. 엘리베이터에서 높은 분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어색한 침묵이 흐르게 마련인데,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소개까지 한다. 그러면 또 높은 분들은 기다렸다는 듯 호의적으로 대해 준다. 다가서는 재주가 대단하다.못된 사람이 분명한데, 의외로 잘 나가는 이들이 가진 가장 흔한 특징은 일은 입으로 하고, 성과는 관계로 낸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에겐 묵묵히 성과를 내는 건 바보나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일을 하다 어려움이 생기면 어떻게든 피하거나 조용히 사라진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기 앞길을 막는다 싶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제거한다. 그 사람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관심 밖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가가 유일한 관심거리다. 말은 회사를 위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잇속을 다 차린다. 장애물을 제거할 땐 잊지 않고 무능이나 파렴치와 연관시켜 다시 일어설 수 없게끔 ‘생매장’시키는 것도 똑같다. 이 두 가지는 수익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라, 일단 이 멍에가 씌워지면 나중에 결백이 드러나도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 상사의 상사와 친해지는 재능 팀원들을 쥐 잡듯 흔드는 걸 즐기는 상사도 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높은 분들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대뜸 호통을 치며 팀원들을 사정없이 다그친다. 영문을 모르는 팀원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면 “자, 자, 잘 좀 하자고, 제발”하면서 달랜다. 마치 팀원들이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팀을 이끌어가고 있는지 보여주려는 일종의 ‘활극’이다. 동시에 팀원들에게는 자신의 힘을 확인시키고 말이다. 이럴 때 반기를 드는 사람은 즉시 ‘장애물’이 되어 제거 대상에 오른다.어느 조직에나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쯤 있다. 이런 이들이 하나만 있어도 회사 생활이 힘들어진다.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이가 있으면 골치가 아파지고, 그 이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출근할 때마다 지옥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 같은 나날이 된다. 수렁 같은 무력감에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특성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특별한 사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어떤 특별한 사람일까? 이들이 바로 가끔 공포영화에서 보는 사이코패스다! 10가지의 인격장애 중 가장 위험한 축에 속하는, 한마디로 마음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사람이다.이들이 진짜 영화 에 나오는 한니발과 같은, 무시무시한 성향의 소유자라는 말인가? 그렇다. 다만, 한니발 정도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벼운 증상’을 가진, 그러니까 일부 특성을 가진 부분 사이코패스들이긴 하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도 ‘조직의 뜨거운 맛’을 경험하기엔 충분하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이 없다는 것이다. 분노 정도만 있다. 이들의 뇌를 촬영해 보면 감정을 담당하는 곳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 양심의 가책 또한 느끼지 못한다.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었어도 흔들리는 일이 많다. 인간인 이상, 또는 양심이라는 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감정이 없기에 냉정하다 못해 냉혹하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훨씬 강력하게 집중할 수 있으며, 방해물이 나타나면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린다. 후회 또한 당연히 없다. 이런저런 감정에 흔들리지 않기에 상대의 감정을 마치 기계처럼 조작할 수 있고 조종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말솜씨를 익혀 매력적으로 다가선 다음, 약점을 잡아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재능을 일찌감치 터득한다.이를 위해 필요한 거짓말이란 거짓말은 다 꾸며낸다. 영화 에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으레 그런 것처럼 둘러댄다. 그러다 들키면 또 다른 거짓말로 덮으며 이런 저런 핑계를 댄다. 결코 책임 지는 법이 없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기꾼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대신 자신에 대한 우월감은 대단해 부하들을 하인처럼 부리고, 생각만큼 일을 못하면 대놓고 무시한다. 자신은 살고 다른 사람은 죽인다. 자신을 위해 조직과 구성원들을 망가뜨린다. ━ ‘가벼운 증상’의 사이코패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그들’은 앞에서도 말했듯 ‘가벼운 증상’을 가졌는데 바로 이 덕분에 성공가도를 달린다. 심리학자인 벨린다 보드와 카타리나 프리츠존이 영국의 경영자(39명)와 미국의 한 정신병원 범죄 수감자(1000명)이 가진 특성을 비교 연구한 결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비슷한 성향을 가졌는데 왜 경영자는 대명천지에서 성공한 사람으로 살고, 수감자들은 위험인물이 되어 철저하게 격리 수용되고 있을까?가벼운 증상을 가진 이들은 극단적인 사이코패스들이 가지지 못한, 욕구를 뒤로 미룰 수 있는 절제력을 갖고 있는 게 달랐다. 인내할 줄 아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중심적인 성격, 완고한 고집, 위압적이고 독재적인 경향, 상대의 약점을 동물적으로 간파해 공격하는 성향 같은 것들이 장점으로 작용했다.이들이 성공하는 두 번째 요인은 ‘노력’이다. 단, 일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에 대한 노력이라는 게 다르다. 이들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힘을 쏟고 그 덕분에 사람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된다. 예를 들어 이들은 회사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 강한 첫 인상을 심어주며 정보를 모으는 데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고, 어떤 능력과 정보, 그리고 권한을 갖고 있는지, 그러니까 이용가치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발이 넓은 게 이 때문이다. 특히 불평불만을 가진 이들은 좋은 ‘먹잇감’이다. 온갖 위로와 공감을 통해 그들의 불평불만에 불을 붙여 속내를 털어놓게 한 다음, 이걸 다른 사람에게 퍼뜨려 또 다른 정보를 얻는다.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노력이다. 심리학자이자 컨설턴트인 폴 바비악과 범죄심리학자인 로버트 헤어에 따르면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 맞는 맞춤형 거짓말을 하고 그에 맞는 가면을 쓴다. 도저히 거짓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조직 속의 ‘잘 나가는 그들’도 증상은 가볍지만 비슷하다. 회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댈 뿐이다.그래도 그렇지 경험 많고 똑똑한 경영진들이 왜 이들의 행각을 모를까? 모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이 워낙 호감 있고 친근감 있게 접근하다 보니 ‘매력’에 넘어가 인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더구나 외롭고 지치게 마련인 경영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니 마음이 가지 않을 수 없고 특히 진취적인 태도와 추진력, 평정심에 후한 점수를 주는 일이 많다. 예를 들어 감원을 한다거나 노조에 대한 대응을 할 때 보통 사람이라면 망설이거나 우유부단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런 게 없다.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간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능력을 보인다. 사실 감정이 없어서 그러는 것인데 이걸 능력으로 보는 것이다.더구나 회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그랬다고 하면 대체로 넘어간다. 일이 커지면 좋지 않다며 묵인하기도 하고, 당사자가 강력하게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증거를 들이대면 역시 수용하기도 한다. 이 역시 또 다른 거짓말일 때가 많지만 워낙 강력하게 주장하니 넘어간다. 친분관계를 통해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 찍히지 말고 신속하게 피해야 이러니 누군가 용기 있게 악행을 들추어 내거나 문제를 제기해도 작은 파문에 그치고,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질책을 받거나 퇴출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들이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물론 윗사람의 마음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봉합한 다음 자신에게 도전한 이들을 반드시 보복, 도태시킨다. 로버트 서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악행은 선행보다 전염력이 5배는 강하기 때문에 악질 주위에 있으면 악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악질이 하나만 있어도 주변 모두가 엄청난 폐해를 입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이들이 상사가 되면 하루하루가 암울해진다. 회사가 지옥이 된다. 혹시 이런 이들과 함께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전문가들이 말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일단 찍히지 말라. 그런 다음 가능한 한 신속하게 피하라. 왜 그럴까? 폴 바비악과 로버트 헤어에 따르면 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떤 치료나 관리 프로그램이 이들의 상태를 호전시켰다는 사례나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18.11.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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